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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다씨의 책읽는 강남 2022년 2분기 추천도서
논현도서관
익다씨의 책읽는 강남 2022년 2분기 추천도서
빅데이터로 보는 북큐레이션 : 책과 책을 잇다
2분기 주제도서 : 긴긴밤 / 루리 / 문학동네 어린이
키워드 : #연대#환경보호#희망#공존#함께#우정#친구#우리
주제도서는 2022년 강남구 베스트 대출도서입니다. (출처 : 도서관 정보나루)
키워드에 관련된 논현도서관 추천도서를 소개하오니,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세요.
『긴긴밤』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코뿔소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그땐 기적인 줄 몰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게.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긴긴밤』. 몇 년 전 뉴스에 소개된 ‘지구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은 우리를 깊이 반성하고 돌아보게 했다. 그때까지 수단은 어떤 삶을 살아낸 것일까. 그 고단한 눈으로 만끽한 순간은 무엇이고 도려낸 순간은 무엇일까.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단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수단에게서 시작된 이야기 『긴긴밤』은 “압도적인 감동의 힘”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과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의 엄숙함” “멸종되어 가는 코뿔소와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펭귄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 낸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5번 레인』과 함께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코끼리 무리에서 자라난 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사랑하는 이들의 몫까지 살아 내야 하는 노든과 스스로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 내는 어린 펭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두 존재가 ‘우리’가 되어 긴긴밤을 뚫고 파란 지평선(바다)으로 나아가는 여정은 오래도록 내 안의 힘으로 머물러 줄 것이다.
바깥세상은 노든의 상상보다 더 행복했지만, 고통 또한 작열했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야생으로 야생에서 동물원으로 동물원에서 다시 길 위로, 노든 곁엔 그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빗방울을 맞고, 서로의 입김으로 긴긴밤을 녹여 준 이들이 있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게 서툰 노든을 ‘엉뚱하지만 특별한 코뿔소’라고 불러 준 아내, 악몽을 꾸지 않고 긴긴밤을 견딜 방법을 알려 준 앙가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무서운 밤 너머 ‘내일’을 딛고 서게 해 준 치쿠까지. 그들이 있었기에 노든은 힘을 낼 수 있었고 어린 펭귄은 그의 온 세계였던 알 껍질보다 견고한 사랑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서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종국에 다다르는 곳은 다를지라도,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은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위안을 준다.
사랑과 연대, 생명의 존엄을 담은 동화 『긴긴밤』을 견인하는 또 다른 힘은, 하나의 세계를 통과해 또 하나의 세계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향한 격려다. 나를 증명할 이름 따위 없어도 코가 자라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를, 불완전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너는 너 자체로 충분하다는 응원을, 그만하면 안간힘을 다했다는 위로를, 수없는 기적이 모여 ‘나’라는 기적을 이루었다는 믿음과, 눈앞의 바다를 마주할 용기를 쥐여 준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을 통해 펼치는 확장의 세계가 여기 있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오늘날 ‘미래’라는 말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보면, 마치 그 미래는 인간의 몸과는 무관하게 전개될 것만 같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로 움직이는 세상, 첨단 기술을 동원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들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고통도 갈등도 불가능도 없는 편리하고 매끄러운 곳일까? 열다섯 살 전후로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들(보청기와 휠체어)과 만나 ‘사이보그’로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현장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오늘의 과학과 기술이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각기 청각장애(김초엽)와 지체장애(김원영)를 지닌 채 살아온 시간과 장애권리운동의 자장 안에서 키워온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타자, 환경,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다른 내일을 제시한다. 장애인의 인지 세계와 감각, 동작을 중심으로 새롭게 설계한 세계를 상상하는 김초엽, 각기 다른 취약함과 의존성을 지닌 존재들이 더 긴밀하게 접속하여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미래의 기술을 기대하는 김원영. 두 사람은 각자의 오랜 문제의식을 멀리, 또 깊숙이 밀고 나아가 이 세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든 위계와 정상성 규범 너머에서 서로를 재발견하고 환대할 미래를 그린다. 여기,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통과해 더 인간적인 미래의 어느 날에 도달할 짜릿한 여행이 준비되어 있다.
이 책에서 ‘사이보그’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사전적 정의를 훌쩍 넘어선다. 김초엽과 김원영은 인간과 과학, 기술, 자연, 환경 및 그 밖의 모든 물리적ㆍ문화적 구성 요소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나가는 총체를 ‘사이보그’라는 상징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그 최전선에 있는 ‘장애인 사이보그’의 구체적 현실을 살피며 위계 없는 세계, 정상 혹은 표준의 장벽 너머를 상상해보는 지적 여정이 될 것이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리나 구스타브손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그러라고 태어난 동물은 없다!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할까? “어떤 경우든 인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 진짜 필요한 일인지 매번 고민해야 하며, 동물이 겪어야 할 고통을 가능한 한 줄여줘야 한다.”고 일찍이 생명외경 사상을 설파한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말한 바 있다. 인간은 동물들의 고통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 마땅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이 쓴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절실하고도 뜨거운 논의, 즉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데 강렬한 영감을 던지는 책이다.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수의학을 공부한 저자는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축장 일에 지원한다. 동물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돼지, 소, 닭 등 식용육의 하역, 수송, 보관, 도축 과정에서 각오를 훌쩍 뛰어넘는 참혹한 장면을 마주하고, 그 먹먹한 날들을 묵묵히 일기로 남긴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도축장을 가감 없이 해부한 이 기록은 현대문명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 또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도축장의 생생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참담하고 무력해질지 모른다. 단순히 도축 환경의 개선을 말하는 데 그칠 수 없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도 같은 날들을 기록하며, 저자는 동물이 인간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하나뿐인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닌지 끊임없이 곱씹는다. 그렇게 책은 인간은 과연 동물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되물으며, 평범한 우리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닭, 소, 돼지는 허용하면서 개고기는 금지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반려동물 가구가 600만을 넘은 현실을 잘 반영했고 식용견의 잔혹사가 더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겼다. 우리나라도 동물권과 생명권 논의가 더디게나마 진전되고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리나 구스타브손’ 덕분일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를 도구로 대하며 거리낌 없이 고통을 주는 인간의 행위를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저자가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해 기록한 이 책이 ‘생명의 존엄’에 대한 질문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공간을 탐하다』
임형남, 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도시에는 역사와 삶의 흔적이 만든 복합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서울역은 찬란하고 서글펐던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는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덕수궁 정관헌은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헌법재판소는 상식과 원칙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의 공간’이며, 광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시끄러운 ‘민주적인 공간’이며,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캠퍼스는 지성의 열매를 구하는 ‘연대감과 자부심의 공간’이며, 서점은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골목은 도시 재개발에 밀려 하나씩 사라지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의 공간에는 사람과 시간과 일상과 자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쇠락해간 시간의 역사를 보며, 우리는 그곳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대의 도시 풍경을 읽게 된다.
임형남ㆍ노은주의 『공간을 탐하다』는 두 건축가를 매혹시키는 장소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더불어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의 일상에 담긴 시간들을 더듬어가며 엮었다. 또 이 책은 건축을 보며, 그 건축에 관한 매혹에 대해, 그 공간이 주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모은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을 위한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임형남ㆍ노은주 건축가는 건축은 가장 오래 남는 물질문명이며 문화이고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리를 거닐다 만나는 작은 가게,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담긴 작은 정원,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오래된 시장 등 흔하디 흔한 익숙하고 일상적인 풍경도 그 안에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순간 마법처럼 그 공간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공간은 의미가 더해지고 점점 더 넓어져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결국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되고 도시가 된다.
제1장은 도시의 공간이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서울역,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법재판소, 넓고 시끄럽고 민주적인 광화문광장,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싸우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국회의사당,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 있는 캠퍼스에 대한 이야기다. 제2장은 기억의 공간이다.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덕수궁 정관헌,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만나는 이탈리아 산 카탈도 공동묘지, 실존적인 나와 만나는 스위스 발스 온천에 대한 이야기다.
제3장은 놀이의 공간이다. 지식의 교류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서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을지로 골목,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는 홍대 클럽, 예술과 문화가 넘치는 매혹의 장소인 홍대 앞과 낙원상가, 도시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서울로 7017에 대한 이야기다. 제4장은 휴식의 공간이다. 상업주의에 물들어 사막화되어가는 홍대 앞의 아미티스 가든, 도시 재생의 모범적인 사례인 선유도공원, 자연을 존경하게 되는 창덕궁 후원과 일본 교토 무린암과 중국 쑤저우 줘정원, 자연으로 들어가는 건축인 데시마 미술관, 사람과 자연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교토 고안에 대한 이야기다.
『깜박깜박해도 괜찮아』
장유경 지음 | 딜레르 | 2021년
남 얘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얘기, ‘치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누가 걸리느냐가 아니라 언제 걸리느냐의 문제라고 할 정도로 치매는 우리 모두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치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인지발달 전문가 장유경 박사 역시 항상 공부하고 일하는 바쁜 딸로 부모님에게 무심하게 살아왔다. 어느덧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경도인지장애를 앓게 되고서야 문득 아버지가 그립고,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10년째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와 3년 전부터 같이 살면서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그리고 바람직한 노년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1/4이 앓고 방치하면 치매가 되는 병, 경도인지장애! 듣기만 해도 무섭고 당황스럽지만, 상당한 비율의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치매로 진행되지 않거나 정상인지로 회귀하기도 한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 국내 연구에서는 40%가 넘는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1년 후에 정상인지로 회귀하였다. ‘이제 좀 있음 치매가 되는구나!’ 하고 좌절하고 포기할 게 아니라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책은 경도인지장애가 뭔지 알지도 못하던 10년 전쯤, 저자가 엄마의 기억이 깜박깜박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엄마가 치매로 곧 돌아가시는 줄 알고 낙심하던 순간과 치매가 아니라서 안심하며 무심코 보냈던 시간들, 엄마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알면서 혹은 혹시나 하고 시도했던 여러 방법들을 저자는 모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정리했다.
엄마는 오늘도 방금 식사한 것을 잊어버리고, 반려견에게 밥을 주고도 또 주신다. 딸에게는 아들과 살아야 하니 이사 나가라 하시다가도 살뜰히 챙겨줘서 고맙다 하시고, 늦게 귀가하는 손주들 걱정도 하신다. 저자는 그런 엄마에게 툴툴거리고 곧 후회하고 뒤늦게 감사한다.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 부끄럽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모녀의 일화를 읽다 보면 울다가 웃고 내 얘기 같아 뭉클해진다.
이 책은 누구나 반드시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 경험자가 미리 건네는 처방전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치매 돌봄 가족이나 막연한 미래의 일로 불안한 독자들에게 작지만 깊은 울림이 될 것이다.
『별것 아닌 선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우리를 지탱하는 별것 아닌 것들에 관한 이야기
분노도 냉소도 아닌, ‘모래알만 한 선의’가 품은 어떤 윤리적 삶의 가능성
2021년 1월, 소낙눈 내리던 서울역 광장에서 한 남자가 입고 있던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며 장갑과 5만 원권 지폐를 건네는 장면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이 실린 짧은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며 단시간에 널리 공유됐다. 얼마 후 일각에서는 선한 누군가가 건넨 도움의 손길이 미담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일었다. 개인의 온정에 기대어 유지되는 공동체의 온기는 체제와 자본의 모순을 도리어 은폐할 수 있다는 논지였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 하나마저 제해진 세상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날 선 고발만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유일한 힘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결벽적인 태도로 어떤 실천이 가진 빈틈을 냉소하기보다, 우연하고 지속 불가능한 방식일지라도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작은 기회들을 늘려가자고 제안한다. 때로는 어떤 시선을 의식한 위선조차도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위선마저 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야만일 것이다. 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기 위한 길은 하나가 아니다. 《별것 아닌 선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며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의 가치를 역설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어나가며 삶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깨어진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방법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내 손에 못 박은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연민은 쉽게 지치고 분노는 금세 목적지를 잃는다. 이 책은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의 순간들을 그러모은 것이다. 부조리하고 가혹한 세상을 단번에 바꿀 힘은 우리에게 없지만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나은 시민이 되어 서로의 곁이 되어주는 일은 가능하다. 제주대학교에서 법학을 강의하며 연구자로 살아가는 이소영 교수는, 완벽하고 흠결 없는 실천이 아니라 서툴고 부족한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가진 선의의 동심원을 넓혀가자고 제안한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커
보육사이자 칼럼니스트 브래디 미카코. 영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일본인 저자가 계층 격차와 다문화 문제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의 밑바닥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생생한 현실을 기록한『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저자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이 인종도 국적도 계층도 다른 친구들을 만나며 겪는 복잡미묘한 사건을 관찰하며 다양성과 차별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풀어낸다. 긴축 재정과 브렉시트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어른들의 편견을 뛰어넘으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깊은 감동을 준다.
영국 지방도시의 공영주택지가 모여 있는 동네. 그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에도 무상 급식 대상자와 중산층, 이민자와 원주민, 백인과 유색인종이 섞여 있다. 저자는 아이가 백인에게 인종 차별을 당하거나 몸집이 작아 폭력을 당할까봐 걱정했지만 차별과 폭력의 양상은 한층 복잡하다.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배척하는 건 또 다른 이민자였고, 식당에서 음식을 훔쳐 먹은 친구를 타이르던 아이들이 벌을 내리듯 폭력을 가했으며, 혐오 발언을 일삼던 아이는 ‘쿨하지 않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걱정을 가장한 편견을 내비치고,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함과 취향의 자유를 근거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여론과 이민자에 대한 이중적 태도, 하층 계급을 바라보는 중산층의 차가운 시선 위에 아이들의 전장은 이미 예견된 셈이다.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수영장 풀사이드마저 나뉘어 있는 중학교 수영대회의 모습은 21세기 계급사회의 풍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들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관찰하던 저자의 시선은 ‘시민사회’의 자부심이 뿌리내리고 있는 영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격차와 차별과 폭력이 만연하는 학교 너머로 드러난 건 보수 정권의 긴축 정책으로 ‘무너진 복지국가’와 ‘막다른 길에 몰린 다문화 사회’였다. 공영주택지에서, 풀사이드 저쪽에서, 교실 뒷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회의 위험성을 저자는 엄중히 경고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 시민력을 키우는 허승 판사의 법 이야기, 세상 이야기』
허승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신문과 뉴스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사건의 법적 쟁점은 무엇일까?”
허승 판사가 생생히 중계하는 우리 사회 24가지 법정 다툼
분쟁이 일어나면 ‘법대로 하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요즘, 과연 법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허승 판사가 우리 사회의 법정 다툼을 생생히 중계하며, 사법부는 이에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대중의 언어로 펼쳐 놓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24개의 갈등 사례는 대부분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납품 대금을 둘러싼 갑질 논란’, ‘아이돌 스타의 전속계약 분쟁’, ‘동성 결혼 합법화 논란’, ‘태양광발전소 자연 훼손 논란’ 등 굵직한 사회 이슈부터 ‘배우자와 자녀 사이의 상속 분쟁’, ‘이웃과의 일조권·조망권 분쟁’ 등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다툼까지, 이 시대의 현안과 갈등을 법적으로 살펴본다. 헌법 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으로 인해 사회적 논의의 방향이 달라진 ‘낙태죄’의 경우, 후속 법 개정 이후를 가정해 앞으로의 분쟁 상황을 내다보기도 했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는 저자가 고등법원 행정항소부에서 근무할 때 집필했다. 저자는 대형 조세 사건부터 운전면허 정지 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정사건을 심리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관계,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 내용을 책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갈등 당사자의 입장을 고루 살펴 분쟁의 쟁점을 찾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한 구성에서 현직 판사의 노련한 솜씨와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각 장의 후반부에는 〈작전〉, 〈귀여운 여인〉 등의 영화 속 사례를 통해 법의 논리와 작동 방식 등을 살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상반되는 가치가 대립하는 가운데 어느 쪽에 손을 들어 줘야 할까? 기계적인 판결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설명을 길잡이 삼아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고민하다 보면, 우리 사회 갈등을 읽어 내는 시각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짤막한 법정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는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신문과 뉴스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사건의 법적 쟁점과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해당 판결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점은 없을까? 판결 이후 시민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법조 현장에서 다져진 저자의 냉철한 분석을 길잡이 삼아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 가다 보면,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법이 사실 일상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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