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늘 그렇듯 나도 뭔가 심어보고 가꿔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방에서 차 오르는 생명의 기운이 아무 기술도 경험도 없는 나에게 그런 부추김을 하나보다. 2010년 처음 수완지구에 지금의 건물을 짓고 살기 시작했을 때는 주변에 다른 것은 거의 없었다. 빈 땅에 밭을 일구는 분들이 많아 마치 우리도 나름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밭에 물이 필요할 때는 몇 안되는 집 가운데 가까운 우리 집 바깥 수도에서 물을 길어 가기도 하고, 오고가면서 우리에게 옆의 빈 땅에 뭐라도 심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무언가 심고 가꾸는 일에는 완전 생 초보였던 도시출신 우리 부부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한두해 구경만하고 보내다가, 2013년인가 단골이웃 몇 분의 도움에 힘입어 풀만 무성했던 옆 땅을 갈아 엎고 다듬어 여러 가지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그때 마음에 용기를 주었던 책이 ‘텃밭정원 가이드북’(오도 지음, 그물코)이었다.
작은 땅에서도 정원 가꾸듯 텃밭을 가꿀 수 있는 방식으로, 밭은 어떻게 일구어야 하는지 어떤 작물을 같이 섞어 심으면 좋은지, 기능이나 모양 뿐 아니라 작물 가꾸는 법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농사라면 엄두가 나지 않던 우리도 좀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서관과 북카페를 하는 숨 바로 옆 빈 땅에 이런 정원 같은 텃밭이 있다면, 이용하는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체험도 되고 간단한 먹거리를 나누어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거닐기만 해도 좋겠다 싶어서 희망에 부풀어 시작했던 것이다. 상추랑 토마토, 가지와 감자 등 기본 작물들과 작두콩이나 오이같이 비교적 시설물이 필요한 것들까지 꽤 많이 심었다. 자주 돌보며 물 주고 풀 뽑고 해야 하는데 늘 시기를 놓쳐서 웃자라 비실거리거나 풀이 무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고 흙 만지며 열매를 따서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그 사이 수완지구에는 건물들이 정신없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고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곳곳에 땅 파고 시멘트 붓는 공사로 원룸형 주거 빌딩들이 세워졌다. 곧 공사가 시작될 곳은 어김없이 팻말이 붙었는데, ‘공사 예정 경작 금지’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우리가 밭으로 쓰던 곳은 그나마 안내도 없었던 것이 전혀 밭 같아 보이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하기사 ‘자연농법’이라고 헛소리하며 비료가 될 만한 것은 제대로 준 적이 없었으니 작물 상태나 풀 상태나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도시농부의 꿈은 피지도 못하고 접어 버렸지만, 늘 아쉬움과 숙제로 남아 있어서 그 후로 봄이 오면 내 마음도 괜시리 벌렁거리는 것 같다.
올해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2016 텃밭일지 농사달력. 꿈이자라는뜰’(그물코)이라는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일반 다이어리노트에 농사에 관한 지식들이 일 년 일정 곳곳에 짧지만 유용하게 적혀있다. 충남 홍성지역의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위해 온 마을이 함께 만들어 가는 배움터이자 일터인 ‘꿈이 자라는 뜰’에서, 농사 경험을 살려 그 해 날짜에 맞게 매년 만들어 발간하는 것이다. 농사가 발달장애 친구들이 배우고 자라 건강한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중에 하나로 자리한 것이다. 그 내용이 매우 실제적이고 구성이 깔끔해서 다이어리에 정리만 잘해도 저절로 농사전문가가 되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사실 텃밭가꾸기는 단순히 여유있는 누군가의 취미활동도 아니고 자연체험을 위해 하면 좋은 것도 아니다. 그것을 통해 자연과 생명, 순환과 공생을 배워가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지구생태계에서 인간은 또 하나의 고리일 뿐인데, 너무 오만방자하게 모든 것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깨워 주는 일이 바로 농사이고 경작인 것이다. 과학과 자본의 발전으로 모든 먹고 사는 일이 분리되고 나뉘어져 버려서 먹거리가 더 이상 생명을 지닌 어떤 것이 아니라 진열대의 삼푸·화장지와 다를 바 없는 상품이 되어 버린 요즘엔, 언젠가는 땅이·지구가 더 이상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거의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온 삶을 먹다’(웬델 베리 지음·이한종 엮음, 낮은산)에서 ‘대지의 청지기’로 불리는 저자 웬델 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오륙십년동안, 우리는 돈이 있는 한 먹거리를 얻게 되리라 쉽게 믿어 왔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우리를 먹여주는 땅과 일손을 계속해서 업신여긴다면, 먹거리의 공급은 줄어 들 것이며, 우리는 이번 종이경제(필자주:2008년 미국경제위기를 일컬음)의 파탄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농기업들에게 수천억 달러를 주고도 먹거리를 조달하지 못할 것이다.”(온 삶을 먹다. 17쪽)
봄을 맞아 만개한 꽃나무 사이를 지나며 감탄하다가 곧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황급히 마스크를 찾아 쓴다. 길가 여기저기 올라오는 쑥을 보고 반가워 하다가도 중금속에 오염되어 먹을 수 없다고 고개를 돌린다. 이러다가는 우리 주변의 생명의 기운이 모두 사그러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올 봄에는 뭔가 해야만 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야 겠다.
* 봄철 도시농부가 되기 위해 함께 보면 좋은 책
‘연두:도시를경작하다 사람을경작하다’(변현단 지음, 그물코)
‘우리학교 텃밭:초등학교에서 많이 심는 채소9종과 곡식 3종 가꾸기’(노정임 지음, 철수와영희)
문의 전화: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