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12월의 읽을 만한 책 10권
2015년 12월의 읽을 만한 책 10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_ http://www.kpipa.or.kr/info/recommBook.do?board_id=35#
문학예술
저기, 풍경이 있다. 울창한 숲이 있고, 맑은 물이 있고,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고, 연꽃으로 수놓인 화려한 연못이 있다. 가끔은 안개가 아스라하다. 오른쪽 발이 벌써 앞을 향해 나간다. 든든한 다리(橋)가 저마다 다른 다리(脚)를 받치며 풍경 속으로 데려다 준다. 우리는 풍경을 향해 가느라 자신이 밟고 지나는 다리를 좀처럼 내려다보지 않는다. 온몸을 던졌던 풍경에 무젖다가 돌아 나올 즈음에야 비로소 건너야 할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는 다시 묵묵히 우리를 삶의 이편으로 데려다 준다.
저자는 유려한 붓놀림으로 문명의 구조물로 시작된 다리의 존재를 우리네 삶과 엮어 재해석하고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월정교, 춘향의 사랑이 서린 오작교,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승선교, 서울의 치수(治水)를 위한 수표교, 세종의 효심이 서린 살곶이다리, 고려의 운명을 바꾼 선죽교, 정선 아우라지의 슬픈 이별을 말해 주는 섶다리, 고해의 파도를 헤치며 해탈로 나아가는 능파교, 피란민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 다리마다 구구절절 사연 없는 곳이 없다.
귀신사 홀어미다리의 주인공은 남편을 일찍 보내고 홀로 어린 남매를 키운 여인이다. 여인은 늘그막에 건넛마을에 사는 홀아비를 만나 정을 나누었다. 밤마다 사라지는 어머니가 이상해 뒤를 밟던 아들은 어머니가 정인을 만나러 오가는 길에 개울물에 옷이 젖는 것을 보고, 남몰래 다리를 놓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애틋한 마음을 알았을까?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은 아들의 효심을 칭찬하며 홀어미다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20년의 연구와 10년 답사의 노고를 담은 이 책은 역사와 신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곳저곳 아롱다롱 매달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길을 나서면, 풍경에 섞여 있던 다리들이 어제보다는 좀 더 또렷하게, 좀 더 정답게 보일 것이다.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문학예술
진주알 같은 이슬 머금은 모란을/ 미인이 꺾어선 창 앞을 지나면서/ 웃음 머금고 정인더러 묻는다/ “꽃이 나아요? 내 얼굴이 나아요?”/ 낭군은 일부러 놀려주려고/“꽃가지가 더 나은데?”/ 미인은 꽃을 던져 버리고/ 밟아 짓뭉개면서/“꽃이 나보다 낫다면/ 오늘 밤엔 꽃이랑 주무세요!” -「꽃을 꺾어서(折花行)」전문
이 작품은 고려를 대표하는 문장가의 한 사람인 이규보의 한시 「꽃을 꺾어서(折花行)」이다. 남성을 흠모하는 마음을 여성 특유의 질투심으로 풀어놓았다. 토라지며 돌아서는 여성의 톡 쏘는 듯한 매력이 모란보다 더한 향기를 뿜어낸다. 이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우선 시가 어렵지 않다는 데에 선뜻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런 재치 넘치는 사랑시가 쓰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시대를 초월한 시적 매력을 느낄 것이다. 이 시에서‘정인(情人)’은 젊은 연인 사이의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만일 ‘정인’과 ‘낭군’을 ‘그대’ 라는 말로 살짝 바꾼다면, 현대시로도 충분히 읽혀질 만하다. 어떠한가. 이미지도 한 편의 풍경화처럼 친근하지 않은가.
이처럼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는 한시에 대한 난해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정겨움과 재미가 살아 있는 책이다. 또한 시를 둘러싼 편안한 해설이 함께 하고 있어 쉽게 읽힌다. 물론 거기에는 저자 김재욱의 직역에 가까운 번역도 한몫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한시를 읽어가면서 느끼는 행복 중의 하나는 옛 문인들과 함께 삶을 호흡하고 있다는 감정이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고, 우리들이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정다운 대화의 장이 펼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우리들의 가슴에 녹아든다. 50편의 한시가 이런 구성과 마력을 갖고 태어나서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시 50편을 사랑, 사람, 역사, 영물, 자연, 죽음, 친구 이렇게 일곱 가지 주제 하에 펼쳐 놓았기에, 다양한 주제를 벗하면서 읽어가다 보면, 우리들은 어느 새 한시에 마음을 베여 간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동양적 문화와 지혜가 그리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그 그리움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 추천자: 오석륜(시인, 인덕대 일본어과 교수)
인문학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을 거의 함께 했고 지금도 여전히 역사 전개의 주요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늘 은폐의 대상이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뇌물이다. 뇌물은 영어로 ‘bribe’(브라이브)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자선이나 자비를 베풀 때 사용하는 선의의 물건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선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고, 한국의 조선에서도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늘 모호하였다. 현대 한국사회의 이른바 ‘떡값’도 마찬가지다. 서로 부담 없이 관행에 따라 소소하게 떡값을 주고받는데, 뇌물이라 단정하기에는 대체로 액수가 적다. 그렇다고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대가성을 내포한 경우가 많은 탓에, 떡값을 뇌물로 볼지 선물로 볼지 그 경계와 기준은 여전히 애매하다. 그래도 어떤 거래가 일단 뇌물수수로 판정받으면, 그 범죄의 심각성과 부정적 파장은 매우 큰 편이다. 인류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뇌물이라는 주제가 역사 이해의 한 프리즘으로 전면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뇌물은 힘 그 자체보다는 필요에 따라 움직이기에, 인류문명이 지속되는 한 뇌물도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며, 그 완전한 근절은 솔직히 불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3,000년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뇌물의 실체와 그 작동 원리를 파헤친다. 고대 중국의 사례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근대의 유럽을 거쳐, 한국의 역사까지 섭렵하면서 말 그대로 ‘뇌물의 역사’를 탄탄하게 다룬다. 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물이 근절되지 않는지, 어떤 중차대한 일을 추진할 때 왜 뇌물이 주요 수단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례를 종횡무진으로 들면서 매우 맛나게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뇌물을 선악의 잣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동안 쉬쉬하던 뇌물을 역사공부의 한 주제로 담담히 끌어낸다. 이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양질의 교양서이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인문학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무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는 움직이고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나무는 스스로 타고난 운명을 그대로 사랑하고 자신을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존재다. 그래서 나무는 인간보다 지혜롭고 인간보다 의연하다.
이 책은 인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나무를 보고 느끼고 받은 감동을 인문학적으로 풀어 쓴 글이다. 여기서 저자는 나무로부터 배운 철학을 말한다고 한다. 옆으로 나이를 먹는 나이테에서 종과 횡으로 담담하게 나이를 먹는 나무의 지혜를 발견한다. 봄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낙엽을 뿌리는 나무에서 분수에 맞게 사는 법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자귀나무에서 자신에게서 지혜를 찾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다른 존재에 몸을 기대어 사는 등나무에서 더불어 삶의 가치를 배우면서도, 나무를 좋아하는 삶에서 혼자서도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법을 깨우친다. 껍질, 잎, 꽃, 열매 등을 잘 살펴야 한 나무의 특성을 알 수 있는데, 인간을 키와 몸무게로만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한다. 풀도 나무도 아닌 대나무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진정 강하고, 막혀있으면서도 트여있고 트여있으면서도 막혀있는 중도의 삶을 산다고 해설한다. 버드나무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은 변화무쌍한 현실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은 흔들려야만 좋은 생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회양목이나 밤나무처럼 치밀하게 되려면 매일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는 순간까지 인생을 공부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은 물이 흐르면서 모든 웅덩이를 채우며 나아가듯,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나아간다. 경쟁에서의 승리나 금전적 보상 따위를 바라지 않고 묵묵하게 제 자리에서 조금씩 위로 그리고 또 옆으로 성장하는 나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 아닐까?
- 추천자: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사회과학
현대에 올수록 자연의 공간은 온갖 건축물로 채워지고 건축된 공간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한 공간들은 사람에 대한 배려를 결여하기 쉽다. 이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 맛 볼 수 있는 공간 만들기에 눈을 떠야 할 때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세계 곳곳의 건축물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특색들을 섭렵하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공간이나 좋은 공간이란 결국 사람들이 모이고 편안함을 느끼는 곳임을 지적한다. 건축가로서 저자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심과 시각을 충분히 습득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들이 의미와 가치를 축적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삶을 실천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곧 건축학이라는 점을 설파한다. 랜드마크를 하트마크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곧 공간을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끌어들이고 또한 실현하는 장소가 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공간의 주인은 언제나 사람이다’에서 시작하여 ‘인간적 공간으로 승리하는 디테일’에 이르는 7가지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 세계의 흥미로운 곳곳을 다니면서 건축물의 내부구조와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 외부구조와 그것이 주위와 어떤 조화를 이루어서 어떤 의미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전문가의 눈으로 분석하고 누구나 편안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공간과 인간은 끊임없이 접속을 갈망한다. 감성을 자극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문화를 공유하고 그것을 즐기게 만들면 고객 스스로 다가와서 기꺼이 마케터를 자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인간중심의 공간을 디자인할 것을 제시한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빌딩이나 각각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현대와 발전을 상징하면서 난무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은 점차 없어지고 있는 오늘날 진정으로 인간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이 책을 건축가와 공간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추천자: 김광억(서울대 명예교수)
사회과학
미래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아직은 전혀 경험되지 않고 있는 것과, 일부 경험되고는 있지만 아직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전자는 예언처럼 신기하지만, 실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의 마음이 있고, 후자는 신기함은 덜 하지만, 실제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 책은 그 중간의 어디쯤에 속한다. 그래서 책 제목 ‘빅 픽처’는 그냥 막연한 미래 어느 시점에 대한 빅 픽처가 아닌 ‘빅 픽처 2016’이다.
우리가 경험하게 될 미래의 변화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논하던 미래의 변화와는 달리 변화의 진폭만이 아니라, 그 유형에 있어 다양한 것 같다. 그럼에도 미래의 변화에 대한 많은 책은 한 가지 한 가지 이슈별로 깊이 들어가고 있어 일반인에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하나의 이슈로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이들을 종합적으로,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어주는 책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책을 읽고 난 뒤, 하나의 관심 이슈를 정해서 보다 깊이 있고 전문적인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변화에 대한 종합 입문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크게는 경제와 사회의 구분(1부 경제 생태계를 바꾸는 특이점과 2부 특이점과 마주한 사회)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2016년에 실제로 보편화되어 경험 가능한 변화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와 드론을 통해 보는 무인시대, 에어비앤비를 통해 보는 공유문화, 공학과 사회과학의 융합 빅 소셜 데이터,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 핀테크, 코딩클럽을 통해 보는 코딩 교육, 소셜벤처, 무크, 전염병 연구 등.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이슈이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스쳐지나가듯 접한 것들이 분량이나 내용상 지루하지 않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한 저자가 아닌 여러 저자가 글을 써, 다양한 주제와 내용이 균형 있게 다루어지고 있어 거부감 없이 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가트렌드에 대한 잘 쓰여진 특별호와 같은 느낌이다.
- 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자연과학
저자는 고대 인류의 DNA 연구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다. 그는 대학원생 때 지도교수 몰래 이집트 미라의 DNA를 분석하여 성공한 뒤, 내친 김에 아무도 감히 할 생각도 못한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분석하겠다고 나섰다. 이 책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그 일에 성공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저자가 해온 연구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한다.
DNA는 세포가 죽으면 금세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적어도 수만 년 전에 죽은 네안데르탈인의 뼈에 DNA가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뼈라니! 자연사박물관에 보물로 고이고이 모셔두어야 할 소중한 뼈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는 생각 자체에 경악했을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석 기술의 한계 같은 과학적 장애물뿐 아니라 표본 확보 같은 정치적 장애물까지 극복하여,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처음에 분석한 것은 세포 안에서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DNA였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서 따로 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DNA여서 비교적 오래 존속할 수 있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의 DNA와 현생인류의 DNA를 비교하여 둘의 유전자가 서로 뒤섞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은 이종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별개의 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만으로는 부족했기에, 그는 세포핵에 들어 있는 DNA도 연구하는 일에 나섰다. 이 DNA는 훨씬 더 크고 복잡했다. 게다가 더 쉽게 분해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이 부수어서 발라먹은 동족의 뼛조각을 확보하여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즉 우리의 몸에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유전체 전체로 보면 희석되어 약 2∼4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중 약 20퍼센트가 인류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놀라운 이야기야말로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 추천자: 이한음(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실용일반
하늘 아래 새로운 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세상은 늘 새로운 뭔가를 찾아내라 닦달이다. 직장생활은 그 클라이맥스다. 기획력이야말로 승진문턱과 직결되는 경쟁무기다. 호모 사피엔스, 그들의 전성시대다. 책은 생각을 잘 생각하게 하는 방법을 실용적으로 가르쳐준다. 스토리텔링을 차용해와서 읽히는 감이 좋다. 광고회사 6년차 기획자를 무릎 꿇게 한 생각의 베테랑, 요컨대 타스케를 만나 생각방법에 대해 배워나간다는 줄거리다. 자기계발서 특유의 편집양식과 기술맥락을 버린 독특함이 차별적이다. 출판사조차 내용에 고무된 듯 제목만으로는 서지분류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대담하면서(?) 이례적인 스타일을 추종한다. 부제, ‘습관적인 생각을 깨는 생각의 습관 이야기’는 말장난을 뛰어넘는다. 적잖이 넓고 깊은 생각바다로의 유영을 권한다.
책의 무대인 광고회사는 생각으로 먹고 사는 동네다. 딱히 새로울 게 없는 불모지대 같은 곳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판이다. 남다른 생각법이 값비싼 아이디어로 변신할 때 생각은 무한의 가치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통찰력을 갖춘 남다른 생각기술은 뭘까? 우선은 생각의 습관을 깨야 한다. 생각을 귀찮게 여기는 습관을 깨고 그 생각을 갱신하도록 자꾸 생각하라는 얘기다. 책은 구체적으로 7가지 바람직한 생각습관을 부록으로 내놓는다. 전문가의 생각에 의존 말고, 고정관념을 좋아하되,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귀를 기울이라 청한다. 또 프로세스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 문제를 생각하며 숫자는 믿지 말라 덧붙인다. ‘실용’서답잖게 묵직한 볼륨이지만 이것도 생각을 달리하면 새롭고 의도적인 창의적 시도다. 추천사를 쓴 지인은 저자의 이런 생각습관을 망치로 비유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충격적이고 낯선, 생각의 즐거움을 던져준다는 이유에서다.
- 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유아․아동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 노래에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아빠들이 많았다. 하지만 등 떠밀리고 쥐어 짜이는 듯해서 무서워지더라는 아빠도 있었다. 그런 아빠들은 혹시 이런 외계인이 아닐까.
이 책은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룬다. 외계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노력이 지구의 삶에 부딪히자 그는 ‘그냥 지구인처럼 지내기로’한다. 지구인으로 성장해서 군대도 다녀오고 회사도 다니다가 ‘마침내 외계인 친구’, 그러니까 엄마를 만난 아빠! ‘그런데 잘못 본 거’였다나. 지구인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혼나면서 외계인 친구 생각을 많이 하던 아빠는,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외계인 친구’를 만나고, 이 반가운 친구와 ‘밤새도록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나눈다는 이야기.
그냥 스토리로 풀어냈으면 이게 왜 아이들용 책인가 싶을 내용이지만, 화자를 이 외계인 아빠의 ‘진짜 외계인 친구’, 그러니까 아들로 삼아서 자유로운 아이들 그림 같은 일러스트로 풀어내니 아이들에게 내어줄 자리가 생긴다. 친구가 털어놓는 자기 아빠의 비밀스러운 지난 시절에 귀를 쫑긋 기울이는 기분 같은 것.
아빠 일생의 부분들은 대체로 짤막한 한 줄의 문장 안에 고도로 집약되어 담긴다. 별 내용 없어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텍스트 위에 풍성한 디테일과 복합적인 감성을 올려놓는 것이 그림책의 묘미이다. 아빠가 ‘그냥’ 지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갈등과 고난, 절망과 좌절이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림 안에서 끝없이 메아리쳐 울려오는데, 사연 많은 성장기를 지나 지금도 사는 게 힘겨운 아빠들의 마음이 울컥 하지 않을까.
- 추천자: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의전담교수)
유아․아동
우리 주변에서 슬프고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도 힘들지만, 그것보다 더욱 힘든 일은 내가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낄 때가 아닐까 한다. 더욱이 그 슬픔과 힘겨움이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이가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어떨까?
이 작품의 주인공 한동주는 부모님의 이혼과 가출로 여든이 가까운 할머니에게 억지로 맡겨진 열 살밖에 안 된 어린이다. 할머니는 갖은 질병을 앓는 몸으로 폐지를 주워 생활하지만 삶의 힘겨움에 술을 자주 드시고 동주에게 손찌검까지 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있던 동주는 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미술치료사로 일하는 민 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홀로 설 수 있다는 의지를 스스로 보여 준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0대 부자 가운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는 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조선시대처럼 부(富)뿐만 아니라 신분까지 대물림되는 사회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 작품에서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어린 동주가 “돈이 많아야 공부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세요?”라고 반문하는 말대꾸는, 든든한 경제적 배경과 부모의 영향력으로 사교육과 조기 해외 유학을 거쳐 자녀들을 성공시키는 부유층의 모습에 대한 항변같이 들린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놓일 지라도 그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낼 줄 아는 아이’, 자신의 우주선 옆 자리에 할머니를 태우겠다고 말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아이, 할머니가 보육원에 간 자신을 보기 위해 오실 때 차비에 쓰라고 폐지를 주워 돈을 모으는 생각이 깊은 아이, 동주에게서 우리는 밝은 빛을 본다. 우리의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동주의 용감한 우주 항해에 기대와 희망을 건다.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 수석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