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지난 주(11/16~22)의 책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2015-11-23 14:32:30
현대 과학의 성취에 대해 무지했음을 고백한다. 과학 지식이라고는 고교 시절에 배운 것이 전부였다. 이제 그 지식은 많은 부분 틀린 것으로 증명됐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수천 년 전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은 지금도 새겨들을 가치가 있지만, 자연과학의 지식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짐작만이 작은 위안이다.
영국의 과학자·소설가인 C P 스노우가 과학과 인문학의 단절 문제를 지적한 <두 문화>는 1959년 출간됐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두 분야의 교류를 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인문학자는 자연의 원리에 무지했고, 과학자는 인간과 사회의 움직임에 무관심했다. 심지어 이런 분위기를 당연히 여겼다.
▲지난해 10월28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에서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2001년 12월10일 인문학자 도정일과 과학자 최재천이 만났다. 둘은 이후 4년간 10여 차례 대담했다. 그 결과가 2005년 출간된 <대담>(휴머니스트)이었다. 전례가 없었기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서로가 벽 앞에 대고 말하는 듯 답답함을 느낄 우려도 있었다. 두 학자는 끈질기게 탐색하고 질문했다. 둘은 긴장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했다.
이번에 1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그들은 새로 쓴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거의 모든 문제는 어느덧 한 개인 또는 한 학문 분야가 풀어낼 수 있을 수준을 넘어선 복합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최재천) “학문적 배경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 두 사람이 모여 무슨 일을 도모하자면 최소한 출발점이 되어줄 ‘공통의 땅’이 필요합니다.”(도정일) 시간이 흘러도 <대담>이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가 이 말들에 요약돼 있다.
이번주 프런트 리뷰로 고른 <생명에서 생명으로>(궁리)는 과학 초심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만한 과학책이다. 송장벌레, 구더기, 큰까마귀는 ‘자연의 장의사’다. 이 생명체가 사체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러나 대학에서 은퇴한 뒤 미국의 시골 통나무집에 살고 있는 노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하인리히는 덫을 놓아 잡은 쥐, 로드킬 당한 사슴 등을 가져와 자신이 소유한 야산 부지에 풀어놓고는 이들 청소동물을 불러모은다. 사체를 분해하고 먹는 행위는, 그들이 죽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인간을 이루는 물질 역시 어느 생명체의 사체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연의 영원한 순환의 일환이다. <생명에서 생명으로>는 생물학 서적이지만, 삶과 죽음의 본질을 갈파한 종교서적 분위기를 풍긴다.
▶[책과 삶]죽음은 끝이 아니다 <-관련기사보기
언어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수시로 변한다. 언어가 고고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말, 바퀴, 언어>(에코리브르)의 저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언어학과 고고학을 함께 다루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아득한 선사시대의 퍼즐을 맞추는 데는 고고학만으로 부족하기에, 옛 화자들이 남긴 화석이라 할 수 있는 언어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사시대에는 유럽과 중동, 인도의 공통 언어가 있었다고 믿는다. 언어학자들은 이를 인도·유럽 공통조어라고 부른다. 이 언어의 고향이라 추정되는 곳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땅인 흑해, 카스피해 북쪽의 초원지대라고 한다. 그 시절 초원지대의 생활과 언어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책과 삶]언어학과 고고학의 두 바퀴로 되살린 유라시아의 선사시대 <-관련기사보기
한 명의 남성이 접착 테이프로 나무판에 포박됐다. 나머지 네 명의 남성이 그를 학대한다. 얼굴에 낙서하고, 성기를 들이밀고, 카메라로 촬영한다. 벨기에의 어느 평범한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반비)의 저자인 파울 페르하에허는 정신분석학자다. 그는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지 살핀다. 고대 그리스의 지혜와 절제, 중세의 성경 교리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게 선”이라는 경제 서사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서사가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다시 규정하는지 살핀다.
▶[책과 삶]신자유주의의 심리적 그늘…싸이코들이 넘쳐난다 <-관련기사보기
당신의 집 주변엔 공공도서관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모양인가.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로버트 도슨은 18년간 1만7000여곳의 미국 내 공공도서관을 찾았다. 유명 건축가의 손길이 밴 대도시의 멋진 도서관이 있는가 하면, 창고보다도 크지 않은 시골 마을의 작은 도서관도 있다. 크기는 상관없다. 그 어떤 곳이라도 공공도서관은 나라의 꿈과 기억, 문화를 담고 있는 공유자산이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도슨의 <공공도서관>(한스미디어)에서 가져왔다.
자전거를 타고 뉴멕시코주의 트루스 오어 퀀시퀀시스 공공 도서관에 온 소년들, 2011년. | 한스미디어 제공
글 경향신문 _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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