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11월에 읽을 만한 책
2015년 11월의 읽을 만한 책 9선 & 추천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_ http://www.kpipa.or.kr/info/recommBook.do?board_id=35#
문학예술 분야
이 가을, 잠시 잊고 있었던 시의 빛깔들이 단풍처럼 붉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한국인은 시를 사랑하는 민족인데, 왜 이 땅에 숨을 쉬는 우리의 시가 요즘 편안하지 못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리라.
이런 시점에 출간된 이어령의『언어로 세운 집』은 이 땅에 새로운 시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 있는 시그널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시작하며 한국인의 정서를 내밀하게 형상화했고 한국인의 지성을 든든하게 지탱해준 32명 시인들의 시가 새로운 옷을 입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김소월, 이육사, 김영랑, 유치환, 정지용, 조지훈, 이상, 윤동주, 김수영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그들의 언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시 불꽃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문학의 본령인 시에 화려한 날개가 펼쳐지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저자는 이들 32명 시인들의 작품을 단순히 우리의 기억에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시어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곧, 시를 에워싸고 있는 시의 공간적 시대적 배경 혹은 시인의 전기적 사실에 의존해 온 우리의 시 해석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그 과정을, “시의 집 전체를 투시하고 그 내부와 의자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요술 거울, 그리고 그것으로 비추어 본 32편의 한국 시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 그리고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뜰의 신비한 체험을 얻게 할 것”이라고 표현한다. “시는 언어로 쌓아 올린 건축 공간”이라고 힘주어 서술하고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라고 노래한 김소월의 시에 숨어 있는 시의 공간은 무엇일까. 강변에 살자고 호소하는 화자의 마음에 숨어 있는 공간, 그것을 찾아보는 일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우리의 가슴이 다시 시를 찾아 읽으면서, 이 가을 새로운 언어의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 시의 집으로 모시는 이 초대장을 현명한 독자들은 흔쾌히 받아 주리라 믿는다.
- 추천자: 오석륜(시인, 인덕대 일본어과 교수)
문학예술 분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는 지금도 온통 모차르트다. 오스트리아 국민소득이 1인당 5만 달러에 이른다고 하는데, 모차르트로 인한 소득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정작 모차르트는 평생 가난에 쪼들리고, 묘지조차 남기지 못했건만... 이런 측은지심에 『클래식 법정』의 저자는 당시의 법정 기록을 펼쳐 보 이며 모차르트의 당시 수입이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왜 빚에 쪼들렸는지, 독살설과 연루되는 프리메이슨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왜 무덤을 찾을 수 없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완벽한 사랑’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을 집요하게 반대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였다. 월드스타로서 큰 인기를 누리며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는 딸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욕심은 두 사람의 결혼을 막는 소송으로 이어졌다. 명예를 짓밟히고 고통에 시달리는 중에도 슈만은 그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켰으며 끝까지 사랑을 지켰다.
리스트는 ‘리스토마니아’라 불리는 열성 팬을 거느리며 당대에 환호를 받았던 음악가이다. 하지만 ‘세기의 사랑’이라 명명되는 카롤리네와 그의 순수한 사랑은 오랜 소송 끝에 그토록 원하던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큰 자산가였던 카롤리네는 유언장에나마 ‘남편 프란츠 리스트’라고 쓰고, 전 재산을 리스트 재단에 상속했다.
법학을 전공하고, 전공에 못지않게 음악을 공부한 저자는 음악가에 얽힌 소송을 매개로 그들의 인생과 음악 세계를 해설한다. 법학자답게 과장된 속설은 명쾌하게 정리하여 오해를 풀어 주고, 음악가의 철학과 당시의 사회상이 어떻게 음악에 반영되어 있는지 안내한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저자가 직접 음악가들의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인문학 분야
이 책은 현재의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국의 다양한 땅 이름의 유래와 의미를 언어학과 국어학 차원에서 꼼꼼하게 고증하여 쉽게 풀어 설명한 교양도서이다.
땅 이름의 연원과 변화 과정을 살피기 위해 저자는 땅 이름에 얽힌 전설도 두루 섭렵하여 소개함으로써,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언어학적 설명에 재미를 입힌다. 이를 통해 단순히 땅 이름의 유래만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구비문학의 큰 자산인 자잘한 전설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정리해 보존하는 부수적 효과도 노린다. 또한 땅 이름 변화의 언어학적 흐름을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말 여러 단어의 유래를 땅 이름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땅 이름의 의미를 기준으로 모두 17개의 소주제로 분류하여 설명함으로써, 유사한 의미를 지닌 땅 이름들이 전국에 걸쳐 어떻게 분포하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신촌·철원 등의 땅 이름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새로운 마을’(새말)이라는 의미를 갖는 지명이므로 함께 묶어 파악하는 식이다. 이처럼 여러 땅 이름의 공통 주제어(의미)를 밝혀서 묶는 작업은 그 땅 이름의 본바탕이 된 우리 옛말을 소급해 올라가며 찾는 여정이자, 한국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지명이 많이 등장했는지 시대를 내려오며 파악하는 길이기도 하다. 땅 이름도 우리말의 일부분이기에 당연히 우리말의 역사와 함께 변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 복수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땅 이름이나 단어의 경우에는 그런 이견들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최종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기는 점이다.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사는 우리는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며, 비로봉에 오르면서도 비로봉이라는 같은 이름이 왜 치악산·소백산·속리산에 두루 있으며 금강산에도 있는지 잘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동안 우리가 거의 잊고 있던 우리 땅 이름의 의미를 국어학과 역사학을 융합하여 감칠맛 나게 풀어준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인문학 분야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행복이 어떤 내용의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말초적 감각과 동물적 욕구의 만족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인간적 행복이라면 그것은 존엄한 삶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존엄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가이자 철학교수인 페터 비에리는 ‘내가 결정하는 삶’이 바로 존엄한 삶이자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이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되는 삶이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이상과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달라 괴롭다면, 그 괴로움의 근원인 욕구를 찾아 그것이 진정 나의 욕구인지 아니면 사회적·언어적 관습에 의해 물든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은 기억이 아니라 이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은 수동적이지만 이해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사고, 소망, 감정, 기억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자기 결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까? 비에리는 문학작품을 읽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확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소설과 같은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문학적 글쓰기는 말이 가지는 원래의 의미와 시적 힘을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해 내적 거리를 둘 수 있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으며 오히려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리 없이 타자의 조종을 꿰뚫어보고 차별화된 자신의 자아상을 만들며 마지막 순간까지 이를 계속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선택한 언어의 틀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전시키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친밀감과 낯섦에 대해서도 스스로 주체적으로 설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추천자: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사회과학 분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모두 인지하고,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책 또한 출간되고 있다. 정보(information)보다 오히려 정보의 선별을 고민(exformation)해야 하는 요즘, 조금이라도 시절 이 지난 책은 잠시 머물던 책장 자리를 새로운 책에 내어줘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새 책 = 좋은 책’의 등식이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특히 경영학은 이러한 새로움에 익숙해야 하며, 실제 익숙하다.
이 책은 처음 출간(1991년)된 이후 20년 이상 경과한 책이다. 그러나 이번에 추천하는 3차 개정판의 책 제목은 초판과 마찬가지로 “캐즘 마케팅(Crossing the Chasm)”이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른 기업사례의 총체적 변화를 제외하고는 그 내용 구성에 있어 초판과 큰 차이는 없다. 이는 줄곧 새로움으로 무장해온 경영학 책의 흐름에서 벗어난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 책이 첨단기술 시대의 이슈를 정확히 짚어내는 깊은 통찰과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캐즘은 첨단기술 제품 및 서비스가 실험적인 소수의 고객들에 의해 지배되는 초기시장에서, 실용적인 성향을 지닌 다수의 고객들에 의해 지배되는 주류시장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흔히 나타나는 협곡 내지는 절벽과 같은 대단절 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간극을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이다. 이는 주로 첨단기술 산업과 시장,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지만, 불연속적 혁신이라는 유사한 속성을 공유하는 여타 영역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그 지속, 유지, 발전은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장려되고, 용이해진 현실에서 캐즘은 몇몇 기업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스타트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많은 개인과 관련한 현실적인 이슈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스타트업으로 인해, 초판 당시보다 더 많은 대상에게 경험되고 있는 캐즘의 사례와 원인 그리고 이론적, 실제적 접근을 통한 대응방안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 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자연과학 분야
융합이 대세인 지금, 과학과 인문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 분야들을 종합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융합 논의의 흐름을 파악하려면, 그 융합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과학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과학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과학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과학이 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영역들과 분리된 역사부터 인간관계, 돈과 기업, 정부, 사회 등과 얽혀 있는 양상, 영화와 스마트폰 이용을 비롯한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루 다루고 있다. 또 과학이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까지 살펴보면서, 과학을 중심으로 그 주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모해 왔는지를 폭넓게 훑어본다. 따라서 이 책은 일관성 있게 깊이 파고드는 책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에 가깝다.
과학과 다른 분야들을 융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파하기보다는 과학이 발전하고 거대해짐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하나하나 검토한다. 전쟁에서부터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손길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뻗침에 따라, 그런 융합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이미 이루어져 왔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이 과연 가정주부의 일손을 줄여주었을까, 서양 학문은 본래 중국에서 기원했을까, 삼성의 첫 갤럭시 스마트폰은 원래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의 대항마였을까, 원자폭탄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애니메이션과 영화 속의 과학기술은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 같은 흥미로운 질문들도 곳곳에 담겨 있다. 그런 한편으로 서양과학의 토대가 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과학과 종교의 충돌, 예술과 과학의 관계 등 진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세종대왕 때의 과학 발달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과학 역사도 틈틈이 다루고 있다. 과학의 다양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 추천자: 이한음(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실용일반 분야
교수 경력 34년의 명성 높은 노(老)학자가 쓴 소리를 쏟아냈다. 구구절절 인생잠언처럼 다가온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상황은 엇비슷하니 외서인데도 낯설잖다. 포인트는 독해질 것의 요구다. 주로 공부하는 제자용 눈높이라 이질적일지 모르겠으나 다를 건 사실 거의 없다. 어차피 인생사 살아가는 방법과 목적은 비슷하니 말이다. 무슨 일을 하든 독해짐으로써 난관과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독하게 해야 미련이 없다”는 말은 누구 입이냐에 따라 그 울림이 다른 법이다. 저자에게 의심은 불필요하다. 몸으로 입을 증명해낸 걸출한 경제학자다. 그에게서 배운 지금의 중년제자들 중 상당수가 일본경제의 허리근육을 도맡고 있다.
노학자는 꽤 괜찮은 제자들에게서 몇몇 성공요인을 찾아냈다. 이를 ‘그들은 어떻게 일본을 이끄는 최고의 인재가 되었는가’라는 편에 썼다. 바쁘면 이 챕터만 읽어도 좋다. 더불어 스펙 경쟁에 얽매이고 남 탓에 익숙하며 고민만 하고 하나에만 집중하는 제자들에겐 ‘No’라고 경고한다. 대신 내놓은 행동전략이 크게 3가지다. 우선 공부다. 몸에 밴 건 평생 기억되듯 아무리 바빠도 독서하는 시간은 가지라 권한다. 역시 성공하자면 독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평생습관인 듯하다. 다음은 시간·일정·정리법이다. 특별한 비법이 없어 좀 실망스럽지만 아무리 바빠도 운동과 하루 30분의 사색시간을 가지라는 데서 인생경륜이 적게나마 확인된다. 마지막은 사람이다. 혼자 연구하게 마련인 학자가 사람을 챙기라니 역설적이게도 사람화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공부기계·스펙승자에 대한 인생경구다.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독한(?) 조언은 아니다. 되레 행간곳곳엔 따스함이 적잖다. 마지막으로 새겨두고 싶은 말, “불안은 죄가 아니지만 시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문구다. 세파에 휘둘리고 경쟁에 움찔할 때 펼쳐보면 좋겠다.
- 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유아․아동 분야
사회가 점점 뾰족해진다. 피로사회라는 용어에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좌절사회라거나 분노사회라는 말이 뒤를 잇는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는 소식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사람들이 어떻게든 절망하지 않고 마음을 달랠 길이 없을까 생각하면 그림책이 떠오른다. 그림책은 시적인 글과 이야기 풍부한 그림 안에 모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문제를 담아낸다. 사랑, 미움, 욕망, 슬픔, 분노, 기쁨. 그러면서 아이다운 즐거움과 희망과 긍정으로 이야기를 맺음으로써 읽는 이를 위로하고 빛을 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시작할 힘을 아주 짧은 순간에 건네받을 수 있는 책, 그게 그림책이다.
『뭐? 나랑 너랑 닮았다고?』는 서로의 다른 점을 들먹이며 남을 멸시하거나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주 단순한 그림과 에피소드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계속 내놓는 고미 타로는, 그림책이 어떻게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너랑 나는 닮았다는 의자의 말에, 말은 기막혀 한다. 갈기 휘날리며 초원을 달리는 근사한 말을, 감히 죽은 나뭇조각으로 만든 의자 따위와 비교하다니! ‘말도 안 돼!’ 하는 듯한 표정의 말. 그러나 의자는 부드럽게 조근조근,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는 듯 이유를 들려준다. 말이 의자에게 설득당하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폭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논리적이거나 유머러스하거나 감성적인 다양한 면모 속에서 의자의 말은 어떤 철학자의 장황한 강의보다 더 강력하게, 의자와 말의 공통점을 확인시켜 준다. 자신을 말로 여기는 사람이든, 의자로 여기는 사람이든, 뾰족한 마음은 둥글어지고, 굳은 마음은 풀어질 수 있다. 정말이다, 한번 읽어 보시라!
- 추천자: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의전담교수)
유아․아동 분야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가더라도 콘도미니엄에 숙박하기를 원한다. 숙소에 텔레비전이 있어야 하고 밤에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는 가스레인지가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도시는 풍요로움과 편리함, 농촌은 빈곤함과 불편함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이런 세태 속에서 가족은 나의 풍요와 편리를 지켜주는 울타리 이상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풍요와 편리가 사라졌을 때 순식간에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우리 는 자주 목격한다.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이 왜 물질적 가치보다 더 소중할까?’, ‘혈연과 혼인, 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의미를 좀 더 넓은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로 확대해 볼 수는 없을까?’라는 물음에 이 작품은 답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서연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푸실 마을로 내려간다. 서연이의 아버지는 할머니의 결혼 반대로 공사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돌아가시고, 서현이의 엄마는 아들을 잡아먹었다고 구박하는 할머니에게 쫓겨나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며 서현이와 살고 있다. 그러던 중 푸실 마을에 골프장 건설이 진행되면서 할머니가 가진 땅을 팔면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엄마의 기대를 안고 할머니와 함께 살갑게 지내면서 땅을 팔도록 하는 임무를 띠고 시골로 내려간 것이다. 하지만 서현이는 음식을 잘하지만 가끔 간을 짜게 해서 붙여진 별명, 짜구 할머니가 베푸는 애틋한 정에 이끌려 할머니가 소중하게 여겨지면서, 엄마를 위하는 일이 할머니를 괴롭히는 일이 된다는 사실에 갈등하게 된다. 할머니의 고향 집은 할머니에게 서현이의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서현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족의 산 역사임을 알게 된 서현이는 결국 할머니와 살면서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끊어진 가족의 끈을 잇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시골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보다 가족 간의 관계 회복과 이웃, 마을 공동체의 유대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가 여기를 지키고 있어야 네가 비빌 언덕이 생긴단 말이제.”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말에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족은 누군가가 기댈 수 있은 언덕이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은 나한테도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게 된다.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수석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