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독서

삶의 지혜 맛보는 고전 읽기 수업

10여 년 전 우연히 초중고생의 잘못된 독서 패턴을 꼬집는 신문 기사를 접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독서량은 늘고 있는데 독서 시간은 오히려 줄고 있다니, 이는 아이들이 수박 겉핥기로 책을 빨리 읽는 데만 급급하다는 얘기였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독서교육을 담당하던 터라 이 문제가 더 깊이 다가왔던 것 같다. 당시 내가 느끼는 학생들의 독서 습관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나는 곧장 교장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논의했다. 가장 먼저 ‘다독아’에게 주던 상을 모두 폐지했다. 한 권의 책이라도 깊이 읽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 끝에서 ‘고전 읽기’를 떠올렸다.

고전은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고 신영복 교수는 『강의』에서 고전 독서에 있어서 별다른 지름길이나 편법은 없다고 강조하며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반복해서 읽고 암기하라고 권한다.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신영복 교수의 말이 나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렇게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고전 읽기가 시작되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반복해서 읽고 그 구절이 왜 마음이 들었는지 느낌을 나눠보는 시간,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고전 읽기였다. 당시 내가 재직 중인 초등학교 3~6학년 전교생은 한 학기에 고전 한 권을 정해 반복해서 읽었다. ‘인문 고전 독서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였다.

한 권의 책 천천히 깊이 읽기

처음 고전 읽기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 솔직히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 무렵 서울 동산초 교사이면서 전교생과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실천한 송재환 선생님의 『초등 고전읽기 혁명』을 읽게 됐다.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재직 중이었던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한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우리 학교에 적용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고전 읽기의 동기도 확실한 편이었지만 학교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고전이라면 접근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평소 고전 읽기에 관심이 많던 교장선생님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신 것도 다행이었다. 이렇게 학교 단위의 소소한 고전 읽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우선 분량에 치중하지 말고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읽자는 생각으로 학년별로 한 학기에 한 권씩 필독 고전 도서를 선정했다. 3학년은 『사자소학』, 4학년은 『소학』, 5학년은 『명심보감』, 6학년은 『논어』와 같은 동양 고전을 선정해 매일 아침 20분 정도 고전 읽기와 필사를 진행했다. 이것이 옛 성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인문 고전 독서의 시작이었다.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위해 책을 고를 때는 원전에 가까운지 아닌지를 가장 신경 썼다. 그래서 축약본이 아닌 완역본을 골랐고 ‘어린이를 위한’ 혹은 ‘쉽게 풀어 쓴’ 등과 같은 수식어를 단 책은 되도록 피했다. 전문 한학자나 전문 번역가가 옮긴 글에는 편집자의 해석이 적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아이에게 가장 잘 맞을 거라 판단되는 고전 작품을 찾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고전 읽기 프로젝트에서 정한 나름의 원칙은 간단했다. 세 가지 목표는 아이와 함께 읽기, 천천히 읽기, 깊이 읽기였다. 초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도서 목록에 고심하기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 마음으로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고전마다 분량은 다르지만 평균 한 학기를 20주 내외로 생각하면 보통 일주일에 고전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하루에 고전 한 편을 읽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런데 다음 날 같은 본문을 반복해서 소리 내 읽고 필사하고 짱 좋았던 구절(일명 짱구 노트)과 그 이유를 적으며 소가 되새김질하듯 내용을 소화하면 매일 아침 고전을 읽는 20분의 시간이 알찬 결과를 낸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 각자가 적은 짱구 노트 구절을 발표하며 다른 친구들이 어떤 구절을 마음에 새겼는지 나눌 시간을 마련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힘을 배울 터였다. 한마디로 고전 읽기 독후활동은 준비가 덜 된 아이들에게는 부담 없이 독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였고 충분히 준비가 된 아이들에게는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줬다. 필수 고전 한 권 말고도 학급별 지정 고전 도서도 준비했다. 이는 아이들 손 닿는 곳에 항상 고전이 있도록 마련한 장치였다. 3~4학년은 ‘재미있다! 우리 고전’ 시리즈(전 20권) 세트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5~6학년은 세계 명작 완역본 40권을 각 교실 학급문고로 넣어줬다. 학급문고로 배부한 책들은 필수 고전이 아니었기에 희망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반복과 필사로 즐기는 고전

고전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은 아마도 ‘어렵다’는 인식일 것이다. 또한 함께 읽기를 권하면 마치 연장자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많은 부모나 교사들이 고전 읽기를 앞두고 자신이 먼저 내용을 읽다가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고전 독서를 시작했을 무렵, 나 역시 고전 독서가 처음이었다. 그게 벌써 11년 전이니 지금보다 더 고전을 배울 스승도 기관도 드물었던 때다. 나는 내 바닥이 드러날까 걱정하기보다 그냥 아이들에게 내 한계를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부끄럽지만 선생님도 『논어』가 처음이야. 선생님은 이제야 읽는 책을 너희들은 초등 6학년 때 읽다니 정말 대단하다. 우리 같이 열심히 읽어보자!” 그렇게 시작한 고전 독서. 당시 중학교 2학년인 큰딸에게도 고전 필사를 권하며 우리 가족도 나름의 방식으로 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고전 독서 준비 기간을 오래 두기보다 일단 시작하는 쪽을 택했는데 그에 앞서 고전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고전을 비중 있게 다루는 해외 몇몇 대학의 사례, 고전을 애독한 사람들이 장차 어떻게 성장했는지 등을 설명한 이유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읽고자 했던 동양 고전은 장기간 읽어나가야 하므로 ‘왜 읽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가지는 고전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침 시간을 활용해 20분 정도 아이들과 고전을 읽을 때는 주로 고전을 반복해서 읽혔는데, 일주일에 고전 한 편을 다른 방법으로 읽는다.

‘월요일 정독(묵독), 화요일 소리 내어 읽기(윤독), 수요일 필사하기, 목요일 짱구 노트 쓰기, 금요일 짱구 발표하기’

짱구 노트를 발표하는 과정 속에서 저절로 발표력이 길러진다. 또한 필사는 다독과 속독에 치우쳐 행간에 담긴 의미를 자주 놓치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정말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하루 한두 구절씩 매일매일 써도 좋고 일주일에 한 편씩 분량을 정해서 필사하는 방법도 있다. 필사 한 번이 책 열 번 읽는 효과와 맞먹는다. 혼자 필사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가족을 참여시키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다른 가족 구성원도 고전의 유익함을 맛볼 수 있었다.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학년말까지 무사히 필사를 마친 아이 혹은 가족 노트를 연말 행사 때 학내에 전시할 수 있었고 표창장도 수여했다.

지금은 공공도서관에 있지만 요즘도 아이들과 함께 고전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초등 4학년 여름에 만들어져 『명심보감』을 읽기 시작했고 그다음에 『소학』을 다 읽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논어』를 읽고 있고, 그 사이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이들과의 고전 읽기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아이들 스스로가 『논어』까지는 다 읽고 싶다고 해서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바다처럼 방대해서 세세하게 파고들 수도 모조리 기억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찍부터 고전 읽기를 시작하면 인생을 바라보는 식견이 넓어지기 때문에 초등 시절 고전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의 큰 수확인 셈이다.

/행복한아침독서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3/07/01/2023070109004414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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