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북큐레이션, 주제가 있는 책읽기] 가족 북큐레이션 “도서관 책장을 분양합니다”

북큐레이션, 주제가 있는 책읽기

가족 북큐레이션 “도서관 책장을 분양합니다”


“이 책 재밌다!”

“….”

“내가 읽어줄까?”

“아니!”


여섯 살 아이(강희창)가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둘은 오늘 도서관에서 처음 본 사이다. 여섯 살 아이는 오늘 처음 본, 저보다 동생처럼 보이는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고, 재밌다는 말을 듣고 싶다. 왜냐면 이 책은 자신이 추천한 책이니까.

청주기적의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노란색, 파란색의 벽면 서가에는 이런저런 전시품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책도 있고 메모 용지, 풍선, 물총, 인형… 심지어 사탕까지. 요 사탕은 그림책 『알사탕』을 읽으면서 오독오독 먹으라고 책 옆에 놓여있다.

이 공간은 ‘가족 북큐레이터’ 전용 서가다. “도서관 책장을 분양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운영하는 공간으로, 도서관의 일부 공간을 지역 주민의 참여 공간으로 운영한다.

책을 추천하는 일은 도서관의 전통적·기본적 기능이다. 책 선택이 어렵거나 책읽기에 흥미가 없는 이용자를 위해 ‘이 책 한번 읽어보실래요?’ 하고 도서관 곳곳에 혹은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근래에는 통신기술의 발달과 기록 미디어의 다양화로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니 책 추천의 방식으로 텍스트 ‘쓰기’보다는 책과 사물을 전시해서 ‘보기·관람하기’의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책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책과 사물을 활용하여 전시하는 ‘큐레이션’의 방식이 도서관 현장에서 다양하게 진행된다. 도서관에서의 북큐레이션은 ‘시각화된 서평’ ‘서평의 시각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족 문화 공유 공간


청주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다. 어려서부터의 책읽기 습관 형성과 이를 위해 가족의 책 읽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하므로 다양한 독서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 중 가족이 책을 추천하는 ‘가족 북큐레이션’을 2020년부터 진행해왔다. 가족 북큐레이션의 취지는 1) 도서관 공간 중 일부를 지역의 주민들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2) 가족이 함께 책을 추천하고 선정 과정을 통한 ‘가족’ 간 소통의 기회 제공 3) 책 추천을 위한 책읽기의 동기부여다.

2020년 6월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3월 가족 단위의 참가 신청을 받는다. 매월 한 가족씩 북큐레이션에 참여하며, 12월에는 일 년간의 도서 대출량을 산출하여 최다 대출 가족에게 시상한다. 북큐레이션 진행 과정에서의 핵심은 책 선정부터 전시, 서가 꾸미기에 이르기까지 가족이 직접 운영하고 도서관은 뒤로 물러나 추천받은 책을 준비해서 제공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 참여를 유도하고 도서관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하고 친숙한 가족 문화 공유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어린이들의 경우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열람실에서 만난 아이는 이번 달 가족 북큐레이션을 운영하는 가족의 막내이다. 겨우 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자기가 추천한 책을 다른 아이들이 읽고 재밌다고 하면 제법 우쭐대며 의기양양해 한다. 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가족들의 분위기는 진지하다.

책 선정부터 집에서 회의를 거친다. 가족이 함께 모여 전시 대상 도서를 선정하는데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추천 사유는 한 줄 문장, 한 단어 모두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재미있어서”도 가능하다. 각자의 추천 사유를 통해 책이 결정되면 포스트잇 등 작은 메모부터 색종이, A4용지에 이르기까지 추천 사유를 적는다. 이때 추천자의 나이와 이름, 성별 등을 기재한다. 이는 다른 이용자와 독자, 잠재적 독자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이 선정된 후 가족 서가를 장식할 문구와 사물 등을 정한다. 톡톡 뛰는 아이디어가 넘친다. 아빠들도 열심히 참여한다. 토요일에 엄마, 아빠, 아이들이 모두 도서관으로 짐을 한가득 싣고 와서는 열람실 바닥에 앉아 서가 장식을 시작한다. 때로는 티격태격. 어떤 아빠는 이 광경이 재미있는지 연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언젠가부터 사탕과 젤리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책 빌려 갈 때 하나씩 드세요~”라는 애교 섞인 안내문과 함께. 엄청난 마케팅 효과가 나타났다. 한 꼬마가 사탕 통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책 한 권을 빌린다. 어찌나 양심적인지 사탕은 딱 한 개씩만 꺼내 든다.

생각지 못한 또 다른 효과가 있다. 가족이 추천한 책이 전시되는 동안 가족들이 분주하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이 서가에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빌려 갔는지 확인하며 즐거워한다. 부모님들도 못지않다. 어떤 분은 틈틈이 도서관에 들러 책이 대출되었으면 곧바로 다른 책으로 서가를 채운다. 도서관 직원들은 그저 신기하고 감사해하며 응원한다.

어떤 가족은 한 권의 책에 네다섯 가지 색깔의 포스트잇을 책 군데군데 붙여놓았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맘에 드는 페이지에 색깔을 정하여 붙였다고 한다. 신기하게 중복된 페이지가 없었다. 이 방법이 재미있어 후에 도서관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할 때 본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의 책을 열람실에 전시해서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용자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 페이지에 짧은 이유를 적어 붙여놓게 했다.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는 시간에 작가에게 전하여 작가와 독자가 자연스럽게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흥미진진한 도서관으로의 초대


‘제3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19~2023)의 첫 번째 전략 ‘개인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도서관’의 추진 과제로 ‘이용자 맞춤형 추천(큐레이션) 정보서비스의 확대’를 제시하였다. 큐레이션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소장한 작품을 목적, 상황, 시기 등에 따라 특정의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 기존의 소장품에 새로운 관점의 특정한 맥락을 부여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문헌정보학개론』 김수경 외, 2021)으로, 근래에는 소비자·관객 중심의 상품·서비스 개발을 위한 마케팅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도서관은 공공의 영역에서 책(독서 매체) 발견의 기회를 제공하고, 도서관 장서의 활용으로 책과 관련된 콘텐츠 경험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여 독자·이용자의 독서 흥미를 유발하고 독서 자료 선택을 지원하는 정보 제안자로서의 전문적 역량 발휘를 위하여 북큐레이션을 도입·운영한다.

도서관에서의 북큐레이션 운영 시에는 잠재적 독자 혹은 책읽기에 흥미가 없는 주민을 대상으로 흥미 유도와 책읽기로 확장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큐레이팅하는 과정에서 책을 대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테마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품을 활용하고, 이와 관련된 작가와의 만남, 공연, 연극, 전시회, 체험 등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다각적인 접근의 기회를 마련한다.

책과 독자와의 만남. 그 길에는 많은 채널이 존재한다. 무엇이 독자의 입맛이나 취향에 맞을지 고민에 고민을 얹는다. 책과 독자·어린이를 연결하여 맘껏 오르내리고 뛸 수 있도록 공간을 꾸미고 콘텐츠로 장식한 멋진 초대장을 보낸다. 북큐레이션이 그 멋진 초대장이다.

청주기적의도서관은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을 멋진 책의 세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도서관으로 초대하고 운영하는 기회를 주민들에게 내어주고 있다. 그 지역의 특색이 담겨있는 도서관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행복한아침독서, 민경록_청주기적의도서관 관장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2/12/01/2022120109003214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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