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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품은 교실] 아주 특별한 초대
[책을 품은 교실]
아주 특별한 초대
아주 특별한 초대
『먼바다의 라라니』 김난령 번역가와의 만남
신현주 서울중원초 교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제목이 적힌 책등부터 책표지의 그림, 판권부터 뒤표지의 바 코드까지 꼼꼼하게 읽어 주려 애쓴다. 특히 책이 태어난 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사람,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긴 사람, 책을 편집하고 디자인한 분의 이름을 비롯해 책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긴 판권을 읽을 때는 더욱 또박또박 읽는다. 그날은 『안녕, 우주』와 『우리는 우주를 꿈꾼다』로 뉴베리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로 알려진 에린 엔트라다 켈리의 새로운 작품 『먼바다의 라라니』를 읽어 주는 첫날이었다. 책표지의 잘 익은 오렌지가 떠오르는 주황빛과 진한 남색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커다란 나무 아래 홀로 있는 여자아이가 인상적인 책표지를 지나, 첫 장을 펼쳐 속표지를 읽을 때였다.
“먼바다의 라라니. 에린 엔트라다 켈리가 글을 쓰고 리안 초가 그림. 옮긴이는 김난령.”
“…선생님, 옮긴이가 누구예요?”
마침 원작도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이 책은 원래 미국 작가가 영어로 쓴 어린이책이에요. 옮긴이는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책을 읽을 수 있게 영어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분을 말하는데, 번역가라고도 해요.”
“아, 그럼 엄청 영어 잘하시겠네요.”
“영어뿐만 아니라 우리말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나는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한 뒤, 바로 본문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필리핀 신화와 전설 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이 책은 산라기타라는 작은 섬에 살던 평범한 12살 여자아이 라라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배경 설명이 이뤄지는 앞부분을 지나면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흥미진진해지는 책이다. 매일 한두 챕터씩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는데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해 기다리지 못하고 책을 다 읽어 버린 아이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처음 에는 책이 너무 두껍다며 겁먹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무 명 아이들 모두가 『먼바다의 라라니』를 완독 했다.
만남 제안: 한 아이의 부탁에서 싹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나 밑줄 그은 문장을 나누는데 한 아이가 옮긴이의 말 중 일부를 낭독했다.
“비범한 재능이 없어도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제 몫 할 수 있으며,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큰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작지만 단단한 힘이 담긴 문장이었다. 평소에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는데 왜 그 문장 에 마음이 머물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이는 그 문장을 노트에 적어 두고 자주 보 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물었다. 그 아이가 먼저 가까이 온 건 처음이었다.
“선생님, 이 글을 쓰신 분을 만날 수 없을까요?”
“누구? 번역가 선생님?”
“네. 작가와의 만남처럼 번역가와의 만남도 있으면 좋겠어요.”
맞다. 작가와의 만남도 했는데 번역가와의 만남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먼바다의 라라니』를 펴낸 밝은미래 출판사 홈페이지에 투고·문의 코너가 있어 ‘존경하는 편집장님께’로 시작하는 글을 썼고, 그 사이 아이들은 번역가께 편지를 써서 출판사로 보내자면서 양쪽의 종이를 펼치면 글이 나오는 신기한 편지를 써 오는가 하면, 공책 두 쪽 분량을 빼곡하게 필사해 왔다. 아이들의 마음이 닿은 걸까? 출판사에서 번역가와의 만남을 도와주었고, 김난령 선생님께서 흔쾌히 아이들의 초대에 응해 주셨다.
만남 준비: 어린이가 주체적일 수 있게
우리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온라인에서의 만남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스무 명 아 이들 모두의 손길이 스미길 바랐기에 번역가와의 만남을 어떻게 진행할지 학급 회의를 진행했다. 아이들의 의견을 선생님께 메일로 보내 드렸고,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 주세요.”라는 답변을 듣고 나서 전체 계획표가 완성되었다.
다음은 진행에 필요한 역할을 정할 차례였고, 모두가 하나씩 맡는 게 원칙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존중하고, 무엇을 맡을지 결정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 과 연결해 보길 권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 능숙하고 zoom을 잘 다루는 서우는 기술 감 독을 맡고, 음악을 좋아하는 봄이는 오프닝과 클로징 배경 음악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1 부와 2부 사회를 맡은 예나와 지효는 직접 대본을 썼고, 번역가께서 번역하신 작품을 소개하는 ppt 제작을 맡은 민서는 밤새 ppt를 만들었다. 오프라인에서도 행사 마지막에 함께 단체 사진을 찍듯이 온라인 사진 촬영은 지안이가 맡았다. 질문자 모둠의 아이들은 서로의 질문이 겹치지 않게 미리 확인했다. 이렇게 각자 하나씩 역할을 맡으니 아이들도 더욱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온라인에서 만남을 꾸려 보니 평소보다 아이들의 몰입도가 훨씬 높았다. 번역가와의 만남을 마치고 아이들이 쓴 후기에도 자기 차례가 올 때 긴장되었던 마음, 잘 마쳤을 때의 뿌듯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먼바다의 라라니』번역가와의 만남 진행>
만남 당일: 진심 어린 말들이 오간 자리
드디어 『먼바다의 라라니』 번역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온라인이라고 긴장이 안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아이들도 내 맘과 같았는지 시작 전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니 발그레했다. 정확히 12시 40분이 되자, 번역가 김난령 선생님께서 화사한 핑크빛 옷을 입고 들어오셨다. 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담긴 음악을 배경으로 어린이 사회자가 등장했고, 우리 반 모두의 이름을 번역가 선생님께 소개했다. 이에 화답하듯 선생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어 밤을 새우셨다는 이야기로 첫인사를 건네셨다.
인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그동안 김난령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작품을 소개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로알드 달 작가의 『마틸다』, 『요술 손가락』 이야기가 나올 때면 반가워하고, 김난령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 중에 읽어 보고 싶은 책을 메모하는 아이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장 놀랐던 건 번역가께서 이토록 많은 책을 번역하셨다는 사실이었다. 번역 가 소개가 끝나자, 『먼바다의 라라니』가 무척 인상 깊어서, 에린 엔트라다 켈리의 모든 책을 찾아 읽었다는 예담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책을 읽고 느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번역가께서는 마이크를 이어받아 『먼바다의 라라니』를 번역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번역하신 여러 그림책 중에 『틸리와 벽』을 골라 읽어 주셨다. 직접 번역하신 분의 목소리로 듣는 그림책 낭독은 울림이 컸다. 아이들의 몸이 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듯 점점 기 울어지는 게 보였다. 낭독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고, 감동이 잦아들기 전에 어린이 독자들이 마련한 질문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7명의 아이들이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번역가께서는 마음을 다해 답하셨다. 사회를 맡았던 어린이가 자신도 질문을 해도 되냐고 수줍게 물었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야 한다 등의 대답을 예상했던 우리는 뜻밖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라라니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험을 떠났고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이 무엇을 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라라니처럼 진실되고 용감하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대답을 듣고 나서 문득 우리가 『먼바다의 라라니』에 푹 빠져 읽을 수 있던 건, 이야기의 주인공과 어린이 독자들을 사랑하는 번역가의 마음이 책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신 번역가께
시계를 보니, 어느새 만남을 마무리할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사려 깊은 문장으로 두 언어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번역가와의 만남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오래오래 잊지 못할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판권에 등장하는 ‘옮긴이’를 실제로 마주할 수 있었던 귀한 경험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냈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번역가 선생님은 라라니처럼 먼바다에 계시지 않았다. 우리와 만날 수 있어서 진짜 다행이다.”라고 말한 아이의 말처럼 번역가께서 멀지 않은 곳에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직접 드리지 못했던 한 아이의 편지를 지면을 빌려 대신 전한다. 김난령 선생님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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