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프로그램
[도서관이야기]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을까? 손끝으로 생각하는 독서노트의 힘
[도서관이야기]
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을까? 손끝으로 생각하는 독서노트의 힘
눈으로 하는 독서는 이제 그만!
"우리 아이는 하루 5권 넘게 읽는 날도 있어요." 독서 관련 수업 때 아이들 독서량 질문에 한 학부모 답변입니다. 하루 5권? 얼마나 빠르게 읽는지 다시 물어보니, 초등 3학년인데 5분 정도에 한 권을 읽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5분에 한 권을 읽는다고요? 그렇게 빨리 읽어도 책 내용을 이해하나요?" "...." 과연 책을 제대로 이해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이가 읽은 책을 이해했는지 쉽게 확인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책 전체 내용을 순서대로 말해보라고 하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쓴 『하루 10분의 기적 초등 패턴 글쓰기』에 빠르게 읽기만 하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의 차이가 언급됩니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을 봅니다. 길거리에 쓸모없이 버려진 강아지똥이 거름이 되어 민들레가 꽃을 피우도록 도움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아이가 책을 빠르게 읽기만 한다면 책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짧게 이야기 하는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강아지가 똥을 눴다. 민들레 꽃이 피었다."
반면 전체 내용을 이야기하는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흰둥이가 돌이네 담벼락에 똥을 눴다. 강아지똥이 길에 있다. 겨울이 지나고 어미 닭과 병아리가 강아지똥이 더럽다고 했다. 강아지똥 옆에 흙덩이가 떨어졌다. 빗물에 가장이똥이 녹아내려 민들레꽃이 피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책을 빠르게 많이 읽는 것에 관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책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것을 통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느냐?'에 관한 독서의 본질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학자들은 한결같이 미래로 갈수록 '생각하는 힘' 즉, '사색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래학자들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아이들의 환경은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영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웬만한 정보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SNS에서 얻습니다. 스마트폰을 켜면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독서노트, 왜 써야 하나요?
읽는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생각을 더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빠르게만 읽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느리게 읽어도 다양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도덕주의자 몽테뉴는 "글을 잘 쓴단느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독서력도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그로 쓰며 생각하면 효과는 배가 됩니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휘발성이 강해 쉽게 사라지지만 독서노트에 쓰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최고 독서법은 독서노트를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한두 번 쓴다고 생각하는 힘이 바로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꾸준히 쓸 때 그 힘이 세집니다. 아이들은 일 년이 다르게 키가 쑥쑥 자랍니다. 독서노트에 쓴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일 년 동안 지속해서 썼다면 읽은 책 권수도 알 수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 차이에 놀라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쓴 것을 중·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보면 생각 변화의 차이가 더 클 겁니다. 독서노트를 써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쓰는 속도로 생각할 수 있기에 더 다양하고 깊게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또한 기록한 생각은 언제든 다시 독서노트를 통해 볼 수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게 해줍니다.
독서노트, 어떻게 써야 할까요?
독서노트는 아이 스스로 자유롭게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무턱대고 쓰기보다는 4가지 규칙을 지키며 쓸 때 더 효과적입니다. 독서노트를 잘 쓸 수 있는 4가지 규칙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규칙, 번호를 쓴다
'반복하면 실력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서노트를 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가'를 아이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번호를 씁니다. 그리고 뒤에 책 제목이나 작가를 써야 합니다. 만약 맨 처음 읽은 책을 독서노트에 쓸 때는 숫자 '1'을 가장 먼저 씁니다. 『강아지똥』을 예로 쓴다면 이렇습니다.
1. 『강아지똥』, 권정생 지음, 작성일 2021년 11월 1일
두 번째 읽은 책을 기록할 때는 숫자 '2'를 씁니다. 번호를 쓰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아이 스스로 꾸준히 쓰는지, 몇 개를 썼는지, 얼마만에 쓰는지 숫자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독서노트를 꾸준히 기록할 수 있게 숫자가 '10'이 될 때마다 기념 파티를 해준다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가족이 식탁에 앉아 피자나 떡볶이를 먹으면서 독서노트에 쓴 걸 읽어본다고 합니다.
두 번째 규칙, 밑줄 친 문장을 옮겨 쓴다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문장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노트에 옮겨 씁니다. 베껴 쓰기는 쓰는 속도로 문장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눈으로만 읽는 독서에서 느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달리는 차 안에서 휙 하고 지나치며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길가에 코스모스가 있네!' 정도로 생각합니다. 손으로 쓰는 독서노트는 걸으며 코스모스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휙 지나칠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입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꽃 크기도 색깔도 다르고, 벌이 날아드는 것도 보입니다. 이처럼 좋아하는 문장을 베껴 쓰는 것만으로도 다양하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규칙, 전체 내용을 써본다.
책 전체 줄거리를 씁니다. 『강아지똥』을 예로 든 것처럼 빠르게만 읽으면 "강아지가 똥을 눴다. 민들레 꽃이 피었다." 정도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 이름이라든가, 장소 등 구체적인 상황을 쓰기는 어렵죠. 독서노트에 전체 줄거리를 자유롭게 써보는 연습을 하면 이해하는 능력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대부분 두세 줄 쓰기도 어려워합니다. 꾸준이 쓰면 다섯줄에서 열줄 정도 책을 보지 않고 쓰게 됩니다. 전체 줄거리를 써보면 자신이 읽은 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데 아므 책을 읽을 때 조금씩 전체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읽으려 애쓰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이해 능력이 점점 향상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부모가 살짝 거들어 주어도 좋습니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이었니?' 말로 들려달라고 합니다. 다 듣고 아이가 말한 걸 떠오르는 대로 독서노트에 적어보라고 하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네 번째 규칙, 감상문 또는 제목을 만들어본다
아이만의 생각을 써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독서노트에 밑줄 친 문장과 전체 줄거리를 쓰는 것으로 끝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만의 재해석한 생가을 써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빠지면 잔칫집에 가서 잘 차려진 음식을 눈으로만 보고 먹어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은 아이만이 느낀 생각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만의 생각을 써보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는 자유로운 형식의 감상문을 써보는 겁니다. 분량은 아이가 쓰고 싶은 대로 짧아도 좋고, 길어도 상관없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읽은 책 제목을 바꿔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제목을 만들어서 그것에 관한 글을 써보는 겁니다. 『강아지똥』을 가지고 제목을 바꿔보란느 말에 <나는 소중한 아이다>라고 말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책에서 아무 쓸모 없다고 생각한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우게 했는데 갑자기 우리 엄마, 아빠에게 나는 소중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롭게 만든 제목을 독서노트에 쓰고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써보는 겁니다. 네 번째 규칙은 책을 읽은 아이만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감상문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쓰다 보면 제목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감상문을 쓰는 것과 제목을 새롭게 바꿔 쓰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독서노트에 10권, 20권, 30권 기록이 쌓여가면 그것이 바로 아이만의 '생각 도서관'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독서력도 향상되고, 문해력·글쓰기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좋아집니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깊게 생각하는 힘도 생깁니다. 아이가 독서노트에 쓴 기억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남낙현작가 |
/출처 : 도서관이야기 제15권 9호 통권 151호
남낙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