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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를위한글로벌가이드]모든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동 학습 공간 :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
[사서를위한글로벌가이드]
모든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동 학습 공간 :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
이번 <사서를 위한 글로벌 가이드>에서는 메이커스페이스가 가진 의미를 살펴보고, 해외 메이커스페이스 전문가들의 글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메이커 정신을 모색해보고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에 구현하기 위한 사서의 역할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선 메이커스페이스
메이커스페이스는 어떠한 공간일까? 본고에서는 메이커스페이스의 정의를 담은 텍스트 17건을 Makerspaces.com 웹사이트에서 수집하여 <그림 1>과 같이 워드클라우드로 생성해보았다. 주요하게 눈에 띄는 단어는 'people, learning, design, material, technology, projects, space'이다. 이 단어들을 활용해서 정리해보자면, 메이커스페이스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이용하여 '디자인' 사고를 '프로젝트' 방식으로 공동 '학습'하는 '공간'으로, 단순히 고가의 장비가 가득한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메이커스페이스는 사람이 탐구하고, 만들고, 땜질하고, 놀고, 상상하는 경험을 하는 학습 공간으로 여겨진다.(Busch 201). 또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사고방식과 지식을 행동으로 전환시켜 개인화된 학습을 하도록 하는 것(Makerspace Education)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처럼 메이커스페이스는 물리적 공간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땜장이(tinkers), 어린이와 청소년의 학습 방식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팬과 함께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는 네버랜드에는 팅커벨(Tinker bell)이 산다. 땜질(tinkering)은 작은 쇳조각을 붙이고 작은 망치 같은 것으로 반복적으로 두들기면서 땡땡땡 종소리(bell)를 내는 행위를 뜻한다. 그래서 팅커벨은 이러한 땜질을 해서 이것저것을 고치는 땜장이 요정이다. 이 땜질이라는 단어는 메이커스페이스의 주요 활동을 설명할 때 번번하게 등장한다. 11년 이상의 교육 코칭 경험을 가진 교육 전문가 안젤라 왓슨(Angela Watson)은 아이들을 땜장이(tikers)로 묘사한다. 그는 아이들이 "물건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물건의 작동 원리를 터득하는 과정을 매우 좋아하는 땜장이"라고 말한다. 땜장이 아이들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Watson 2015). 그래서 메이커스페이스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실제로 수행하는 과정을 학습하는 데 최적인 공간이다. 메이커스페이스는 '땜장이 아이들을 위한 네버랜드'인 셈이다.
메이커스페이스가 가져야 할 '메이커 정신'
Makerspaces.com 웹사이트에는 메이커 교육에 도움이 되는 기사나 가이드라인, 체크리스트 등 101개 이상의 웹 자원이 수집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이들 자원 중 일부를 바탕으로 '메이커 정신'이 구현된 메이커스페이스가 갖춰야 할 공통적인 요소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1.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공간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주요하게 강조되는 요소는 '스스로 만드는 것(DIY : Do-It-Yourself)'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학습할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어떤 아이들은 고양이를 위한 모자 뜨개질부터 최첨단의 도시락 쟁반 모형이나 보물상자 알람 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본인이 궁금한 것을 조사하는 데 몰두하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로써 아이들은 온전히 스스로 만드는 DIY의 경험을 하게된다(Walson 2015).
2.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공간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는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주요한 학습 방식이다. 디자인 사고 과정은 학습자가 문제를 발견하여 정의한 다음 해당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고 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험 모델(프로토타입)을 개발한다. 이후부터는 실행 가능한 실제 해결책이 생성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실험 모델을 계속해서 연마하여 개선해 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초기에 디자인된 실험 모델에 따라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반성의 과정을 거치고, 다시 개선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새로운 디자인 주기가 시작될 때 아이들은 한층 더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Busch 2017). 실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디자인 사고를 거치는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실패'라는 것은 없으며,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메이커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이처럼 메이커스페이스는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3. 아이들이 서로 협업하면서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개개인의 학습 과정을 강조하다 보면 메이커 정신에 주요하게 깃들어 있는 '공동' 학습 과정이라는 의미를 놓치기 쉽다. 그러나 앞서 메이커스페이스를 구성하는 개념들을 보여주는 <그림 1>에 'projects, gaher, common, share'와 같은 단어들이 포함된 것처럼, 디자인 사고 과정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한 메이커 정신의 요소이다. 한나 아렌트(H. Arendt)는 대표 저서인 『인간의 조건』(한나 아렌트 글 ㅣ 이진우 옮김 ㅣ 한길사 ㅣ 2019)에서 인간은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말과 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고 본인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고 보았다. 아이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 창작물을 만들어가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고옹 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조정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Redina 2016). 아이들은 창작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경험한 어려움을 나누고, 이를 경험지식으로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더욱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놀이' 활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레고로 우주정거장을 함께 짓고 있는 두 명의 아이는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깊이 있는 학습을 하는 중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주정거장의 뒷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학습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해 보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Rendina 2018). 그러한 상호작용 가운데 아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우주정거장을 함께 구축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은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드는 놀이의 과정 속에서 혼자 학습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4. 아이들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지역사회와 연계된 공간
메이커스페이스에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터기 같은 고가의 장비를 꼭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아이들은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 작은 상자, 휴지심, 종이계란판, 철사, 컵,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 등이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십자 드라이버, 가위, 깃털, 펜치 등의 평범한 도구로도 충분히 이런 재료들을 다듬을 수 있다. 특히 낡은 장난감이나 오래된 휴대폰 같은 작은 전자제품은 아이들이 분해해서 작동원리를 익히는 데 유용한 재료들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원들은 부모나 상점, 기관 등 지역사회 내에서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다(Walson 2015).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라운드 록(Round Rock) 교육구의 8학년 학생들은 지역사회의 요구를 파악해서 메이커스페이스에서 해결책을 구현하는 학습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한 학생은 지역사회에 있는 위탁 아동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침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지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해결책을 강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직접 개발해보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한다(Busch 2017).
도서관 사서의 역할
해외 도서관의 메이커스페이스 사례를 살펴보면서 도서관 사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메이커스페이스에 관한 많은 글들은 '메이커스페이스가 도서관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주요하게 논하고 있었다. 이는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가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요소들을 보여주려는 시도들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만의 '다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도서관 사서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해외 메이커스페이스 전문가들이 논하는 도서관 사서의 역할을 크게 3가지의 방향성을 나누어 정리하였다.
1. 메이커 정신과 구현 방식의 이해
앞서 살펴본 메이커 정신의 의미처럼 메이커스페이스는 창작 활동의 '결과물'을 우선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메이커 정신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학습하고 창작하는 활동 '과정'을 중요시한다. 경험 자체의 의미를 주요하게 두기 때문에 가시적 결과를 중시하는 평가 방식보다는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영향력과 효과에 더 집중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벤처부는 메이커스페이스를 지원할 때 일반형과 전문형으로 나누고 있다. 한 시각에서는 일반형 메이커스페이스를 '취미공방' 수준으로 치부하면서 성과가 없는 것으로 보고, 전문형 메이커스페이스는 '창업메카'로서 창업기업을 몇 곳이나 배출했는지를 중시하는 '성과 중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이다원 2021).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분명 도서관의 메이커스페이스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 운영 시에는 도서관이 추구하는 메이커 정신과 이를 도서관에 구현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2. 필요한 자원의 접근과 조직화 역량 습득
도서관 사서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 여러 주체들과 협력하는 일을 공인받은 전문가이다(Waston 2015). 이에 사서는 아이들이 필요한 재료를 획득하기 위해 지역사회 내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 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사서는 이러한 과정을 장려함으로써 아이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획득한 자원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는 획득한 자원을 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획득한 자원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목록화하는 과정은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줄이고, 아이들이 본인의 프로젝트를 보다 신중하게 계획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Waston). 이처럼 사서가 가진 전문성은 아이들이 자원을 조직화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3. 새로운 자원의 유형과 운영 모델 개발·실행
도서관 사서는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유형의 자원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연구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서는 아이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자원을 포착한 이후에는 아이들이 새로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운영 모델을 개발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서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서비스 전문가'의 역량에 매우 중요하게 개발되어야할 부분이다. 이처럼 사서는 사람들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들을 변화시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혁신적 실천주체'의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Luster 2018).
모든 땜장이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해외 메이커스페이스 운영 사서의 모습은 고가의 장비나 도구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나 교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도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조직화하고, 문제 해결 과정을 거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 전문가'에 가깝다. 이들은 메이커 정신이 요구하는 학습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메이커스페이스에 구현해 나가는 기획자이자 변혁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주요하게 수행해 오고 있었다.
이러한 사서들이 운영하는 도서관의 메이커스페이스는 단순 '취미 공방'이나 '창업 메카'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도서관의 메이커스페이스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공동의 문제를 찾고,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이처럼 도서관의 메이커스페이스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습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든 땜장이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공공(the public)의 장소'로서 이전에도 그랬듯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출처 : 도서관이야기 제15권 6호 통권148호
김혜영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박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