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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를위한글로벌가이드]포스트 코로나 시대, '제3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사서를 위한 글로벌가이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제3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은 집이나 일터가 아닌,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비공식적 공공장소를 의미한다. 이번 <사서를 위한 글로벌 가이드>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도서관이 제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제3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제3의 공간은 레이 올렌버그(Ray Oldenburg)가 그의 저서『The Great Good Place』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을 제1의 공간, 직장을 제2의 공간, 도시의 술집, 카페, 공원 등의 공공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지칭하였다. 제3의 공간은 집과 직장과는 전혀 다른 비공식적인 공공 생활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며, 모든 사람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다(Oldenburg 1989).
지난 수십 년 동안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이나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함께 모여 탄탄하고 유연한 지역사회를 조성하는 공간으로 변화해 왔다(Bryans 2020). 일상 속 비공식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갖는 사람들의 경험은 집이나 직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의 제3의 공간에 대한 근원적 욕구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메이커스페이스, 트윈 세대를 위한 공간 등의 용어들이 내포한 ‘창의·융합 리터러시 공간’의 개념으로 도서관 공간 설계 원칙에 반영되어 왔다.
제3의 공간이 가지는 본질적 속성
어느 한 도서관의 성공적인 건축 사례를 소개하기 보다는, 제3의 공간을 지향하는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주요한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들을 아래와 같이 총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이 본질적 속성들은 각 도서관이 직면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요구와 환경적 토대 위에서, 각자 상이한 모습의 도서관을 설계해 나갈 때에 고려될 수 있다.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모두를 위한 도서관(library for all) 개념은 특정 이용자층을 고려한 공간이라기보다, 누구나 편견 없이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지역사회 일원이라면 누구라도 환영 받으며, 평등한 위치에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공적인 부분을 누구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서 운영에 필요한 규칙을 최소화하고 스트레스가 적은 느슨한 구조의 상호작용이 요구된다(Bruxvoort 2017).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길러질 수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프랑스 공공도서관이 제3의 공간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는 현상을 심층적으로 보도하였다. 프랑스 북동부의 씨늬 라베이(Signy L’ Abbaye) 지역은 인구 1,400명 정도의 작은 규모여서 자체적으로 도서관을 건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도서관은 지역사회 센터와 운영비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맺고, 사서, 사회복지사, 문화 코디네이터 등의 직원들이 모두 함께 협력하여 워크숍, 육아, 구직 등의 공공서비스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커뮤니티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Potet 2015).
"우리의 우선순위는 이용자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난방 시설이 있고, 당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 공공도서관 외에는 마을에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20~30분 동안 대화를 나누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이지, 공공기관과 소비자 간의 관계가 아닙니다."
엘렌느 세르뗑, 프랑스 파리 교외에 위치한 루이즈 미셸 도서관 수석사서 (출처: Potet 2015)
캐나다 토론토 서쪽에 위치한 브램튼시의 스프링데일 도서관(Springdale library) 및 코마가타 마루 공원(Komagata Maru Park)은 교외지역 커뮤니티에 공원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 건물은 최대한 안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형태로 주변의 지형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구축되었다. 건물 내부는 도서관 프로그램 공간과 커뮤니티 룸 여러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원은 노인들을 위한 계단식 명상 정원과 어린이 놀이 공간이 어우러져 설계되었다. 제3의 공간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연령, 인종, 직업 등과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어울릴 수 있는 개방적인 환경을 지향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스프링데일 도서관 및 코마가타 마루 공원
(출처: Designing Libraries)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놀이 공간'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 개념은 ‘창조하고,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공간’ 혹은 ‘실험과 놀이를 통해 함께 학습하는 공간’, ‘개조하고, 실험하고, 창작하는 협업 공간’, ‘해커스페이스의 DIY(Do it Yourself)’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8). 호주 퀸즐랜드 세인트 에이단 앵글리칸 여학교(St Aidan’s Anglican Girls’ School) 도서관 사서 재키 차일드(Jackie Child)는 ‘메이커스페이스 공간에서 학생들은 잘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탐구하고, 수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호주 퀸즐랜드에 있는 7개 학교도서관을 경험한 학생 44명이 참여한 연구(Willis, Hughes and Bland 2019)에서는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교실 너머의 대안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학교도서관은 교실, 놀이터, 집, 시간 등에서 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공부하고, 만들고, 놀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안전한 ‘제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Child 2018).
호주 퀸즐랜드 세인트 에이단 앵글리칸 학교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
(출처: Child 2018)
전주시립도서관 3층에 위치한 ‘우주로 1216 공간’은 11~15세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낀 트윈 세대를 위한 체험공간을 구성한 프로젝트이다. 이 공간에서 운영되는 패시브 프로그램(passive program)은 정해진 프로그램 시간이나 진행 보조자 없이 스스로 자신만의 시간 계획을 가지고 언제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공간을 방이나 벽으로 구분하지 않고 4개의 존으로 구성하여 서로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환경으로 설계하였다. 트윈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간의 기획부터 운영 규칙 등 중요한 의사결정 내용을 트윈의 언어로 만드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아이들이 공간 운영을 함께 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아르떼 365 2019). 이러한 공간은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들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열린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복합 공간'
이질적인 요소를 어떻게 혼합하여 공간을 재구성할 것인지에 따라 제3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이 갖는 속성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미국 건축협회와 도서관협회(AIA/ALA)는 매년 도서관 건축과 리모델링 부분에서 뛰어난 구조와 설계를 보여준 도서관에 건축상(Library Building Awards)을 수여하고 있다. 2020년 수상한 네 곳의 도서관 중에서 미국 시카고에 있는 두 곳의 도서관은 도서관과 아파트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시카고 공공도서관과 주택청은 거주민들의 평생학습을 위한 도서관을 도시 중심지에 건립해달라는 높은 수요와 노인층을 위한 도심 속 주거시설 부족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었다. 이에 미국 시카고 시는 공공도서관과 노인을 위한 아파트 시설을 결합하기로 하였다.
노스타운 브랜치 도서관 및 아파트(Northtown Branch Library and Apartment)는 최대한 주변 주거환경과 어우러지는 반응형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거리와 연결된 외부 광장과 밖에서도 잘 보이는 넓은 로비로 설계되었다. 거리에 있는 10대 방문객들이 새로운 기술을 탐험할 수 있는 학습 연구실(learning lab)에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도록 로비층 동선을 구성하고, 예술가와 거주민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평생학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룸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도서관은 평생학습과 사회화, 테크놀로지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곳이자, 도시의 주거 문제까지 해결하는 사회 인프라 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AIA 2020).
가장 중요한 본질은 ‘지역사회의 요구’이다.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사회가 현재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철저하게 지역사회의 요구에 기반하여 이질적인 요소를 혼합한 복합 공간을 만들어낼 때만이 도서관 공간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미국 시카고 인디펜던트 도서관 및 아파트
(출처: AIA 웹사이트)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 공간'
도서관은 시끄럽고 혼잡한 경쟁으로부터 벗어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공공장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코로나19는 도서관을 비롯한 문화체육시설, 종교시설 등 모든 공공장소의 설계와 운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여러 전문가들은 앞으로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공공장소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Bryans 2020).
미국 시카고 노스타운 브랜치 도서관 및 아파트
(출처: Perkins & Will)
‘코로나19 더 안전한 도서관 가이드(Covid-19 Safer Libraries guide)’는 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수행해 오던 주요한 역할을 재개할 수 있도록 건축가 실무진 IF_DO가 개발하고, 영국 도서관장협회(Libraries Connected)와 도서관정보전문가협회(CILIP)가 파트너십을 맺어 지원한 도서관 공간 운영 지침이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도서관 직원이 안전하고 지지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고 새로운 프로토콜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 도서관 출입구를 비롯한 각 공간별 가구 및 설비 배치 지침, 공간 크기별로 가구 배치를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지 전·후(before & after) 모습 등을 인포그래픽으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 도서관 설계에 있어 ‘유연성’이 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도서관 업무 공간과 고객을 위한 공간의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한편, 더 쉬운 동선으로 일방통행이 가능하도록 선반 레이아웃을 신속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해졌다(Bryans 2020). 이와 같이 도서관은 유동적인 가구와 장비, 디지털 기술 등을 적용하여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민첩하고 반응적으로 공간을 재구성하고 있다.
제3의 공간에서 사서의 역할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평생학습과 커뮤니티 활동을 촉진하는 안전하고 모두를 위한 제3의 공간이다. 코로나19 직후에 대부분의 도서관이 문을 닫았지만, 도서관이 가진 자원과 공간에 대한 가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도서관은 다시 새로운 형태로 서비스를 재구성하여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간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이 해온 사회적 역할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서비스로 완전히 대체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점차 심화되는 정보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또 다른 대응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제3의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제3의 공간이 가지는 본질적 속성은 사람들이 가진 근원적 욕구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속성을 기반으로 제3의 공간을 구성하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Marshall & Weiner는 도서관 경영진이 대중과 직원들과 열린 대화를 유지하고, 업데이트된 서비스 모델을 다양화, 디지털화, 혁신 및 성장시키기 위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개념화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 해나갈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서의 투명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사람들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는 동시에, 시민과 직원 모두에게 편안함과 신뢰를 가져다 줄 수 있다(Marshall & Weiner 2020).
도서관은 세대를 거쳐 새롭게 나타나는 지역사회의 요구와 라이프 스타일을 충족하고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업무 방식과 서비스 프로토콜을 지속해서 개발해 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제3의 공간’으로서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도서관은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출처 : 도서관이야기 제15권 2호 통권144호
김혜영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