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8월의 읽을 만한 책
한국출판문화 산업진흥원 8월의 읽을 만한 책
초등학교 5학년생인 윤제아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에 철부지 동생 셋을 돌보고 가정 일을 도맡아 하는 맏딸이다. 언니니까 어린애처럼 굴면 안 된다는 주위의 말없는 시선에 갇혀 불만을 안으로만 삼키고 엄마가 다니라는 미술학원에 다닌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절친인 수연이와 멀어져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겉으로 아픔을 내보이지 못하는 수동적인 아이이다.
갈등과 슬픔이 가득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친구 연주와 다영이, 열린 책방의 대장인 폐지 줍는 할머니, 그리고 엉뚱하지만 밝은 성격을 지닌 은조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스스로 소중한 가치를 선택하게 되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조금은 단단해진 아이가 된다.
재투성이 신데렐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제아가 신데렐라보다 더 멋지다. 그 이유는 신데렐라의 변화는 남이 가져다 준 것이지만 제아의 성장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만들어 간 것이기 때문이다. 제아 스스로 가족 안에서 자기의 존재를 찾고 멀어져 가는 사람들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 자신이 중심에 서는 선택을 하며 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당당하다.
청소년기는 작가의 말처럼 ‘나를 발견하고 나를 잘 지켜낼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 나가는, 아름다운 반항기이다. 사춘기의 갈등과 고민은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알맞은 색깔과 향기를 찾아 나서는 여행인 셈이다. 그러하기에 이 여행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하나하나가 나의 무늬를 이루는 소중한 안료가 되는 셈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슬픔을 견디며 단단해져 가는 인물의 갈등과 고민을 잡아내는 힘은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익히 알려진 작가의 명성과 이름에 값한다.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국어교사)
한부열의 선물 작가 한부열 출판사 밝은미래 발행일 2017.6.23. |
띠지에 적힌 설명처럼 이 책은 장애인 아티스트, 그러니까 자폐 2급인 한부열 작가의 그림책이다. 자폐는 말 그대로 자신을 닫아걸고 세상과 소통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상태일 뿐 정작 본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과, 혹은 세상 어떤 존재와 어떻게든 소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부열 작가는 이런 특별한 소통 방식에 대한 힌트를 이 그림책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 것 같다.
‘한부열의 선물’은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다. 한번 죽 훑어보니 보통 그림책 읽는 법에 익숙한 눈으로 보자면 그 선물은 확실하지가 않다. ‘작은 친구들의 선물’이라는 단서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 작은 친구들은 누구일까? 처음으로 되돌아가본다. 그들은‘별빛 초롱초롱한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곤충들이다. 실을 뽑아 폭신한 그물을 짜는 거미, 콩콩 뛰어 예쁜 점을 만들어내는 무당벌레, 반짝반짝 단추를 만들어내는 반딧불이, 사락사락 꽃가루를 내려주는 나비. 다시 엄마가 선물을 받는 장면으로 가보니, 아, 엄마는 이미 그 선물과 하나가 되어 있다. 거미의 그물은 엄마의 옷이고, 무당벌레의 점은 엄마 옷의 무늬이고, 반딧불이의 단추는 엄마 옷의 단추이다. 나비의 꽃가루는 꼭 안은 엄마와 부열이 주위에서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이 간단한 이야기는 물론 한부열 창작은 아니다. 여러 사람이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해 만들어낸 스토리를 ‘작가 커뮤니케이터’인 엄마가 전해주었고 그가 그림을 그려냄으로써 프로젝트 팀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30센티 자를 가지고 수정하는 법 없이 단번에 완성한다는 그의 그림은 직선과 곡선의 혼합이 묘한 리듬감을 만든다. 원색의 침착하면서 활달한 사용이 강력한 활기를 부여한다. 무엇보다도 무당벌레, 나비, 거미, 반딧불이 같은 곤충들의 생기 넘치는 풍부한 표정이 작가가 이 작은 생명체들과는 충분히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프로젝트가 계속되면 한부열 작가의 내면은 더 넓게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웃는 곤충에 비해 사람은 무표정해 보이지만, 이제 웃는 사람의 얼굴도 그리게 되지 않을까?
- 추천자: 김서정(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미래창조부 명칭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뀌었다. 부처 이름이 지나치게 길기는 하지만 창조와 과학이라는 어찌 보면 상반되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이름에서 벗어난 것을 환영한다. ‘과학기술’이라는 말은 우리가 쉽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science and technology’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냥 과학과 기술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학기술이라는 남들이 안 쓰는 명칭을 고집할까?
자식을 과학자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는 많아도 자식을 기술자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 부모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에게는 기술을 천시하는 풍조가 있다. 과학은 원리를 밝히는 근사한 학문이지만 기술은 왠지 손재주만 있으면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공학)이다. 공기와 물에 들어 있는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임을 밝힌 사람들은 과학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기와 물을 맘대로 들이킬 수 있게 되었을까? 아니다. 기술자들이 여과와 소독 기술을 개발한 다음에야 식수에서 미생물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방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역학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불과 물을 다뤄본 기술자들의 경험이 없으면 열역학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연구와 개발은 과학과 기술(공학)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과학은 연구하고 공학은 개발한다. 과학과 공학의 협력체계를 깨뜨린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에 복속된 과학이 공학을 효과적으로 포섭하여 만든 게 바로 핵폭탄이다.
이 책은 과학과 공학의 화해를 꿈꾼다. 과학과 공학은 공동으로 선을 이루어야 한다. 과학자가 문제를 파악하면 공학자(기술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추천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이 책에 등장하는 테크 트렌드인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핀테크, 가상현실, 로봇, 무인자동차, 클라우드, 빅데이터에 대한 정보는 이미 여러 책과 강연, 매체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변화와 기회를 가져올 미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논의한 탓에 단편적이며 딱딱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은 기술이 주는 인간적,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통한 소프트한 접근과 함께, 돈과 꿈, 지식과 지혜, 업과 휴식, 소통과 소유와 같은 시각에서 기술 간 관계를 다면적으로 설명한다. 경계의 종말을 넘어 연결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정작은 각자 경계를 쌓는 것이 아닌가 하던 기술 간 연결을 다룬다. 칼이 흉기도, 멋진 요리의 도구도 되는 것처럼, 결국은 인간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 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우리는 매일 넘치고 넘치는 정보에 파묻혀 살고 있다. 과장되고 왜곡되며 발명된 거짓정보들이 언론의 자유라는 탈을 쓰고 횡행하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드디어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단어가 실릴 정도로 우리는 통계숫자, 그래픽, 여론조사, 현장검증, 실험결과, 수사, 탐색, 증거, 증언, 객관적 관찰, 과학적 분석 등등의 이름과 형식으로 쏟아지는 온갖 정보가 진실이 아닌 줄 의심하면서도 진실로서 받아들이는 잘못을 일상적으로 아주 쉽게 범한다. 정치, 정책, 경제, 비즈니스, 안전과 안보, 의료와 과학에 이르기까지 이미 거짓된 정보가 사회적 위험 수위를 넘어서 사실을 압도하고 진실로 수용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 일어난 일 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으로 즉각적인 여론형성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숫자와 언어 그리고 영상으로 조작되는 세상의 현상과 선전 선동에 대하여 우리가 객관적이고 비교학적인 시각과 냉철한 분석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이 무기화 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내용으로 차있다. 나아가서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정보와 광고와 뉴스의 예를 가지고 그것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에게 착시와 착각 현상을 일으키는지를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게 분석해 준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 보고 잘못 분석하며 잘못된 논리에 빠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거짓된 사실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혜안과 오류를 잡아내는 비판적 사고를 갖춘다면 우리 사회의 질적 수준은 높아지고 우리의 삶은 건강하고 안전해질 것임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거짓말과 사실을 구분해 내는 방법과 사실 속에서 진리를 읽어내는 지혜를 쉬운 설명을 통해서 알려준다는 점이다.
무더운 여름을 거짓과의 감정적 유대를 통하여 이기적인 향락에 빠지는 대신에 이 한권의 책으로 진실을 찾아내어 쾌적한 사회를 만드는 주인이 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보내기를 추천한다.
- 추천자: 김광억(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 책은 난해하기로 소문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본격적으로 읽기 위한 길라잡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체성과 무한』의 독서일기로 볼 수도 있겠다. 저자에 따르면 레비나스의 철학에는 사변적 엄격함과 함께 윤리적 관대함이 녹아있다. 우리에게 레비나스가 어렵게 읽히는 것은 전자의 ‘사변적 엄격함’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레비나스가 지향하는‘윤리적 관대함’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저자는 레비나스의 진면목은 존재론 대신 윤리를 자신의 제1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사랑이나 호의는 속성상 선별적이고 차별적이기 때문에 낯선 자에게 주어지기 어렵다. 이에 반해 무조건적인 환대는 낯선 자에게 그리고 타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행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사랑의 차원을 넘어 보다 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레비나스적 윤리의 특징을 엿본다. 이처럼 레비나스의 철학은 나와 타자들과의 관계를 타자 중심의 윤리로 환기시킴으로써 일상적 갈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지평을 경쟁과 계산으로만 파악하려고 한다면 갈등과 전쟁이 되풀이 되는 역사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윤리가 존재론에 앞서야 할 이유이다. 윤리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타자와의 관계는 모든 이해나 해석을 압도한다. 책의 제목인 『타자와 욕망』은 그와 같은 레비나스의 철학적 입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욕망’은 우리와 동일자가 아닌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욕망이다. 그런 욕망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욕망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에 직접 도전해 보고 싶어 질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 추천자 : 허남결(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독립운동 잘못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을 희생하며 고군분투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면 해방된 조국에서 마땅히 보훈을 받아야 하건만, 대한민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몇몇 이름 있는 인물은 국가 차원의 대우를 받았지만, 다수는 잊혀졌다. 이런 기현상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주체세력에 친일파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세의 개입과 이념의 분열이 합작한 남북분단이라는 국내외 정세도 한 몫 하였다. 또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1950~60년대 상황은 독립운동을 차분히 돌아보고 되새김할 겨를조차 앗아갔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우리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였다. 독립유공자의 자식이 오히려 학교에서 조롱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였다. 그래도 1990년대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국가의 보훈이 본 궤도에 올랐고,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도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2년부터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달 “이 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홍보하였는데, 이제 어느덧 4반세기를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소개하였는데, 대개 일반인이라면 들어본 적도 별로 없을 법한 ‘숨은’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는 이들 가운데 67명을 골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역사 전공자라 해도 생소한 이름일 이원대나 한징 등,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꽃처럼 떨어져 간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편집하여 엮었다. 67명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펼쳐지지만, 김구 선생처럼 유명하지는 않으나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음으로 양으로 분투하던 사람들을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접할 수 있다. 광복 72주년을 맞는 이번 여름에 손에 들고 단숨에 읽기 좋은 책이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소설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손보미라는 작가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로 독자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완벽히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데뷔한 지 10년이 되지 않았고, 단 한 권의 소설집을 냈을 뿐인 이 작가는 젊은작가상 대상,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기대를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영상시대라고 하지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인문학적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장르는 소설이 유일하다.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다 뻔한 주장을 실은 작품에 식상한 이들을 『디어 랄프 로렌』은 한껏 빨아 들여 낯선 세상을 돌다 어찔어찔해져서 돌아 나오게 만든다. 누구나 한 벌 쯤은 갖고 있는 ‘폴로 랄프 로렌’을 만든 랄프 로렌, 엄연히 살아 있는 인물이다. 소설 속의 랄프 로렌은 패션 혁명을 이룬 그를 차용했으나 2001년에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모든 것을 다 만드는 랄프 로렌이 딱 하나 빼먹은 것, 시계를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쓰는 수영. 그녀의 편지를 번역해 준다는 명목으로 자주 만나다가 성적이 떨어져 유학을 간 종수는 전도양양한 대학원생으로 성장했으나 갑자기 연구실에서 해고된다. 짐을 싸는 과정에서 수 년 전 수영이 보낸 청첩장을 발견한다. 외곽의 허술한 아파트로 옮겨 랄프 로렌이 왜 시계를 만들지 않았는지, 찾아 나선다. 갑자기 학교에서 밀려나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그가 몰두하기로 결정한 일이다. 1954년도의 역사를 더듬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종수가 104세 할머니까지 만나면서 100년이라는 시간을 우리 앞으로 바짝 끌어당긴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외국인을 만나 랄프 로렌을 추적하는 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에 열중하는 종수.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가는 종수를 통해 우리는 많은 질문을 받는다. 답변은 읽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복잡한 듯 하지만 짝을 지어 한 단계씩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걸 즐길 수 있는 구성이다. 1980년생인 작가의 폭넓은 관심과 지식에 종종 탄성을 지르며 푹 빠지게 되는 소설이다.
- 추천자: 이근미(소설가)
후생가외(後生可畏)라, 20대의 젊디젊은 처자가 이렇게 옹골찬 글을 쓰다니... 어찌 후배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학원을 마치기 전, 인생의 쉼표를 찍어 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딱 석 달 다른 공기를 마시겠다고 온 곳이 하필이면 베를린. 그 베를린은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지은이를 그냥 내버려둘 무심한 곳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야, 여기”온몸의 감각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인생의 짐을 풀기로 한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요즘 유럽에서 가장 와글거리는 도시이다. 물가가 싸고, 도시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예술가를 위한 풍부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학생과 젊은이가 넘쳐나는 베를린에서 돈을 벌어 여유롭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니, 무엇을 하든 즐기지 않으며 온전히 버텨내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를리너들은 무엇이 되었든 ‘시도’한다. 자신을 격하게 혹은 느슨하게 실험하며 길을 찾아간다.
이 책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젊음을 모험하는 스무 명의 베를리너들을 담아낸 뜨거운 책이다. 영화, 역사, 음악, 종교, 건축, 패션, 음식, 디자인, 클럽, 갤러리, 파티, 소비 등 스무 가지 키워드로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통해 정말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보여 준다.
그들은 말한다. “스스로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는 순간 알게 돼. 결국 타인의 우려는 그들 자신의 두려움에 불과하다는 것을.” “요즘 정말 신나! 누군가가 내 옷을 입었을 때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면 좋겠어.” “하이라이트가 없어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 삶을 영화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다시 한번 ‘후생가외’를 우물거리게 하는 베를리너들, 당신도 만나보길...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