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6월의 읽을 만한 책 10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_http://www.kpipa.or.kr/info/recommBook.do?board_id=35
<2016년도 6월의 읽을 만한 책>
ㅇ 좋은책선정위원회 위원(가나다 순)
- 김광억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김영찬(서울 광성중 국어교사), 오석륜(시인, 인덕대 일본어과 교수),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이한음(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문학예술 분야
312쪽/16,000원
사물을 보는 한 남자와 사물을 사유하는 한 여자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고규홍. 그는 십수 년 전 나무들이 부르는 소리에 문득 직장을 떨구고 방랑길에 오른 나무 인문학자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감성을 수놓는 김예지. 두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녀는 장애를 뛰어넘어 유감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젊은 피아니스트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무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여행에 나섰다. “나무는 무엇인가요?” 고규홍의 물음에 김예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애물이요. 반려견이 안내를 해 주어도 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나뭇가지에 긁혀요.”
이렇듯 나무의 반대편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대학의 교정, 여주의 시골집, 천리포수목원 등을 오가며 백송, 능소화, 은행나무, 느티나무, 치자나무, 자귀나무 등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사유한다.
서른여섯 살에 비로소 나무를 만난 김예지는 느티나무의 이끼와 웅장한 생김새, 기운찬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앙증맞게 나왔다가 넓어지다가 얇게 마르면서 단풍이 드는 잎사귀에 대해서도 자세하다. 시각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해 나무와 소통해 왔던 고규홍은 하루하루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나무에 다가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시각이 자신의 장애였음을 고백한다. 잘 만났다, 슈베르트와 나무.
어느 봄날, 그가 말한다. “모든 생명체에는 오감으로 전해지는 신호가 있어요. 봄 햇살이 따스해지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드러나요. 청진기를 대보면 사람의 심장에서 맑은 피를 밀어내는 쿵쾅거림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어느 여름날, 그녀가 말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여리게 쳐야 하는 순간 자귀나무꽃의 부드러운 꽃술을 떠올렸어요. 제 음악을 통해 나무의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생생한 이미지가 생겼어요.”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문학예술 분야
496쪽/20,000원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년-1806년?)를 향한 열정이 뜨거웠다. 아직까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가 없었다는 현실을 극복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굳은 의지가 읽힌다. 그리하여 저자의 뜨거운 열정은 한 화가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그려내기에 이른다. 단원의 그림에서 뽑아낸 수많은 스토리 또한 생명력을 갖고 우리들 가슴으로 파고든다. 단원과 더불어 살았던 당시 사람들을 그림에서 도출해내는 솜씨 또한 녹록치 않다. 스승인 강세황, 심사정을 비롯한 체제공과 정약용 그리고 동료였던 김응환, 강희언, 이인문 등 당대 정치가와 예술가들을 환생시킨 것처럼 대화를 나눈다. 물론 그 대화는 사실(史實)과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이 책의 값어치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내내 단원의 그림에서 그의 예술적 동반자였던 정조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황홀하다. 재미있다. 이것이 이 책의 백미(白眉)다.
“단원,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애쓰는 성군정치를 하고 싶다. 네 붓 끝에 내 꿈을 실어도 되겠느냐? 과인과 단원의 인연은 백성에서 시작된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그대를 내게 보낸 이유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 나라 백성들의 숨결을 그려오라. 백성들이 어찌 살고 있는지 숨김없이 고스란히 담아내어라.”
그렇게 단원은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백성들의 삶 속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삶을 밀착 취재하는 능력을 열정적으로 화폭에 담아냈기에, 그는 어쩌면 ‘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였는지도 모른다. 단원의 풍속화에 담긴 비밀은 이렇게 의미심장하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이 우리 고유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낸 최고의 작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려내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단원의 정신이 저자 이재원 선생의 붓끝에서 꽃을 틔웠다. 그 향기를 맡으면서 책 읽는 내내 행복했다.
- 추천자: 오석륜(시인, 인덕대 일본어과 교수)
인문학 분야
416쪽/22,000원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 자동차(自動車)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지금은 자동차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자동차가 우리네 삶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우리가 한반도에서 자동차를 접하기 시작한 때는 별로 오래지 않다. 자동차가 이 땅에 처음 선을 보인 것이 대한제국 때였으니, 불과 100년 조금 전이다. 그렇지만 일반인에게는 아직 그림의 떡이었다. 교통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기차나 전차 외에도 버스와 트럭 같은 자동차를 이따금 타 볼 뿐이었다. 일반인이 말을 타듯이 개인용 승용차를 보유하기 시작한 시기는 마이카 붐이 일던 1980년대부터였으니, 한국사회의 자가용 문화가 가시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지금부터 고작 30여 년 전의 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자인으로 본 우리 자동차 100년의 역사”라는 부제에도 잘 드러나듯이, 이 책은 한국 자동차의 역사 100년을 다양한 사진을 곁들여 쉽고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자동차의 변천뿐만 아니라, 그런 다양한 자동차들과 함께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현대 한국인의 이야기도 잘 녹여낸다. 그래서 이 책은 자동차 디자인을 통시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과 같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라는 프리즘으로 근현대 한국사회를 차분하게 조망한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자동차를 처음 접한 개항 시기부터 무인 자율자동차 출시를 목전에 둔 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거리풍경을 주도한 자동차들을 요리조리 돌아본다. 더 나아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과 시대 분위기가 자동차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하고, 자동차 디자인 양식의 시대별 변천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끌어낸다. 시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도입 초기의 흑백사진과 빛바랜 광고 이미지를 싣는가 하면, 미래형 자동차 개발과정에 활용된 스케치와 렌더링 등 다양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이런 체계적 정리를 통해,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작품이기 이전에 시대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책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애호가나 산업디자인에 마음을 둔 학생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인문학 분야
456쪽/19,000원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을 흔히 의식주라고 한다. 영어로는 ‘food, clothing, and shelter’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말이나 영어나 집은 맨 마지막이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이 항상 먼저이고 집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 넘쳐나고 최신 스타일의 옷에 대한 선전이 홈쇼핑을 가득 채운다. 그렇지만 집은 우리에게 그저 쉬는 곳,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아니면 고작 재산을 모아두고 불리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일까?
원래 인간이 집을 짓는 이유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추위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은 벽을 쌓았고 눈과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을 얹었으며 밖을 내다보고 드나들기 위해 창문과 문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오랜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를 거치면서 집도 나름대로의 스타일과 철학을 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집을 짓는 행위, 즉 건축이 그 자체로 철학이고 심리학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건축가는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 기능적 요소를 최대한 배려하여 집을 설계하지만 그 기능적 측면이 완성되면 자신의 철학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표현하여 디자인한다. 따라서 건축은 기능과 형태, 실용과 멋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그것을 통한 종합의 과정이다. 저자는 서양의 건축은 공간을 추구한 반면 동양의 건축은 영역을 발전시켜왔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벽을 쌓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인간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공간이 담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인간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더 큰 그릇을 만드는 노력을 계속 했고 결국 벽을 허물고 공간을 자유롭게 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은 바로 그릇 자체가 없는 것이다. 현대 건축에 있어 공간을 포기해서 진정 거대한 공간을 얻는 해체의 작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인간은 결국 진정한 자유를 위해 공간 스스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었고, 인간을 중심에서 끌어내리게 되었다.
이 책은 건축이 단지 멋진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와 건축가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을 담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자신의 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설계를 의뢰할 때 “모범적인 사례”만을 참고하지 말고 자신의 철학을 담는 작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 추천자: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사회과학 분야
272쪽/16,000원
베품과 나눔의 미덕에 관한 말들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 나보다 못한 “그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철학을 실천하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남을 위하여 베푼 선이 과연 어디에 얼마나 제대로 사용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미국의 시각장애인 한 명을 도울 안내견 한 마리 훈련비가 4만 달러인데 이 돈으로 개발도상국의 실명위기에 처한 트라코마 환자 2000명을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 기부를 하는 것이 더 귀중한 선을 행하는 것일까? 영화 속의 배트맨이 되고 싶다는 한 어린이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한 자선행사 비용이 가난한 나라의 말라리아 어린이 환자 세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쓸 수 있는 비용과 같다면 어느 편이 더 값진 선을 행하는 것일까?
행동을 추구하는 윤리철학의 대표적 학자인 피터 싱어 교수는 착한 사람들의 일회성 기부와 감성적 이타주의에 맞서서 과감하게 이러한 대비를 통하여 효율적 이타주의를 제창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다양한 방안을 사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타주의가 이기주의를 능가할 때 사회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냉철한 생각을 통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절실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선을 행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즉 효율적인 이타주의란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하여 모색하고 실천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계산에 의한 기부뿐만 아니라 기업체와 자선 단체들에게 어떤 이타적 행동을 올바르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하도록 촉구하는 여러 방안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곧 사회적 선의 최대화를 도모하는 것인데 남을 위한 최선이 본인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최상의 사회를 이루는 철학적 바탕이 된다.
보통 우리는 기부의 실질적 효과보다는 기부자로서의 뿌듯한 성취감에 기부를 한다. 이제 남에게 베푸는 선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하여 이기적이고 감성적인 이타주의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로 그 철학의 근본적인 전환을 꾀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함께 산다는 것은 이념이나 언술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는 현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추천자: 김광억(서울대 명예교수)
사회과학 분야
348쪽/15,000원
‘이전보다’라는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으로도 복잡한 세상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복잡성은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미니멀리즘으로 지칭되는 반작용 또는 원형으로의 회귀본능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복잡함의 세상에서 단순함의 주장은 속편한 소리 혹은 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리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의 원제는 “Simple Rules: How to Thrive in a Complex World”이다. 제목 그대로 복잡한 세상 속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한 규칙을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책의 주장은 복잡한 상황이 낳는 온갖 고충에서 잠시 자유로워지도록 하는 힐링 메시지가 아니라, 단순한 규칙이 문제해결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실제적으로 높일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규칙은 발견의 출발점인 기업조직이나 경영현장만이 아닌 일상과 사회적 상황, 다양한 학문적 영역에 적용될 수 있으며,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단순한 규칙은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정보처리 방식을 단순하게 만들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지름길 전략으로서, 결정 과정을 수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실행의 가능성과 정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단순한 규칙은 복잡한 이슈에 대한 여지없는 대응과 달리 재량의 느슨한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창조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꽤 매력 있는 주장이다.
서론부터,‘왜 단순한 규칙이 효과적일까?(1장)’, ‘결정을 더 잘 하려면(2장)’, ‘일을 더 잘하려면(3장)’, ‘단순한 규칙은 어디에서 왔을까?(4장)’, ‘단순한 전략규칙(5장)’, ‘개인 상황에 적용하기(6장)’, ‘규칙 개선하기(7장)’, ‘규칙 파괴하기(8장)’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 속에는 단순한 규칙의 필요성, 적합한 조건, 내용, 적용과 개선, 유의사항 등이 흥미롭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저자들이 영향력 있는 경영학 분야의 연구자들임을 감안할 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결정의 조건을 단순화해 정리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고민 중인 복잡한 이슈에 대해 책이 제시하는 방식을 따라 단순한 규칙으로 결정하고 대응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공감만 하기보다, 실천해보는 것이 이 책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자 결과의 기회가 될 것이다.
- 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자연과학 분야
288쪽/33,000원
곤충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는 일에 앞장서온 저자가 새 책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식물과 곤충의 상호관계가 주제다. 우리 산에 흔히 자라는 갈참나무에 모여드는 곤충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나무가 열매를 주고, 더울 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죽어서는 목재와 땔감을 제공하고, 앉아서 쉬도록 그루터기까지 아낌없이 내준다는 이야기의 곤충판이라고 할 수 있다. 갈참나무가 겨울까지 포함하여 사계절 내내 여러 곤충에게 먹이와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새싹이 날 때부터 병들어 죽어서 낱낱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많은 생물들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이 책의 장점은 마치 눈앞의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는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갈참나무 잎에 붙어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초록색 애벌레를 발견한다. 녀석도 잠시 쉬고 있는지 망부석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보고 있자니, “세상에 짚신 닮은 애벌레가 다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또 여름에 보니 봄의 고로쇠처럼 갈참나무의 갈라진 틈에서 수액이 스며 나온다. 줄기껍질이 흥건하다. 밑동까지 다 젖었다. 달달하고 시금털털한 냄새가 풍긴다. 수액 옹달샘에 곤충들이 죄다 몰려와 만찬을 즐기고 있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곤충들이 숲속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평화롭던 만찬장이 갑자기 술렁인다. 좋은 밥상머리를 차지하겠다고 몸싸움이 벌어진다. 쓰러진 갈참나무 줄기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듯 구름버섯이 층층이 자란다. 영양가뿐 아니라 신비한 약효까지 듬뿍 지닌 구름버섯을 먹겠다고 30종이 넘는 딱정벌레가 몰려든다. 태평하게 쉬고 있는 녀석을 건드리니 깜짝 놀라 부리나케 도망친다. 짧게 요약한 이런 대목들만으로도 이 책의 묘미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 하나의 나무를 두고 벌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 공생과 경쟁, 먹고 먹히면서 이어지는 생물들의 연결망 등이 살포시 지켜보는 시선 앞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아주 작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언뜻 거대한 세계를 함께 지켜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생태계가 쉴 새 없이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책이다.
- 추천자: 이한음(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실용일반 분야
280쪽/14,500원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다. 일의 자력에 이끌려 관성처럼 흘려보내는 바쁜 24시간이 재론의 도마에 올랐다. 실업인생에 비해 일이라도 있으니 감사하라면 무책임하다. 월급에 목매인 반강제적인 압류인생에게도 삶을 재검토해볼 이유와 권리는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거대한 톱니바퀴의 정렬된 날처럼 일에 파묻혀 허겁지겁 살아낸다. 일부는 일벌레로 전락, 일에서 존재가치까지 찾는다. 일의 쾌감을 느껴라 훈수하는 책까지 있을 지경이다. 과연 이 삶은 괜찮을까. 아쉽게도 훗날 잘 살아왔다 반추할 인생은 적을 듯하다. 많은 선배세대가 그랬듯 늙어서야 후회하는 고령방황이 아니면 다행이다. 선행경험은 후행교훈을 남긴다. 당연한 듯 받아들인 회사인간에 대한 반론제기, ‘삶=일’이 아닌 ‘삶=일+나(가족)’의 깨달음이다. 요컨대 나를 지탱하는 물질적 토대만큼 정신적 만족도 중대한 인생목표의 한축으로 양립조화가 필요하다.
책은 취미에 주목한다. 궁합이 맞는 취미를 잘 체득하면 행복품질을 끌어올린다고 봐서다. 그 과정적 희열은 부지불식간의 몰입에서 확인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젖는 취미라면 그게 몰입이고 행복이다. 반대로 취미에 강제는 없다. 하란다고 생겨지지 않는다. 흥미와 기쁨을 자연스레 분출시키는 게 취미다. 이때 자발적 몰입은 가능해지고 생활품질은 향상된다. 인간행복은 물질풍요가 아닌 몰아지경에서 극대화되기에 몰입경험의 반복·향상은 체감행복을 승화시킨다. 책은 다양한 취미생활에서 열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법을 소개한다. 그 활력원천은 29가지, 5대 키워드로 구분되는데 각각 맛·향기, 공예, 신체활동, 예술, 사색·공부 등이다. 일반적인 취미 나열이 아니라 포섭력이 높다. 몸으로 즐기는 몰입, 요컨대 신체활동의 즐거움으로 댄스스포츠, 스쿠버다이빙, 펜싱 등을 거론한다. 요즘 어른에게 인기인 목공·칵테일 등도 있다. 자칭 호기심 강한 대학생 저자가 몰입에 성공한 29명의 프로페셔널을 만나 해당 취미의 개괄부터 방법론까지 엮어냈다. 개별적인 구체 정보의 함량미달은 작은 흠이다. 책에서 본인에게 맞는 몰입거리를 찾았다면 그 다음은 자신만의 발품·손품이다. 이것이야말로 본인만의 몰입을 찾는 첫 만남이다.
- 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유아․아동 분야
40쪽/9,500원
판다 같은 얼굴의 배불뚝이 곰, 그 곰과 어딘지 닮은 남자 아이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사랑스러운 표지가 눈길을 끈다. ‘곰아 어디가 좋아?’ 제목도 흡인력 있다. ‘좋’라는 글자와 곰의 귀가 부딪치게 만들어 놓은 편집은, 일부러 그런 걸까? 여러 궁금증을 안고 페이지를 넘긴다.
아이는 쪼끄만 아기 곰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곰은 쑥쑥 자라고 자라 더 이상 집에서 함께 사는 게 불가능해졌다. 아이는 곰에게 새로 살 집을 마련해 주려고 묻는다. 곰아, 어디가 좋아?
둘은 장난감 가게, 동물원, 서커스에 차례로 가지만 곰의 대답은 매번 “싫어!”다. 산속 동굴이나 정글은 좋다고 하려나? 그런데 곰은 그것도 싫단다. 마지막으로 곰이 만족스럽게 선택한 곳은, 짐작하시겠지만, 북극이다. 아이와 곰은 둘 다 자기 사는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다. 그래도 여전히 단짝 친구로 남아, 전화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눈다.
배경은 가능한 한 줄이고, 페이지마다 선명하지만 부드러운 색채로 변화를 주면서 이 두 친구의 행적을 따라가는 그림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아이와 곰이 의미하는 바도 명백하다. 인생을 살면서 한때 애착을 가졌지만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모든 것과 어떻게 제대로 헤어질 것인가, 이다. 그것은 장난감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살던 곳, 가족, 나아가 예전의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떠나보냄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들은 인생의 한 단계를 넘는다. 그것은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줄 통과의례가 될 수도 있고, 상실감에 의한 슬픔과 분노라는 족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속 깊게도 곰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둘은 함께 헤매면서 곰이 살 수 있는 바로 그 곳을 찾아낸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져야 할 것과 의논껏 묻고, 헤매고, 마침내 그것의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행복한 이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다음에 같이 놀러 갈래?” “그래! 곰아, 어디가 좋아?” 이 마지막 장면의 글이 커다란 위안이 된다.
- 추천자: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유아․아동 분야
264쪽/13,000원
어느 대학의 연구팀이 발표한 ‘OECD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23개국 중 19위, 가족과 친구관계는 17위였다고 한다. 건강이나 학교생활, 삶의 만족, 가족과 친구관계의 만족도가 거의 최하위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활과 생활양식, 물질적 행복에서는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물질적 풍요로움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는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선바위골 공기 좋은 산 위에 사는 너구리는 자신만의 동산 ‘모꼬’에서 별자리를 관측하고 화성의 궤도를 기록한다. 라면과 참치를 좋아하고 사극을 즐겨보는 이 귀여운 너구리가 부동산 개발업자인 강 사장과 복숭아 과수원 주인인 장 영감님과 진정한 친구가 되면서 사람들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장 영감님을 설득해 과수원을 사들여 전원주택 단지로 개발하려던 강 사장은 너구리와의 만남, 장 영감님과의 교류를 통해 너구리가 사는 산을 지키기 위해 과수원 개발을 포기하고 장 영감님이 남겨 준 집에서 행복을 찾기로 한다. “다 너를 위한 거야.”, “조금만 참고 대학가서 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꾸역꾸역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강제하는 어른들에게 이 작품은 이렇게 말한다. ‘천천히, 늦게라도 생각이라는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 주자.’
‘피어서 아름다운 것은 시들어서도 아름다운 법이다’라고 말하는 장 영감님의 말이나 자기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 키워나가는 너구리는 우리에게 지식이나 물질적 풍요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자신의 꿈과 생각, 무엇인가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원이나 물질적 풍요로움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주변 환경과 자연,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 어른이다. 이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에 앞서 ‘세상의 기준에 행복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다 지쳐 있는’ 어른들의 반성문으로 읽힌다. 어른들이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