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9월의 읽을 만한 책 10선
2015년 9월의 읽을 만한 책 10선 & 추천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_ http://www.kpipa.or.kr/info/recommBook.do?board_id=35#
문학예술 분야
마종기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예술적 명문가에서 태어나 약관 20세에 시인으로 등단해서 60년 가까이 의사로, 시인으로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외국에서 거주했지만 한국문단에서 주는 중요 문학상들을 여럿 수상했고 그의 시집이 나올 때마다 충성스럽게 사 읽는 독자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공’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운명의 실험이나 심술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비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시인은 남의 선망을 받을 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불평할 일,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나직이, 에둘러 읊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륜은 이제 인생의 시련을 상처나 모욕으로 받아드리기 보다는 수용하며 성찰하게 해 주었다. 그것은 그가 인생에 대한 기대수치를 낮췄고, 보채는 자아를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어느 날 자다가 불현 듯 떠오른 멋진 시구를 어둠 속에서 급히 끄적거려놓고 다음날 깨어서 보니 말라버린 볼펜심이 지나간 연분홍 자국만 종이에 남아 있다. 시인에게는 그것이 자기의 살아 온 기록으로 보인다. “열심히 보면 피가 조금 밴 부끄러움의 색./ 내가 더 살기로 한 곳에서 맴돌고 있던 색./ 비굴한 계절이 말 걸어오면 주춤거리며/ 나도 모르게 중얼대다가 남아 있던 색./ 그 색깔 번져있는 온몸 투신의 시 한 줄./ 어딘지도 모르고 입술 터진 길을 헤맨다.”(서 있는 종이)
“가난도 무질서도 싫었고 무리지어 고함치는 획일성도 싫”어서 떠난 (헤밍웨이를 꿈꾸며) 조국에 대해 그는 “조국이란 게 산도 들도 아니고/ 손 시린 사람들이란 것을/ 나는 너무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어”라고 말한다 (손의 흔적). ‘희망’에 대해서는 “내가 처음 품었던 희망과 지금의 희망은 많이 달라졌다. 희망은 구름같이 변하는 것인가... 희망은 땅도 아니고 사람이다. 산천초목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른 섞임이다”라고 술회한다 (희망에 대하여). 반세기의 모색이 도출한 울림 깊은 깨달음이다.
이제는 세상에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대강 눈치로 알게 되”어서 상세한 지도가 필요 없게 된 시인의 원숙한 성찰들은 나이 들어가는 이들에게 좋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이 생명이 긴 시인이 아픔으로 감지하고 용서로 포용한 우리 삶의 무수한 색깔들을 오래 더 접할 수 있기 바란다. - 추천자: 서지문(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문학예술 분야
사진이 없거나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그림은 인간 존재의 상을 기록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었다. ‘안 닮아도 좋으니 무조건 멋지게!’ 그려주길 바라던 나폴레옹 같은 사람도 있었으니, 그림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오늘날 사진 후보정 이상으로 잔뜩 미화되어, 그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집중하는 것은 그림 속 ‘얼굴’이나, ‘몸’이 아니라, 그것을 덮고 있는 옷 과 장신구, 즉 패션이었다.
사진과 영상 매체가 극단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는 유명인들이 어떤 차림을 하고 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예컨대 오바마 대통령은 심지어 여성용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최측근이 아닌 이상, 봐도 누군지도 모를 얼굴이 아니라,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가 그 인물의 신분 포함 정체성을 파악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그림 속 남성의 패션을 읽는다는 것은 당시 남성들이 자신을 설명하고, 과시하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표식’들을 보는 것과도 같다. 이는 곧 남성 개인과 집단의 심리,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나카노 교코는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로부터 하층민에 속했던 어릿광대나 소매치기까지, 또 어른부터 아이까지의 차림새를 관찰하면서, 각선미에 집착한 루이 14세의 고뇌, 벼룩과 이가 들끓어도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멋’에 대한 남성들의 집념, 가발과 수염의 어쩔 수 없는 상관관계, 보기에도 민망한 코드피스(샅주머니) 등등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쉽고 유머러스하게 펼쳐낸다. 다비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르메르, 티치아노, 고야, 반 다이크, 홀바인, 윌리엄 블레이크, 앙리 루소 등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대가들의 ‘진지’한 그림에 나카노 교코는 ‘재미’라는 새 옷을 입혔다. - 추천자: 김영숙(미술 에세이스트)
인문학 분야
제목만 일견하면, 요즘 서점에 널린 그렇고 그런 여행이나 답사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처럼 보인다. 그 대상 지역이 유라시아라 눈길을 끌 뿐, 독자들의 손길까지 잡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시베리아까지, 5천 년 초원 문명을 걷다”라는 작은 글씨의 부제에 잘 나타나듯이, 이 책은 시베리아 초원지대, 곧 인류 역사에서 동양과 서양을 육로로 연결한 중앙아시아 유목 문명을 공간적으로는 세계사 차원에서, 시간상으로는 5천 년을 통시적으로 엮어 이야기해준다. 제목은 거창해도 정작 그 제목을 내용으로 담아내지 못한 용두사미 식의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부제 그대로를 고스란히 내용으로 담아낸 장대(長大)한 역사 교양서이다.
고고학자인 저자는 이 책의 중심축을 중앙아시아의 초원 문명에 두면서도, 그런 유라시아 문명과 한국 문명의 연관성에 대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여 천착한다. 특히 한반도 문명의 고유성만을 강조하거나 한국인의 대륙 기원설만 신봉하는 단선적 역사인식을 뛰어넘어, 한국 문명의 형성과 진화 과정에서 부단하게 접촉한 유라시아 문명과의 관계를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쉬우면서도 수준 높게 설명해준다. 실제로, 한국 고대문명의 근간에 깊이 연루된 유라시아 문명을 선사시대의 반구대암각화와 세형동검으로부터 시작해, 고구려와 신라의 연원을 거쳐 심지어 조선시대 초기(15세기)에 창제한 한글의 국제성(國際性)에 이르기까지, 부제 그대로 종횡무진한다. 또한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 일본인 학자가 제기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의 탄생 배경을 유라시아의 원대한 역사적(고고학적) 맥락에서 설명한 점도 흥미롭다.
요컨대,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전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이지만, 몸만 물리적으로 글로벌화 되었을 뿐 그 정신세계는 여전히 자국사적 민족사관에 얽매여 있는 요즘 학계 안팎의 정서를 감안할 때, 이 책이야말로 말 그대로 ‘글로벌’을 다룬 역사교양서이다. 한국사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 원한다면 놓칠 수 없는 필독서이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인문학 분야
신화는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와 스마트폰,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는 오늘날, 신화는 과거의 유물이나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만 유용한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실존주의 치료의 대가 롤로 메이는 현대인의 우울증과 고독, 불안과 약물중독은 신화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선언한다. 신화를 경시하는 태도가 혼란과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신화는 과학적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허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실존의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하는 정당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사회는 신화로 신경증적 죄책감과 과도한 불안을 완화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이렇게 타인,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건강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통합적인 세계이해의 장치이다. 따라서 신화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고 자신과 사회의 현실에 눈감는 것과 같다. 아무리 신화를 무시하려고 해도 우리는 신화 없이 결코 살 수 없다. 그러기에 각종 스포츠나 연예인으로부터 신화를 조달받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 대한 맹신 속에서 신화를 상실한 현대인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것도 신화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현대인들이 경쟁과 효율의 종교에 빠져 긍정의 과잉에 시달리는 것도 집단적 의식과 해석인 신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화가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신화 만들기는 심리치료의 중심이 된다. 롤로 메이는 이 책에서 학문적 깊이와 넓이, 그리고 풍부한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이트에서 출발하여 미국신화와 서구의 각종 문학작품을 분석한다. 그 안에서 신화에 대한 갈망이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되었는지 보여준다. 근대인이 탈신화(demystification)를 통해 벌거벗긴 자신의 모습을 초래했다면, 이제는 신화 만들기(mythmaking)를 통해 원시의 풍요롭고 건강한 마음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 추천자: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사회과학 분야
옛날에는 장소가 우리 삶의 토대이고 배경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소가 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보다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보편주의가 세상을 휘저으면서 사람들이 장소에 대해 관심을 잃어버렸다. 지리학상의 경쟁자인 ‘공간’ 개념이 대두하면서 장소는 더욱 강등되고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장소의 특별함이 잊혀졌다. 그러나 인간은 장소를 만들고 장소를 사랑하는 종(種)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장소가 중요하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 장소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 도시화되면서 ‘어디도 아닌 곳’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 개성이 없고 천편일률적인, 그래서 무(無)장소적인 곳에 산다는 것이 그를 우울하게 만든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듯 한 느낌에 빠져든다. 그래서 이 책은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무관심한 장소의 확산에 경고를 보낸다. 그 대신 ‘토포폴리아(topophilia)’, 즉 장소에 대한 본질적 애착을 강조한다. 추억의 비밀 장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다. 보네트는 각박한 삶을 멀리하고 싶은 욕망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토포폴리아를 일깨우기 위해 세계 곳곳의 이색적인 장소 47개를 소개한다. 잃어버린 곳, 숨어 있는 곳, 주인 없는 땅, 죽은 도시, 예외의 장소 등 항목으로 나누어 레닌그라드, 메카, LA공항 주차장, 국경 초소, 공군기지 등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근본 문제의식은 ‘탈출의 욕망’이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대한 멀리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가 안내하는 이곳들은 얼핏 기기묘묘한 장소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편하고 섬뜩한 곳이 곧 매혹적인 장소이다. 그런 곳을 찾는 것이 진정한 토포필리아이다. - 추천자: 서병훈(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회과학 분야
고유의 전통을 통해 학문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다른 학문과의 배타적 경계선 안에서, 해당 학문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노력이 실제적인 세상을 현실감 있게 반영하고, 학문의 새로운 진일보를 이루는 데 일정 정도 장애가 되는 것 또한 분명한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이슈를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원제 즉, ‘Happiness-A Revolution in Economics’의 그것처럼 혁명적이다. “경제학은 개인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혹은 행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학문적 깊이와 영향력을 지닌 경제학의 새롭고 멋진 선언이다.
이 책은 개인의 실질적 행복감(주관적 안녕감)을 측정하는 것이, 그간 경제학이 갖고 있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효용을 중요시하지만, 정작 효용을 측정하지 못하고, 소득 등의 대체물로 추정해온 경제학의 고민이 심리학, 사회학 등이 연구해온 개념을 통해 일정 정도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경제학의 여러 논의와 접근을 연계시킨다.
‘경제학에서 행복 연구의 주요 발전’은 행복 연구의 소개와 함께 효용, 소득, 실업, 인플레이션 및 불평등과 행복의 관계를 통해 행복 즉, 주관적 안녕이라는 새롭지 않은 새로운 개념을 경제학의 기존 논의와 연계시키며, 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행복에 대한 영향관계를 조망한다. ‘행복 연구에서 다루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공적인 영역, 자영업과 자원봉사, 결혼, TV 시청 등을 통해 경제학이 관심 갖는 실제 사회현상을 행복 연구와 연계시킨다. 특히 절차적 효용에 대한 관심은 결과적 측면에 함몰되어온 경제학의 한계에 대한 관점 전환을 담고 있다. ‘행복 연구의 정책적 중요성’은 경제사회 정책, 정치 제도 등에서 경제학의 행복 지향성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책은 행복이라는 실제적 이슈와 그에 관한 경제학의 치밀한 접근을 통해 행복과 경제학, 둘의 관계를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 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자연과학 분야
한동안은 맛집 소개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요리사들이 방송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화면으로 보고 있으면 저절로 군침이 돌지만, 한편으로 이 이른바 음식 포르노 열풍이 전 국민의 비만과 성인병에 얼마나 기여할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펼칠 때 그 점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방향이 다르다. 여러 권의 좋은 과학책을 낸 바 있는 저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음식을 먹어 왔으며, 그 식재료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월별로 나눈 각 장마다 떡국, 삼계탕, 햇과일 등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전통 명절과 연관지어서 설명한다. 전통 음식을 소재로 삼았으니, 옛 사람들의 풍속과 이야기는 덤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제는 거의 잊힌 설날이나 한가위 풍속을 서두로 삼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슬며시 과학적인 내용으로 화제를 옮긴다. 단오에 왜 쑥떡을 먹을까 하는 의문처럼 음식을 먹을 때면 이따금 들곤 하는 궁금증을 다룬 대목도 있고, 술이 몸에 좋은가 나쁜가처럼 어설프게 알고 있거나 아니면 인류의 과학 지식 자체가 아직 미비한 탓에 명절에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면 종종 의견이 갈리곤 하는 화젯거리도 들어 있다. 여기 실린 과학적인 내용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콜레스테롤, 셀룰로오스, 질소, 밀가루의 주성분, 감자의 독소 등 우리가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사실 음식과 과학을 연결 지으면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여 요리를 하면서 몸이 적응해 간 이야기부터, 농약과 유기농 식품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잡학사전이 되기 쉬울 것이다. 대신에 저자는 우리나라의 세시풍속과 과학 지식을 잘 버무려서 과식하지 않고 물리지 않게 맛깔나게 내놓는다. 덧붙이자면, 전통 음식이 다 과학적이다라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는 이 책에 없다. - 추천자: 이한음(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실용일반 분야
세상사 본인을 파는 게 중대한 우선사항이 돼버렸다. 진열장에 선 마네킹처럼 나를 택해 달라 외치는 시대다. 남을 설득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때 적어도 먹고살기 편해져서다. 취업은 자기소개로, 사업은 PT로 찰나에 설득해야 다음이 있다. 요컨대 밋밋한 말과 평범한 얘기는 거부당한다. 어여쁜 화장이 진솔한 속내를 훼손한다지만 공염불이다. 반론할 필요는 없다. 불편(?)한 진실일 따름이다. 맞서지 않겠다면 따라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설득의 힘은 크다. 열매는 먹음직스럽고 과육은 차지고 달다. 그 핵심비료가 스토리다. 영혼 없는 멋진 말은 순간일 뿐 감동이 없다. 같은 내용도 이해와 감동은 다르다. 어려운 내용조차 스토리가 입혀지면 흡수도는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스토리는 차별화다. 스토리는 설득의 전부다.
책은 스토리의 힘에 주목한다. 밋밋함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게 스토리라 강조한다. 스토리가 차이와 가치를 창조하고 유행과 명품을 만든다고 봐서다. 이럴 때 스토리는 ‘좋은 거짓말’이다. 생활주변은 스토리전쟁터다. 흔하디흔한 무언가에 특별하고 재미난 스토리가 입혀져 눈길·발길을 끌어 모은 사례는 숱하게 많다. 벽화마을, 지역축제, 영화배경 등 관광명소 상당수가 스토리의 채색결과 덕이다. 제품도 스펙보다는 스토리를 우선해 광고한 게 먹혀든다. 둘러보면 기억에 남는 TV광고 중 상당수는 정보보다 스토리를 지향한 경우다. 물론 모든 스토리가 다 통하진 않는다. 정확한 관찰이 녹여든 본인만의 메시지 작성과 전달에 치중하라 권한다. 표준편차 안에서 남의 마음을 얻기란 어렵다. 짐작·상상할 수 있는 나로는 곤란하다. 좀 다른, 이제껏 듣지 못한, 그렇지만 재미난 스토리의 공감이 필수다. 책에 따르면 이런 게 스토리이자 곧 스토리텔링이다. - 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유아․아동 분야
광복 70주년을 맞아 나라 안팎에서 많은 행사를 치렀다. 무엇인가를 돌이켜보고 기념한다는 것은 지난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뜻 깊은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아동 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친 강소천 선생의 탄생 100년을 맞아 60여 년 만에 다시 복간한 동화집 『조그만 사진첩』은 반가운 재회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전쟁의 혼란과 가난 속에서 어린이들의 메마른 정서를 흠뻑 적셔 준 것이 이 동화책이었다. 송아지를 한 식구처럼 생각하여 성까지 붙여주는 「박 송아지」, 여읜 아버지를 생각해서 잡았던 새를 놓아주는 「딱따구리」, 군에 간 오빠를 그리워하며 어린 동생들이 손수 그림을 그리고 사연을 적은 사진첩을 보내는 「작은 사진첩」, 전쟁 중에 인민군으로 참전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구하러 떠나는 「토끼 삼 형제」, 차돌 하나에 얽힌 그리움의 정을 그린 「돌멩이Ⅰ,Ⅱ」등 13편의 동화와 동시 12편이 함께 실려 있다. 이들 동화와 동시에 담긴 보편적 정서는 가족애와 그리움이다.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 주는 잔잔한 감동과 위안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소박한 삽화와 함께 가슴에 애잔하고 짠한 감동이 밀려오는 이 동화들이 1950년대의 비참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http://www.kangsochun.com)’ 홈페이지를 통해 강소천 선생의 생애와 동요, 동시, 동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름다운 문학 작품은 당대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두고두고 읽히는 법이다. 절판된 동화를 찾아 다시 복간하는 어른들의 몫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읽을 만한 좋은 동화들을 지켜나가는 길은 그것을 꾸준히 읽는 독자의 몫이다.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수석교사)
유아․아동 분야
그림책을 일컬어 세상을 바라보는‘창’이라고 한다. 그 ‘창’은 특히 아이 앞에 열리는 것이기 에 창을 만드는 작가는 물론 창 앞으로 아이를 데 려가는 부모와 주위 어른은 애써 적절한 높이와 넓이와 위치 방향 등을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무해하고도 유익하게, 창의적이고도 명철하게, 순정하고도 심미적으로 보여줄 것인가.
이성표의 그림책 『모두 나야』는 높이와 넓이와 위치와 방향이 모두 아이에게 맞춤한‘창’이라 할 만하다. 아이 손으로 펼쳐 들기에 적절한 판형의 그림책을 열면, 아이가 혼자서도 싱긋 웃으며 즐길 만한 글과 그림이 이어진다. ‘나는 진이/ 내 눈은 반짝반짝 빛나’라고, 얼굴 윤곽선이 생략된 채 주인공이 작고 오동통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자기를 소개하며 인사하는 첫 장면에서 어린 독자는 곧바로‘나’가 된다. 그리고 이제 주인공 진아의 두 ‘눈’―별빛에 반짝이는 동그란 밤하늘 둘―에 비친 사물과 존재가 되어 작고 크게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모두가 어느새‘나’가 되기에 이른다. (‘나’진아 곁에 있는) 곰 인형이 되고… (곰 인형을 사다준) 아빠가 되고… (아빠가 읽어주는) 책이 되고… (책 읽고 나서 진이가 한 손으로 서툴게 치는) 피아노가 되고… (피아노 치고 나서 먹는) 사과가 되고… (사과 먹고 나가서 놀다 올려다보는) 나무가 되고… (나무 가까이 피어있는) 꽃이 되고…(꽃 색깔과 꽃줄기 색깔) 얼룩말이 되고… (얼룩말처럼 잘 달리는) 자동차가 되고…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의) 바람이 되고… (바람을 타고 나는) 새가 되고… (새와 함께 떠있는) 구름이 되고…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 비행기가 되고… (비행기가 날아간 하늘에 뜬) 무지개가 되고… (무지개가 걸렸던) 빌딩이 되고… (빌딩으로 이루어진 도시로 가득 찬) 지구가 되어 인사한다.
세상 모든 존재와 쉽게 동일시되는 아이다운 어법으로 곧바로‘나’는‘무엇’이라고 말하는 텍스트는 장자(莊子)적 시(詩)이다. 여백 많은 그림과 함께 매 장면 시화 한 점을 구현하는 한편 순정한 이야기의 세계를 유려하게 이어간다. - 추천자: 이상희(그림책 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