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

2019.01.15

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현실로 바뀌는 마법 같은 세계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아니 사실 많이 읽었다. 환상적인 실내 사진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려고 나섰을 때 주소를 알 수 없었다. 운영이 어려워서 그새 문을 닫았나?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도서관이 무너진 건 아닐까? 궁금했다. 어디에선가 그림책 도서관의 운영을 이와키 유치원이 맡고 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무턱대고 이와키역 근처에 호텔을 잡았다. 다음날은 월요일이었는데, 오전 9시 유치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유치원이 운영하는 사립 그림책 도서관

그림책 도서관을 찾아왔다고 하자 아이들을 반기던 유치원 선생님은 금세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오늘은 그림책 도서관 문을 열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도서관이 문을 여는 목요일에 다시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아, 저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요. 저 여기까지 찾아오는데도 무척 힘들었어요. 그림책 도서관을 찾기가 진짜 어려웠거든요." 구구절절 설명하며 이제는 내가 점점 곤란한 표정이 되어갔다.

이어 유치원 책임자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나오시더니,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은 공공기관이 아닙니다.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사립 도서관입니다. 따라서 일정한 날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에게는 문을 열지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외부인을 위해서는 1년 중에서 12월에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사흘, 여름방학 동안에도 한 달에 사흘만을 개방할 뿐 대개는 한 달에 단 하루만을 개방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라고 체념하고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먼 길을 부러 찾아오셨으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차를 호출해서 그림책 도서관까지 모실 테니 잠시 기다려주세요"라며 "스미마셍. 스미마셍"을 연발하신다. 이윽고 말을 마친 그녀는 가져온 빗자루로 마당의 낙엽들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자연의 폭력을 경험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닷가에 위치한 이와키 마을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해수 6미터 높이까지 올라온 초대형 쓰나미는 지역민의 삶의 터전이었던 집과 직장들을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주민 수백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지진에 무너지고 쓰나미에 수몰된 마을에서 큰 재해를 겪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망연자실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어제까지도 웃으며 때로는 싸우며 정을 나누던 소중한 가족, 친구, 이웃들을 잃었다. 지진과 쓰나미는 마침내 멈췄지만 악몽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진 원자력발전소 파괴로 인한 방사능 누출은 재앙에 가까웠다. 이 일련의 무자비한 자연의 폭력을 경험한 무기력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절망의 땅에 살아 남겨진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이 집을 짓고, 언젠가 다시 무너질지도 모를 그 집에서 새 생명을 낳고 꽃나무를 심고 낙엽을 쓸며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오늘 하루에 감사하면서, 죽음의 땅에서 희망처럼 쑥쑥 자라는 소중한 어린 생명들을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긋이 지켜본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 또는 그림책 박물관은 일본 후쿠시마현 아와키시에 위치해 있다. 이와키 유치원의 설립자이며 어린이 그림책 수집가인 마키 레이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도서관 설계를 의뢰했다.

2003년 마키 레이씨는 자신의 소장품들인 세계 각지의 그림책을 소장할 수 있는 박물관이면서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그림책 도서관이기를 희망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감성을 키울 수 있는 특별한 도서관을 만들어 달라며, 그가 건축가에게 요구한 조건은 단 한 가지. 모든 그림책의 표지를 앞으로 해서 상시 보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와키 유치원을 포함한 세 곳의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은 설계되었고 2005년에 완공되었다.

도서관 건물의 구성은 크게 세 가지 요소이다. 콘크리트 벽, 원목의 책꽂이, 그리고 유리 창문으로 아주 단순하다. 투명한 소재인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안도 타다오의 디자인은 재료가 주는 차가운 느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깔끔하다. 오히려 갈색의 원목 서가와 어우러져 콘크리트는 따스한 정감마저 준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건축으로 유명한 안도 타다오는 이 그림책 도서관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연적인 빛을 이용해 어둠과 밝음을 극대화시키는 기법은 공간을 빛나게 하고 있다.

도서관 건물의 전체면적은 3,237 평방미터로 넓은 편이지만 열람식 자체는 634평방미터에 불과하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는 좌석으로도 사용된다. 이때 커다란 유리 창문으로 스며드는 자연 채광 덕분에 실내는 환하고 다채로운 색채의 그림책들은 이용자를 따스하게 반기고 있다. 소장 그림책은 모두, 만여 권에 이르고, 레이씨의 요구 조건에 따라 그중 약 1,500권의 세계그림책들이 겉커버를 앞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도서관에 전시되기 이전에는 레이씨의 개인 소장품들로, 오래된 희귀 서적들도 있고 세계의 유명그림책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1960년 칼데콧상 수장 작가인 마리 홀 에츠, 미국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에드워드 고리, 케이트 그린어웨이, 모리스 센닥 등 유명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창밖 저 건너에는

전시된 책 중에 모리스 센닥의 는 특별히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과 인연이 깊다. 는 바다로 떠나는 아빠를 배웅한 뒤 엄마는 정원에 서 있다. 엄마는 아이들을 돌아보지 않고 바다만 바라볼 뿐, 아이다가 앙앙 울어대는 동생을 달래고 있다. 그런데 아이다가 잠깐 '나팔 불기' 놀이에 심취해 있는 동안 심술궂은 꼬마 괴물 고블린들이 아이다의 어린 동생을 신부를 삼기 위해 납치해 간다. 이를 깨달은 아이다가 의연히 일어나 엄마의 비옷을 입고 고블린의 뒤를 쫓아가서 용감하게 동생을 찾아오는 아이다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이 환상 모험담은 안도 타다오의 도서관 건물 설계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이다. 영어 원제 는 동생이 납치되어 있는, 심술궂은 괴물 고불린들이 사는 세상을 가리키는 듯하다. 비룡소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어 번역본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는 그림책 줄거리를 주제로 삼았다.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Picture Book Library : Outside is the Inside'이다. 그림책 도서관, 유리창 밖의 세상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도서관은 문을 열고 어둑어둑한 통로를 지나 통유리로 둘러싸여진 열람실 안으로 들어가면 말 그대로 그림책으로 둘러싸인 그림책 세상이다. 안도 타다오의 독특한 통유리벽 설계는 내부 인테리어 공간 안으로 외부 세계를 결합시키고 있다. 이 구조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또한 동시에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경험을 갖게 한다. '밖'이 '안'이 되고 '안'이 '밖'이 되는 세계이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그림책들이 목적하는 바이며 좋은 그림책만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실이 상상으로 바뀌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 발 딛고 서있는 현재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마법 말이다.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감동

나는 오전 내내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에 머물렀다. 도서관까지 운전을 해주신 센자키상이 "천천히 마음껏 관람하세요" 하고 도서관의 어딘가를 살피러 가는 척하며 자리를 비켜주었기 때문에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언어로는 그날 오전에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을 적확하게 묘사할 재주가 없다. 열람실 문이 열리던 순간의 온몸에 흐르던 전율에 대해서, 유리창 사이로 환하게 스며들었던 아침 햇살의 눈부심에 대해서, 이웃주민 수백 명의 목수믈 앗아갔던 2011년 쓰나미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대해서, 그럼에도 단 하나의 잔만 떨어져 깨져버렸을 뿐 피해를 비껴갔던 안도 타다오 건축의 단단함에 대해서, 다채로운 그림책들이 품어내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의 이용자를 위해 도서관 문을 열어주고 긴 관람을 마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센자키상의 사려 깊음에 이르기까지.

사전 연락도 없이 폐관일에 찾아온 무례한 이국의 손님에게 센자키상은 단독관람을 마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고, 그리고 다시 이와키 역까지 자신의 차로 바래다주었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이와키 그림책 도서관을 찾아주어서 감사하다며, 그는 일본인 특유의 정중함과 극진함으로, 고개를 숙이고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시했다.


/ 조금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 저자

국립중앙도서관 <오늘의도서관> 2018.1, 2월 (Vol. 259)

http://www.nl.go.kr/upload/nl/publish/2018/01/2018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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