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담도담한옥도서관

2019.01.09

으로 이웃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지혜 통로

도담도담한옥도서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 종로구에 가면 한옥의 감성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문화 공간이 있다. 일상적이어서 조금 더 특별한 곳,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이다. 숭인동 골목 사이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도담도담한옥도서관에는 책이 있고, 이웃이 있고, 사람 사는 정이 스며 있다.


한옥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종로구 숭인동 골목 사이를 누비다 보면 주변과 어울리는 듯 조금은 특별한 한옥 한 채가 등장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일까? 궁금증에 들여다보니 뜻밖에 책 향기가 스친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정겨움으로 가득한 공간, 바로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이다.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재개발로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가옥을 지키고 지역 내 책 읽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2014년 종로구에서 조성한 공립 작은도서관이다. 본래 한의원으로 쓰이던 지금의 건물을 구입해 도서관으로 만든 후 새마을 종로구 지부에 운영을 위탁했다.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때문에 영하를 넘나드는 한파에도 문을 활짝 열어두고 이용자를 기다린다. 책과 이웃을 만나는 곳이니만큼 스스럼없이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대문을 넘어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면 소담한 마당이 펼쳐진다. 정갈하게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아이들을 위해 심어놓은 듯한 꽃과 채소가 살아있는 도서관임을 짐작게 한다. 한옥의 온돌을 그대로 살려 한겨울에도 뜨끈함을 자랑하는 바닥은 한옥도서관만의 강점. 좌식 책상에 기대 책을 읽고, 때로는 뒹굴뒹굴 휴식을 취하는 이용자들의 표정에서 한없는 여유가 느껴진다.

“다른 도서관도 가봤지만 이곳만큼 편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온돌바닥에 좌식책상이라 편안하고, 마당이 있어 답답하지도 않고요. 책 읽기가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고 하는 우리 아이도 이곳에 오면 여러 권 뚝딱 읽더라고요. 한옥과 책, 그야말로 찰떡궁합인 것 같습니다.”



한옥 체험하기 힘든 요즘 아이들에게는 옛이야기 속 시골집 놀러 온 듯한 정겨움을, 어른들에게는 치유를 선사하는 도담도담한옥도서관. 그렇게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한옥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을 바탕으로 숭인동 독서문화를 이끌고 있다.


책과 사람, 기본에 충실한 도서관

어린아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을 뜻하는 ‘도담도담’이라는 이름처럼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본래 어린이를 주 이용층으로 설정한 공간이었다. 개관 이후 문화소외지역으로 분류되는 숭인동 아이들이 내 집처럼 드나들며 책을 읽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동특화도서관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도담도담 안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속속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동네 유일한 학교였던 숭신 초등학교마저 신입생 부족으로 왕십리로 이전하게 되자, 그나마 남아있던 아이들마저 취학할 때가 되면 보다 통학이 용이한 지역으로 터전을 옮겼다. 바로 옆 구립어린이집 어린이들 또한 학교 갈 즈음이 되면 으레 이사를 갔다. 초등학생이 사라진 숭인동, 차별화된 운영방식이 필요했다.

“숭신초등학교가 이전하면서 어린이 이용자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변화를 실감했죠. 아이들 위주로 구성하던 장서와 프로그램을 바꿔야 했습니다.”



이용자 구성을 살펴보니 평일 오전에는 동네 어르신들, 점심시간에는 인근 직장인, 오후 4시부터는 하원한 어린이집 아이들, 주말에는 SNS 인증샷을 찍으러 온 젊은이들이 주였다. 전 세대가 고르게 이용하고 있는 셈. 이에 어린이 위주 프로그램보다는 도서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장서, 사람, 공간에 집중키로 했다.

가장 먼저 손본 곳은 서가였다. 유아동도서 비율을 줄이고 성인도서를 확충했다. 그중에서도 오전 시간 도서관을 찾는 어르신들을 위해 그들이 젊은 시절 즐겨 읽었던 책을 구비하는 데 신경을 썼다. 결과는 대성공. 도서관을 찾은 어르신들은 예전에 보던 책을 여기서 만난다며 반가운 마음에 대출해가기 시작했다. ‘추억의 책’ 덕에 이용자들은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을 이끄는 조성희 관장과 스스럼없이 책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이용자와의 소통은 공공기관 친절도 조사 상위권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마당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책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향긋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꽃차소믈리에 자격증을 소지한 조 관장이 직접 만든 꽃차 향이 도서관을 싱그럽게 감싼다. 차의 맛 또한 훌륭해서 SNS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한옥 특유의 정감 어린 분위기와 책, 꽃차 덕에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책으로 이웃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정답은 기본에 있었습니다. 책과 사람에 집중하다 보니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무조건 프로그램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람이 늘어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도서관 마다의 특징을 살린 운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앞으로도 할머니 집에 온 듯 편안한 공간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꺼내 읽으며 마음을 여는 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마을의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종로구립작은도서관으로 새마을회 종로지부 위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작은도서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문고는 농촌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독서를 확산하고자 생겨난 운동으로 회원들이 스스로 책을 모아 관리 운영하는 자율적인 독서운동이다. 1961년 마을문고 보급회로 창설, 1983년 새마을문고 중앙회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존 새마을문고는 회원들이 순서를 정해 2~3시간씩 관리하는 시스템이지만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새마을회 회원이자 작은도서관 운영자 과정을 수료한 조성희 관장 1인의 책임하에 운영되고 있다.

“예전에야 책이 부족해서 독서를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도서관 운영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마을문고는 몇 시간씩 돌아가며 도서관을 지키는 형태이다 보니 운영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책임자가 확실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은 전통적인 새마을문고 운영 방식과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지만, 희생과 봉사라는 새마을 정신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손이 많이 가는 한옥 관리를 위해 개관 시간 훨씬 전 출근해 도서관을 쓸고 닦는 것, 빠듯한 운영비에 교대 인력이 없어 도서관 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일상, 도서관 업무 외 새마을지회 행사 참여에 대한 요청도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이겨내고 있다.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 무보수 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만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버티고 있다.



프로그램 또한 재능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플로리스트와 도시농업전문가 경력이 있는 조성희 관장이 리디아의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텃밭프로그램’, 매주 월요일 고계련 작가가 운영하는 ‘붓글씨 교실’, 매월 1, 3번째 금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송동현 시인의 ‘시창작교실’ 등이 순수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



“힘들다고 하면 한없이 힘든 일이겠지만, 저를 비롯 재능을 나눠주신 선생님들 모두 사회에 나눔을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칠 때도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웃에 봉사하겠어요. 도서관을 운영하는 날까지는 힘을 내어 볼 생각입니다. 또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인지 책 보러 오는 이용자가 없으면 몸이 아파요. 맡겨진 소임이라 생각하고 이웃들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구차원에서 작은도서관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책, 그리고 사람이 만나 마음을 토닥이는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의 더 큰 날갯짓이 기대되는 이유다.


■ 도담도담한옥도서관

운영 평일10:00~19:00 / 토·일 10:00~18:00

주소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길 43 도담도담한옥도서관

문의 02-928-1133

http://lib.jongno.go.kr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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