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산동도서관마을

2018.12.20

구산동도서관마을



때론 커다란 신축 도서관에 머물기보다 작고 아늑한 마을 도서관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옛 연립주택 여러 채를 개조해 지은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마을 도서관이다. 새것 같지 않아 낯이 익고 아담해서 포근하다. 그래서 더 반갑다.


뜻 모아 힘 모아 탄생시킨 주민 문화시설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세 채의 다가구주택을 개조해 만든 도서관이다. 건물 앞에서 보면 옛 연립주택의 정취가 느껴지는 차분한 색감의 벽돌과 오밀조밀 낸 창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내는 높은 천장 아래 구불구불한 계단이 층에서 층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역시나 발코니 등 다가구주택이었던 시절의 멋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55개의 방으로 나뉜 서가의 모습 또한 가정집 서재에 들어선 듯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신남희 관장은 이용자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도서관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던 집 형태를 구석구석 보존해 두었어요. 집을 철거할 때 나온 목재로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실내에 배치했죠. 덕분에 연립주택의 구조와 느낌을 살려 아늑하게 꾸밀 수 있었어요. 도서관이라면 으레 있는 로비나 복도도 없죠. 골목에서 이웃을 만나는 것처럼 책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이처럼 연립주택 건물을 개조해 도서관을 지은 데는 사연이 있다. 2006년, 당시 은평구 공립 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어머니들이 집 가까운 마을에도 도서관을 만들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후 은평구청에서 부지를 마련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도서관 건립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서울시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제도를 활용해 주민들은 3년에 걸쳐 35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새로 도서관을 짓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세대주택을 개보수하는 쪽으로 건립 방향을 잡았다. 건물 보수부터 구성까지, 마을 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내고 참여했다. 그래서 2015년 11월 13일은 주민들에게도 뜻깊은 날이다. 서명 운동을 시작한 이래 9년 만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은 은평구의 5번째 공공도서관, 구산동 도서관마을이 개관한 날이기 때문이다.


주민 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 도서관

전국에 공립도서관은 많지만 주민들이 직접 위탁해 운영하는 경우는 없다.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 위탁 운영하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운영 방식이 눈에 띄는 이유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협동조합이 구립도서관을 위탁해 운영하는 국내 첫 사례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만큼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기 좋지만 운영 초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협동조합과 도서관이라는 전혀 다른 조직이 하나로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는 일이었다. 손발을 맞추면서 조합원이면서 직원인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했다. 쉽지 않았지만 서로 공공도서관과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해나가며 실마리를 풀었다. 함께 도서관 건립에 참여한 마을활동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좋은 도서관 만들기'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신남희 관장은 주민들과 협력해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이 진행은 더딜지라도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물론 협력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일반적인 도서관 운영 시스템과 비교하면 번거롭고 더디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주민들의 뜻을 직접 듣고 협력해 만들어가는 보람이 더 커요. 궁극적으로는 정말 주민들이 원하는 도서관, 사랑받는 도서관을 만들 수 있겠지요. 서로 맞춰 나가는 과정은 도서관이 지역 사회 중심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면에서 사서들 모두 보람과 재미를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


특색 있는 3대 특화자료실과 독립출판물 서가

지하 1층, 지상 5층, 2,550㎡의 건물 안에 2018년 10월 기준 5만 2,305권의 장서를 갖춘 구산동도서관마을. 그중 청소년 자료 6,915권, 마을 자료 960점, 만화자료 6,083권은 각 주제별로 분류해 특화자료실로 운영 중이다. 청소년 자료실은 단순히 관련 책을 비치한 것이 아닌 청소년들의 모임인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운영에 참여하거나 행사를 기획하기도 해서 의미가 더욱 크다. 은평구의 역사는 물론 문화자료와 마을활동 자료들을 비치한 마을 자료실도 관련 전시와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건물의 2층~4층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만화자료실은 어린이, 일반, 그래픽노블로 코너를 세분화해 구성했다. 박학경 사서는 만화자료실 안에 이색 코너도 만들었다고 귀띔한다.


"어린 시절 추억의 만화방을 재현한 '보물섬'이 인기가 좋아요.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탄생한 만화가들'이라는 코너도 꾸몄죠. 도서관에서 은평구 만화가들에게 강습 받은 수강생이 만화가로 데뷔하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화 관련 프로그램을 다수 선보일 예정이에요."


특색이 돋보이는 공간은 이뿐만이 아니다. 1층 마을마당 앞에는 다른 공립도서관에 없는 독립출판물 서가가 있다. 또한 연간 도서구입비의 1% 정도를 독립출판물 구입에 사용하는 중이다. 이는 단순히 구색을 갖추기 위해 독립출판물 서가를 두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특별한 공간은 이뿐만 아니다. 주민들이 모여 방송을 하거나 인터넷 방송을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갖추었다. 사서들이 추천하는 '사색 공간'도 있다. 신남희 관장은 '3층 청소년 자료실 안쪽'을 추천했다. 혼자만 머물 수 있는 툇마루 형태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상에 잠기기 제격이라고.


마을 주민 모두의 '우리' 도서관으로

구산동도서관마을 이용자는 하루 평균 1,000여 명에 달한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2,000여 명에 이른다. 게다가 유아, 청소년, 청년, 노인까지 전 연령대, 외국인까지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도서관을 찾는다. 개인 학습이 가능한 열람식이 없어 이용자 대부분이 독서나 대출을 목적으로 방문한다고 한다. 동아리 모임이나 도서관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오는 이용자들도 많다. 30여 개의 마을 동아리가 도서관을 무대로 활동 중이며, 독서문화프로그램을 하루 평균 3.8회~8회까지 진행한다.


주민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기획 전시나 프로그램의 종류도 다양하다. 먼저 마을 수채화동아리 작품 전시, 은평구를 소재로 그림 그리는 마을 화가 작품 전시, 은평구에서 활동 중인 독립출판물 저자 초청 강연회 등 마을에 관한 기획전의 반응이 좋았다. 자랑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지난해에는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과 함께 연 마을장터를, 올해는 서울자유시민 대학에서 지원하는 철학강좌다. 11월을 맞아 백상현 정신분석학자의 '프로이트, 라캉 철학강좌'와 노명우 교수의 '일상철학' 강좌, 주제강연으로 유현준 건축가의 강좌도 마련했다. 신남희 관장은 도서관이 "주민들의 소통 공간이자 성장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한다.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에게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해요. 또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를 얻었으면 하고요. 지역 주민을 알고 지역을 알기 위해 우리 직원들이 늘 학습하고 토론하죠. 마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들을 지켜보며 '도서관이 할 일'을 놓치지 않으려 해요. 무엇보다 주민들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아늑하다', '쓸모 있다'고 느끼는 진정한 우리의 도서관이라고 느끼기를 바라요."


/ 글 임은혜 사진 김종현

국립중앙도서관 <오늘의도서관> 2018.11 (Vol. 267)

http://www.nl.go.kr/upload/nl/publish/2018/11/2018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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