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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언니네 작은도서관
언니네작은도서관
▒ 책이 부담없는 놀러가는 도서관, 언니네 ▒
영남중학교 후문 옆의 작은도서관으로 걸어간다.
매일 만나는 동네 이웃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긴다.
영등포구 대림3동 ‘언니네 작은도서관’에서 매주 일어나는 일이다.
2013년 12월 23일에 개관한 이곳은 여성과 아동이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서울여성회가 만들어 운영하는 공간이다.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들며 대림3동 주민뿐만 아니라 대림1,2동, 신길동 등 인근 지역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누구나 편히 갈 수 있는 ‘동네 도서관’을 만들기까지언니네 작은도서관이 탄생한 계기는, 근처 신길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었다.
운동장에서 방과후 컴퓨터 수업을 기다리던 8살짜리 여자아이를 범인이 자기가 사는 단칸방으로 납치하는 동안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업에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학교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낯선 사람에게 끌려가는 아이 모습이 분명히 CCTV에 찍혀 있는데도 이상하다고 눈여겨본 사람이 없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서울여성회는 ‘CCTV를 늘린다고 성폭력 범죄가 줄어들기는 어렵다,
동네에서 노는 아이가 어느 집 아이인지 알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선이 있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보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강연이나 캠페인보다는 지역 주민이 지속적으로 모이는 공간이 있을 때 마을공동체는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신길동에 있던 서울여성회를 대림동으로 옮기면서 한쪽 방은 서울여성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자리를 도서관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후 개관까지는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다.
동네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내 도서관’이 생긴다고 마을 주민에게 알려야 했기에 준비위원을 모집하여 피켓과 안내지를 들고 함께 거리에 나가 홍보했다.
이후 매년 한 차례씩 개최하게 된 ‘북적북적 책 축제’도 이때 처음 열었다.
관심을 모으고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도서관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겠다는 회원도 나왔고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도서관을 돕겠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공간을 청소하고, 집기를 모으고, 깨끗이 닦고,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벽면에 쿠션을 대는 작업까지 모두 서울여성회 회원들과 동네 주민이 힘을 모아 했다.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도서관 내부는 그렇게 완성됐다.
서울여성회의 책 2,000여 권과 기증받은 장서 4,000권 정도를 모아 서가도 가득 채웠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독서 분류 및 라벨링 작업도 주민의 손으로 도서관 벽면에는 개관 당시에 참여한 정회원들과 준비위원들의 이름이 한가득 붙어 있다.
현재 정회원은 100명 이상이 늘어 240여 명이다.
도서관 벽면에는 개관 당시에 참여한 정회원들과 준비위원들의 이름이 한가득 붙어 있다.
언니네 작은도서관은 침묵이나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 곳이다
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 뛰어놀게까지 하지는 못하지만 들어오자마자 얌전히 앉아 책을 읽으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어오면 우선 떠들며 놀고, 들락거리며 서로 알고 친해진 엄마들이 자기 아이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이도 자연스럽게 돌봐준다.
“우리 아이도 매일 도서관에 오는데 딱히 뭘 하라고 시키지 않으니 내내 놀기만 하더라고요.
약간 조바심이 나려는 마음을 누르고 ‘언제까지 노나 보자’며 계속 보기만 했는데, 놀다놀다 나중에 할 게 없어지니까 책을 읽기 시작하더군요.
아이가 도서관에 오자마자 이 책 읽어라 저 책 읽어라 하고 어른들이 정해준다면 아이는 책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자발적으로 읽게 되지도 않을 거예요. 책이 정말 많은 곳에서 실컷 놀다가 마음이 내켜서 읽어야 책이 부담 없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어차피 책은 평생 읽을 건데.”‘주민을,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고 의도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나 곁에 있는 문턱 낮은 사랑방’이라고 언니네 작은도서관을 소개한 조민욱 사무국장이 자기 얘기를 들려줬다
매주 한 차례 열리는 ‘책 읽어주는 언니네’라든가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기획 강좌, 도서관이 계기가 되어 생기는 작은 모임, 1년에 두어 차례씩 진행되는 시골 나들이 등은 도서관 이용에 재미를 더하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다.
이 중 단연 인기 있는 것은 ‘책 읽어주는 언니네’. 매주 목요일 5시 반이면 ‘언니들’이라고 불리는 엄마들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가벼운 독후 활동을 하기 위해 엄마들과 아이들이 도서관을 가득 메운다.
“공짜 프로그램이라 인기가 있지 대단할 건 없어요”라고 조민욱 사무국장은 이야기했지만 동화책을 스캔하여 커다란 빔 프로젝터로 보고, 책 이야기를 가지고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끼리 로션도 발라주며 푹 빠져 노는 활동은 집에서는 할 수 없기에 더욱 인기를 끄는 듯하다.
“한번은 질이 좋지 않은 휴지가 집에 많이 있는데 도서관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어떤 회원이 기부한 적이 있었어요. 그 많은 휴지를 활용하여 독후 활동을 했는데 마음껏 풀어서 미라처럼 온몸에 칭칭 감았다가 그걸 다 다시 풀어서 잘게 찢어 물감과 물로 반죽하여 종이 찰흙처럼 만들어 주물럭거리며 이것저것 형태를 만든 다음 각자의 것을 서로 구경했죠.
그날은 도서관이 물감과 휴지와 물 범벅이 되어 난리도 아니었어요!”모임터로 극장으로, 도서관의 무궁무진한 변신도서관을 기반으로 하는 ‘동화모임’, ‘영어공부 모임’, ‘사진 찍는 아빠 모임’ 등이 마을과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이어준다.
동화모임에서는 아이들에게 동화를 더 잘 읽어주기 위해 빛그림 등 기법적인 부분이나 교육철학도 공부하지만 그보다도 부모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눈다고 한다.
아이와 단둘이 나들이 가는 게 영 어색한 아빠들은 손에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집 주변을 돌기 시작해 문래동 등으로 소풍을 다니며 아이와 점점 친해지는 법을 배웠고, 연말에는 집집마다 사진책 하나씩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 아빠만 친해진 게 아니라 동네 친구가 그리운 아빠들끼리 서로 친해져서 주말이면 만나게도 되었다.
사진 찍는 아빠 모임의 결실인 사진책. 모임 전체의 책과 각 가정의 책을 따로따로 엮었다
2013년 개관전 때 열고 작년에도 연 ‘북적북적 책 축제’는 토피어리나 배지 등을 만드는 체험활동뿐만 아니라 책 읽기, 이야기 나누기, 시를 읽고 그에 관련된 노래 부르고 듣기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작년 축제는 서울여성회 상근자들뿐만 아니라 도서관 회원들과 힘을 모아 진행하여 더욱 뜻깊었다.작년 10월 27일에는 도서관이 극장으로 깜짝 변신하기도 했다. 동시인, 동화작가, 그림작가들이 만든 <세월호 이야기>에 실린 동화 ‘조마구를 이겨낸 사람들’을 <조마구 이야기>라는 연극으로 각색하여 프로 배우들과 도서관의 ‘책 읽어주는 언니들’이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상연했다.
‘조마구’는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이름.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연을 하면서 그리고 공연 이후의 반응을 서로 나누면서 심적인 치유도 되고 엄청난 에너지를 얻었다고 한다.
마을과 친해진다는 것은 삶이 변화한다는 것“도서관에 오면서 달라지는 사람들이요? 당연히 많죠!” 쭈뼛거리며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람들이 문을 확 젖히고 들어와 자기 속 얘기를 할 때면 ‘이 분에게 도서관이 이렇게 가까워졌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조민욱 사무국장은 도서관 덕분에 대림동과 친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다고 했다.
일산에서 살다가 시댁을 따라 이사 온 어떤 주부는 동네에 친구도 하나 없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해서 ‘황무지 같고 사막 같은’ 대림동 생활을 힘겹게 이어 가고 있었는데 도서관을 알게 된 후로 매일 오고, 상근자가 되고, 이제는 ‘책 읽어주는 언니네’ 진행도 한단다.지금은 센터에 다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 매일 오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도 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날이 춥거나 덥거나 바깥에서 놀던 아이는 도서관이 생긴 다음부터 매일 도서관에 드나들었고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는 날이면 걱정이 되어 전화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이런 분도 있어요. 도서관에 처음 왔을 때 대림동이 좀 ‘그래서’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놓았는데 언제 이사 가게 될지 모른다고, 그러니 회원가입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괜찮다고,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공간도 생겼는데 이사 가지 말고 함께 지내요 했더니 이후에 자주 오시고, 나중에 회원가입도 하시고 이사 생각도 접으시더니 심지어 다른 이웃이 이사 간다니까 말리기까지 하시더라고요. 직장 다니는 이웃 대신에 아이도 맡아 돌봐주겠다면서 ‘동네 친구가 이럴 때 좋은 거죠’ 하시는데, 지금은 도서관에서 영어 스터디그룹도 조직해 활동하고 계세요.”신당동 토박이인 조민욱 사무국장 남편의 변화도 흥미롭다. 신당동만을 고집하던 남편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언니네 작은도서관 벽면 쿠션 작업을 재능기부자로 일했던 남편이 ‘이렇게 좋은 공간을, 우리 아이들은 왜 이용하지 못할까?’라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어 대림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민욱 사무국장의 남편은 지금 동네 아빠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한쪽에 앉아 몇 시간이고 조용히 책을 읽다가 가는 나이 든 여성들도 간혹 있고, 혼자 어디에 가야 할 때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속을 태우던 아이 엄마들이 도서관의 이웃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잠깐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언니네 작은도서관은 대림동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잖아요. 남의 집 바닥이 깨져 있다면 그저 피해서 지나가면 그만이겠지만 우리 집 바닥이 깨졌다면 직접 손을 쓰든 사람을 부르든 고쳐야겠죠. 내 동네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를 피하는 게 아니라 고치려고, 개선하려고 하게 될 거고요. 그렇게 해서 마을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도서관이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서 주민 가운데에도 도서관을 지키는 상근자가 생겼다. 평일에는 서울여성회 활동가들과 주민 상근자가 함께 근무하고, 토요일은 직장 때문에 도서관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도서관에서 일한다. “하지만 아직도 도서관을 모르는 분들이 동네 곳곳에 계세요.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도서관을 더욱 널리 알리는 게 목표예요.”유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에 집중되어 있는 어린 이용자층도 넓히고 싶다.
작년에 영남중학교 풍선아트 동아리 학생들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풍선아트교실’을 진행하며, 그것을 계기로 도서관과 친해져서 중학생 이용자가 많아졌는데 해가 바뀌어 아이들이 한 학년씩 올라가니 또 뜸해진다고. “저 잠깐 쉬었다 갈게요!”, “핸드폰 충전 좀 하고 갈게요!” 하고 편하게 이용하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조민욱 사무국장은 말한다. “더 많은 주민의 삶에 스며들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도서관을 주민이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오겠죠.”누구나 행복한 우리 마을
■ 언니네 작은도서관 현황
○ 개관시간: 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 / 토 오전 10시~오후 6시(북카페는 30분 일찍 마감)
○ 휴관일: 일요일, 월요일, 법정공휴일
○ 이용회원: 도서관에 오는 모든 사람이 이용회원으로 등록하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음
○ 정회원: 월 5,000원 이상의 정기적인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도서대출, 월 4잔 무료음료, 강좌 및 교육 프로그램 50% 할인
○ 공간 나눔: 휴관시간에 도서관 전체 및 세미나실 대여 가능
출처 : 서울시마을공동체 서울마을이야기 vol.26
글과 사진 : 김민주(자유기고가)
활동사진 제공 : 서울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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