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뒤뜨로 도서관

2016.12.15

노는 도서관 '뒤뚜르', "아이들이 존중 받는 것 같대요"

골목길 정겨운 그곳, 춘천 뒤뚜르도서관"우리 아이들이 친구 집이나 책 많은 이웃집에 놀러가듯, 찾아가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자기 꿈과 이상을 스스로 발견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 뒤뚜르도서관 도서관 한 켠에 책수레가 보인다


'사교육 학원가에 아이들 삶을 지배당하거나, 혹은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시간을 집에서 컴퓨터게임이나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내고, 아니면 집 밖 반갑지 않은 놀거리문화를 찾아 돌아다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 이들이 지역에서 뜻을 모았다.

'춘천시민연대'가 어린이도서관을 펼쳐가는 출발점을 마련해주었고, 2008년 춘천시 후평3동 동사무소 2층 회의장에 꾸준히 모여, '지역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좋은 생각'들을 모아갔다.
도서관 준비모임이 6개월 정도 이어졌다. 가까이 있는 호반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도 알려, 어떤 도서관이면 좋을지 바라는 모습을 함께 그려나갔다. 도서관 자리로는, 후평3동에 아파트단지를 끼지 않고, 초등학교와 놀이터도 가까워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을 부러 골랐다.

모금하려고 일일찻집과 주점, 알뜰장터 따위도 열었고, 1천만 원 가량 모아졌다. 월세보증금, 살림꾸밈(인테리어), 책 마련에 쓰였다. 2008년 8월 어엿한 어린이도서관이 마련됐다.


▲ 뒤뚜르도서관 춘천 후평동에 시민들 힘으로 마련된, 뒤뚜르어린이도서관은, 학교 끝나고 뛰어가 부담 없이 문 열고 들어설 수 있는 골목길 도서관이다.

후평동 우리말이름인 '뒤뜰'에서 따온 '뒤뚜르'라는 이름을 붙인 작은도서관이다. 도서관을 함께 이끌어가는 운영위원회도 꾸렸다. 운영위원은 책을 좋아하고 뒤뚜르를 자주 찾는 어른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후원회원이어야 한다.

운영위원회의는 한 달에 한 번이고, 상근활동가가 있지만, 초기부터 꾸준히 이어온 책 읽기 모임이 있기에 주마다 만나고 있다.

10년 가까이 뒤뚜르와 처음부터 함께해온 이순애 선생님은 병원 간호사로 일했다. 둘째아이 낳고서 전업주부로 있다가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가 이 도서관이었다고 했다. 초대 관장을 맡았고, 지금도 금요일마다 '책수레'라는 어른 책 읽기 모임을 한다. 목요일 아침마다 호반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앞자리에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고 있다.

"초반에는 하루 15명 정도 아이들이 찾아왔는데, 점점 도서관을 친구처럼 편안해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지금은 책을 읽든, 안 읽든 도서관에서도 놀고, 요 앞 골목길에서도 많이 놀아요. 그런 변화가 도서관을 활기 있게 하죠. 도서관에 꼭 책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한두 권만 있어도 되죠. 책은 배경 같은 거예요. 아이들이 여길 찾는 이유가 꼭 책을 읽을 목적은 아니에요. 여기가 편하고 즐겁고 그러다가 어쩌다 발견한 책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거지, 그냥 책만 파고 있다고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도는 건 아니잖아요."

▲ 뒤뚜르도서관 "책은 배경 같은 거예요. 여기가 편하고 즐겁고 그러다가 어쩌다 발견한 책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거죠."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들을 권해주기도 하고, 아이들 손이 갈 수 있도록 책 배치를 달리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만 많이 읽히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 와서 누나형들 보는 재미로 오고 싶어하는 7살 아이 때문에 날마다 아이와 함께 오시는 분도 계신다.

초등학교에선 보통 자기 학년 친구들하고 노는데, 여기 오면 동생들도 있고 언니오빠들도 있으니까, 자꾸 만나다보면 어느 날 말도 걸고 같이 어울리게 된단다. 같이 그림도 그리고 바느질도 하고, 먼저 아는 언니가 동생 매듭짓는 것도 알려주고, 줄넘기도 하고, 술래놀이 할 때는 아이들이 많아야 하니까, 자연스레 학년 구분 없이 잘 섞여서 논다.

"아이들이 저에게 와서 그림 그리겠다고 하고 물감놀이 해도 되냐고 물어요. 뒤뚜르에 오면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걸 스스럼없이 요구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저는 아이들 스스로 꺼내서 쓰고, 다 쓴 뒤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죠.

아이들은 '아, 도서관에 가면 내가 원하는 걸 얘기해도 언제든지 존중 받는구나' 하고 느끼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자기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게 큰 힘이잖아요. 그런 게 집이나 학교에서는 어느 순간 거절당할 때도 있는데, 뒤뚜르가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뒤뚜르에서 '사과'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활동가 이야기다. 아이들이 뒤뚜르에 와서 그리고서 놓고 간 그림들은, 그림 수준과 상관없이 도서관 한쪽 흰 벽면에 보기 좋게 걸려 '뒤뚜르미술관'을 이룬다.

'사과' 선생님은 뒤뚜르에 드나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들을 이모저모 꾸려간다. 도서관 문 연 날을 축하하는 생일잔치, 한해를 마무리하는 해넘이잔치 따위, 때마다 아이, 어른들 모두 불러서 조촐한 잔치도 연다.

같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짜보다가 '철 따라 놀래'라고, 한 달에 한 번씩 선생님 셋, 아이들 열다섯이 호반초등학교 뒷산에 가서 노는 의견이 나왔다. 봄 숲에서 뜯은 풀꽃 얹어서 꽃밥도 해먹는다.

▲ 뒤뚜르도서관 아이들이 그리고서 놓고간 그림들은, 그림 수준과 상관없이 도서관 한쪽 흰 벽면에 보기 좋게 걸려 '뒤뚜르미술관'을 이룬다

이웃해 있는 호반초등학교와는 서로 든든한 협력관계로 지내고 있다. 호반초는 2011년부터 행복더하기학교(혁신학교)가 되었다. 호반초에 자녀들을 보낸 이순애 선생님은, 호반초가 혁신학교 된 뒤로 아이들 표정이 많이 달라지고 시골에서 뛰노는 아이들처럼 자연스러워졌다고 평한다.

호반초 학부모들은 뒤뚜르도서관 운영위원으로 들어와 있고, 학교 선생님들도 뒤뚜르 후원회원으로 '뒷바라지'해주신다. 학교 동아리모임을 뒤뚜르에 와서 하기도 한다. 그 결실로 올해는 호반초와 뒤뚜르가 함께 온마을학교도 꾸려오고 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피어나는 마을 골목길을 되살리고자 시작한 시민운동이, 학원 아니어도 언제든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내고, 마을을 기반으로 부모들과 선생님들, 마을사람들이 아이들을 함께 키워가는 교육 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사 원문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65470오마이뉴스, 최소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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