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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만세 작은도서관
아이들 밥부터 돌봄까지, 시장 골목 도서관의 정체
만세 작은도서관
경기 화성시 '발안만세시장'이라는 유서 깊은 전통시장 골목에 만세 작은도서관(관장 오현정)이 있습니다. 발안만세시장의 만세(萬歲)와 만세 작은도서관의 만세(萬世)는 같은 단어처럼 보이지만 다른 뜻입니다.
만 명의 스승을 만나는 세상이라는 뜻의 만세 작은도서관은 2015년 20평 남짓 작은 공간으로 시작해 5년 뒤 60여 평으로 3층 전체를 다 사용하게 됩니다. 2020년에는 다올공동체센터라는 비영리민간법인을 설립, 화성시로부터 외국인공동체센터를 위탁 받았습니다. 발안신협으로부터 지하공간 100평을 받아 디자인하기까지 합니다. 그 공간은 서부지역공동체 활동가들의 공유공간으로 재탄생해 2021년 1월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만세도서관의 처음 시작은 6명의 엄마가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아이들에서부터, 동네 아이들, 다문화 가정 아이들, 심지어 만세시장에 방문하는 손님의 아이들, 혹은 상인의 자녀들까지 보듬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 됐습니다. 화성시민신문이 오현정 관장을 만났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만세 작은도서관과 웃고 울었던. 그 시간 내내 무척 즐거웠던 오현정 관장이 풀어내는 만세 작은도서관 이야기, 함께 만나보실까요?
태초에 수다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사실, 수다에서 시작됐어요. 만세 작은도서관의 처음과 끝은 항상 수다예요. 제가 서울 여자예요(웃음).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결혼 후 아이 낳고 화성에 내려왔는데, 인문학 강좌 등을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용산구에 위치한 수유너머까지 데리고 다녔어요.
아이 혼자 데리고 가기 또 심심하잖아요? 동네 아이들 엄마들도 어쩌다 보니 함께 서울 여행 비슷하게 하여간 가게 됐어요. 편도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다니다가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화성에서 서울까지. 아, 서울 멀다. 우리동네에 그냥 아이들과 수다 떨고 인문학 강좌도 열고 토론도 하는 뭔가 좀 자유로운 동네 도서관 만드는 게 어떨까? 그게 시작이었어요."
오현정 관장을 비롯해 조정아, 홍성순 세 명은 머리를 맞대고 도서관을 만들 궁리를 시작했다. 공간을 찾고 준비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발안만세시장 학우당서점이 위치한 건물 3층 20여 평을 우선 무상임대받기로 했다. 당시 학우당서점 주인인 송진호 씨가 흔쾌히 도와줬다.
2015년 5월 27일 만세 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만세 작은도서관의 만세는 만 명의 스승을 만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각자의 자녀들과 친구들을 대상으로, 혹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했다. 발안만세시장을 만든 운영위원 6명 모두 발안에 살지 않은 이웃 동네 주민이다. 도서관 문을 연 지 1년 후는 임대료를 내며 운영했다.
발안만세시장을 내 집처럼 매일 드나들던 어느 날, 만세시장이라는 공간에 들어선 다른 사람들인 상인, 외국인, 다문화가정 이주여성, 그리고 그들의 어린 자녀가 눈에 들어왔다.
발안만세시장, 외국인의 성지
발안만세시장 내에 위치한 발안 지구대에서 일했던 김희구 경사에 따르면 주말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고 했다. 저 거리 끝에서 이 거리 끝까지 만세시장은 화성시 향남을 중심으로 평택, 수원, 안산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만나고 쇼핑하는 소위 외국인 노동자들의 '핫플레이스'로 변한다.
2020년 10월 기준 발안만세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만세시장 상권의 40%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다. 실제 향남읍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의 수는 2016년 2천여 명에서 2020년 10월 기준 8천 명에 육박한다.
오현정 관장은 "미등록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실제 외국인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고려인이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3개월 단기 비자로 평택항을 통해 오간다. 배로 하루면 된다고 하니 굳이 화성시에 등록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자녀나, 다문화 가정 자녀 중 학교에서 돌봄이 되는 주중을 제외하고 주말처럼 공적 영역에서 돌봄이 되지 않은 날이 있다. 만세 도서관 운영진은 발안만세시장 거리에서 부모가 일하러 나간 주말 낮에 '배회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우리 모두 엄마들이잖아요. 저 애들에게 밥이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적어도 안전한 공간에 아이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다면,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세 작은도서관은 개관이래 지금까지 토요일 10시부터 1시까지 하고 있는 프로그램 '만세이야기'는 다문화 아이들과 일반아이가 함께 참여해 어우러진다. 수업도 하고 밥도 먹고 노는 만세 작은도서관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휴무 없는 만세 작은도서관
만세 작은도서관의 휴무일은? 사실상 연중무휴다. 그게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현정 관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실제로 그는 이렇게 웃는다). 사실 처음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죠. 그런데 지금은 뭐 그냥. 매일 나오고 돌아가면서 나오고. 그러다 보니 매일 열려있어요.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웃음). 그냥 그렇게 됐어요. 도서관을 운영하다 보니, 주말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더 많은 거예요. 그래서 월요일 휴무로 하자 했는데 다 무시되고 오픈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데 오후 6시 이후에도 프로그램이 돌아가요."
연중무휴인 만세 작은도서관을 꾸려가는 모든 사람은 사실상 무급으로 일했다(다만 2019년부터 화성시 세계로 학습마을로 지정받아 월급 받는 상근자가 있다). 아침마다 도서관 아이들을 먹일 어묵 반찬 등을 만들어 이곳에 오는 운영위원이 있다. 만세 작은도서관의 원동력이 무척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어떻게 이런 공간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오현정 관장은 "재밌어서 하는 일이라 가능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냥 서로 '식구'라고 불러요. 함께 밥먹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만세도서관을 하면서 지역 사람들과 관계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 전에 사실 화성은 저에게는 베드타운이었어요. 만세도서관을 통해 지역을 알아가고 사람들을 알고. 우리끼리 그냥 수다 떨면서 즐거우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돈을 굳이 받지 않아도, 우리가 치열하게 이 공간을 유지하려고 서로 싸우고 울고 웃고 했던 모든 시간이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눈 뜨면 만세에 와서 일하고 애들 돌보고. 그런데 그것이 고되지 않고 지금도 무척 즐겁고 행복해요. 돈을 받지 않아도 좋아서 하는 거예요."
휴무 없는 만세 작은도서관은 5년 연속 A등급을 받아 지원금 1천만 원을 받는다. 화성시 작은 도서관은 매년 도서관을 평가해 등급을 나눠서 천만 원부터 6백만 원까지 차등 지원한다. 오현정 관장은 경기도 전체 작은 도서관이 몇천 개가 있는데 만세 작은 도서관이 전체에서 10위권 안에 든다고 자랑했다. 그럴만했다.
다음은 공동체다
만세 작은도서관은 발안만세시장의 공동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처음 만세시장의 상인들은 만세 작은도서관을 외지인 취급했다. "저 아줌마들은 뭐 하는 거지?"라며 상인들은 이들을 낯설어했다. 이들이 크고 작은 수레를 갖고 다니며 헌책을 모으고, 상인에게 책을 빌려다 주는 일을 하면서 상인들은 만세 작은도서관과 어우러졌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효정 상인회장이 도서관장이라는 타이틀을 맡기도 했다.
"만세 작은도서관은 현재 개인 후원회원 30명, 6개의 단체가 후원회원으로 있어요. 이용 주민수만 연 5천 명이 넘죠. 장서는 8천여 권 정도 돼요. 황성택 전 화성시 부시장은 만세 작은도서관 같은 데가 화성에 3개만 더 있어도 화성은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나누는 것보다 다 함께 어울리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 일이 좋아서 했던 6명의 아줌마가 모여 시작한 만세작은도서관은 이제 비영리민간단체 다올공동체센터(대표 오현정)로 발돋움했다. 지난 5년간 그저 존재로 버텼던 이들의 판이 달라졌다.
발안만세시장에는 지금 2곳의 거점 커뮤니티 공간이 동시에 들어서기 위해 공사 중이다. 내년 1월이면 외국인 공동체센터인 문화더함공간 '서로'(cultural sharing space)와 서부 네트워크 공동체 공유공간이 발안만세시장 내에 동시에 문을 열 계획이다. 그리고 두 공간 모두 기획 단위부터 발안 만세도서관이 지역 당사자 조직으로 참여했다.
만세 작은도서관이 발안만세시장을 변화시킨 것은 공동체 문화뿐만 아니다. 거리 풍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발안만세시장의 거리는 안전하고 깨끗해야 했다.
"처음 발안만세시장의 거리 풍경은 도로도 깨져있고 쓰레기도 많았어요. 그래서 건물주에게 부탁해서 담벼락에 국기도 그려 넣었어요. 본인들 국기가 있는 곳에는 적어도 쓰레기를 안 버릴 것 같았어요. 맥문동 꽃도 심었어요.
그러자 화성시에서 도로도 다시 깔아줬어요. 만세도서관이 발안시장에서 한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들이 여기 있으면서 외국인 주민과 선주민 사이에 연합해서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날 기회와 그 접점을 만들어 가는 것. 화합의 장이 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만세 작은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비전, 활동가를 꽃처럼 피우겠다
만세 작은도서관이 도약한 비영리민간단체 다올공동체센터는 마을공동체와 다문화, 이주민을 지원한다. 화성시는 새마을금고 지하의 공간을 외국인공동체로 지정하고 운영을 다올공동체센터에게 맡겼다.
오현정 관장은 "외국인 공동체 공간은 그들이 네트워크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원하고요. 상인들과 협력해서 그들이 발안 지역에서 온전하게 잘 살 방법을 함께 논의하고 도울 방법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될 거예요"라고 밝혔다.
만세 작은도서관을 시작으로 지역사회에 마을활동가를 키우는 인큐베이팅 역할도 하고 싶다는 오현정 관장.
"다올공동체센터에 올해에만 자원봉사자가 15명 정도 늘었어요. 이들을 공동체 활동가로 성장해서 지역에서 마을활동가 역할을 충분히 했으면 좋겠어요. 활동가 키우는 인큐베이팅 역할도 하고 싶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잖아요. 정말 재밌어요."
주민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만세 작은 도서관. 지역에서 풀뿌리 공동체를 만들었던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한다.
■ 만세작은도서관
유형 사립 작은도서관
운영 평일 10:00~18:00 , 토 10:00~13:00 일요일 휴관
주소 경기도 화성시 평3길 20-1 3층
/출처 : 화성시민신문 윤미 기자
http://www.hspublic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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