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운영사례
[전남] 길 작은도서관
작은도서관에서 쓰여진 한편의 시
길 작은도서관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는 따뜻한 시 한편이 쓰여지는 도서관이 있다. 아름다운 시화벽화가 눈을 사로잡는 길 작은도서관이 바로 그 주인공. 길 작은도서관은 문학과 쉼이 공존하는 향유공간으로 영화 ‘시인 할매’의 명성까지 더해져 곡성의 빠질 수 없는 여행코스가 되고 있다.
시골마을에서 피어난 문화의 새싹
소박한 시골 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 작은도서관은 조손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이 많은 서봉마을에서 작은도서관이라는 문화의 씨앗을 심었다. 2004년 문을 연 이 곳은 동화처럼 그리고 영화처럼 따뜻한 이야기가 오늘도 피어나는 중이다.
길 작은도서관은 입구부터 여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도서관 담벼락에는 온통 시와 그림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작품으로 세월을 초월한 그 내용은 어느새 미소가 절로 나온다. 꾸밈없는 글의 미소를 짓다가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내용에 눈물을 훔친다. 도서관 곳곳 세심함이 느껴지는 장식물과 글씨들은 운영자와 이용자들의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서봉마을에 이사를 오게 된 김선자 관장은 저녁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고 마을 곳곳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아이들은 논이나 밭에서 저녁 늦게 돌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부모님을 기다리느라 저녁도 먹지 못한채 마을 어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교 시절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김선자 관장은 이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으로 도서관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그마한 가정문고로 3,000권의 장서를 가지고 시작하여 지금은 6,000권을 육박하는 많은 장서 수를 가진 도서관으로 거듭났다.
‘넓고 평탄하진 않더라도 세상엔 다양한 길이 있다’를 모토로 삼고 이용자들에게 알리고자 길 작은도서관으로 이름을 붙였다. 도서관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서관은 오늘도 절찬리 운영 중에 있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길’ 기록관
길 작은도서관만의 특별함은 바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대출과 반납 위주의 도서관 업무에서 살짝 벗어난 ‘기록’은 마을공동체로의 역할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아이들의 시화를 통해 서봉마을의 미래를 살짝 들여다보고, 할머니들의 시를 통해 세월의 깊이를 느낀다. 이처럼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며 길 작은도서관은 세대간 소통의 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24시간 열린 도서관으로 운영되는 길 작은도서관은 아이들에게는 학교 그리고 아지트이다. 아이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프로그램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접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생각해 동시글놀이반, 미술공예반, 악기야 놀자반, 작가 특강 등 뚜렷한 분야가 느껴지는 프로그램들로 구성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그 흔한 학원 없이도 방과 후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2017년 곡성교육지원청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길 작은도서관 역사의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바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동시집 『잘 보이고 싶은 날』이 출간된 것이다. 43명의 초등학생들이 참여한 이 동시집은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쓴 시를 다듬고 덧붙여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동시집은 아이들에게 큰 성취감과 값진 경험을 안겨줬다.
어느 날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커다란 촬영차와 카메라들이 쉴새없이 들낙거리기 시작했다. 길 작은도서관 시인 할매들이 드디어 일을 낸 것이다. 서봉마을의 인기스타가 된 시인 할매들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걸까.
작은도서관을 개관하고 일손이 부족하던 때 도서관을 마실오듯이 오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놀러왔다고 하시면서도 열심히 책을 정리해주는 할머니들에게 운영진들은 얼마나 감사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책 정리를 도와주던 할머니가 책을 자꾸 거꾸로 꽃으시는 거에요. 말씀을 드리니 제대로 꽃혀있는 책을 반대로 꽂으시더라구요. 이때 할머니들이 한글을 모르시는 걸 깨닫고 한글 교실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김선자 관장
그렇게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2015년 곡성문학상에서 큰 쾌거를 이룬다. 이를 계기로 할머니들은 늦깍이 시인의 등단을 알렸다. 할머니들이 며느리로 살아온 ‘시집살이’와 만학도가 된 할머니들의 세월이 녹아있는 ‘詩집살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긴 시집을 발간하게 되면서 작가가 되었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시집살이 詩집살이』중 윤금순 할머니의 시 '눈' |
시집이 출간되고 한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전화가 오셨다. 할머니들의 시집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촬영은 1년동안 진행되었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고단한 시집살이와 가족만이 전부였던 할머니들의 삶을 시로 풀어낸 과정을 담았다.
할머니들은 “쫄쫄 따라댕김서 징허게 찍어쌌더니 나온 건 쬐께 밖에 아니다.” 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셨다. 할머니들은 영화 덕분에 KTX도 타보고 예쁜 연예인도 만나보고 행복했다고 하신다.
“할머니들은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씀하셔요. 작은도서관은 마을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관계들을 유기적으로 풀어내고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시인 할매로 이 역할에 한층 더 다가갔다고 생각해요.”
- 김선자 관장
작은 마을에서 무럭무럭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서관을 한 바퀴 돌고나면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솟아오른다. 전 세대를 위한 책과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향유문화공간으로 서봉마을을 넘어 어느새 곡성의 유명인사가 된 길 작은도서관. 아이들은 다정다감한 어르신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위한 삶 교과서가 되어주고 있다. 이런 따뜻한 이야기가 알려져 인근 마을의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체험학습을 오거나 여행객들의 휴식터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에 발맞춰 길 작은도서관은 활발하고 알찬 운영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2016년부터 지자체 공모사업에도 응모하며 도서관 운영에 도움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 내부에 비가 새는 문제와 낡은 지붕을 개선하기 위해 공모한 문화체육관광부 SOC 작은도서관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숙원한 내부공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아직도 곳곳 내부 수리할 곳이 남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쉽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고정적인 운영지원금이 전무하다보니 김선자 관장은 2012년부터 직장생활을 병행하여 도서관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재정적인 문제는 도서관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해결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경영이지만 도서관으로 인해 변화된 마을을 보면 운영진들은 더없이 뿌듯하다. 세 개의 마을에서 이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시인 할머니 등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길 작은도서관은 작은 포부를 갖고 있다. 바로 서봉마을을 작가촌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 벌써 3권의 책이 도서관을 통해 탄생했지만 지속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용자들의 개인 그림책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길 작은도서관을 통해 젊은 청년들이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도 비전을 갖고 미래를 꿈꾸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해요. 앞으로 아이들과 청년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기록하고 마을의 모든 걸 써내려 갈게요.”
- 김선자 관장
길 작은도서관 ● 주소 : 전남 곡성군 입면 서봉탑동길 68-1 ● 유형 : 사립 작은도서관 ● 운영시간 : 평일 09:00 ~ 21:00 , 주말 09:00 ~ 21:00 ● 휴관일 : 공휴일, 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배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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