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도서관

2013.10.24

  

병영도서관

부산 LG메트로작은쌈지도서관 관장 류창희

< LG메트로 작은 쌈지도서관 & 제7508부대 > 자매결연 협약식

 

집의 큰놈이 해군에 지원했다. 바다가 가까운 부산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입시에 시달린 고등학교생활과 객지에서 생활하는 대학생활이 고단했는지 외려 군대생활을 활기차게 잘했다. 잘한 정도가 아니라 왕성하게 신바람이 났었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중,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시대가 아무리 좋아도 군대는 폐쇄되고 경직되게 마련이다. 일반 사회인과는 다르다.

아들은 군에 입대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예를 들어 하루에 5시간 자라고 하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 3시간만 자고 책을 읽었다. 군대에서의 잠이란 오로지 심신을 이완시키고 휴식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밥보다 귀한 잠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진작 중고등학교시절 그렇게 했더라면 어미 좋고 자식 좋고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에 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군대에 읽을 책이 없다고 한다. 한번 집에 올 때마다 한 보따리씩 집의 책을 들고 나갔다.

그때 읽은 책을 보면 밑줄을 긋고 메모를 꼼꼼하게 한 흔적이 책갈피마다 가득하다. 책을 읽다가 재미난 내용이 있으면 그 즉시 공책에 베껴 썼다.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생각이 문득 떠올라도 글로 적어 두곤 했다던 조선시대 책만 읽던 바보 이덕무와 다름이 없다. 지독하게 공부를 멀리했던 아들이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看書痴)’가 되었다.

남자들이 군에 가는 시기는 평생에 가장 건강한 시기다. 몸만 건강한가. 정신무장이 완벽한 시기다. 국가와 사회와 이성과 지적욕구로 충만한 시기다.

그때 나는 막연히 꿈꿨다. 그 또래 나라의 아들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아직 도서관 일을 하기 전이다. 혹여 나에게 그런 기회를 준다면 군에 복무하는 청년 그들과 사회인 엄마와 관이 하나가 되어 함께 걸으리라. 꿈도 야무지다. 그러나 세상은 꿈꾸는 자 앞에는 꿈만 펼쳐진다. 나는 1997년부터 7개의 시립도서관에서 한학을 강의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가 되어 내가 사는 지역 LG 메트로시티 아파트 안에 작은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명심보감> 재능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70년대 정사서의 과정을 공부한 이력까지 총동원되어 작은 도서관 관장직을 맡게 되었다. 단일아파트 엘지와 지에스자이 아파트가 전국에서 가장 큰 1만 세대의 대단지다. 이렇게 큰 단지지만 지역적인 특성이 있다. 영화 찰영지로도 유명한 이기대가 있다. 물론 청정지역이다. 부산의 마지막 남은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운 곳에 팬션이나 음식점 등 위락시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 설만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주민들 산책로를 빗겨난 깊숙한 곳에 군부대가 속속 들어앉아 있다. (군사기밀인지 몰라 밝혀도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일반 시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그 안 보이는 곳에서 훈련을 받으며 축구를 하며 산속에 있다. 따뜻하고 아늑한 아파트 주거단지와 불과 10분 거리이다.

마침 우리 도서관은 이기대 용호 중대의 아래층이다. 제7508부대 2대대와 자매결연 협약식을 맺었다. 바로 내가 꿈꾸던 군(軍) 관(官) 민(民)이 함께하는 도서관 역할이다. 우리 도서관은 운영위원 8명 자원봉사 사서 선생님들 30여 명이 모두 무보수로 요일마다 봉사한다. 밥 한 끼 차비한 푼을 받지 않아도 모두 자긍심을 갖고 오전 오후로 나눠 척척 잘 근무한다. 봉사선생님들이 계셔서 나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강의도 하고 홍보도 한다. 우리 봉사선생님들이 용호1동 중대에 병영체험을 갔다. 150여 명이 생활하는 군부대에 들어가 병사들이 만든 음식을 같이 먹고 병사들의 숙소와 훈련장비 등과 운동장을 보았다. 나의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러 어느 병사의 사물함에 세워진 귀한 책들을 봤다. (군부대 안이라 보안상의 이유로 병사들과의 과정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님과 우리 사서 선생님들과 군대 등나무 밑에서 간담회를 했다. 우리 도서관이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 도서관은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라 2만여 권의 장서가 문학 책이나 어린이 책들이 주로 많다. 나는 보람있는 군대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병사들이 관심을 두는 학술이나 기술과학 인문학 등의 책 목록을 제공하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희망도서 목록을 올려주면 예산은 부족하나 우선으로 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 문체부에 우수학술도서를 신청하여 신간코너에 비치했다.

그런데 그중 대대장님의 말씀이 책만 가지고 으스대는 나를 한 대 후려졌다. 맞다! 아프다. 죽비소리다. 한 자녀 두 자녀 아이들이 외롭게 성장하여 겪는 성장통과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들었다. 군대 와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폐증이 되며 자살을 하는 청년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사들에게는 무엇이 그들을 어둠 속으로 내모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애인을 입대시키던 내 경우를 생각하고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느냐?”라고 물었다. 땡! 틀렸다. 턱도 없는 오답이다. 요즘 병사들은 여자 때문에 탈영하거나 죽는 청년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 뭔가? 도대체?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너는 공부만 잘하면 돼” 엄마 아빠가 다 해줄게. 라며 너도나도 공부선수로 키웠다. 그 아이들은 형제·자매도 없다. 그 외로운 영혼들에 연예인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신청만 하면 친한 친구와 함께하는 ‘동반입대’도 있기는 하다. 사귀던 여학생이 떠나면 동기들과 피자 한판, 닭 한 마리 시켜먹고 인스탄트 세대답게 하룻밤 자고 나면 금세 잊는다고 한다. 철떡 같이 믿던 너는 공부만 하면 돼, 내가 알아서 다 해줄게. 라며 세뇌시켰던 엄마 아빠가 배신을 했을 때, 그들은 몸이 갈 곳이 없다. 그럼 지질이 못사는 집안만 갈라서는가.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하던 청년에게만 해당하는가. 친인척 방문도 모르며 대소가 행사도 모르며 오로지 엄마 아빠의 품 안에만 있던 아이들. 아닌 척, 스마트폰을 만지고 갖은 정보를 검색하며 키득대고 있지만, 그들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 둘 곳이 없다. 지독한 고독 속에 빠진다. 고된 훈련을 받다가 첫 휴가를 나갔는데…, 엄마 아빠는 각자 알아서 다른 집에서 살고 있을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세상에 대해, 사회에 대해, 가족에 대해 부모에 대해 분노와 좌절은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간다. 그들에게 누나와 같이 엄마와 같이 군 생활 동안 잘 견디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멘토링’이 되어달라는 말이다. 계급이 있는 군대에서는 상사가 형 역할 아버지 역할의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다.

어찌 내 아들만 아들인가. 국가의 아들이다. 바로 우리의 아들이다. 우리 사서봉사 선생님들은 그들의 누이이며 어미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장병이 도서관에 와서 서가에 달라붙어 책을 살펴보고 대출하고 보고 싶은 책을 신청도 한다. 150여 명의 부대원이 우리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지식을 축적한다. 내 눈에는 군복 입은 씩씩한 병사 한 명 한 명 청년들이 다 ‘아이돌’ 한류스타들이다. 작은 도서관이라 예산 부족으로 큰 혜택을 줄 수는 없으나 장병을 위해 최대한의 도서 서비스를 하려고 한다. 뭔가 우리의 몸과 마음 그동안 살아온 노하우의 삶이 누군가에게 일조할 수 있다는 흡족함에 마음이 뿌듯하다.

세상에 군인 만큼 건강하고 순수한 정신의 잰틀맨이 있을까. 그들에게 충성!

병영도서관은 우리 도서관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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