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이야기
샘터꿈의작은도서관
책으로 가꾼 숲속의 샘터 - 샘터꿈의도서관 이야기
‘샘터꿈의도서관’은 2001년 7월 7일 부산 남구 대연3동에 세워졌다. 삭막한 도시의 회색빛 그늘이 드리워진 동네 아이들에게 책으로 숲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한 훌륭한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동네 아이들이 좋은 책 속에서 꿈을 찾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스스로 배워서 열악한 현실에서도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싶었다. 도서관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의 날개를 펴고 훨훨 날 수 있는 자유로운 터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관 당시 도서관>
초등학교 가까운 곳에 알맞은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우리 집의 두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700여권의 그림책을 집에서 도서관으로 옮겨 놓는 일부터 그리 쉽지는 않았다. 아이에게는 책마다 나름의 추억과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던 여섯 살 된 큰아이에게 단지 집에 있던 책들을 큰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고, 혼자 보던 것을 여럿이 나누어 보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아이는 이해를 하면서도 선뜻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도서관에 들어오는 새 책을 제일 먼저 읽게 해 주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만 권의 책을 읽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좋아, 그런데 내가 가져가도 된다고 하면 그 때 가져가.”
나는 누구에게도 이만한 권위 있는 명령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도 책을 나누어 볼 준비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자기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맙고 또한 기뻤다.
<개관 당시 도서관 전면-필자의 두 자녀>
이렇게 시작된 샘터꿈의도서관은 ‘책 속의 놀이터’, ‘책의 숲’이 될 수 있도록 실내를 꾸몄다. 바닥은 갓난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뒹굴면서 책읽기를 할 수 있도록 온돌 마루로 만들었고, 서가는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꾸몄다. 그리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열람은 무료, 대출은 가입한 회원에게 가능하도록 했다. 2500여권으로 시작한 책이라는 나무는 어느새 15000여권의 아름다운 숲을 이루게 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가 12,000여권, 부모님을 위한 교육과 교양도서 3000여권, 각 종 간행물 등으로 이루진 숲에서는 오늘도 맑은 샘이 흘러넘친다.
<2007년 도서관 내부 모습>
샘터꿈의도서관은 초·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위치한 곳에 있다. 아이들이 자주 오가고 학부모도 자주 지나다니는 접근성이 참 좋은 곳이다. 도서관을 개관했을 때, 동네 어르신들 중에는 몫이 좋은 곳에 하필 돈도 안 되는 도서관을 만드냐고 훈계하는 분도 있었고 대다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자고 홍보물을 전해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학부모를 위한 독서교육 세미나를 열기도 하였다. 방학에는 어린이를 위한 독서캠프, 학기 중에는 독서학교를 열었다. 또한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점차 주민들이 마음을 열고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모여들었다. 이제는 도서관이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 모두 자기 일처럼 참여하고 도서관 행사를 발벗고 나서서 홍보를 하기도 한다. 작은도서관은 이렇게 함께 만들어가고 ‘더불어 삶’을 배우는 곳이다.
<책읽는 아이들>
<독서캠프-독서학습>
책의 숲을 함께 가꾸는 일꾼들이 늘어나면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게 되었다. 인근의 공원에서 가족들이 산책하며 참여할 수 있는 ‘책과 만나는 산책길’을 열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주말에는 공원에 나들이를 하는 가족들을 위해 ‘행복한 공원도서관’을 운영한다. 책과 점점 멀어져 가는 청소년들에게 책읽기와 함께 인문학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국내탐방 프로그램 뿐 아니라 매년 ‘유럽비전트립’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하기도 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자질과 안목을 키워 주고 사랑으로 세상을 품고 살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책과 만나는 산책길>
<행복한 공원도서관>
<2013 유럽비전트립>
어느덧 샘터꿈의도서관은 청소년기에 접어든 나이가 되었다. 이제 정체성을 가지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다. 그것은 ‘작은도서관 세우기 프로젝트’이다. 이는 국내와 해외에 작은도서관을 세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우리는 지난 여름방학에 책의 숲속에서 샘물을 먹고 자라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2013 희망아시아 Fair Trip-캄보디아 봉사활동 및 공정여행’을 진행했다. 8월 1일부터 9일까지 20명이 참여하여 제1호 해외 작은도서관을 세우게 되었다. 이 도서관은 캄보디아의 프놈펜공항 인근에 있는 마을유치원에 세워져서 현재 오전에는 유치원 어린이들이 사용하고 오후에는 마을 어린이들과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척박한 땅에 또 하나의 책의 숲이 가꾸어져 가게 되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준비에서부터 개관하기까지 도서관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더불어 삶’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는 책의 힘은 무엇이고 작은도서관도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 준 셈이다.
<캄보디아 생명샘 도서관 개관-봉사자>
<책꽂이 만들기>
<캄보디아 어린이 - 독서활동지도>
<도서관 내부 모습>
<유치원 도서관 수업>
<공정여행-앙코르와트>
얼마 전까지 ‘도서관이 없는 나라, 책 없는 도서관’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도서관도 있고 책도 많은데 책을 읽는 사람이 없는 도서관’이 되어가고 있다. 때로 아이들을 붙들고 학원에 가기 전에라도 도서관에 와서 책도 보고 쉬었다 가라고 손을 내밀지만 아이들은 미련 없이 뿌리치고 가버린다. 그리고 학원버스들이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줄줄이 아이들을 태워 사라질 때면 얄밉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서운하고 안타까울 때가 참 많다.
찾아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도 도서관은 발길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열어 두어야 한다. 가끔은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급히 화장실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 목이 마른 사람, 애써 아는 척을 하면서 구걸하는 사람의 쉼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자리가 바로 거기 있을 때, 그곳은 희망의 자리가 된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이 지금은 많이 찾아들지 않아도 그들이 꼭 필요할 때 책 속에서 쉴 수 있게 해 주고 싶은 꿈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작은도서관에 희망을 거는 이유가 있다. 책의 숲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눈에는 총기가 흐르고 그들의 몸짓에서 꿈과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 나라의 먼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보곤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아름답고 화려한 꿈의 날개를 접고 어둑어둑한 오락실과 PC방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저 아이들을 소음과 폭력의 현장으로 내몰아 붙인 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가정에서는 자녀교육의 한계를 느껴 교육기관에 맡기려하고, 학교는 빗나간 교육정책과 학원에 밀려 붕괴되어 가고 있다. 학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학생들을 잡아두기 위해 전략적인 예습과외에 열을 올린다. 사교육비는 하늘로 치솟고 학교는 아이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이 비극적인 순환과정이 언제쯤 끝이 날까?
나는 이런 꿈을 꾼다. 학교 안팎과 아이들이 지나는 길목에 그들을 볼모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사라지고 학교 안을 비롯해 동네 구석구석마다 아이들의 문화공간이면서 꿈을 키우는 작은도서관들이 세워지는 그 날을 말이다. 산을 허물고 강을 메우며 바다를 가로질러 자동차 길은 잘도 내주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뻗어나갈 길을 내주는 일에는 그리도 무심한지. 나는 오늘도 아이들이 책과 함께 뒹구는 도서관을 돌아보며 환상 속에 빠져들곤 한다.
‘너희는 도서관에서 자라는 행복한 아이들이란다. 위대하게 살다간 분들의 숲을 거닐거라.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위대한 꿈을 찾거라. 그리고 너희들만의 아름다운 희망의 세계를 만들어 가거라. ’
“작은도서관이 희망이다”
<최근 도서관 실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