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이야기
푸른마을도서관
책과 노니는 곳
책과 노니는 곳
이문희
투명한 유리문에 하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마을 도서관, 책과 노니는 곳, 전화번호가 깔끔해 보인다. 깔끔함을 밀고 들어선다. 순간 참 아담한 네모 상자 안에 인형처럼 아기자기한 책장들, 책들, 탁자들이 눈에 들어오고 왼편 봉사자들 안내 책상에서 컴퓨터를 켜고 있는 은미 씨의 웃는 얼굴이 반갑다. 책상에 잇대어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과 게시판, 그 위에 예쁜 시계가 걸려있다. 봉사자 책상 왼쪽으로 커피 잔, 커피를 넣어놓은 작은 찬장이 있다.
여섯 살 때 처음 내 책이 생겼다. 엄마 같은 큰 언니가 사다 준 6권짜리 그림책, 빨간 가방에 들어있던 그림책에 나는 폭 빠져버렸다. 아마 그때부터 이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나는 커서 꼭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 살 것이다. 다락방에는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고 나는 책 속에 파묻혀 산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곳, 바로 책과 노니는 곳, 그런 다락방을 꼭 가질 것이다.
여섯 살 때 꿈이 이루어진 것은 내가 그린빌 아파트에 이사 오고 나서 1년 반이 지나서이다. 우리집 거실에서 보이는 푸른마을 도서관 간판이 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금방 들어서기 어려웠고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서서도 어설프고 낯선 곳이었다. 두 살 된 아이 엄마에게는 금기의 공간이라 느꼈다. 나와 내 아이는 방해자이고 가서는 안 될 곳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면서 들어선 도서관은 참 이상한 곳이었다. 애들은 시끄럽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떠들어대고 보고 싶은 책은 거의 없고 엄마들도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수다 떨고 도대체가 책을 읽을 수 없는 곳, 무슨 도서관이 이래?
그랬었다. 무늬만 도서관이지 아이들 놀이방이고 엄마들 사랑방이었다. 거기에 책이 있는 북카페 정도? 그렇게 이상한 곳이 지금은 너무 좋다. 책과 놀 수 있는 곳, 벽면 천장까지 꽉 채운 책장에 어린이들 그림책이 낮은 곳에 세 칸 있고 위쪽 두 칸은 어른들 책과 청소년 책이 있다. 그 위로 두 칸이 비어있는데 있는데 아마 거기까지 책이 가득 찰 날이 곧 올 것 같다. 처음에는 갈색 책장이 천장까지 차 있어서 답답했었는데 책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자 참 아담한 책들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른쪽 벽면은 그렇게 책으로 차있고 이어진 벽면에는 세 군데 창문 아래로 키 낮은 책꽂이들이 있다. 그곳에 책들이 살고 있고 모퉁이를 둘러싼 키 낮은 책꽂이들은 아이들을 위한 아지트가 되거나 어른들 소모임방이도 한다.
소모임이 나를 신나게 놀게 했다. 글쓰기 모임, 영어 동화 읽기 모임, 역사 모임 등. 엄마들과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누고 막대인형극도 했다. 내가 꿈꾸던 삶이다. 또 다문화 가정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치고 음식도 나눈다. 매주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논다. 조물조물 클레이로 작은 장식품도 만들고 영어 동화도 듣고 전통놀이도 하고 마술도 하고,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여기서 나는 마법을 일으키는 주술을 배운다. 다음 달에는 무엇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까? 많이 와줄까? 또 어떤 영화로 아이들을 불러 모을까? 어른들과는 어떤 영화를 볼까? 재미있는 dvd가 있을까?
높아지는 하늘처럼 선선해진 바람처럼 상쾌한 꿈을 펼치는 마법사가 되어야지. 거기서 모두들 행복하게 책과 노닐어야지. 모두가 학교 성적 일류대에 목매는 시대에 아이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놀이 공간을 꿈꾸는 나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마법사가 되어 이상한 짓을 하고 노는데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