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네 공원에 카페 같은 도서관…삶의 품격이 달라졌다

매체명 : 중앙일보 보도일 :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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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joins.com/article/23646291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에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얘기를 썼다. ‘혁신 강박의 종말’이란 제목의 이 칼럼은 “1년 전 나는 한국 서울의 삼청공원 도서관에서 미래를 보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색스는 “숲이 우거진 공원에 있는 소박한 건물 안에서 사람들은 바깥의 나무를 내다보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 중 하나”라며 “(이 도서관은) 첨단 기술에 대한 해독제로 특별히 설계됐다”고 했다. 테크놀로지 시대에 진정한 혁신이란 새 발명품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얘기다. 혁신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이다. 주민들이 아침저녁 산책과 운동을 위해 오가는 둘레길 초입에 지난 10월 소박한 건물이 들어섰다. 배봉산 숲속도서관이다. 숲 길목에 몸을 최대한 낮추고 아담하게 들어선 도서관은 두 달이 안 돼 동네 주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지난달 26일 여기서 만난 주민 여운서(63)씨는 “이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이런 곳에 이렇게 멋진 공간이 생길 줄 몰랐다”며 “매일 운동을 마치고 들러서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신다. 지방으로 이사 간 친구에게 빨리 와서 보라고 자랑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안성숙(63)씨는 “여기 도서관이 생기면서 내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 도서관을 가리켜 “한마디로 감동”이라고 했다. 삼청동과 전농동 두 숲속도서관은 생활에 스며든 작은 규모의 공공건축이란 점에서 닮았다. 동네 공원에 도서관과 카페 기능을 하는 공간이 들어서며 주민 공동의 거실이자 사랑방, 그리고 서재가 됐다. 어린이와 노인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두 곳 다 건축가 이소진(52·아뜰리에 리옹 서울 대표)이 설계했다. 그는 소규모 공공건축 설계에 집중해온 건축가다. 2012년 개관한 윤동주 문학관 리모델링 설계로 ‘젊은건축가상(2012)’ ‘서울시 건축상 대상(2014)’을 받아 크게 주목받았다. 이외에도 서울 대청중 도서관(2010), 부산 신선초교 도서관(2011), 구 공원관리소를 주민들 공간으로 바꾼 서울 숭인공원 숭인재(2018) 등을 설계했다. 규모는 작아도 그의 건축은 사용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배봉산 숲속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또 숲속도서관을 설계했다.
“공원 안에 카페를 겸한 도서관이라는 컨셉트란 점에서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다. 윤동주 문학관 설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삼청공원 숲속도서관(2014) 설계를 맡았다. 앞서 두 작업은 종로구 프로젝트였는데, 배봉산 도서관은 동대문구에서 의뢰해오며 작업하게 됐다.”

도서관인데 아래층엔 공동 육아방도 있더라.
“총 200평이 안 되는 면적(537.5㎡·162.5평)이지만 관리사무소도 있고, 공동 육아방도 있다. 특히 공동 육아방은 원래 계획엔 없었는데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중에 추가돼 다시 설계했다. 궁극적으로 이게 생겨 훨씬 더 좋아졌다. 결국 이런 건물은 프로젝트 참여자 공동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기획한 공무원, 이를 지원해준 관공서장, 설계한 건축가, 공들여 시공한 사람들, 그리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함께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설계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은.
“정해진 환경 안에서 건물을 어떻게 자리 잡게 하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전에 주민들이 다니던 길의 흐름도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고 원래 자리에 있던 나무도 다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나무들 사이에 건물을 살짝 집어넣는다는 생각으로 설계했다.”
주변의 나무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그가 삼청공원 도서관, 숭인재 설계 때도 고집했던 원칙이었다. “새 건물이지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과 어우러지게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그는 “주변의 나무들이 결국 건물이 앉을 자리와 모양을 정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작은 공공 프로젝트를 많이 해온 이유는.
“작은 규모여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이런 좋은 공간이 공공의 경험치를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광경은 건축가인 내게도 큰 감동이다. 유모차를 밀고 온 엄마, 근처 작업장에서 일하던 어르신이 와서 책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며 내가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엔 품격 있는 소규모 공공건축물이 많지 않다. 왜일까.
“소규모 공공건축물은 가격 입찰로 건축가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적어 설계비가 적고 설계 기간도 짧아 평균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건축가가 공공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참여하지만 지속해서 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소진은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UPA7에서 건축사 과정을 거쳤다. 이후 파리에서 10년간 작업하다가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요즘 그는 어린이집, 정수장 리모델링 설계를 비롯해 도시농업 복합시설, 온실형 정원지원센터, 경북 영주시 새로운 녹지축 마스터플랜 작업 등 다양한 자연친화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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