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풍파 詩가 된 할매들의 삶 스크린에 담았죠”

3년 전 시집을 펴낸 곡성군 입면 서봉리 탑동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만난다. 이종은(47) 감독이 연출한 장편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를 통해서다. 오는 2월 중순 전국 개봉을 앞둔 이 감독과 15일 전화 인터뷰했다.

KBS1 ‘다큐 공감’ 등 방송 다큐를 주로 연출해 온 이 감독은 지난 2016년 곡성 할머니들의 신문 기사를 본 뒤 이를 영화로 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평균 나이 84세인 김막동·김점순·박점례·안기임·윤금순·양양금·최영자 할머니 7명은 김선자(48) 길작은도서관 관장의 지도로 한글을 깨친 후 삶의 연륜이 담긴 시를 써서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공동시집을 펴냈다.

시를 쓴 할머니들은 어떤 분이고 그 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던 이 감독은 이듬해 곡성으로 향했다. 이 감독이 이끄는 제작진은 탑동마을회관에서 숙식하며 할머니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에는 “늙은이 찍어서 뭐하냐”며 손사래쳤던 할머니들이 이내 아들뻘인 저를 포근히 감싸줬어요. “밥 먼저 먹고 찍으라”는 할머니들의 성화에 촬영이 지연되는 게 다반사일 정도였어요.”(웃음)

영화는 할머니들이 평소 살아가는 모습이 담백하게 그려진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도 못한 채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야 했던 이야기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굴곡진 할머니들의 삶을 그들의 육성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세상 풍파를 버텨낸 할머니들의 따스한 감성은 고스란히 시에 배어났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윤금순(82) 할머니의 시 ‘눈’

또 벽화로 치장한 탑동마을의 풍경과 곡성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드론 촬영하면서 영상미를 더했다.

지난해 열린 ‘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영화를 공개하며 할머니들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 감독은 다음 달 열리는 영화 시사회에서 할머니들을 다시 보길 고대하고 있다.

“처음 영화를 보여드렸을 때 할머니들이 즐거워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촬영할 때는 할머니들이 저를 어떻게 부를 지 몰라 호칭을 생략했는데 요즘에는 감독이라 부르시더라고요. 감독과 배우로 쌓은 호흡이 요즘 들어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