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작은도서관 봉사서 미싱 공방까지…임대·분양의 갈등 지운 ‘나눔’

매체명 : 한겨례 보도일 :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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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4320.html
작은도서관 봉사서 미싱 공방까지…임대·분양의 갈등 지운 ‘나눔’

6년 전 우리 가족은 서초구의 가장 뜨는 ‘로또’ 아파트로 불리는 강남 속 전원마을 서초네이처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생애 처음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될 거란 기대의 다른 이름은 ‘두려움’이었다. 아파트라는 현대의 주거 형태를 둘러싸고 있는 개인주의, 그로 인한 삭막함에 대하여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오늘, 이곳은 저에게 ‘함께 배우고 나누는 곳’ ‘더불어 오래 함께 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어떤 변화가 저와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걸까?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새 보금자리 이곳, 우면2동은 서초구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우면산의 건강한 기운을 받으며 벚꽃으로 물드는 봄으로 시작해 청량한 초록으로 짙어지고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가을 단풍길과 겨울이면 새하얀 눈으로 별밭 같은 양재천 안으로 포근히 들어앉은, 최고의 녹지율을 자랑하는 공기 좋고 자연 경관이 좋은 한적한 곳이다.

입주 후 몇 년 동안은 임대와 분양의 복합형 아파트 단지로서, 운영해나가는 일에 있어서 주민들의 입장 차이는 매우 심했다.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해 처음에는 주민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얼굴을 붉히는 일들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민센터 운영뿐 아니라 주차장, 조경, 쓰레기 처리 등 함께 쓰는 시설 관리 문제를 놓고 분양과 임대 입주민이 번번이 부닥쳤다. 주민 갈등에 치여 관리소장만 다섯 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다. 한 단지 안에 분양과 임대주택을 혼합 배치해 저소득층 차별을 없애고 사회적 통합을 꾀한다는 취지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물리적 거리만 좁혔을 뿐, 막상 살면서 생각과는 달리 관리·운영 문제로 몸살을 앓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준 것은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 마을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은 ‘작은도서관’과 운동 공간으로 이용되는 ‘마당’이었다. 작은도서관은 주민들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만 머문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도 만들고, 엄마들의 재능기부로 수학 교실, 역사 교실, 영어책 만들기, 청소년 재능기부를 통한 영어책 읽어주기, 엄마들이 동화책 읽어주기, 할머니의 구연 동화, 친환경 EM세제 만들어 쓰기, EM 흙공으로 양재천 살리기, 친환경 화장품 만들기,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요리 교실, 농구 교실, 온 가족 함께 여행하기, 막걸리 만들기, 인형극 공연, 노인정과 함께한 삼계탕 데이, 아빠들이 주축이 된 산타 잔치, 공동구매를 통한 ‘사랑의 감귤 나누기’ 행사로 보육원 기부, 농수산 직거래 장터, 미싱 동아리 활동, 보드게임 동아리, 그림책 동아리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한 협력과 소통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로가 만나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며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 지하 2층 공간을 운동 공간으로 활용한 마당 공동체에서는 줌바댄스와 요가를 하며 주민끼리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아직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많은 동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육아와 교육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인근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교육 활동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방과후 수업’이다. 방과후 수업들이 추첨 제도로 이루어지고, 지원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겨났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스페이스 이음’을 만들게 됐다. 우리 마을 공동체에서는 영어 방과후 수업을 개설하여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 이외에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부족한 부분들은 많았지만,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동네 친구 엄마인 선생님을 잘 따르며 공부를 하게 된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자라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 마을은 가정마다 형제자매들이 많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에게 다양한 과목의 학원 교육을 시키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멘토링’ 사업이었다.

봉사사이트 ‘1365’를 통하여 자원봉사하는 멘토들을 모집했는데 많은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지원을 했다. 멘티의 엄마들은 멘토링하는 시간에 도서관 지킴이 봉사를 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고 나눠주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

처음에는 몇 명으로 SH서초네이처힐 도서관에서 시작된 멘토링이었지만, 지금은 옆 동네 LH단지 도서관까지 확장될 정도로 반응이 매우 좋다. 멘토와 멘티를 연결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작은 갈등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곧 서로 조율하고 맞춰나가며 모두가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 엄마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미싱 동아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사회적기업을 꿈꾸는 함께 하는 공방으로 발전했다. 뜻을 같이하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친환경 면생리대를 만들고, 서초구청의 협조로 소각되는 폐현수막으로 ‘업사이클링’한 가방과 소품 등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생리대와 에코백을 우간다로 보내는 기부 행사를 지난 10월20일 강남·서초 교육청 주최 ‘별다방 축제’에서 열었다. 과연 아이들의 관심이나 있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뜻깊은 취지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여 이웃과 함께하는 봉사와 나눔의 기쁨을 느꼈다.

미싱동아리는 ‘하늘공방연구소’를 만들었다. 우리 공방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지금은 가정용 미싱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비하고 예비 사회적기업의 자격을 갖추어 신청도 하려고 한다. 경력단절 여성을 포함하여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소득 증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공방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사업을 꾸려가고 육아로 일을 그만둔 여성들이 마을 공동체 안에서 자신도 아이들도 모두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마을은 단순히 우리만 잘 사는 곳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나누고 세계와 환경에 관심 갖는 멋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런 삶이 우리 아이들과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나가기 바란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자고 나면 웃돈이 올라 있는 부의 상징이 아닌, 욕심을 버리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진짜 살기 좋고 가치 있는 곳으로 변화되고 있다.

정희경·조은진·조미라·김보미씨 등 SH서초네이처힐아파트 하늘공방연구소의 운영진들은 아파트의 작은도서관 추진위원으로 일하면서 방과후 학교 등 다양한 사업 경험을 쌓았다.

올 8월31일 모임 운영진 중 한 분이 운영하는 공장의 한 공간을 이용해 ‘미싱 동아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을지원 사업이 아니라 각자 30만원씩 내는 자생 모임이다. 현재 친환경 생리대와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 등을 우간다에 보낸다.

현장 심사위원들은 운영진과 현장 인터뷰를 하고,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진취적인 공동체 활동 중”이라며 “향후 활동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협력과 소통 부분 평가에서도 “자조 모임 구성원 간에 다양한 사업으로 끈끈한 관계가 형성돼 협력과 소통이 원활하고 다른 모임과 확장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진은 “사용 중인 재봉틀이 미싱 동아리 활동 때 개인이 산 가정용 재봉틀이어서 사용에 한계를 느낀다”며 “만약 당선된다면 상금으로 장비를 사고 싶다”고 했다.

/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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