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대담]“서점, 디지털 만나며 세계를 연결... 멸종이요? 변신할 뿐이죠”
매체명 : 한국일보
보도일 : 2018.12.04
“서점, 디지털 만나며 세계를 연결... 멸종이요? 변신할 뿐이죠”
종이 책과 함께, 서점도 사라질까. 숫자만 보면 심상치 않다. 문 닫는 서점은 언제나 문 여는 서점보다 많았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017년 12월 집계한 전국 서점은 2,050곳. 2007년엔 3,247곳이었으니, 10년간 1,200곳이 줄었다. 서점을 한다는 건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서점들은 지난해 평균 매일 12시간씩, 매주 6.5일 영업했다. 그러고도 어느 서점이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서점과 절절한 사랑에 빠진 사람 둘이 서점의 미래를 놓고 토론했다. 서울 서교동 땡스북스의 이기섭(49) 대표와 스페인 문화평론가이자 소설가 호르헤 카리온(42). 서점이 어렵다지만, 이 대표는 눈이 밝은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2011년 개업한 땡스북스는 가장 성공한 국내 독립서점이 됐고, 서울 신사동 파크, 자양동 인덱스 서점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카리온은 서점의 문화사를 다룬 베스트셀러 ‘서점들’(가제)의 저자다. 전 세계 서점을 다니며 쓴 책으로, 국내엔 내년 3월쯤 나온다.
“서점은 멸종하지 않아요. 다만 변신할 뿐이죠.” 인덱스 서점에서 마주 앉은 둘은 서점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고 단언했다. 단, 조건을 붙였다. “오리지널리티, 즉 신선함과 독창성이 있는 서점일 것.”
-서점이 호황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죠.
이기섭= “2014년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작은 서점들이 속속 생겼다가 최근 문을 많이 닫고 있긴 해요. 주목해야 할 건 몇 년 새 국내 서점 문화가 풍요로워졌다는 거예요. 문화의 수준은 한 번 수준이 높아지면 다시 떨어지지 않아요. 희망을 말해도 된다고 봐요. 지금은 책 문화가 재편되는 시기예요.”
카리온= “종말론을 좋아하는 게 인간의 성향이죠. 서점의 위기라는 건 상대적인 거예요. 요즘처럼 읽고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가 있었나요. 더 나빠지진 않을 거예요. ‘포스트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고 있거든요. 사물과 촉각이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이 다시 깨닫는 중이에요. 서점이 디지털을 만나 세계를 연결하고 있어요. ‘네트워크로서의 서점’이 미래의 트렌드가 될 겁니다.”
-서점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온라인 서점 아닐까요.
카리온= “‘아마존에 반대한다”는 책을 쓰고 있어요.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서점은 서점이 아니에요. 대형 마트죠. 책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아요. 책을 빨리 배송 받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기다림과 기대의 즐거움을 되새겼으면 해요. 인터넷 서점으로부터 독자의 권위를 되찾자고요.”
이기섭= “온라인 서점 때문에 힘든 건 맞아요. 하지만 그런 시대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안은 없어요. 우리 경쟁자는 대형 서점도, 인터넷 서점도 아니에요. 신경 써야 할 건 ‘시대의 변화’, 그 하나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서점에 직접 가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해요.”
-오래도록 사랑 받고 기억되는 서점은 뭐가 다른가요.
이기섭= “여러 가치들이 균형을 이루는 서점이죠. 서비스와 가격이 조화를 이루고, 고객과 서점 주인, 직원이 모두 만족하는 곳이요. 이익만 추구하는 서점은 오래 가지 못해요. 프랑스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엔 오너의 문화적 열정까지 더해졌죠. 국내엔 그런 서점이 아직 없네요. 교보문고는 설립 취지와 달리 상업공간이 돼버렸어요. 교보문고가 다시 현명해졌으면 좋겠네요.”
카리온= “한국에 와서 광화문 교보문고에 제일 먼저 가 봤어요. 혁신이라고 할 만한 건 없더군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코엑스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은 정말로 놀라웠어요. 미래 서점의 실험실 같았어요. 역사책방, 고요서사, 더북소사이어티 같은 독립서점들도 둘러 봤어요. 전부 개업한지 1, 2년째라면서요? 전 세계 서점들은 폐업 중인데… 한국은 삼성의 나라, 정보통신기술(IT)의 나라잖아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이기섭= “우리 관점과 이렇게 다르다니까요. 일본에서도 우리 서점들을 주목하고 있다고 해요. 잘 하는 것에 집중해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가면 미래가 분명히 있어요.”
-책 큐레이션이 서점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기섭= “중요하긴 하지만, 큐레이션만으로는 안 돼요. 큐레이션을 잘 해 놔도 고객이 서점에선 구경만 하고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살 수 있거든요. 책만 팔아서는 서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책을 고르고 사는 경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서점에서 꼭 책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게 지속가능성의 핵심이에요.”
카리온= “책이 쏟아져 나와요. 전문가의 책 추천은 점점 중요해질 거예요. 온라인이 아닌 진짜 서점에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서점 직원이 독서 선생님이나 가이드 역할도 해야 해요.”
-미래의 서점은 어떤 공간이 돼야 할까요.
이기섭= “한국 서점이 유럽처럼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한 역사는 짧아요. 그저 책을 사는 곳이었죠. 사회과학 서점 몇 곳이 사랑 받긴 했지만, 문화적이기보단 정치적 장소였고요. 그런 갈증이 요즘 다양한 서점 문화로 나타나고 있어요. 서점이 살아 남으려면 동네 문화사랑방이 돼야 해요.”
카리온= “과학기술의 과도한 발달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자리’를 잃었어요. 서점에 가는 건 인류가 인간임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경험이에요. 서점은 디지털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인류의 마지막 대피처가 될 거예요.”
/ 최문선 기자 김진주 인턴기자
종이 책과 함께, 서점도 사라질까. 숫자만 보면 심상치 않다. 문 닫는 서점은 언제나 문 여는 서점보다 많았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017년 12월 집계한 전국 서점은 2,050곳. 2007년엔 3,247곳이었으니, 10년간 1,200곳이 줄었다. 서점을 한다는 건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서점들은 지난해 평균 매일 12시간씩, 매주 6.5일 영업했다. 그러고도 어느 서점이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서점과 절절한 사랑에 빠진 사람 둘이 서점의 미래를 놓고 토론했다. 서울 서교동 땡스북스의 이기섭(49) 대표와 스페인 문화평론가이자 소설가 호르헤 카리온(42). 서점이 어렵다지만, 이 대표는 눈이 밝은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2011년 개업한 땡스북스는 가장 성공한 국내 독립서점이 됐고, 서울 신사동 파크, 자양동 인덱스 서점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카리온은 서점의 문화사를 다룬 베스트셀러 ‘서점들’(가제)의 저자다. 전 세계 서점을 다니며 쓴 책으로, 국내엔 내년 3월쯤 나온다.
“서점은 멸종하지 않아요. 다만 변신할 뿐이죠.” 인덱스 서점에서 마주 앉은 둘은 서점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고 단언했다. 단, 조건을 붙였다. “오리지널리티, 즉 신선함과 독창성이 있는 서점일 것.”
-서점이 호황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죠.
이기섭= “2014년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작은 서점들이 속속 생겼다가 최근 문을 많이 닫고 있긴 해요. 주목해야 할 건 몇 년 새 국내 서점 문화가 풍요로워졌다는 거예요. 문화의 수준은 한 번 수준이 높아지면 다시 떨어지지 않아요. 희망을 말해도 된다고 봐요. 지금은 책 문화가 재편되는 시기예요.”
카리온= “종말론을 좋아하는 게 인간의 성향이죠. 서점의 위기라는 건 상대적인 거예요. 요즘처럼 읽고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가 있었나요. 더 나빠지진 않을 거예요. ‘포스트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고 있거든요. 사물과 촉각이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이 다시 깨닫는 중이에요. 서점이 디지털을 만나 세계를 연결하고 있어요. ‘네트워크로서의 서점’이 미래의 트렌드가 될 겁니다.”
-서점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온라인 서점 아닐까요.
카리온= “‘아마존에 반대한다”는 책을 쓰고 있어요.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서점은 서점이 아니에요. 대형 마트죠. 책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아요. 책을 빨리 배송 받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기다림과 기대의 즐거움을 되새겼으면 해요. 인터넷 서점으로부터 독자의 권위를 되찾자고요.”
이기섭= “온라인 서점 때문에 힘든 건 맞아요. 하지만 그런 시대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안은 없어요. 우리 경쟁자는 대형 서점도, 인터넷 서점도 아니에요. 신경 써야 할 건 ‘시대의 변화’, 그 하나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서점에 직접 가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해요.”
-오래도록 사랑 받고 기억되는 서점은 뭐가 다른가요.
이기섭= “여러 가치들이 균형을 이루는 서점이죠. 서비스와 가격이 조화를 이루고, 고객과 서점 주인, 직원이 모두 만족하는 곳이요. 이익만 추구하는 서점은 오래 가지 못해요. 프랑스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엔 오너의 문화적 열정까지 더해졌죠. 국내엔 그런 서점이 아직 없네요. 교보문고는 설립 취지와 달리 상업공간이 돼버렸어요. 교보문고가 다시 현명해졌으면 좋겠네요.”
카리온= “한국에 와서 광화문 교보문고에 제일 먼저 가 봤어요. 혁신이라고 할 만한 건 없더군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코엑스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은 정말로 놀라웠어요. 미래 서점의 실험실 같았어요. 역사책방, 고요서사, 더북소사이어티 같은 독립서점들도 둘러 봤어요. 전부 개업한지 1, 2년째라면서요? 전 세계 서점들은 폐업 중인데… 한국은 삼성의 나라, 정보통신기술(IT)의 나라잖아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이기섭= “우리 관점과 이렇게 다르다니까요. 일본에서도 우리 서점들을 주목하고 있다고 해요. 잘 하는 것에 집중해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가면 미래가 분명히 있어요.”
-책 큐레이션이 서점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기섭= “중요하긴 하지만, 큐레이션만으로는 안 돼요. 큐레이션을 잘 해 놔도 고객이 서점에선 구경만 하고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살 수 있거든요. 책만 팔아서는 서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책을 고르고 사는 경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서점에서 꼭 책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게 지속가능성의 핵심이에요.”
카리온= “책이 쏟아져 나와요. 전문가의 책 추천은 점점 중요해질 거예요. 온라인이 아닌 진짜 서점에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서점 직원이 독서 선생님이나 가이드 역할도 해야 해요.”
-미래의 서점은 어떤 공간이 돼야 할까요.
이기섭= “한국 서점이 유럽처럼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한 역사는 짧아요. 그저 책을 사는 곳이었죠. 사회과학 서점 몇 곳이 사랑 받긴 했지만, 문화적이기보단 정치적 장소였고요. 그런 갈증이 요즘 다양한 서점 문화로 나타나고 있어요. 서점이 살아 남으려면 동네 문화사랑방이 돼야 해요.”
카리온= “과학기술의 과도한 발달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자리’를 잃었어요. 서점에 가는 건 인류가 인간임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경험이에요. 서점은 디지털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인류의 마지막 대피처가 될 거예요.”
/ 최문선 기자 김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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