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아기가 울어도 사과할 필요가 없는 도서관?

매체명 : 베이비뉴스 보도일 :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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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8831
[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아이와 함께하는 미국 도서관 탐방기①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들었다. 내가 얼마 전 이사한 이곳은 미국에서도 남부지역 쪽이기 때문에 아직도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기도 해서 가을의 느낌은 덜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건만 가을과는 거리가 먼 날씨 탓인지, 자타가 공인하는 게으름 때문인지, 보고 싶은 소설책 한 권 시 한 편 읽지 못하고 어영부영 일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버린다.

가을을 빼앗긴 느낌이 들어 혼자 넋놓다 보면 느는 것은 주름살뿐이니, 힘을 내서 아이와 바깥바람을 느껴보기로 한다. 나는 나대로 공부를 하고 작업을 할 수 있으면서 아이도 아이대로 덜 심심할 수 있는 곳으로! 학생 엄마는 꼼수를 부려 도서관으로 향한다.

아직 비정규직인 아빠, 그리고 아직도 학생인 엄마와 함께 사는 바람에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꽤 여러 번의 이사를 했다. 짧은 기간 본의 아니게 미국의 네 개의 다른 주에서 살아본 탓에 우리 가족은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지역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지역 도서관이다. 대부분의 미국 도서관은 국경일을 제외하고는 쉬는 경우가 거의 없고, 엄마 아빠도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아이도 심심하지 않으니 최적의 나들이 장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는 최적의 장소는 도서관이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장서의 수가 많지 않거나 규모가 작은 경우도 있지만 미국의 커뮤니티 도서관이 매력적인 이유는 도서관이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 기준에서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미국 커뮤니티 도서관은 방과후 숙제를 하거나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조용히 공부를 하거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므로 최소한의 규정만 준수하면 아이들은 열린 공간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도 좋고 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장난감이 같이 비치되어 있어서 책과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아도 좋다.

어린 동생이 따라와서 엉엉 울더라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아이 우는 소리에 아이를 달래면서 당황하던 한 아시안계 엄마가 곁에 있던 사서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자 “아기가 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괜찮아요.” 하면서 미소짓던 사람들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책상에 똑바른 자세로 앉아 침이 꼴깍 넘어가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한 상태로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 편안한 마음으로 놀이하듯이 책을 읽고, 읽던 책이 재미있다고 깔깔 웃는 경우도 있다.

◇ “아기가 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괜찮아요”

그렇다고 미국 도서관 어린이실이 통제불능으로 아주 시끄럽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노력은 기울인다. 다만, 경직된 분위기나 절대적인 정숙이 강요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의 도서관들도 아주 훌륭한 시스템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서울에 있었을 때 방문했던 한적한 느낌의 어린이 도서관은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시설과 편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도서관도 시설이 훌륭한 곳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시설이 좋지 않은 곳도 많다.

지금 사는 곳의 커뮤니티 도서관은 여러 분관이 있는데,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은 비교적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보유도서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하지만 집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다가 다른 지역 도서관들이 그렇듯, 다른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도 같은 행정구역 안의 아무 도서관에서나 쉽게 반납하고 미리 대출을 신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40여 권의 책들을 한꺼번에 빌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보고 싶은 만큼 여러 권의 책을 다양하게 대출해올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인구밀도가 낮고 충분한 예산이 있으며 대출관련 규칙을 준수하는 사용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린이 섹션으로 향한다. 두세 살 아가들을 데리고 매트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는 이곳 엄마들이 보인다. 아가들은 책보다는 매트에 매달린 실밥을 잡아당기는 데 더 관심 있어 보이지만 엄마들도 아가들고 즐거워만 보인다.

큰아이는 책을 한 권 뽑아들고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반대쪽 책장 앞에 앉아 있던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웃다가 춤을 추다가 소리를 빽 지른다. 아이 옆에 있던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며,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소리는 지르면 안 된다고 타이른다.

아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이따금씩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를 다독이고 아이와 그림책을 같이 고르고 아이가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고 웃고 책을 닫았다 다시 열고 하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본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 이곳 도서관에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앉아 있을 수 있는 게 편안하고 재미있다. 부디 나의 아이들도 그렇기를….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 칼럼니스트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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