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난 여기서 책 읽는다]②빌딩숲 일상에 지친 당신, 책의 바다 속으로 ‘잠수’ 어때요?
매체명 : 경향신문
보도일 : 2018.08.27
[난 여기서 책 읽는다]②빌딩숲 일상에 지친 당신, 책의 바다 속으로 ‘잠수’ 어때요?
ㆍ속초로의 ‘책 여행’
ㆍ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이들 손길에 항구·회센터·닭강정의 도시에서 ‘책 도시’로 거듭나
ㆍ1층엔 북카페, 2층엔 게스트하우스를 꾸며놓은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에선 힐링의 기운 물씬…
ㆍ60여년 된 동아서점과 리모델링으로 스터디룸까지 갖춘 문우당은 지역 문화갈증 해소 역할 톡톡
속초에 왔다는 걸 ‘코’가 먼저 알았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은 근처 항구인 동명항, 속초항 등과 걸어서 약 15분 거리다. 위아래로는 석호인 영랑호와 청초호가 있다. 후끈한 여름 공기 속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섞여 들어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와 바다다!”를 외치며 달려갈지 모르지만, 이번 여정엔 차분함이 필요하다. ‘책 여행’이기 때문이다.
■ 요즘 ‘책 좀 읽는다’는 이들이 찾는 그곳
최근 속초는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인기 여행지로 떠올랐다. ‘해수욕장’ ‘항구’ ‘회센터’ ‘닭강정’의 도시였던 곳이 책의 도시로 거듭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젊은이들이 돌아왔다. 서울에서 학교나 직장을 다니던 이들이 다시 고향을 찾았다. 이들은 속초 곳곳에 터를 잡았다. 서울 연남동, 익선동 골목길 못지않은 감각적인 공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서도 서점의 변신이 두드러졌다. 오랜 시간 속초 동네를 지키던 서점들이 대규모 리모델링을 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개념인 서점과 숙박시설을 겸한 ‘북스테이’도 생겼다. 자동차 소음도 높은 빌딩도 없는 작은 도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5일 속초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을 찾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1층엔 북카페, 2층엔 게스트하우스 시설을 꾸며놨다. 아담한 흰색 건물 옆에 작은 나무 하나가 여름 햇빛을 받고 서 있다. 2층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었다. 작은 방엔 침대뿐 단출했다. 공용 식탁엔 책들이 놓여 있었다. 잔잔한 음악 소리가 흐르는 1층 카페엔 손님 몇몇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최윤복 완벽한 날들 대표(35)는 “여행자 중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와 카페에서 책만 읽고 돌아가는 분도 있다. 책 읽으며 쉬러 오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북스테이엔 30~40대 여성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는 속초엔 예쁜 게 별로 없다고 했지만, 최근엔 바다가 아니라도 주목받는 곳이 많다. 예쁜 카페나 ‘동아서점’ ‘문우당서림(문우당)’ 등 지역 서점은 멀리 떨어진 도시 사람들에게도 인기다.
카페에서 책을 둘러보는 김은영씨(32) 일행에겐 동아서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김씨는 동아서점을 소개한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읽고 책모임 사람들과 서울에서 속초로 당일치기 여행을 왔다. 그는 “동아서점, 문우당을 들렀다가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완벽한 날들에 들렀다”며 “내가 알던 속초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역사 지닌 ‘핫한’ 책방들
동아서점은 1956년 책방 겸 문구점 ‘동아문구사’로 시작했다. 60년 넘게 속초를 지켰지만,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독서 인구 감소로 책방은 한때 문 닫을 위기에까지 처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서점을 폐업할 수 없었던 대표 김일수씨(67)는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서점을 일궜다. 꼿꼿한 표정에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아버지와 젊은 아들은 작은 일에도 부딪쳤지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가며 서점을 속초의 명물로 일으켜 세웠다. 이 모든 상황이 아들 김영건씨(32)가 쓴 <당신에게 말을 건다>에 담겼다.
북스테이에서 동아서점은 택시 기본요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여느 지역 서점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지만,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이 많았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면 1~2시간은 훌쩍 지나버릴 것 같다. 김씨는 이날도 앞치마를 두르고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책을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책을 사러 오신다기보단 ‘핫플레이스’라는 느낌으로 들러주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어찌 됐든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독서율이 줄고 책을 구매하는 방법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이 힘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역 소도시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외로울 수 있지만, 동반자는 있다. 동아서점과 1분 거리에 있는 문우당이다. 동아서점에서 나와 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몇 걸음 걷자 문우당이 보였다. 건물 외벽에 쓰여 있는 ‘책과 사람의 공간’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페를 연상케 할 만큼 쾌적하다. 2층까지 이어진 서점엔 스터디룸도 있다. 서가 사이가 꽤 넓어 어린이책 코너에선 아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책을 구경하기 좋다. 여행자인 듯한 젊은 여성 두 명은 1층과 2층 사이의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동해시에 사는 조호진(12)·효성(7)군은 엄마의 모임을 따라 속초에 왔다가 서점에 들렀다. “이것도 책? 이것도 책이네?” 아트북이 놓인 코너에서 효성군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공책처럼 얇은 책들이 정말 책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호진군은 ‘양자의 세계’에 관한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호진군은 “동해엔 큰 서점이 별로 없는데 여기 오니까 넓어서 좋다”고 말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건 이해인 문우당 총괄디렉터(25) 덕분이다. 디자인을 공부한 이씨 역시 서점을 운영하는 부모의 요청에 속초로 내려왔다. 문우당은 지난해부터 외관에서 내부까지 이씨가 설계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했다. 이씨는 “속초엔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서점을 만들고 싶었다”며 “스터디룸을 무료로 만든 것도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자들의 취향을 고려해 크기가 작은 독립출판물 코너를 새로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최근 서점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문우당엔 이씨와 부모 외에도 서너 명의 직원이 더 근무한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이 넘게 근무한 이들의 직함은 ‘부장’ ‘과장’ ‘대리’다. 이씨는 “가족 같은 사이라 사실 ‘삼촌’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하지만 서점과 함께하는 분들이고 손님들도 존중해서 불러주길 원하기 때문에 직함으로 우리도 부른다”고 말했다.
■ 책 여행에서 찾은 삶의 리듬
서점에서 나와 5~10분만 걸으면 청초호가 보인다. 가는 길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카페 두 곳도 만날 수 있다. 청초호 앞, 조선소를 개조해 차린 카페 ‘칠성조선소’는 그중 하나다. 최윤성 카페 칠성조선소 대표(36)는 “책방 봉투를 든 손님들이 많이 눈에 띈다”며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서점이 인기를 얻으면서 속초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속초는 비교적 일찍 문을 닫는 곳이 많으니 영업시간을 알아두었다가 들러보는 것이 좋다.
어느덧 밤이 됐다.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렸지만, 바닷가 도시엔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었다. 속초는 걷기에도 좋은 도시다. 시외버스터미널과 북스테이가 위치한 속초 구도심 ‘동명동’은 최윤복 대표가 특히 걷기를 추천한 곳이다. “골목마다 예전 집들이나 어르신들이 평상에 모여 있는 가게 등이 보여”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서점에서 구매한 책과 엽서 등을 들고 북스테이로 향했다. 도보로 30여분이 걸리는 거리다. 걷는 길목마다 골목이 하나둘씩 보이고 의자를 내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소음이 크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곤조곤 귓가에 울렸다. 서울과는 다른 속초의 리듬이다. 오후 9시가 넘은 시간, 북스테이는 조용했다. 1층 카페에선 마감을 준비 중이고 2층 게스트하우스엔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여행자들은 처음 본 이들과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책을 읽기도 했다. 하얀 벽지에 가구가 거의 없는 방은 집중하기 좋아 이곳에선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쁘게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쉼’으로 여행의 트렌드가 이동하며, 책과 함께하는 북스테이에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속초 외에도 괴산, 양평, 강화, 제주 등 전국 각지에 북스테이를 표방하는 곳은 많다. 한옥형, 도서관형 등 각각의 특색이 살아 있어 취향에 맞게 고르면 좋다.
/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ㆍ속초로의 ‘책 여행’
ㆍ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이들 손길에 항구·회센터·닭강정의 도시에서 ‘책 도시’로 거듭나
ㆍ1층엔 북카페, 2층엔 게스트하우스를 꾸며놓은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에선 힐링의 기운 물씬…
ㆍ60여년 된 동아서점과 리모델링으로 스터디룸까지 갖춘 문우당은 지역 문화갈증 해소 역할 톡톡
속초에 왔다는 걸 ‘코’가 먼저 알았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은 근처 항구인 동명항, 속초항 등과 걸어서 약 15분 거리다. 위아래로는 석호인 영랑호와 청초호가 있다. 후끈한 여름 공기 속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섞여 들어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와 바다다!”를 외치며 달려갈지 모르지만, 이번 여정엔 차분함이 필요하다. ‘책 여행’이기 때문이다.
■ 요즘 ‘책 좀 읽는다’는 이들이 찾는 그곳
최근 속초는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인기 여행지로 떠올랐다. ‘해수욕장’ ‘항구’ ‘회센터’ ‘닭강정’의 도시였던 곳이 책의 도시로 거듭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젊은이들이 돌아왔다. 서울에서 학교나 직장을 다니던 이들이 다시 고향을 찾았다. 이들은 속초 곳곳에 터를 잡았다. 서울 연남동, 익선동 골목길 못지않은 감각적인 공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서도 서점의 변신이 두드러졌다. 오랜 시간 속초 동네를 지키던 서점들이 대규모 리모델링을 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개념인 서점과 숙박시설을 겸한 ‘북스테이’도 생겼다. 자동차 소음도 높은 빌딩도 없는 작은 도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5일 속초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을 찾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1층엔 북카페, 2층엔 게스트하우스 시설을 꾸며놨다. 아담한 흰색 건물 옆에 작은 나무 하나가 여름 햇빛을 받고 서 있다. 2층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었다. 작은 방엔 침대뿐 단출했다. 공용 식탁엔 책들이 놓여 있었다. 잔잔한 음악 소리가 흐르는 1층 카페엔 손님 몇몇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최윤복 완벽한 날들 대표(35)는 “여행자 중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와 카페에서 책만 읽고 돌아가는 분도 있다. 책 읽으며 쉬러 오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북스테이엔 30~40대 여성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는 속초엔 예쁜 게 별로 없다고 했지만, 최근엔 바다가 아니라도 주목받는 곳이 많다. 예쁜 카페나 ‘동아서점’ ‘문우당서림(문우당)’ 등 지역 서점은 멀리 떨어진 도시 사람들에게도 인기다.
카페에서 책을 둘러보는 김은영씨(32) 일행에겐 동아서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김씨는 동아서점을 소개한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읽고 책모임 사람들과 서울에서 속초로 당일치기 여행을 왔다. 그는 “동아서점, 문우당을 들렀다가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완벽한 날들에 들렀다”며 “내가 알던 속초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역사 지닌 ‘핫한’ 책방들
동아서점은 1956년 책방 겸 문구점 ‘동아문구사’로 시작했다. 60년 넘게 속초를 지켰지만,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독서 인구 감소로 책방은 한때 문 닫을 위기에까지 처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서점을 폐업할 수 없었던 대표 김일수씨(67)는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서점을 일궜다. 꼿꼿한 표정에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아버지와 젊은 아들은 작은 일에도 부딪쳤지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가며 서점을 속초의 명물로 일으켜 세웠다. 이 모든 상황이 아들 김영건씨(32)가 쓴 <당신에게 말을 건다>에 담겼다.
북스테이에서 동아서점은 택시 기본요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여느 지역 서점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지만,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이 많았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면 1~2시간은 훌쩍 지나버릴 것 같다. 김씨는 이날도 앞치마를 두르고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책을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책을 사러 오신다기보단 ‘핫플레이스’라는 느낌으로 들러주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어찌 됐든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독서율이 줄고 책을 구매하는 방법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이 힘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역 소도시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외로울 수 있지만, 동반자는 있다. 동아서점과 1분 거리에 있는 문우당이다. 동아서점에서 나와 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몇 걸음 걷자 문우당이 보였다. 건물 외벽에 쓰여 있는 ‘책과 사람의 공간’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페를 연상케 할 만큼 쾌적하다. 2층까지 이어진 서점엔 스터디룸도 있다. 서가 사이가 꽤 넓어 어린이책 코너에선 아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책을 구경하기 좋다. 여행자인 듯한 젊은 여성 두 명은 1층과 2층 사이의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동해시에 사는 조호진(12)·효성(7)군은 엄마의 모임을 따라 속초에 왔다가 서점에 들렀다. “이것도 책? 이것도 책이네?” 아트북이 놓인 코너에서 효성군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공책처럼 얇은 책들이 정말 책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호진군은 ‘양자의 세계’에 관한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호진군은 “동해엔 큰 서점이 별로 없는데 여기 오니까 넓어서 좋다”고 말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건 이해인 문우당 총괄디렉터(25) 덕분이다. 디자인을 공부한 이씨 역시 서점을 운영하는 부모의 요청에 속초로 내려왔다. 문우당은 지난해부터 외관에서 내부까지 이씨가 설계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했다. 이씨는 “속초엔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서점을 만들고 싶었다”며 “스터디룸을 무료로 만든 것도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자들의 취향을 고려해 크기가 작은 독립출판물 코너를 새로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최근 서점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문우당엔 이씨와 부모 외에도 서너 명의 직원이 더 근무한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이 넘게 근무한 이들의 직함은 ‘부장’ ‘과장’ ‘대리’다. 이씨는 “가족 같은 사이라 사실 ‘삼촌’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하지만 서점과 함께하는 분들이고 손님들도 존중해서 불러주길 원하기 때문에 직함으로 우리도 부른다”고 말했다.
■ 책 여행에서 찾은 삶의 리듬
서점에서 나와 5~10분만 걸으면 청초호가 보인다. 가는 길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카페 두 곳도 만날 수 있다. 청초호 앞, 조선소를 개조해 차린 카페 ‘칠성조선소’는 그중 하나다. 최윤성 카페 칠성조선소 대표(36)는 “책방 봉투를 든 손님들이 많이 눈에 띈다”며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서점이 인기를 얻으면서 속초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속초는 비교적 일찍 문을 닫는 곳이 많으니 영업시간을 알아두었다가 들러보는 것이 좋다.
어느덧 밤이 됐다.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렸지만, 바닷가 도시엔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었다. 속초는 걷기에도 좋은 도시다. 시외버스터미널과 북스테이가 위치한 속초 구도심 ‘동명동’은 최윤복 대표가 특히 걷기를 추천한 곳이다. “골목마다 예전 집들이나 어르신들이 평상에 모여 있는 가게 등이 보여”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서점에서 구매한 책과 엽서 등을 들고 북스테이로 향했다. 도보로 30여분이 걸리는 거리다. 걷는 길목마다 골목이 하나둘씩 보이고 의자를 내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소음이 크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곤조곤 귓가에 울렸다. 서울과는 다른 속초의 리듬이다. 오후 9시가 넘은 시간, 북스테이는 조용했다. 1층 카페에선 마감을 준비 중이고 2층 게스트하우스엔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여행자들은 처음 본 이들과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책을 읽기도 했다. 하얀 벽지에 가구가 거의 없는 방은 집중하기 좋아 이곳에선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쁘게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쉼’으로 여행의 트렌드가 이동하며, 책과 함께하는 북스테이에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속초 외에도 괴산, 양평, 강화, 제주 등 전국 각지에 북스테이를 표방하는 곳은 많다. 한옥형, 도서관형 등 각각의 특색이 살아 있어 취향에 맞게 고르면 좋다.
/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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