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서울]“아이들이 가진 '결핍'을 지역사회에서 채워주는 게 돌봄”
매체명 : 내일신문
보도일 : 2018.06.29
“아이들이 가진 '결핍'을 지역사회에서 채워주는 게 돌봄”
새로운 돌봄 모델 만들어가는 뒤죽박죽 작은도서관 - 아지트 틴스
지난 8일. 마당 구석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뒷꼭지만 보였다. 햇빛이 쨍한 날이라 더울 텐데도 흙 위로 손 내민 초록 이파리를 보랴, 만지랴, 수다 떨랴 정신이 없다. 이곳은 서울시 성북구 뒤죽박죽 작은도서관. 방과후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틈새돌봄기관이기도 하다. 성북구는 동네마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안전한 마을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도서관을 틈새돌봄기관으로 지정하고 간식비를 지원한다.
“세월호 참사가 계기였어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우린 뭘 해야 하지? 우린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지?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어딘가에선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도 아니고 PC방도 아닌, 아이들이 질문하며 자기 걸 찾아나갈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했죠.”(심희경 이사장.사회적 협동조합 청소년의 숲)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공간이 정릉1동 181-19번지에 위치한 아담한 2층집이다. 1층에선 도서관과 더불어 만화방과 자그마한 마을카페를 운영하고 2층에는 청소년 전용 아지트 틴스 청소년자치학교를 열었다. 2015년 6월 정식 오픈하기 전부터 동네 아이들이 호기심에 한둘씩 찾아오더니 어느새 1층은 초등생들의 아지트가, 2층은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됐다. 하루에 드나드는 아이들만 초중고생 모두 합해 50명이 훌쩍 넘는다.
심 이사장과 함께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서정화 뒤죽박죽 작은도서관장은 틈새돌봄 아동을 포함해 주로 초등학생들을 챙긴다.
“틈새돌봄 하기 전에도 아이들이 여긴 뭔가 싶어서 들러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물 먹으러도 오고, 화장실도 가고, 가끔은 간식도 얻어 먹고. 집도 학교도 아니고 엄마나 학교선생님도 아니지만 언제 가더라도 누군가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구나 느꼈어요. 안정이 된달까. 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공간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 놀다 보면 평소에 관심이 없던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확장’을 경험하기도 해요. 스마트폰 속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을 만나는 거죠.”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가기 위한 활동도 많이 한다. 작가와의 만남, 미술체험, 놀이터프로그램 등등. 이날은 텃밭프로그램이 있었다. 텃밭 선생님이 캐온 줄줄이 감자를 보더니 아이들이 ‘우와’ 소리를 지른다.
구청에서 틈새돌봄기관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수락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더라도 ‘공적’으로 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마이쭈 카라멜 하나를 받더라도 친절한 누군가가 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나라에서 준다는 걸 알면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잖아요. 그 과정에서 친구도 사귀고 자연도 접하고 함께 하는 법도 배우고 경험하고.이런 게 쌓이면 그게 바로 시민의식이죠. 아이들에게 정성을 들인 만큼 아이들이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 그림책 출판업을 해온 서정화 관장과 청소년 상담에 투신해온 심희경 이사장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아이들에게 양질의 배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들을 모셔오는데 틈새돌봄사업 말고는 지원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관의 테두리에 들어가는 순간 생겨날 많은 제약, 특히 모든 아이들이 아니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돌봄이 한정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의 결핍이 있어요. 독립성이랄지, 자유랄지. 아이들의 개성을 말살시키다시피 하는 교육 때문에, 또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사회가 다 채워주지 못해서 생기는 결핍이죠. 아동들에 대한 보편적 복지는 이런 결핍을 어떻게 사회에서 공공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보편적 복지 이야기하면 있는 애들에게 왜 퍼주냐 하죠. 그런데 있는 집 아이라고 결핍이 없나요? 심하면 더 심했지 완전하지 않거든요.”
오후 5시 이후는 청소년들의 시간이다. 2층은 청소년자치학교이자 부엌공동체의 공간이다. 학교 끝나고 온 중고등학생들이 그날 저녁메뉴를 결정해 장을 봐와 요리를 해 함께 먹고 같이 치운다. 7시반부터는 2시간 동안 동아리(디자인.사회적경제.IOT) 관련 프로그램을 한다. 어떤 활동을 꾸려나갈지부터 동아리별 계획까지 모두 자치회의에서 토론해 결정한다. 수동적인 학생의 위치만 강요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심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돌봄이 만 12세 이하 초등생에게만 한정돼서 논의되고 있는데 청소년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생 때와는 다른 의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찾아가는 시기인만큼 오히려 초등생 때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흔히 중학교 때부터는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 말고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곤 한다.
“발달심리학에서 보면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덕목이 충성심이라고 해요. 요새 애들 말로 뭔가에 ‘뻑’ 가봐야 한다는 거예요.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 푹 빠져서 온마음을 바쳐 추종하고 따라해 보고. 그런 경험을 해 봐야 자기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어요. 맨날 진로검사 심리검사 해봐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청소년기는 그만 놀아야 되고, 철 좀 들어야 하고, 하고 싶은 거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니 완전 거꾸로죠.”
부모들도 예전처럼 대학만 보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믿지 못한다.
“자치학교 하면서 아이들이 자기 능력을 발견하는 걸 보면 좋아하시면서도 그래도 공부는 어느 정도는 해야지 생각하시는 거죠. 사회에 다양한 길이 있고 그걸 뒷받침하는 교육시스템이 있다면 부모님들이 그러시지 않을 텐데 양다리를 걸치고 계신 거예요. 부모님들이 자신도 아이도 사회도 믿지 못하니까 기존에 알려진 길로만 가려고 하는 거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소년기의 자기발견을 도울 수 있는 청소년 돌봄을 여러 갈래로 주장해 왔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청소년 돌봄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의집, 대안학교 등 기존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 한 공적 지원을 받을 길이 없다.
“저희는 부엌공동체 자치라는 모델로 청소년 돌봄을 해보겠다고 하는 거고 다양한 모델이 나올 수 있거든요. 여행을 매개로 청소년 돌봄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얘기하면 다들 좋다고 하면서도 지원은 어렵다고 해요. 제대로 평가지표 만들어서 다양한 청소년 돌봄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책임지기 싫은 거죠. 청소년 정책을 입안하시는 분들이 청소년에게도 초등과 다른 돌봄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꼭 해주셨으면 합니다.”
/ 김형선 김규철 기자 egoh@naeil.com
새로운 돌봄 모델 만들어가는 뒤죽박죽 작은도서관 - 아지트 틴스
지난 8일. 마당 구석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뒷꼭지만 보였다. 햇빛이 쨍한 날이라 더울 텐데도 흙 위로 손 내민 초록 이파리를 보랴, 만지랴, 수다 떨랴 정신이 없다. 이곳은 서울시 성북구 뒤죽박죽 작은도서관. 방과후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틈새돌봄기관이기도 하다. 성북구는 동네마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안전한 마을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도서관을 틈새돌봄기관으로 지정하고 간식비를 지원한다.
“세월호 참사가 계기였어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우린 뭘 해야 하지? 우린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지?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어딘가에선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도 아니고 PC방도 아닌, 아이들이 질문하며 자기 걸 찾아나갈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했죠.”(심희경 이사장.사회적 협동조합 청소년의 숲)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공간이 정릉1동 181-19번지에 위치한 아담한 2층집이다. 1층에선 도서관과 더불어 만화방과 자그마한 마을카페를 운영하고 2층에는 청소년 전용 아지트 틴스 청소년자치학교를 열었다. 2015년 6월 정식 오픈하기 전부터 동네 아이들이 호기심에 한둘씩 찾아오더니 어느새 1층은 초등생들의 아지트가, 2층은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됐다. 하루에 드나드는 아이들만 초중고생 모두 합해 50명이 훌쩍 넘는다.
심 이사장과 함께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서정화 뒤죽박죽 작은도서관장은 틈새돌봄 아동을 포함해 주로 초등학생들을 챙긴다.
“틈새돌봄 하기 전에도 아이들이 여긴 뭔가 싶어서 들러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물 먹으러도 오고, 화장실도 가고, 가끔은 간식도 얻어 먹고. 집도 학교도 아니고 엄마나 학교선생님도 아니지만 언제 가더라도 누군가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구나 느꼈어요. 안정이 된달까. 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공간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 놀다 보면 평소에 관심이 없던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확장’을 경험하기도 해요. 스마트폰 속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을 만나는 거죠.”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가기 위한 활동도 많이 한다. 작가와의 만남, 미술체험, 놀이터프로그램 등등. 이날은 텃밭프로그램이 있었다. 텃밭 선생님이 캐온 줄줄이 감자를 보더니 아이들이 ‘우와’ 소리를 지른다.
구청에서 틈새돌봄기관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수락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더라도 ‘공적’으로 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마이쭈 카라멜 하나를 받더라도 친절한 누군가가 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나라에서 준다는 걸 알면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잖아요. 그 과정에서 친구도 사귀고 자연도 접하고 함께 하는 법도 배우고 경험하고.이런 게 쌓이면 그게 바로 시민의식이죠. 아이들에게 정성을 들인 만큼 아이들이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 그림책 출판업을 해온 서정화 관장과 청소년 상담에 투신해온 심희경 이사장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아이들에게 양질의 배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들을 모셔오는데 틈새돌봄사업 말고는 지원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관의 테두리에 들어가는 순간 생겨날 많은 제약, 특히 모든 아이들이 아니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돌봄이 한정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의 결핍이 있어요. 독립성이랄지, 자유랄지. 아이들의 개성을 말살시키다시피 하는 교육 때문에, 또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사회가 다 채워주지 못해서 생기는 결핍이죠. 아동들에 대한 보편적 복지는 이런 결핍을 어떻게 사회에서 공공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보편적 복지 이야기하면 있는 애들에게 왜 퍼주냐 하죠. 그런데 있는 집 아이라고 결핍이 없나요? 심하면 더 심했지 완전하지 않거든요.”
오후 5시 이후는 청소년들의 시간이다. 2층은 청소년자치학교이자 부엌공동체의 공간이다. 학교 끝나고 온 중고등학생들이 그날 저녁메뉴를 결정해 장을 봐와 요리를 해 함께 먹고 같이 치운다. 7시반부터는 2시간 동안 동아리(디자인.사회적경제.IOT) 관련 프로그램을 한다. 어떤 활동을 꾸려나갈지부터 동아리별 계획까지 모두 자치회의에서 토론해 결정한다. 수동적인 학생의 위치만 강요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심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돌봄이 만 12세 이하 초등생에게만 한정돼서 논의되고 있는데 청소년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생 때와는 다른 의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찾아가는 시기인만큼 오히려 초등생 때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흔히 중학교 때부터는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 말고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곤 한다.
“발달심리학에서 보면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덕목이 충성심이라고 해요. 요새 애들 말로 뭔가에 ‘뻑’ 가봐야 한다는 거예요.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 푹 빠져서 온마음을 바쳐 추종하고 따라해 보고. 그런 경험을 해 봐야 자기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어요. 맨날 진로검사 심리검사 해봐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청소년기는 그만 놀아야 되고, 철 좀 들어야 하고, 하고 싶은 거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니 완전 거꾸로죠.”
부모들도 예전처럼 대학만 보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믿지 못한다.
“자치학교 하면서 아이들이 자기 능력을 발견하는 걸 보면 좋아하시면서도 그래도 공부는 어느 정도는 해야지 생각하시는 거죠. 사회에 다양한 길이 있고 그걸 뒷받침하는 교육시스템이 있다면 부모님들이 그러시지 않을 텐데 양다리를 걸치고 계신 거예요. 부모님들이 자신도 아이도 사회도 믿지 못하니까 기존에 알려진 길로만 가려고 하는 거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소년기의 자기발견을 도울 수 있는 청소년 돌봄을 여러 갈래로 주장해 왔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청소년 돌봄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의집, 대안학교 등 기존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 한 공적 지원을 받을 길이 없다.
“저희는 부엌공동체 자치라는 모델로 청소년 돌봄을 해보겠다고 하는 거고 다양한 모델이 나올 수 있거든요. 여행을 매개로 청소년 돌봄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얘기하면 다들 좋다고 하면서도 지원은 어렵다고 해요. 제대로 평가지표 만들어서 다양한 청소년 돌봄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책임지기 싫은 거죠. 청소년 정책을 입안하시는 분들이 청소년에게도 초등과 다른 돌봄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꼭 해주셨으면 합니다.”
/ 김형선 김규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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