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광주]혁신은 디테일에 있다
매체명 : 광주일보
보도일 : 2018.06.27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혁신은 디테일에 있다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 역에서 제이알(JR)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아담한 간이역이 나온다. 온천과 3000년 수령의 녹나무로 유명한 사가현의 다케오(武雄)다. 첫인상은 너무 한적하다는 것이었다. 인구 5만여 명의 소도시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였다. 다케오 시립도서관 취재가 아니었다면 평생 찾아올 일이 없을 듯한 작은 도시였다.
다케오 온센역에서 내려 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지도를 펼쳐 든 관광객들이 보였지만 주민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고 10분쯤 걸었을까. 대형 쇼핑몰 건너편에 세련된 분위기의 2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다케오 도서관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한 표지판이 먼저 반긴다.
브랜드가 된 다케오 도서관
1층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모던한 실내 분위기와 함께 자연 광선을 끌어 들이기 위한 대형 유리 천장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도서관의 장서 20만 권이 빽빽하게 꽂힌 벽면과 서가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스펙터클하다. 이곳에선 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고, 1층 매대에 진열된 신간과 잡지를 구입할 수 있다. 굳이 책을 사지 않을 땐 카페에 앉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겨도 된다. 도서관에 음악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사실 5년 전만 해도 다케오는 인적이 드문 도시였다. 온천 관광객을 제외하면 좀처럼 외지인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도서관은 뛰어난 접근성에도 콘텐츠가 부실해 주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지난 2006년 당선된 히와타시 게이스케 시장은 침체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을 짜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썰렁한 도서관이 들어왔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빠져 도서관을 찾지 않는 세태가 됐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춘 ‘환경’을 만들면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새 시장은 서점에 라이프스타일의 개념을 접목시켜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마스다 무네아키(컬쳐컨비니언스클럽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어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에게 시립도서관을 위탁하기로 했다. 도서관을 맡게 된 마스다는 ‘공간만 차지하던’ 관장실을 없애는 대신 개방형 서가와 열람실 좌석을 두 배로 늘렸다. 또한 신간 도서. 잡지, 문구를 판매하는 츠타야 서점과 스타벅스를 입점시켰다. 운영 시간도 오후 6시에서 밤 9시까지로 연장했다. 직장인들과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도서관을 1년 365일 개방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2013년 4월 개관한 ‘세상에 없던’ 도서관은 매년 100만 명이 찾는 글로벌 명소로 자리 잡았다. 낮에는 관광객들이 찾는 랜드마크로, 밤에는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활기가 넘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이듬해부터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컴백 홈’ 현상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화적 리더십’을 부탁해
이제 앞으로 닷새가 지나면 이용섭 당선인이 문화 광주의 새 시장에 취임한다. 이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문화 부시장제 도입, 컬쳐 유토피아, 아시아문화전당 활성화 등 문화 정책들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최근 출범한 인수위원회 성격의 ‘광주혁신위원회’가 시민 사회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체육위원회 등 7개 분과가 내놓은 지역 현안 과제의 해법들이 구체성이 결여된 수사(修辭)에 그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시정의 방향이 불분명하고 위원들의 면면이 현장의 전문가보다는 교수 중심으로 짜여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도 나온다.
근래 광주는 문화수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있다. 올해로 개관 3년째를 맞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유료 방문객이 16만 명(2017년 기준)에 그쳐 ‘전당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또한 많은 지역 예술인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열악한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뿐인가. 비엔날레 도시임에도 9회째를 앞둔 아트페어는 존폐 논란에 직면해 있고 문화 행정의 전문성을 간과하는 광주시의 잦은 인사로 인해 일부 축제와 사업은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민선 7기는 허울뿐인 문화 광주의 위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척박한 문화 생태계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문화로 먹고 사는 광주’를 내건 그의 공약은 공허한 구호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이 당선자의 리더십과 의지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다케오 도서관의 성공은 고정 관념을 깬,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됐다. 한낱 시골 도서관이 죽어 가는 도시를 살리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문화 현장에서 축사나 하는 사람이 아닌, 관객으로서 시민과 소통하는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평소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와 휴가철 독서 목록이 뉴스가 되는, 그런 멋진 ‘리더’ 말이다. 문화 광주의 혁신은 디테일, 즉 현장에 있다.
/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 역에서 제이알(JR)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아담한 간이역이 나온다. 온천과 3000년 수령의 녹나무로 유명한 사가현의 다케오(武雄)다. 첫인상은 너무 한적하다는 것이었다. 인구 5만여 명의 소도시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였다. 다케오 시립도서관 취재가 아니었다면 평생 찾아올 일이 없을 듯한 작은 도시였다.
다케오 온센역에서 내려 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지도를 펼쳐 든 관광객들이 보였지만 주민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고 10분쯤 걸었을까. 대형 쇼핑몰 건너편에 세련된 분위기의 2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다케오 도서관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한 표지판이 먼저 반긴다.
브랜드가 된 다케오 도서관
1층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모던한 실내 분위기와 함께 자연 광선을 끌어 들이기 위한 대형 유리 천장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도서관의 장서 20만 권이 빽빽하게 꽂힌 벽면과 서가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스펙터클하다. 이곳에선 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고, 1층 매대에 진열된 신간과 잡지를 구입할 수 있다. 굳이 책을 사지 않을 땐 카페에 앉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겨도 된다. 도서관에 음악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사실 5년 전만 해도 다케오는 인적이 드문 도시였다. 온천 관광객을 제외하면 좀처럼 외지인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도서관은 뛰어난 접근성에도 콘텐츠가 부실해 주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지난 2006년 당선된 히와타시 게이스케 시장은 침체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을 짜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썰렁한 도서관이 들어왔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빠져 도서관을 찾지 않는 세태가 됐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춘 ‘환경’을 만들면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새 시장은 서점에 라이프스타일의 개념을 접목시켜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마스다 무네아키(컬쳐컨비니언스클럽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어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에게 시립도서관을 위탁하기로 했다. 도서관을 맡게 된 마스다는 ‘공간만 차지하던’ 관장실을 없애는 대신 개방형 서가와 열람실 좌석을 두 배로 늘렸다. 또한 신간 도서. 잡지, 문구를 판매하는 츠타야 서점과 스타벅스를 입점시켰다. 운영 시간도 오후 6시에서 밤 9시까지로 연장했다. 직장인들과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도서관을 1년 365일 개방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2013년 4월 개관한 ‘세상에 없던’ 도서관은 매년 100만 명이 찾는 글로벌 명소로 자리 잡았다. 낮에는 관광객들이 찾는 랜드마크로, 밤에는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활기가 넘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이듬해부터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컴백 홈’ 현상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화적 리더십’을 부탁해
이제 앞으로 닷새가 지나면 이용섭 당선인이 문화 광주의 새 시장에 취임한다. 이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문화 부시장제 도입, 컬쳐 유토피아, 아시아문화전당 활성화 등 문화 정책들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최근 출범한 인수위원회 성격의 ‘광주혁신위원회’가 시민 사회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체육위원회 등 7개 분과가 내놓은 지역 현안 과제의 해법들이 구체성이 결여된 수사(修辭)에 그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시정의 방향이 불분명하고 위원들의 면면이 현장의 전문가보다는 교수 중심으로 짜여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도 나온다.
근래 광주는 문화수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있다. 올해로 개관 3년째를 맞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유료 방문객이 16만 명(2017년 기준)에 그쳐 ‘전당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또한 많은 지역 예술인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열악한 삶을 꾸려 가고 있다.
그뿐인가. 비엔날레 도시임에도 9회째를 앞둔 아트페어는 존폐 논란에 직면해 있고 문화 행정의 전문성을 간과하는 광주시의 잦은 인사로 인해 일부 축제와 사업은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민선 7기는 허울뿐인 문화 광주의 위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척박한 문화 생태계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문화로 먹고 사는 광주’를 내건 그의 공약은 공허한 구호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이 당선자의 리더십과 의지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다케오 도서관의 성공은 고정 관념을 깬,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됐다. 한낱 시골 도서관이 죽어 가는 도시를 살리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문화 현장에서 축사나 하는 사람이 아닌, 관객으로서 시민과 소통하는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평소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와 휴가철 독서 목록이 뉴스가 되는, 그런 멋진 ‘리더’ 말이다. 문화 광주의 혁신은 디테일, 즉 현장에 있다.
/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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