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칼럼]한 사람을 위한 책방, 한 사람을 위한 책 처방
매체명 : 경향신문
보도일 : 2018.06.25
[직설]한 사람을 위한 책방, 한 사람을 위한 책 처방
지난달 1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낮 12시가 되자마자 클릭 버튼을 눌렀다. 5분도 되지 않아 문자가 왔다. 내가 신청한 시간은 이미 예약이 끝났으니, 그 전 시간도 괜찮겠냐는 안내문자였다. 빠른 답변에 한 번 놀라고, 나보다 먼저 예약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날 신청한 것은 책을 처방하는 서점(book pharmacy)인 사적인 서점의 책 처방 프로그램이었다. 책 한 권과 차 한 잔, 1시간의 상담과 배송료가 포함된 비용은 5만원. 한 달 전에 예약하는 시스템이다보니, 예약한 날 별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한 달을 기다렸다.
사실 내게는 어렸을 때부터 서점과 서점 주인에 대한 로망이 있다. 서점 주인이 되면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기는커녕 책을 정리하고 짐을 나르다보면 하루가 간다는 서점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실행은커녕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새로 생긴 서점을 찾아가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서점 창업과 운영에 관한 글이나 책을 읽는 것으로 대리만족 중이다. 이번 책 처방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도 그래서였다. 꼭 어떤 책을 처방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서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책 처방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서점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이런 독특한 책방을 창업한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가볍게 신청했는데 클리닉 당일이 되자 낯선 사람과 1시간 동안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막상 도착한 후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먼저 서점을 찬찬히 둘러보며 책을 고른 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답게 손님은 오롯이 나뿐이다. 어수선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묻고 답하는 사이 내 독서 차트가 차근차근 채워지기 시작한다. 순수한 독자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사람들을 만나는 서점원으로, 책을 파는 책방 주인으로 변신한 대표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단단하다. 직업을 계속 바꿨지만 책과 관련한 일을 꾸준히 해온 그녀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차리고 입소문이 날 정도로 잘 운영하고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지금의 사적인 서점은 그녀가 그동안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한 결과물이다. ‘서점’이라는 기본 틀에서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일을 더하고, 반대로 하기 싫고 부담스러운 일을 빼자 지금의 서점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서점을 차리기 위해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서점을 열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는 솔직한 이야기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열심히 소개글을 써서 올리고 있는데 막상 구입은 인터넷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며 힘이 빠질 때도 많지만 다시 월급쟁이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고백까지….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최소한 서점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해놓고 자신이 원하던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프로는 역시 다르다 싶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골랐던 책 3권을 구입하자 주인은 직접 제작했다는 이 서점만의 책싸개로 책을 척척 포장해줬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을 싸는 솜씨를 보아하니 보통이 아니다. 몇 권의 책을 싸면 이렇게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꽤 편안하고 즐거웠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타인과의 대화가 이렇게 즐거운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잊고 있을 때쯤 책과 처방이 도착했다. 책방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시작할 용기는 전혀 없는 나에게 처방된 책은 낯선 저자의 처음 보는 책이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만의 작고 소박한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그녀의 처방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누구보다 단단하게 자신의 결심을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의 조언이었기에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당분간 나는 서점을 좋아하는 손님으로 남아 있겠지만, 뭐라도 해보기 위해 꼼지락거려볼 계획이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꼭 서점 주인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테니까.
/ 정지은 문화평론가
지난달 1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낮 12시가 되자마자 클릭 버튼을 눌렀다. 5분도 되지 않아 문자가 왔다. 내가 신청한 시간은 이미 예약이 끝났으니, 그 전 시간도 괜찮겠냐는 안내문자였다. 빠른 답변에 한 번 놀라고, 나보다 먼저 예약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날 신청한 것은 책을 처방하는 서점(book pharmacy)인 사적인 서점의 책 처방 프로그램이었다. 책 한 권과 차 한 잔, 1시간의 상담과 배송료가 포함된 비용은 5만원. 한 달 전에 예약하는 시스템이다보니, 예약한 날 별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한 달을 기다렸다.
사실 내게는 어렸을 때부터 서점과 서점 주인에 대한 로망이 있다. 서점 주인이 되면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기는커녕 책을 정리하고 짐을 나르다보면 하루가 간다는 서점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실행은커녕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새로 생긴 서점을 찾아가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서점 창업과 운영에 관한 글이나 책을 읽는 것으로 대리만족 중이다. 이번 책 처방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도 그래서였다. 꼭 어떤 책을 처방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서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책 처방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서점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이런 독특한 책방을 창업한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가볍게 신청했는데 클리닉 당일이 되자 낯선 사람과 1시간 동안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막상 도착한 후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먼저 서점을 찬찬히 둘러보며 책을 고른 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답게 손님은 오롯이 나뿐이다. 어수선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묻고 답하는 사이 내 독서 차트가 차근차근 채워지기 시작한다. 순수한 독자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사람들을 만나는 서점원으로, 책을 파는 책방 주인으로 변신한 대표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단단하다. 직업을 계속 바꿨지만 책과 관련한 일을 꾸준히 해온 그녀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차리고 입소문이 날 정도로 잘 운영하고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지금의 사적인 서점은 그녀가 그동안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한 결과물이다. ‘서점’이라는 기본 틀에서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일을 더하고, 반대로 하기 싫고 부담스러운 일을 빼자 지금의 서점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서점을 차리기 위해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서점을 열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는 솔직한 이야기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열심히 소개글을 써서 올리고 있는데 막상 구입은 인터넷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며 힘이 빠질 때도 많지만 다시 월급쟁이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고백까지….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최소한 서점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해놓고 자신이 원하던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프로는 역시 다르다 싶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골랐던 책 3권을 구입하자 주인은 직접 제작했다는 이 서점만의 책싸개로 책을 척척 포장해줬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을 싸는 솜씨를 보아하니 보통이 아니다. 몇 권의 책을 싸면 이렇게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꽤 편안하고 즐거웠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타인과의 대화가 이렇게 즐거운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잊고 있을 때쯤 책과 처방이 도착했다. 책방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시작할 용기는 전혀 없는 나에게 처방된 책은 낯선 저자의 처음 보는 책이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만의 작고 소박한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그녀의 처방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누구보다 단단하게 자신의 결심을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의 조언이었기에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당분간 나는 서점을 좋아하는 손님으로 남아 있겠지만, 뭐라도 해보기 위해 꼼지락거려볼 계획이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꼭 서점 주인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테니까.
/ 정지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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