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넓어지고 깊어지는 당신의 책장, 서울국제도서전 후기

매체명 : 뉴스페이퍼 보도일 :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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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지고 깊어지는 당신의 책장, 서울국제도서전 후기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책의 해’인만큼, ‘서울국제도서전’이 갖는 의미는 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페이스북을 통해 ‘책으로 안부를 묻’자고 제안하며 ‘우리나라 최대의 책 잔치’라고 언급할 정도로 핫한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최하며, 올해로 24회를 맞는다. 도서전이 개최되는 홀에 들어서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들어서자마자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부스들이 펼쳐져 있었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확장, new definition’으로, 그 주제에 걸맞게 도서, 잡지, 라이트노벨, 일러스트로의 확장, 그리고 종이책에서부터 전자책, 웹북 어플리케이션, 웹툰, 오디오북, 1인 출판으로의 확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확장’은 사회 소외 계층에 대한 도서의 확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었다. 큰글자책, 대활자본 책들은 눈이 좋지 않은 노년층에게로의 도서의 확장, 읽어주는 녹음도서는 시각장애인들에게로의 도서의 확장이다. 도서관이 많이 없는 지역, 독서 소외지역에 사는 독자들을 위해 운영되는 ‘책 읽는 버스’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실제 책장과 독서공간이 구비된 버스에 올라 책을 읽어볼 수 있다.

‘국제’ 도서전인만큼, 국제관의 크기가 컸으며, 다양한 외국 서적들과 잡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외국에서 온 업체 관련자들이 사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외국 서적들도 진열되어 다양한 나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다. 주한체코문화원, 독일문화원,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주한프랑스문화원이 주관하는 부스들에서 각 나라의 언어로 되어 있는 책들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과 한국의 활자에 대해서 한글, 영어로 소개하는 섹션도 존재한다.

필자는 뉴욕의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 맨해튼 빈티지 북 페어 등 미국의 도서전들에도 다녀온 적이 있기에 서울국제도서전과 미국 도서전들과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며 도서전을 탐방해보았다. 도서전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우리나라 사회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자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미디어로써 독자들에게 접근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도서전들에서는 타블렛 PC를 설치하거나 책과 관련된 어플리케이션을 홍보하는 등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부분 전통적인 종이책을 진열해놓았었다. 그러나 IT 강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도서전답게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각종 미디어를 활용했다. 국제관에서도 이를 고려한 것인지, 국제관의 주한독일 문화원 Goethe-Institut Korea에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주제로 한 VR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상현실 기계들을 착용하고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르가 되어 보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우리의 생활과 조금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 중에서는 오디오북이 있었다. 네이버 오디오 부스에서는 타블렛 PC를 설치하여 네이버 오디오 클립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책을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녹음도서는 시각장애인의 독서 기회를 확장시키는 긍정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전자책, 웹북을 선보이는 부스가 많았다. 주식회사 이타래의 부스에서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반영하여 전자 교과서를 선보이고, 멀티미디어 전자책을 이용해서 책 내용과 관련된 오디오 효과를 주는 어플리케이션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가수 김창완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이었다.

미국의 북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1인 출판에 관련한 것이었다. 1인 출판 앱을 홍보하는 부스들도 있었는데, 1인 출판은 우리나라의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과 자신만의 개성을 찾고자 하는 트렌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인 출판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앱 사용자가 직접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하여 종이 종류와 인쇄 방식을 주문하면 출판 업체에서 소량의 책을 제작해주는 방식이다. 독자들이 직접 작가가 되어 자신만의 책을 출판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앱을 통해 자신만의 책을 출판한 작가들도 부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근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평화 체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이에 관련한 부스와 특별전도 눈에 띄었다. 북한과 관련된 부스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도서전에서만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닐까 한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 진행 상황을 안내해준다. 안내판을 통해 한국과 북한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비교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점은, 북한에서는 ‘로그인’을 ‘로그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도 외래어를 쓴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부스에서는 북한 서적들을 전시해놓았다. 옛날 도서부터 2018년에 출간된 최근 소설책까지 다양하다. 직접 북한의 책을 만져보고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은 독자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특별전 ‘평화’에서는 북한 서적들뿐 아니라 최근의 북한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북한과의 평화가 주목을 받는 시기에 적절한 전시라고 생각된다. 북한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북한 관련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의 촛불시위와 정권 교체, 최근의 지방선거를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정치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치‧역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과거 정치인이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올라갔는데, 문재인 대통령, 유시민 작가나 신영복 교수 등 책을 집필한 유명 인물을 중심으로 인문학 책을 홍보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토요일 3시 반에서 4시 반까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유시민 작가의 신작 ‘역사의 역사’ 발매 기념을 겸하여 사인회도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많은 유명 작가들의 강연과 사인회가 있으니 서울국제도서전 웹사이트를 참고해보면 될 것이다.

아동 도서 서적들을 돌아보면서 세계적으로 유달리 뜨거운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아동 서적 부스들이 동화책보다는 ‘교육’과 ‘학습’을 위한 도서를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비상’, ‘재능교육’, ‘장원교육’ 등 유명한 교육 서적 출판사뿐 아니라 소규모의 교육 서적 출판사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부스들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학습 책들이 자녀의 교육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미국의 북 페어에서는 아동을 위한 도서는 동화책이 대부분이었으며, ‘교육’만을 위한 학습 책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동 도서 홍보 방식도 달랐다. 뉴욕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에서는 부모를 따라서 북 페스티벌에 방문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화를 구연해주는 홍보 방식을 사용했다. 비단 아동 도서 섹션뿐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서적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포토샵, 중국어, 아이엘츠 등 취업과 취미를 위한 서적들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대형 출판사와 중소 출판사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민음사’, ‘문학동네’, ‘김영사’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대형 출판사들은 부스들도 화려하고 거대했다. ‘부스’라기보다 소형 서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소 출판사들의 경우 매우 작은 부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대형 출판사는 더 많은 돈을 주고 더 큰 면적의 부스를 얻은 것이겠지만, 출판사들 간의 부스 면적 차는 대형 출판사들이 출판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는 미국의 북 페스티벌에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에도 펭귄랜덤 하우스나 하퍼콜린스 대형 출판사가 다른 중소 출판사들보다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적어도 도서전에서는 소형 서점들과 매우 큰 차이를 가지진 않았다. 보통 책의 종류, 부스의 규모는 컸으나 책장이 더 많을 뿐 부스의 포맷 자체가 그리 다르지는 않았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부스에서도 출판사 시장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라이트노벨 페스티벌’과 ‘잡지의 시대’ 특별 이벤트가 있었다. 특히 ‘라이트노벨 페스티벌’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벤트 형태였다. 미국에도 라이트노벨 시장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이 크지 않고, 북 페스티벌이나 북 페어에서는 볼 수 없었다. 라이트노벨은 줄여서 ‘라노벨’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에서 서브 컬쳐의 일종으로 출발했으며, 기존의 소설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의미한다. 한국의 라이트노벨 시장은 일본 외의 다른 나라들보다 큰 편이며, 독자층은 처음에는 10대 후반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은 30대도 라이트노벨을 많이 찾는다. 라이트노벨은 만화, 애니메이션 풍의 삽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삽화가 독자들의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서전 안에 라이트노벨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상황, 그리고 도서전 첫날부터 몇몇 라이트노벨 관련 굿즈가 품절된 상황을 보면 라이트노벨들이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잡지의 시대’ 전시는 잡지를 주로 다루는 부스들이 몰려 있다. 미국의 북 페스티벌에도 많은 잡지사들이 부스를 내지만, 우리나라 잡지들만의 특징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잡지들이 매달 주제를 바꾼다는 것이다. 미국의 잡지들은 대부분 하나의 분야를 정해놓고 그 분야 안에서 매월 다른 주제를 선보인다. 물론,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과학 잡지, 문학 잡지, 건축자재 잡지, 영화 잡지 등 하나의 분야에 골몰한 잡지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표방하며 매달 다른 분야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는 잡지들도 많았다. 독자들이 잡지 하나를 구독하면 하나의 분야에만 골몰하지 않고 자신이 관심이 없었던 분야에 대해서도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도서 관련 굿즈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미국의 북 페스티벌들에서는 책의 구절이 적힌 티셔츠, 머그 컵, 에코백 등을 팔았다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티셔츠와 컵, 에코백뿐 아니라 더 다양하고 새로운 물건들이 많았다. 소설 구절들을 써놓은 마스킹 테이프, 연필 등의 문구부터 시작해서 밤 독서를 위해 은은한 빛을 비춰주는 북 스탠드, 책을 상하지 않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북 커버, 그리고 향기를 느끼며 독서를 가능하도록 하는 북퍼퓸까지도 볼 수 있다. 교보문고 부스에서는 북퍼퓸을 팔고 있는데, 향수에 이육사, 윤동주, 김유정, 이상 등 작가의 이름들이나 모비 딕, 셜록홈즈, 안나 카레니나, 이방인 등 명작의 이름들이 붙어 있어 흥미를 끈다. 더 나아가 서울국제도서전 아트숍 섹션에서는 책을 주제로 하는 일러스트들을 전시해 놓고, 그 일러스트들을 활용한 굿즈들을 팔고 있다. 문학에서 확장된 미술까지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강연, 해외 저자와의 만남, 사인회, 세미나, 도서를 추천해주는 특별 이벤트인 독서 클리닉, 사업 소개 프로그램, 번역 관련 심포지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특히 1:1로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해주는 ‘읽는 약국’ 프로그램은 미국 북 페스티벌에서는 본 적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 옆에 유명 저자들의 추천 도서를 배치하여 얼마든지 가져가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 돋보였다. 도서전의 규모가 큰 만큼 피로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전반적으로 이벤트 참여 등에 있어서 미국보다 웹사이트 정리가 훨씬 잘 정리되어있으며, 몇몇 프로그램들은 미리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이 가능하여 효율적이었다. 도서전 자체의 특성 때문일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낭독회가 많이 열렸던 것에 반해 서울국제 도서전에서는 낭독회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 그러나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출판업계 관계자, 전문가들, 더 나아가 사업가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알차게 준비되어있다. 책에 대한 관심이 큰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의 부스들과 프로그램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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