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지옥같은 戰場에 희망 싹틔운 ‘책의 꽃밭’

매체명 : 문화일보 보도일 : 2018.06.22
링크주소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62201032912000001
지옥같은 戰場에 희망 싹틔운 ‘책의 꽃밭’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정부군 봉쇄 시리아 반군 거점 폐허 속에서 발견한 책들 모아
건물 아래 비밀의 아지트 꾸려 전쟁뒤 되찾게 책주인 이름 써
독서토론·영화감상‘저항 공간’ 주민 강제 이주로 이젠 문닫아

2011년 4월 시작된 시리아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이 만 7년을 넘어섰다. 40년을 훌쩍 넘어선 알아사드 가문의 독재에 저항해 반군이 내전을 벌인 사이, 35만 명 가까운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서구 열강은 이 틈에 시리아를 공중분해하려는 음험한 속내를 드러냈다. 시리아 곳곳에 매장된 석유를 노리고 말이다. 하지만 무간지옥(無間地獄) 같은 그곳에서도 희망의 싹이 하나 피어올랐다. 희망의 근거는 바로 지하 비밀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아니 책이 희망일 수 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분명 시리아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책이 빼꼭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인 두 남자”의 모습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 프랑스 출신 저널리스트 델핀 미누이는 곧바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분쟁 지역 취재만 20여 년 해온 그는 감각적으로 그곳이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내쉬는 가냘픈 숨소리”라고 느낀 것이다. 전쟁통이었다. 도서관이 있는 다라야까지는 언감생심, 시리아 입국조차 불가능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근교 다라야는 시리아 반군의 거점이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내전 발발 직후부터 봉쇄 상태였다. 인터넷 접속조차 어려웠지만, 미누이는 다라야 지하 비밀 도서관을 만든 아흐마드와 2년여 이야기를 나눴다.

아흐마드도 가족들과 함께 피란길에 오를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남았고, 기자가 꿈이었던 그는 다라야의 무고한 죽음 등 전쟁의 상흔을 영상에 담았다. 그런 아흐마드를 친구들은 “지원부대”라고 불렀고, 폐허에서 발견한 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 목숨도 구하지 못해 안타까운데, 더더욱 책이란 “거짓과 선동으로 물들기 쉬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아흐마드였다. 폐허에서 직접 책을 발견한 순간 “몸이 떨려왔다”는 아흐마드의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가슴속 모든 것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이었다. 익숙한 대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나라의 자료를 조금이라도 지켜내는 것. 그는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버려진 집과 사무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진 사원 등에서 단 일주일 동안 “구해낸 책”이 6000여 권이었다. 한 달 동안 무려 1만5000여 권의 책을 구했지만 문제는 “보관할 장소”였다. “부단한 탐색 끝에” 다라야 가장자리의 한 건물 지하를 낙점했다. 저격수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로켓 사정권에서는 먼 곳이었다. 널빤지를 재단해 책장을 만들고, 찢어진 책을 붙이고 “주제별로, 알파벳 순으로 분류”해 정리했다. 마지막 작업은 책 첫 번째 면에 “소유주의 이름을 써넣는 일”이었다. 아흐마드의 말이다. “우리는 도둑도, 약탈자도 아니니까요. 이 책은 다라야 주민의 소유입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세상을 떠났죠. 어떤 사람은 이곳을 떠났고, 또 어떤 이는 아직 체포된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이 각자 자기 책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다라야 지하 비밀 도서관은 단지 폐허에서 찾아낸 책들의 집합소가 아니었다. 아흐마드와 함께 도서관을 조성하고 공동 책임자로 일한 아부 엘에즈 등이 뜻을 모아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레미제라블’ ‘군주론’ ‘연금술사’ 등을 함께 읽었고 ‘아멜리에’ 같은 영화를 함께 봤다. 그 끝에는 언제나 “이슬람, 민주주의, 발전” 등을 주제로 토론이 뒤따랐다. 이어진 아흐마드의 말은 그야말로 명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늘 꿈꾸었던 하나의 대학이에요. 미리 정해진 가이드라인 없이 검열도 받지 않고, 사방으로 열려 있는 배움의 장소입니다.” 전쟁의 공포로 입을 닫았던 다라야 사람들은 책과 함께 “평화의 언어”를 쏟아냈다.

다라야 지하 비밀 도서관은 이제 그곳에 없다. 2016년 다라야 주민들이 강제 이주되면서 “이 비밀스러운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내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애씀의 흔적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너무 흔해 그 가치조차 잊고 사는 한 권의 책이, 지구 저편에서는 삶을 살아내게 하는, 그리고 불의에 저항케 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언젠가 다라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들이 어렵사리 모았던 숱한 책이 격하게 환대해 주리라 믿는다.

/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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