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대담]북튜브, 북캠핑, 위드북...들어보셨나요?
매체명 : 프레시안
보도일 : 2018.04.29
북튜브, 북캠핑, 위드북...들어보셨나요?
[표지 너머 책 세상 ⑰] 책의 해, 무엇을 얻을까
올해는 '책의 해'입니다. 1993년 이후 25년 만입니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국민 함께 읽기 축제'가 비바람으로 인해 안타깝게 취소되었지만, 관련 행사는 연중 이어질 예정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한 해 역점 사업을 '~의 해'로 상정해 대중 홍보에 나섭니다. 이런 행사가 대체로 관 주도로 이뤄짐을 고려하면, '2018 책의 해'는 기존과 조금 결이 다릅니다. 민간이 주도합니다.
조직위원회부터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아 민간에 힘을 실었습니다. 실제 여러 정책 집행을 결정하는 집행위원회 명단을 보면 책의 해 관련 행사가 민간 주도로 이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집행위원장은 정은숙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마음산책 대표)이고, 집행위원은 △유성권 이퍼블릭 대표 △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곽미순 한울림어린이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고흥식 한국출판인회의 사무국장 △김시중 대한출판문화협회 사무국장 △이경직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 △배진석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략기획실장으로 구성됩니다. 민간 출신 위원이 많습니다.
이들은 올해 안에 △북캠핑 △이동 서점 △북클럽 리그 △전국 심야 책방의 날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합니다. 위드북(#무슨 책 읽어?) 캠페인, 하루 10분 함께 읽기 캠페인 등 소셜미디어를 겨냥한 행사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중 올해가 책의 해이며, 관련 행사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열리는지 관심을 가진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책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는 현실은 그간 '표지 너머 책 세상'이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이달 '표지 너머 책 세상'은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의 의미를 짚어보고, 책이 멀어지는 시대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짚어봤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이사의 대담은 지난 1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책의 해 계기로 책 문화 전담 부처 만들자
-올해는 책의 해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세부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모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의 해 선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총체적으로 평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장은수 : 책의 해는 1993년 이후 25년 만입니다. (2012년에는 독서의 해가 열렸다. 편집자.) 지난 25년 동안 국가 차원에서 책 자체가 어젠더가 된 적은 없다는 뜻입니다.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 사회가 많이 하지만, 그동안 ‘콘텐츠’ 개념은 주로 영화, 게임 등 주로 쉽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 문화를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국가적 관심 역시 이들의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예산도 주로 그렇게 집행되었고요. 이런 관심을 반영한 대표적 기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되겠죠. 오랫동안 국가적 투자를 체계적으로 집행하는 전담 기관이 생기면서 한국의 관련 문화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췄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먼저 올해를 책의 해로 선정했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상징성을 지닙니다. 책에 관심이 부족했던 국가가 25년 만에 책 산업 관계자들의 요구에 화답했습니다. 국가 문화 정책을 책 생태계 중심으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홍 : 출판업 관계자로서 환영하는 입장입니다만, 기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책의 해 선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에 관해 회의적이기도 합니다. 부끄럽고 황당한 사실입니다만, 상당수 출판업 관계자들마저 올해가 책의 해임을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가끔 매 해가 책의 해이지 않느냐는 생각도 합니다.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에서 뭔가를 하긴 하니까요. 그런데 별 관심을 끌지도 않고, 감동도, 충격도 없습니다. 캠페인이 성공하려면 독자의 주목을 끌어야 하는데, 그간 관련 행사를 보면 주최자들만 소란스러웠습니다.
그간 책 문화를 키우려는 국가적 행사가 효과가 없었고, 이에 따라 출판 관계자들의 기대치도 낮아졌다는 얘깁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올해 프로그램을 보면 한 해 반짝하고 말 게 아닌 좋은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독서 문화 위축 추세가 공공의 캠페인으로 반전되기에는 너무 깊은 수렁에 와 있다는 생각입니다.
장은수 : 1993년 책의 해 이후, 지난 스물다섯 해 동안 책 문화는 꾸준히 위축됐습니다.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죠. 특히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책의 위축은 세계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만큼의 국가적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문화 산업에는 진흥을 이유로 국고가 투입되었는데, 그 뿌리를 이루는 책에 관해서는 무심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생겼지만, 출판계와 갈등하는 등 파행을 거듭해 왔습니다. 운용예산도 너무 적은 데다 분배 정책 위주여서 아직까지는 진흥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관련 투자도 활성화되고, 특히 책의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환기할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책의 해에 거는 기대도 있고, 우려도 있네요. 책의 해를 계기로 국가적 관심과 투자가 더 커져야 한다는 주장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미 책 관련 산업을 전담하는 공공기관이 있는데, 국가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어 보입니다.
장은수 : 책 생태계의 주요 고리를 출판-독서-도서관으로 볼 때, 이들을 한 번에 다루는 공공기구가 없습니다. 현재 도서관은 도서관정책사업단이, 출판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전담하죠. 독서는 전담 기구가 불확실한 영역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문체부에도 책 문화 전체를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책 문화를 하나로 묶어 다루는 거시적 틀이 없다는 건 문제입니다. 책 생태계는 서로 긴밀하게 엮여서,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으로 파급되니까요. 이 구조가 오래 이어지다 보니, 각 영역 관계자들조차 상대방 문제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책 문화 관계자 간 심도 있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책 문화를 거시적으로 다루는 정부 전담기구가 설립되었으면 합니다.
-일종의 책 관련 금융위원회를 만들자는 주장으로 여겨집니다. 외국에는 이런 기구가 있나요?
장은수 : 당연히 있죠. 프랑스의 경우 독서출판국이 서점부터 도서관, 출판, 독서문화 등을 하나의 틀에서 다룹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 더하자면, 책 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독자도 관련 논의에 활발히 참여해야 합니다. 책 읽는 시민이야말로 책 문화의 실질적 주체니까요. 책의 해를 맞이해 각종 포럼이 연중 이어지는데, 이런 자리에서 독자도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올해는 '함께 읽는' 책의 해
-책의 해 집행위원회 명단을 보니 특히 민간의 참여가 두드러집니다.
장은수 : 이런 사업이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번에는 민간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 현장 독자에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이들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남은 숙제는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얼마나 독자의 관심을 실제로 끌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이홍 : 저도 큰 틀에서는 동의합니다. 다만, 독자 관심을 끌려면 독자가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줘야 하는데, 잘 될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책의 해 집행위원이 민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출판·도서관 관계자들일 뿐입니다. 이들이 과연 독자의 진심을 움직일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장은수 : 지난 23일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책의 해 대국민 홍보를 이어간다는 게 현재 집행위 계획입니다. TV 특집 방송도 제작 중이고, 일간지와 협의해서 연중 기획 기사도 준비한 걸로 압니다.
엄밀히 말해 올해는 그냥 책의 해가 아니라 ‘함께 읽는 책의 해’입니다. 이홍 이사께서 지적하신 독자 참여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 표어에 녹아들어 있다고 봅니다.
독자의 참여를 이끌어 낼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이미 지난 대담에서도 거론한 바 있습니다. 같이 읽기입니다. 대안은 없습니다. (☞관련기사 : "소설이 좋은데 싫어요"...우린 왜 책을 읽나?)
도서관 관계자들이 책 문화와 관련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책을 읽는 사람만 읽는다’는 겁니다. 한번 비독자가 된 이들은 저절로 독자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책에 관심 없던 사람이 독자가 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책을 보여 줘도 소용없죠. 시간을 보낼 수단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함께 읽기가 아니면 이들을 책의 세계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습니다. 올해 책의 해 프로그램 중 유난히 독자 참여형 행사가 많은 이유입니다. 물론, 이홍 이사의 지적처럼 이들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느냐는 차후 짚어봐야겠죠.
책의 해가 남길 유산은?
-개별 프로그램을 짚어보죠. 어린이를 둔 가정을 주요 타깃으로 한 나도 북튜버, 북캠핑, 책 읽는 가족 한마당 축제 프로그램이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독자 전파를 염두에 둔 듯한 위드북 캠페인도 눈에 띕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는 북클럽 리그(책의 해 홈페이지에 접수), 우리 고전 다시 쓰기 공모전, 전국 심야 책방의 날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지자체 프로그램으로는 책 플러스 네트워크, 책의 마을 지정 사업, 지역 책 축제 지원, 찾아가는 이동 책방이 있고요. 능동적인 독자를 타깃으로 한 시민 책·독서 프로그램 공모전도 있네요.
이들을 다 짚어보긴 무리일 테고, 두 분께서 특별히 눈에 띈 프로그램이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설명해주세요.
장은수 : 책의 해 취지에 맞춰, 전국 단위로 함께 읽기 프로그램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해 볼 법합니다. 북튜버 프로그램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관련 영상을 찍어 올리기만 해도 상을 노릴 수 있습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이라면 북클럽 리그를 자세히 알아보고 참여하는 것도 좋겠죠. 웬만한 정보는 책의 해 홈페이지와 지역 도서관을 통해 쉽게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역 공동체 살리기에 책이 매개가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읍면동 단위의, 즉 거주자 1만 명 이하 단위의 공동체에서 책 마을 신청을 하면 책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외국에 이런 사례가 많죠. 스코틀랜드 위그타운(Wigtown)이 대표적입니다. 기차역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시골마을인데, 스코틀랜드 정부가 마을 활성화를 위해 이곳을 책마을로 지정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책과 관련한 서점, 카페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그타운 북 페스티벌이 매년 열리는데, 이때마다 마을이 방문객으로 붐비죠. 요즈음 지자체 곳곳에서 마을 공동체 복원을 고심하는데, 책을 사랑하는 주민들이 모인 곳이라면 여론을 모아서 이런 프로그램 신청을 고민할 법합니다.
이홍 : 저 역시 함께 읽기를 돕는 관련 프로그램에 눈이 갑니다. 우리가 대개 독서를 개인적 행위로 생각하는데, 이를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 녹여내려는 시도가 전반적으로 돋보입니다. 위드북 캠페인, 하루 10분 읽기 프로그램은 방향을 잘 설정했다고 봅니다.
장은수 : 개인적으로 올해 프로그램 중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게 비독자 연구입니다. 오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연구를 진행해서, 9월 포럼에서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 심층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심층 조사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일 겁니다.
앞서 책의 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지난 1993년 책의 해가 남긴 유산이 바로 국민독서실태조사입니다. 이 해를 계기로 국가가 국민 독서 현실을 조사하고, 관련 정책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독서진흥법까지 나왔죠. 올해 비독자 연구도 앞으로 큰 규모로, 장기적으로 책 문화를 고민할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 의무화하자
-그런데 책의 해에 사회적 관심이 없어요. 집행위가 홍보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닌가 싶은데요.
이홍 : 집행위 관계자들께 노파심을 전하자면, 책의 해 홍보 시 독서 중요성을 계몽하려는 생각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발적 독서가 중요하지, 계도는 역효과만 낼 겁니다.
이제 책 냄새가 나지 않는 시대입니다. 동네 서점은 줄어들고, 온라인 서점만 커지지 않습니까? 우리 책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일상에 책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서점이 보이지 않고 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노출, 더 많은 책의 노출이 필요합니다. 반복적 노출이 강력한 힘을 낳습니다. 책의 해를 맞아 집행위가 가장 고심해야 할 부분은 얼마나 많은 책을 얼마나 자주 대중에게 노출하느냐라고 봅니다. 우리 일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의 눈에 책을 가장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있는 공간은 서점이 아니라 북 카페입니다. 북 카페는 음료가 주인인가요, 책이 주인일까요?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공공기관이나 기타 수익 사업에 크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책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오픈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청합니다.
한때 새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단지 내에 작은 도서관을 의무화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보통 시공사가 아파트 단지에 노인회관을 지어 거주민에게 제공하는데, 비슷한 방법으로 도서관도 만들자는 거였죠.
독일을 예로 들면, 백화점이나 공공기관 한 층에 공간을 마련해 책을 진열하고, 저자와 독자의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열리면, 프랑크푸르트 시내 어디서나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나 깃발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일상에 노출하려는 시도죠. 인터넷 서점이 커지면서 일상에서 책은 사라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책을 현실로 되가져오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은수 :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덧붙여 얘기하자면, 현재 고층 건물을 지으면 설치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문화예술진흥법상 연면적 1만㎡ 이상 대형건축물에는 건축비 100분의 1 범위 안의 비용으로 미술장식품을 설치해야 한다. 편집자.) 이 같은 아이디어를 작은 도서관 의무화 규정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죠. 이를 위해서는 책 관계자의 정책 연대가 필요합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책 문화가 꽃피려면, 장기적으로 이어질 동력이 올해 마련되어야 합니다. 중앙 정부는 책 정책을 고민할 전담 부서를 마련하고, 지자체는 책읽는도시협의회 등의 모델을 꾸리고, 지역 사회는 책 문화를 자발적으로 이어갈 동기를 얻어야겠죠.
이홍 : 같은 맥락에서 세계 최고의 헌책방 거리라 불리는 도쿄 진보초가 서울에도 있었으면 합니다. 책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낡은 거리가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됨을 입증한 사례죠. 우리 현실은 반대입니다. 헌책방들이 줄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판 관계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파주 출판단지를 가보세요. 명색이 출판도시라는 곳에 책이 안 보입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맛보기 건물'의 황당한 나열만 눈에 보일 뿐입니다. 영화 대사를 빌리자면 출판사가 "뭣이 중헌지" 모르는 겁니다. 국가 예산 졸라서 기념식 같은 행사만 자꾸 할 생각 말고, 삶의 공간에 책을 어떻게 노출할 것인지를 자발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장은수 : 맞습니다. 책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출판 관계자들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책 만드는 데만 관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독서 문화 창출 책임을 오롯이 정부에 떠넘기는 식으로는 독서 문화 정착은 요원할 겁니다.
-앞서 특집 방송이 마련된다고 했습니다만, 일회성 특집 프로그램만으로 독자 관심을 높일 수 있을까요? 지속적 노출이 중요하다고 앞서 우리가 얘기했는데요.
장은수 : 안타깝죠. 요즘 TV를 보면 독서 프로그램이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국가 기간방송인 KBS에도 책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없죠. 1993년 책의 해 이후 KBS가 꾸준히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이제는 방송에서 책이 사라졌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일각에서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관한 규정을 담은 방송법 제71조를 보면 방송사업자가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을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해야 합니다. 이를 개정해 이들 강제 편성 항목에 '책'도 넣자는 거죠. 이런 식의 규제가 맞느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지만, 뒤집어 보면 영화나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은 국가가 지원하면서 책은 지원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죠.
우리 삶의 가치 바꿔야 할 때
-이제 마무리를 할 때입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변하려면, 어떤 점을 더 보충해야 할까요?
이홍 : 시민이 책 경험을 일상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삶의 가치가 변해야 합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입시 문제를 예로 들어 보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 체제가 변해서 학부모님들 고심이 클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꿔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죠. 어떤 입시 제도를 만들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구하고, 그래야 잘 먹고 잘 사는' 사회적 구조가 이미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구조를 바꾸고, 부의 불균형 문제를 바꿔야 합니다. 대학 입학 제도를 건드린다고 교육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책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이 책을 읽지 못하는, 책을 만날 수 없는 삶과 공간의 문제를 바꿔야지, 출판 관계자만 모여 자기들끼리 컨퍼런스하고 비슷한 사람들 모여 캠페인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이 과연 비 독자가 책과 밀착 가능한 구조인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책의 해 집행위가 마련한 프로그램이 나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프로그램 자체로는 충분히 좋고, 취지도 동의합니다. 제가 집행위원이었다손 쳐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 문화를 살릴 사회 구조, 즉 집행위가 손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엄연히 있습니다. 앞서 책의 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관련 프로그램에서 한계를 찾더라도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물신주의적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길 바랍니다.
출판계에는 책의 본질을 고민할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냉정히 말해, 그간 안이하게 기획되고 만들어진 책이 많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 취득 수단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로서 엄밀히 말하자면,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책을 고민하는 이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부터 반성해야 할 대목이죠.
명과 암이 있습니다만, 한국영화계가 지난 시간 질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배급 구조가 변화하고, 대형 자본 투자가 이어지면서 뜻 있는 창작자들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출판 관계자들도 책이 어떤 도전을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장은수 : 출판계에 허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떠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5~7년차 편집자를 찾는 전화를 받습니다. 인력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책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 독자와 저자를 이어줄 인력이 출판계에 메말랐습니다.
출판계가 우수한 인력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했고, 이에 따라 열정 있는 출판 관계자가 산업을 떠나고 있다는 증거죠. 책의 해를 맞아, 열정을 되살릴 동력이 출판계 내부에서부터 생겨야 합니다. 출판 문화에 관한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책의 해를 계기로 장기적 책 문화 캠페인을 이어갈 계기를 찾기 바랍니다. 독서 공동체 10만 개가 생긴다면 멋질 겁니다. 책을 함께 읽는 이들의 문화 공동체가 여럿 탄생하고, 정책이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한국의 문화가 질적으로 달라질 겁니다. 평생 교육 문화가 정착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노동자교육협회(ABF·Arbetarnas Bildningsförbund)가 모범이죠. 시민이 자발적 교육열을 가지면, 정부는 이들을 충실히 뒷받침합니다. 스웨덴 국민 상당수가 ABF가 지원하는 학습 동아리 두세 개에 들었다고도 합니다. 이런 정도까지는 어렵겠으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이는 시민의 자발적 독서·교육 공동체가 형성되면 정부가 이들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되기를 꿈꿉니다.
/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표지 너머 책 세상 ⑰] 책의 해, 무엇을 얻을까
올해는 '책의 해'입니다. 1993년 이후 25년 만입니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국민 함께 읽기 축제'가 비바람으로 인해 안타깝게 취소되었지만, 관련 행사는 연중 이어질 예정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한 해 역점 사업을 '~의 해'로 상정해 대중 홍보에 나섭니다. 이런 행사가 대체로 관 주도로 이뤄짐을 고려하면, '2018 책의 해'는 기존과 조금 결이 다릅니다. 민간이 주도합니다.
조직위원회부터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아 민간에 힘을 실었습니다. 실제 여러 정책 집행을 결정하는 집행위원회 명단을 보면 책의 해 관련 행사가 민간 주도로 이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집행위원장은 정은숙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마음산책 대표)이고, 집행위원은 △유성권 이퍼블릭 대표 △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곽미순 한울림어린이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고흥식 한국출판인회의 사무국장 △김시중 대한출판문화협회 사무국장 △이경직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 △배진석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략기획실장으로 구성됩니다. 민간 출신 위원이 많습니다.
이들은 올해 안에 △북캠핑 △이동 서점 △북클럽 리그 △전국 심야 책방의 날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합니다. 위드북(#무슨 책 읽어?) 캠페인, 하루 10분 함께 읽기 캠페인 등 소셜미디어를 겨냥한 행사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중 올해가 책의 해이며, 관련 행사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열리는지 관심을 가진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책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는 현실은 그간 '표지 너머 책 세상'이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이달 '표지 너머 책 세상'은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의 의미를 짚어보고, 책이 멀어지는 시대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짚어봤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이사의 대담은 지난 1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책의 해 계기로 책 문화 전담 부처 만들자
-올해는 책의 해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세부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모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의 해 선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총체적으로 평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장은수 : 책의 해는 1993년 이후 25년 만입니다. (2012년에는 독서의 해가 열렸다. 편집자.) 지난 25년 동안 국가 차원에서 책 자체가 어젠더가 된 적은 없다는 뜻입니다.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 사회가 많이 하지만, 그동안 ‘콘텐츠’ 개념은 주로 영화, 게임 등 주로 쉽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 문화를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국가적 관심 역시 이들의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예산도 주로 그렇게 집행되었고요. 이런 관심을 반영한 대표적 기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되겠죠. 오랫동안 국가적 투자를 체계적으로 집행하는 전담 기관이 생기면서 한국의 관련 문화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췄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먼저 올해를 책의 해로 선정했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상징성을 지닙니다. 책에 관심이 부족했던 국가가 25년 만에 책 산업 관계자들의 요구에 화답했습니다. 국가 문화 정책을 책 생태계 중심으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홍 : 출판업 관계자로서 환영하는 입장입니다만, 기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책의 해 선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에 관해 회의적이기도 합니다. 부끄럽고 황당한 사실입니다만, 상당수 출판업 관계자들마저 올해가 책의 해임을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가끔 매 해가 책의 해이지 않느냐는 생각도 합니다.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에서 뭔가를 하긴 하니까요. 그런데 별 관심을 끌지도 않고, 감동도, 충격도 없습니다. 캠페인이 성공하려면 독자의 주목을 끌어야 하는데, 그간 관련 행사를 보면 주최자들만 소란스러웠습니다.
그간 책 문화를 키우려는 국가적 행사가 효과가 없었고, 이에 따라 출판 관계자들의 기대치도 낮아졌다는 얘깁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올해 프로그램을 보면 한 해 반짝하고 말 게 아닌 좋은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독서 문화 위축 추세가 공공의 캠페인으로 반전되기에는 너무 깊은 수렁에 와 있다는 생각입니다.
장은수 : 1993년 책의 해 이후, 지난 스물다섯 해 동안 책 문화는 꾸준히 위축됐습니다.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죠. 특히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책의 위축은 세계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만큼의 국가적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문화 산업에는 진흥을 이유로 국고가 투입되었는데, 그 뿌리를 이루는 책에 관해서는 무심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생겼지만, 출판계와 갈등하는 등 파행을 거듭해 왔습니다. 운용예산도 너무 적은 데다 분배 정책 위주여서 아직까지는 진흥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관련 투자도 활성화되고, 특히 책의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환기할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책의 해에 거는 기대도 있고, 우려도 있네요. 책의 해를 계기로 국가적 관심과 투자가 더 커져야 한다는 주장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미 책 관련 산업을 전담하는 공공기관이 있는데, 국가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어 보입니다.
장은수 : 책 생태계의 주요 고리를 출판-독서-도서관으로 볼 때, 이들을 한 번에 다루는 공공기구가 없습니다. 현재 도서관은 도서관정책사업단이, 출판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전담하죠. 독서는 전담 기구가 불확실한 영역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문체부에도 책 문화 전체를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책 문화를 하나로 묶어 다루는 거시적 틀이 없다는 건 문제입니다. 책 생태계는 서로 긴밀하게 엮여서,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으로 파급되니까요. 이 구조가 오래 이어지다 보니, 각 영역 관계자들조차 상대방 문제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책 문화 관계자 간 심도 있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책 문화를 거시적으로 다루는 정부 전담기구가 설립되었으면 합니다.
-일종의 책 관련 금융위원회를 만들자는 주장으로 여겨집니다. 외국에는 이런 기구가 있나요?
장은수 : 당연히 있죠. 프랑스의 경우 독서출판국이 서점부터 도서관, 출판, 독서문화 등을 하나의 틀에서 다룹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 더하자면, 책 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독자도 관련 논의에 활발히 참여해야 합니다. 책 읽는 시민이야말로 책 문화의 실질적 주체니까요. 책의 해를 맞이해 각종 포럼이 연중 이어지는데, 이런 자리에서 독자도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올해는 '함께 읽는' 책의 해
-책의 해 집행위원회 명단을 보니 특히 민간의 참여가 두드러집니다.
장은수 : 이런 사업이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번에는 민간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 현장 독자에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이들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남은 숙제는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얼마나 독자의 관심을 실제로 끌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이홍 : 저도 큰 틀에서는 동의합니다. 다만, 독자 관심을 끌려면 독자가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줘야 하는데, 잘 될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책의 해 집행위원이 민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출판·도서관 관계자들일 뿐입니다. 이들이 과연 독자의 진심을 움직일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장은수 : 지난 23일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책의 해 대국민 홍보를 이어간다는 게 현재 집행위 계획입니다. TV 특집 방송도 제작 중이고, 일간지와 협의해서 연중 기획 기사도 준비한 걸로 압니다.
엄밀히 말해 올해는 그냥 책의 해가 아니라 ‘함께 읽는 책의 해’입니다. 이홍 이사께서 지적하신 독자 참여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 표어에 녹아들어 있다고 봅니다.
독자의 참여를 이끌어 낼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이미 지난 대담에서도 거론한 바 있습니다. 같이 읽기입니다. 대안은 없습니다. (☞관련기사 : "소설이 좋은데 싫어요"...우린 왜 책을 읽나?)
도서관 관계자들이 책 문화와 관련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책을 읽는 사람만 읽는다’는 겁니다. 한번 비독자가 된 이들은 저절로 독자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책에 관심 없던 사람이 독자가 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책을 보여 줘도 소용없죠. 시간을 보낼 수단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함께 읽기가 아니면 이들을 책의 세계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습니다. 올해 책의 해 프로그램 중 유난히 독자 참여형 행사가 많은 이유입니다. 물론, 이홍 이사의 지적처럼 이들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느냐는 차후 짚어봐야겠죠.
책의 해가 남길 유산은?
-개별 프로그램을 짚어보죠. 어린이를 둔 가정을 주요 타깃으로 한 나도 북튜버, 북캠핑, 책 읽는 가족 한마당 축제 프로그램이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독자 전파를 염두에 둔 듯한 위드북 캠페인도 눈에 띕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는 북클럽 리그(책의 해 홈페이지에 접수), 우리 고전 다시 쓰기 공모전, 전국 심야 책방의 날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지자체 프로그램으로는 책 플러스 네트워크, 책의 마을 지정 사업, 지역 책 축제 지원, 찾아가는 이동 책방이 있고요. 능동적인 독자를 타깃으로 한 시민 책·독서 프로그램 공모전도 있네요.
이들을 다 짚어보긴 무리일 테고, 두 분께서 특별히 눈에 띈 프로그램이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설명해주세요.
장은수 : 책의 해 취지에 맞춰, 전국 단위로 함께 읽기 프로그램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해 볼 법합니다. 북튜버 프로그램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관련 영상을 찍어 올리기만 해도 상을 노릴 수 있습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이라면 북클럽 리그를 자세히 알아보고 참여하는 것도 좋겠죠. 웬만한 정보는 책의 해 홈페이지와 지역 도서관을 통해 쉽게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역 공동체 살리기에 책이 매개가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읍면동 단위의, 즉 거주자 1만 명 이하 단위의 공동체에서 책 마을 신청을 하면 책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외국에 이런 사례가 많죠. 스코틀랜드 위그타운(Wigtown)이 대표적입니다. 기차역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시골마을인데, 스코틀랜드 정부가 마을 활성화를 위해 이곳을 책마을로 지정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책과 관련한 서점, 카페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그타운 북 페스티벌이 매년 열리는데, 이때마다 마을이 방문객으로 붐비죠. 요즈음 지자체 곳곳에서 마을 공동체 복원을 고심하는데, 책을 사랑하는 주민들이 모인 곳이라면 여론을 모아서 이런 프로그램 신청을 고민할 법합니다.
이홍 : 저 역시 함께 읽기를 돕는 관련 프로그램에 눈이 갑니다. 우리가 대개 독서를 개인적 행위로 생각하는데, 이를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 녹여내려는 시도가 전반적으로 돋보입니다. 위드북 캠페인, 하루 10분 읽기 프로그램은 방향을 잘 설정했다고 봅니다.
장은수 : 개인적으로 올해 프로그램 중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게 비독자 연구입니다. 오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연구를 진행해서, 9월 포럼에서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 심층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심층 조사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일 겁니다.
앞서 책의 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지난 1993년 책의 해가 남긴 유산이 바로 국민독서실태조사입니다. 이 해를 계기로 국가가 국민 독서 현실을 조사하고, 관련 정책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독서진흥법까지 나왔죠. 올해 비독자 연구도 앞으로 큰 규모로, 장기적으로 책 문화를 고민할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 의무화하자
-그런데 책의 해에 사회적 관심이 없어요. 집행위가 홍보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닌가 싶은데요.
이홍 : 집행위 관계자들께 노파심을 전하자면, 책의 해 홍보 시 독서 중요성을 계몽하려는 생각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발적 독서가 중요하지, 계도는 역효과만 낼 겁니다.
이제 책 냄새가 나지 않는 시대입니다. 동네 서점은 줄어들고, 온라인 서점만 커지지 않습니까? 우리 책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일상에 책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서점이 보이지 않고 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노출, 더 많은 책의 노출이 필요합니다. 반복적 노출이 강력한 힘을 낳습니다. 책의 해를 맞아 집행위가 가장 고심해야 할 부분은 얼마나 많은 책을 얼마나 자주 대중에게 노출하느냐라고 봅니다. 우리 일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의 눈에 책을 가장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있는 공간은 서점이 아니라 북 카페입니다. 북 카페는 음료가 주인인가요, 책이 주인일까요?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공공기관이나 기타 수익 사업에 크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책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오픈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청합니다.
한때 새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단지 내에 작은 도서관을 의무화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보통 시공사가 아파트 단지에 노인회관을 지어 거주민에게 제공하는데, 비슷한 방법으로 도서관도 만들자는 거였죠.
독일을 예로 들면, 백화점이나 공공기관 한 층에 공간을 마련해 책을 진열하고, 저자와 독자의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열리면, 프랑크푸르트 시내 어디서나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나 깃발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일상에 노출하려는 시도죠. 인터넷 서점이 커지면서 일상에서 책은 사라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책을 현실로 되가져오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은수 :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덧붙여 얘기하자면, 현재 고층 건물을 지으면 설치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문화예술진흥법상 연면적 1만㎡ 이상 대형건축물에는 건축비 100분의 1 범위 안의 비용으로 미술장식품을 설치해야 한다. 편집자.) 이 같은 아이디어를 작은 도서관 의무화 규정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죠. 이를 위해서는 책 관계자의 정책 연대가 필요합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책 문화가 꽃피려면, 장기적으로 이어질 동력이 올해 마련되어야 합니다. 중앙 정부는 책 정책을 고민할 전담 부서를 마련하고, 지자체는 책읽는도시협의회 등의 모델을 꾸리고, 지역 사회는 책 문화를 자발적으로 이어갈 동기를 얻어야겠죠.
이홍 : 같은 맥락에서 세계 최고의 헌책방 거리라 불리는 도쿄 진보초가 서울에도 있었으면 합니다. 책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낡은 거리가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됨을 입증한 사례죠. 우리 현실은 반대입니다. 헌책방들이 줄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판 관계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파주 출판단지를 가보세요. 명색이 출판도시라는 곳에 책이 안 보입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맛보기 건물'의 황당한 나열만 눈에 보일 뿐입니다. 영화 대사를 빌리자면 출판사가 "뭣이 중헌지" 모르는 겁니다. 국가 예산 졸라서 기념식 같은 행사만 자꾸 할 생각 말고, 삶의 공간에 책을 어떻게 노출할 것인지를 자발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장은수 : 맞습니다. 책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출판 관계자들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책 만드는 데만 관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독서 문화 창출 책임을 오롯이 정부에 떠넘기는 식으로는 독서 문화 정착은 요원할 겁니다.
-앞서 특집 방송이 마련된다고 했습니다만, 일회성 특집 프로그램만으로 독자 관심을 높일 수 있을까요? 지속적 노출이 중요하다고 앞서 우리가 얘기했는데요.
장은수 : 안타깝죠. 요즘 TV를 보면 독서 프로그램이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국가 기간방송인 KBS에도 책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없죠. 1993년 책의 해 이후 KBS가 꾸준히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이제는 방송에서 책이 사라졌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일각에서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관한 규정을 담은 방송법 제71조를 보면 방송사업자가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을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해야 합니다. 이를 개정해 이들 강제 편성 항목에 '책'도 넣자는 거죠. 이런 식의 규제가 맞느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지만, 뒤집어 보면 영화나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은 국가가 지원하면서 책은 지원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죠.
우리 삶의 가치 바꿔야 할 때
-이제 마무리를 할 때입니다. 책의 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변하려면, 어떤 점을 더 보충해야 할까요?
이홍 : 시민이 책 경험을 일상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삶의 가치가 변해야 합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입시 문제를 예로 들어 보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 체제가 변해서 학부모님들 고심이 클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꿔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죠. 어떤 입시 제도를 만들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구하고, 그래야 잘 먹고 잘 사는' 사회적 구조가 이미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구조를 바꾸고, 부의 불균형 문제를 바꿔야 합니다. 대학 입학 제도를 건드린다고 교육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책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이 책을 읽지 못하는, 책을 만날 수 없는 삶과 공간의 문제를 바꿔야지, 출판 관계자만 모여 자기들끼리 컨퍼런스하고 비슷한 사람들 모여 캠페인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이 과연 비 독자가 책과 밀착 가능한 구조인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책의 해 집행위가 마련한 프로그램이 나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프로그램 자체로는 충분히 좋고, 취지도 동의합니다. 제가 집행위원이었다손 쳐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 문화를 살릴 사회 구조, 즉 집행위가 손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엄연히 있습니다. 앞서 책의 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관련 프로그램에서 한계를 찾더라도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물신주의적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길 바랍니다.
출판계에는 책의 본질을 고민할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냉정히 말해, 그간 안이하게 기획되고 만들어진 책이 많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 취득 수단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로서 엄밀히 말하자면,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책을 고민하는 이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부터 반성해야 할 대목이죠.
명과 암이 있습니다만, 한국영화계가 지난 시간 질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배급 구조가 변화하고, 대형 자본 투자가 이어지면서 뜻 있는 창작자들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출판 관계자들도 책이 어떤 도전을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장은수 : 출판계에 허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떠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5~7년차 편집자를 찾는 전화를 받습니다. 인력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책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 독자와 저자를 이어줄 인력이 출판계에 메말랐습니다.
출판계가 우수한 인력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했고, 이에 따라 열정 있는 출판 관계자가 산업을 떠나고 있다는 증거죠. 책의 해를 맞아, 열정을 되살릴 동력이 출판계 내부에서부터 생겨야 합니다. 출판 문화에 관한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책의 해를 계기로 장기적 책 문화 캠페인을 이어갈 계기를 찾기 바랍니다. 독서 공동체 10만 개가 생긴다면 멋질 겁니다. 책을 함께 읽는 이들의 문화 공동체가 여럿 탄생하고, 정책이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한국의 문화가 질적으로 달라질 겁니다. 평생 교육 문화가 정착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노동자교육협회(ABF·Arbetarnas Bildningsförbund)가 모범이죠. 시민이 자발적 교육열을 가지면, 정부는 이들을 충실히 뒷받침합니다. 스웨덴 국민 상당수가 ABF가 지원하는 학습 동아리 두세 개에 들었다고도 합니다. 이런 정도까지는 어렵겠으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이는 시민의 자발적 독서·교육 공동체가 형성되면 정부가 이들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되기를 꿈꿉니다.
/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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