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전남]‘다큐공감’ 곡성 ‘길 작은 도서관’ 할머니들의 시 속에 담긴 인생
매체명 : 서울경제
보도일 : 2018.04.14
14일 방송되는 KBS1 ‘다큐공감’에서는 ‘시인 할매’ 편이 전파를 탄다.
‘맛깔스러운 사투리로 쓴 시가 심장을 저미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글조차 몰랐던 시골 할머니들이 쓴 시를 읽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낀 소회다.
전남 곡성의 조그만 시골마을. 이곳에 빈집을 개조해 ‘길 작은 도서관’을 만든 김선자 관장은 동네 할머니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글의 재미를 알려주기 위해 시를 써보길 권했는데 할머니들이 쓴 시는 그냥 시가 아니었다. 가난했던 지난 세월을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노래였다. 그 시들을 묶어 시집도 내고 그림책도 냈다.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하고 한 평생 농사만 짓고 힘겹게 살아온 이들이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시인 할매들의 사계절 일상을 시골 마을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담아내 거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돌아본다.
▲ 겨울, 질긴 세월 그저 잘 견뎠다
시집
김점순
열 아홉에 시집왔제
눈이 많이 온 길을
얼룩덜룩 꽃가마를 타고
울다가 눈물개다
울다가 눈물개다
눈
윤금순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할머니들의 인생에서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가난해도 너무나 가난했고 힘들어도 너무나 힘들었다. 학교를 다니지도 한글을 배울 엄두도 못 내고 우리 어머니들은 오직 일만, 그렇게 자식 바라보며 일만 하며 살았다.
▲ 봄, 까막눈을 이제야 뜨고 보니..
나의 한글
양양금
나는 동생들만 키우니라고
어려서 학교를 안갔다
글자를 모른 께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너는 글자도 모른 것이 까분다고
말을 들었다
기가 팍 죽었다
나의 한글
김점순
큰 아들이 1학년 때 였다.
글자도 모른디 숙제를 가르쳐주라고 했다
니 아부지 오면 가르쳐 주래라 했더니
방을 뒹굴뒹굴 구르면서 울었다
애가 터졌다
지금이라면 가르쳐줬을텐데
간판도 못보고 전기요금이 날아와도 볼 수 없었다. 할머니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 할머니들의 마음을 알아준 이가 있었다. 마을에 빈집을 개조해 ‘길 작은 도서관’을 만든 김선자 관장이다. 도서관 정리를 도와주러 온 할머니들이 책을 거꾸로 꽂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시로 한번 써보시라 했다. 주옥같은 시들이 쏟아졌다. 본래 시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여름,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랑가
선산이 거기 있고
윤금순
선산이 거기 있고
영감도 아들도 다 거가 있은게
고구마라도 캐서 끌고 와야한디
감나무까지 다 감아 올라간 칡넝쿨도
낫으로 탁탁 쳐내야 한디
내년엔 농사를 질란가 안 질란가
몸땡이가 모르겠다고 하네
올해 82, 윤금순 할매는 유난히도 질긴 세월을 살아냈다. 느지막이 사업에 성공해 시골집까지 새로 지어준 듬직했던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충격에 몸져 누웠던 영감도 이듬해 아들을 따라 가버렸다. 금순 할매도 우울증으로 수년간을 말없이 살았다. 그래도 남은 자식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엄마가 걱정인 자식들은 힘들다며 농사도 제발 그만 지어라 한다. 금순 할매는 올해를 끝으로 농사를 안 지을까?
▲ 가을, 그저 오래만 살아다오
추석
박점례
새끼들을 기다렸다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새끼들
이 놈도 온께 반갑고
저 놈도 온께 반가웠다
새끼들이 왔다 간께 서운하다
집안에 그득흐니 있다가 허전하니
달도 텅텅 비어브렀다
추석
양양금
셋째가 그날까지 근무하고 늦게 왔다
‘저녁판에 내려갈게요’ 한다
대전인가, 목포인가 갈쳐줘도 모르겠다
안 오께 또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올때가 되면
맥없이 우째서 이렇게 안 온가 하고
달도 마을 밖을 내다본다
그래도 할매들은 다행이라고 말한다. 힘든 세월 살았지만 덕분에 자식들 살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할매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힘은 자식이었다. 조금만 더 몇 년 만이라도 더 살고 싶은 건 자식들 더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고 자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할매들의 소원은 그저 하나다. 자식들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마음이 여기에 있다.
/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맛깔스러운 사투리로 쓴 시가 심장을 저미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글조차 몰랐던 시골 할머니들이 쓴 시를 읽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낀 소회다.
전남 곡성의 조그만 시골마을. 이곳에 빈집을 개조해 ‘길 작은 도서관’을 만든 김선자 관장은 동네 할머니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글의 재미를 알려주기 위해 시를 써보길 권했는데 할머니들이 쓴 시는 그냥 시가 아니었다. 가난했던 지난 세월을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노래였다. 그 시들을 묶어 시집도 내고 그림책도 냈다.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하고 한 평생 농사만 짓고 힘겹게 살아온 이들이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시인 할매들의 사계절 일상을 시골 마을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담아내 거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돌아본다.
▲ 겨울, 질긴 세월 그저 잘 견뎠다
시집
김점순
열 아홉에 시집왔제
눈이 많이 온 길을
얼룩덜룩 꽃가마를 타고
울다가 눈물개다
울다가 눈물개다
눈
윤금순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할머니들의 인생에서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가난해도 너무나 가난했고 힘들어도 너무나 힘들었다. 학교를 다니지도 한글을 배울 엄두도 못 내고 우리 어머니들은 오직 일만, 그렇게 자식 바라보며 일만 하며 살았다.
▲ 봄, 까막눈을 이제야 뜨고 보니..
나의 한글
양양금
나는 동생들만 키우니라고
어려서 학교를 안갔다
글자를 모른 께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너는 글자도 모른 것이 까분다고
말을 들었다
기가 팍 죽었다
나의 한글
김점순
큰 아들이 1학년 때 였다.
글자도 모른디 숙제를 가르쳐주라고 했다
니 아부지 오면 가르쳐 주래라 했더니
방을 뒹굴뒹굴 구르면서 울었다
애가 터졌다
지금이라면 가르쳐줬을텐데
간판도 못보고 전기요금이 날아와도 볼 수 없었다. 할머니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 할머니들의 마음을 알아준 이가 있었다. 마을에 빈집을 개조해 ‘길 작은 도서관’을 만든 김선자 관장이다. 도서관 정리를 도와주러 온 할머니들이 책을 거꾸로 꽂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시로 한번 써보시라 했다. 주옥같은 시들이 쏟아졌다. 본래 시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여름,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랑가
선산이 거기 있고
윤금순
선산이 거기 있고
영감도 아들도 다 거가 있은게
고구마라도 캐서 끌고 와야한디
감나무까지 다 감아 올라간 칡넝쿨도
낫으로 탁탁 쳐내야 한디
내년엔 농사를 질란가 안 질란가
몸땡이가 모르겠다고 하네
올해 82, 윤금순 할매는 유난히도 질긴 세월을 살아냈다. 느지막이 사업에 성공해 시골집까지 새로 지어준 듬직했던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충격에 몸져 누웠던 영감도 이듬해 아들을 따라 가버렸다. 금순 할매도 우울증으로 수년간을 말없이 살았다. 그래도 남은 자식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엄마가 걱정인 자식들은 힘들다며 농사도 제발 그만 지어라 한다. 금순 할매는 올해를 끝으로 농사를 안 지을까?
▲ 가을, 그저 오래만 살아다오
추석
박점례
새끼들을 기다렸다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새끼들
이 놈도 온께 반갑고
저 놈도 온께 반가웠다
새끼들이 왔다 간께 서운하다
집안에 그득흐니 있다가 허전하니
달도 텅텅 비어브렀다
추석
양양금
셋째가 그날까지 근무하고 늦게 왔다
‘저녁판에 내려갈게요’ 한다
대전인가, 목포인가 갈쳐줘도 모르겠다
안 오께 또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올때가 되면
맥없이 우째서 이렇게 안 온가 하고
달도 마을 밖을 내다본다
그래도 할매들은 다행이라고 말한다. 힘든 세월 살았지만 덕분에 자식들 살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할매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힘은 자식이었다. 조금만 더 몇 년 만이라도 더 살고 싶은 건 자식들 더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고 자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할매들의 소원은 그저 하나다. 자식들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마음이 여기에 있다.
/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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