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뉴스
[서울]“책 많아 카트에 담아 대출하는 도서관 꿈꿉니다”
매체명 : 한겨례
보도일 : 2018.04.08
“책 많아 카트에 담아 대출하는 도서관 꿈꿉니다”
‘도서관 순례 연구자’. 조금주 서울 도곡정보문화도서관장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다. 지난 5년 세계의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도서관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시작은 2013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을 찾았을 때 느낀 감동이었다. 로비에 책을 자동 분류하는 첨단 기기가 놓여 있었다. 사서들은 기계 분류로 카트에 옮겨진 책을 서가에 꽂기만 하면 됐다. 이 도서관은 노숙인 이용자 5명을 인턴 직원으로 뽑아 노숙인 전담 서비스를 맡겼다. 조 관장이 지난해 말 펴낸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나무연필 펴냄)엔 ‘도서관 순례자의 감동’이 가득 배어 있다. 4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2층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작년과 재작년에만 한달씩 머무르는 세계 도서관 여행을 세차례나 했어요. 호텔도 도서관 근처에 잡아요. 도서관 개관 시간에 들어가 고즈넉한 분위기의 도서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죠.” 지난해 4월 지금의 일자리를 얻은 뒤에도 중국과 일본을 각각 두차례씩 다녀왔다. 모두 도서관 기행이었다. 다음달엔 미 로스앤젤레스 지역 도서관을 둘러볼 계획이다. “작년 상하이 방문 때는 남편은 호텔에서 일을 하고 저는 혼자 도서관을 찾았어요. 딸과 유럽에 갔을 때도 미술 전공인 딸은 미술관, 저는 도서관만 돌아다녔죠.” 적잖은 돈이 들지만 도서관 순례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도서관에 가면 가슴이 뛰어요. 배우는 것도 많죠. 이 경험이 우리 사회를 좋게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순례가 시작된 2013년 1월 그는 미 애틀랜타주의 한 대학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2005년 미 뉴욕주립대 문헌정보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가 2년 뒤 졸업과 함께 사서 자격증을 땄다. “전업주부 11년차 때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갔어요. 남편은 직장 때문에 같이 가지 못했어요. 평생 일자리를 찾겠다는 생각에 문헌정보학과를 택했죠.” 그는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를 마친 뒤 박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결혼으로 학업이 이어지지 못했다.
주부 11년차 때 뒤늦게 미국 유학
뉴욕주립대 문헌정보학 석사 따
한국과 미국 도서관서 사서 경험
지난 5년 세계 도서관 여행 ‘감동’
저서 ‘…세상의 도서관들’에 담아
“사서 전문서비스 갖춘 도서관을”
사서가 된 뒤 첫 직장은 한국은행 자료실이었다. 그때 만 39살이었다. “제가 한국은행 자료실 사상 최고령 평사서 입사자라더군요.” 2012년엔 다시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아들이 한국 학교 적응에 힘들어했어요.”
그의 책엔 도서관이 지역 공동체에서 배움과 만남의 중심지 구실을 하는 사례가 여럿 담겼다. 뉴욕주의 페이엣빌 공공도서관은 3D프린터 등 최첨단 장비를 사서 이용자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도서관이 구직 활동에 필요한 첨단 기술 교육 서비스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더 많은 주민들을 도서관으로 불러들였다. 덴마크 오르후스 도켄 도서관은 행정 민원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아이와 함께 서류를 떼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장난감이나 실험 장비가 잘 갖춰진 공간을 발견하고 환호하는 것이다. 스웨덴 티오 트레톤 도서관은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 낀 세대(10~13살)를 위한 공간이 인상적이다. 도서관에 흥미를 잃은 이들을 위해 도서관은 요리 공간까지 만들며 변신을 꾀했다. 사서는 뜨개질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낀 세대 이용자들이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린다. 영국 런던의 낙후지역인 타워햄리츠는 아예 도서관이란 이름을 버렸다. 대신 ‘아이디어 스토어’라고 간판을 달았다. 도서관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난해 일본 기타큐슈 공공도서관에서 80대 할아버지가 책을 쌓아놓고 연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미국 도서관에는 쇼핑카트가 있어 한번에 30~100권의 책을 대출하기도 해요.” 그가 가장 부러운 외국 도서관의 모습이다. “한국 공공도서관에는 일반인들이 잘 오지 않아요. 도서관은 그냥 공부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요. 청소년들은 도서관에 올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장서를 크게 늘리고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한국 도서관은 서가만 빽빽해요. 유모차가 열람실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장난감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강남구립인 도곡정보문화도서관은 6층 건물 가운데 4개 층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인 5·6층은 좌석 예약식 열람실이다. 자기 공부 하는 이들을 위해 도서관 공간의 절반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1년에 8천권 이상 신간을 구매하지만 책을 꽂을 공간이 절대 부족해요. 이용자들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내기가 어려워요.”
5층 열람실은 오전 6시, 6층은 오전 9시에 문을 연다. “열람실을 24시간 열어달라는 민원도 많아요. 좌석 예약도 한국만의 현상입니다. 보스턴이나 뉴욕 공공도서관은 좌석이 수천개인데 예약하지 않아요. 예약은 자리 독점을 위해서죠.”
사서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일대일 대면 서비스입니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료를 전국 어디에서든 찾아주고 전문가까지 연결시켜주는 사서 전문 서비스를 해보고 싶어요. 근처 주민 중에도 자료를 얻고 싶어하는 프리랜서나 의사 등이 많아요. 생업이 바빠 직접 국회도서관을 갈 수 없는 분들이죠.”
이런 서비스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미국의 같은 규모 도서관과 견줘 우리는 사서 수가 20분의 1도 안 됩니다. 또 보여주기식 문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요.” 이런 말도 했다. “전국에 장서 1만권 이하인 작은 도서관이 6천개가 넘지만 운영 지원이 없어 폐관하는 곳이 많아요. 지자체가 작은 도서관 늘리기보다는 장서를 충분히 갖추고 사서 서비스를 제대로 해주는 도서관 한 곳이라도 운영해주면 좋겠어요.”
/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도서관 순례 연구자’. 조금주 서울 도곡정보문화도서관장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다. 지난 5년 세계의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도서관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시작은 2013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을 찾았을 때 느낀 감동이었다. 로비에 책을 자동 분류하는 첨단 기기가 놓여 있었다. 사서들은 기계 분류로 카트에 옮겨진 책을 서가에 꽂기만 하면 됐다. 이 도서관은 노숙인 이용자 5명을 인턴 직원으로 뽑아 노숙인 전담 서비스를 맡겼다. 조 관장이 지난해 말 펴낸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나무연필 펴냄)엔 ‘도서관 순례자의 감동’이 가득 배어 있다. 4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2층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작년과 재작년에만 한달씩 머무르는 세계 도서관 여행을 세차례나 했어요. 호텔도 도서관 근처에 잡아요. 도서관 개관 시간에 들어가 고즈넉한 분위기의 도서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죠.” 지난해 4월 지금의 일자리를 얻은 뒤에도 중국과 일본을 각각 두차례씩 다녀왔다. 모두 도서관 기행이었다. 다음달엔 미 로스앤젤레스 지역 도서관을 둘러볼 계획이다. “작년 상하이 방문 때는 남편은 호텔에서 일을 하고 저는 혼자 도서관을 찾았어요. 딸과 유럽에 갔을 때도 미술 전공인 딸은 미술관, 저는 도서관만 돌아다녔죠.” 적잖은 돈이 들지만 도서관 순례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도서관에 가면 가슴이 뛰어요. 배우는 것도 많죠. 이 경험이 우리 사회를 좋게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순례가 시작된 2013년 1월 그는 미 애틀랜타주의 한 대학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2005년 미 뉴욕주립대 문헌정보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가 2년 뒤 졸업과 함께 사서 자격증을 땄다. “전업주부 11년차 때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갔어요. 남편은 직장 때문에 같이 가지 못했어요. 평생 일자리를 찾겠다는 생각에 문헌정보학과를 택했죠.” 그는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를 마친 뒤 박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결혼으로 학업이 이어지지 못했다.
주부 11년차 때 뒤늦게 미국 유학
뉴욕주립대 문헌정보학 석사 따
한국과 미국 도서관서 사서 경험
지난 5년 세계 도서관 여행 ‘감동’
저서 ‘…세상의 도서관들’에 담아
“사서 전문서비스 갖춘 도서관을”
사서가 된 뒤 첫 직장은 한국은행 자료실이었다. 그때 만 39살이었다. “제가 한국은행 자료실 사상 최고령 평사서 입사자라더군요.” 2012년엔 다시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아들이 한국 학교 적응에 힘들어했어요.”
그의 책엔 도서관이 지역 공동체에서 배움과 만남의 중심지 구실을 하는 사례가 여럿 담겼다. 뉴욕주의 페이엣빌 공공도서관은 3D프린터 등 최첨단 장비를 사서 이용자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도서관이 구직 활동에 필요한 첨단 기술 교육 서비스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더 많은 주민들을 도서관으로 불러들였다. 덴마크 오르후스 도켄 도서관은 행정 민원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아이와 함께 서류를 떼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장난감이나 실험 장비가 잘 갖춰진 공간을 발견하고 환호하는 것이다. 스웨덴 티오 트레톤 도서관은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 낀 세대(10~13살)를 위한 공간이 인상적이다. 도서관에 흥미를 잃은 이들을 위해 도서관은 요리 공간까지 만들며 변신을 꾀했다. 사서는 뜨개질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낀 세대 이용자들이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린다. 영국 런던의 낙후지역인 타워햄리츠는 아예 도서관이란 이름을 버렸다. 대신 ‘아이디어 스토어’라고 간판을 달았다. 도서관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난해 일본 기타큐슈 공공도서관에서 80대 할아버지가 책을 쌓아놓고 연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미국 도서관에는 쇼핑카트가 있어 한번에 30~100권의 책을 대출하기도 해요.” 그가 가장 부러운 외국 도서관의 모습이다. “한국 공공도서관에는 일반인들이 잘 오지 않아요. 도서관은 그냥 공부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요. 청소년들은 도서관에 올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장서를 크게 늘리고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한국 도서관은 서가만 빽빽해요. 유모차가 열람실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장난감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강남구립인 도곡정보문화도서관은 6층 건물 가운데 4개 층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인 5·6층은 좌석 예약식 열람실이다. 자기 공부 하는 이들을 위해 도서관 공간의 절반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1년에 8천권 이상 신간을 구매하지만 책을 꽂을 공간이 절대 부족해요. 이용자들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내기가 어려워요.”
5층 열람실은 오전 6시, 6층은 오전 9시에 문을 연다. “열람실을 24시간 열어달라는 민원도 많아요. 좌석 예약도 한국만의 현상입니다. 보스턴이나 뉴욕 공공도서관은 좌석이 수천개인데 예약하지 않아요. 예약은 자리 독점을 위해서죠.”
사서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일대일 대면 서비스입니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료를 전국 어디에서든 찾아주고 전문가까지 연결시켜주는 사서 전문 서비스를 해보고 싶어요. 근처 주민 중에도 자료를 얻고 싶어하는 프리랜서나 의사 등이 많아요. 생업이 바빠 직접 국회도서관을 갈 수 없는 분들이죠.”
이런 서비스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미국의 같은 규모 도서관과 견줘 우리는 사서 수가 20분의 1도 안 됩니다. 또 보여주기식 문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요.” 이런 말도 했다. “전국에 장서 1만권 이하인 작은 도서관이 6천개가 넘지만 운영 지원이 없어 폐관하는 곳이 많아요. 지자체가 작은 도서관 늘리기보다는 장서를 충분히 갖추고 사서 서비스를 제대로 해주는 도서관 한 곳이라도 운영해주면 좋겠어요.”
/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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