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0월의 읽을 만한 책

지은이 : - 출판사 : - 발행일 : 2017.10.16 등록일 : 2017.10.16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0월의 읽을 만한 책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이기성)은 2017년도 ‘10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박은영/서해문집) 등 10종과 ‘10월 청소년 권장도서’로 『눈, 새로운 발견』(김융희 외/궁리) 등 10종을 선정 발표했다. 출판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를 선정하고 있다. 10월의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진흥원 홈페이지(www.kpipa.or.kr)에서 볼 수 있다.

‘모험’이라는 말의 전제는 위험을 무릅쓴다는 데 있다. 실패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그 실패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험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모험은 낯선 곳에 대한 동경, 새로운 경험에 대한 경이로움의 성격이 강하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열두 살 준하는 엄마의 연구 활동 때문에 미국의 북서부 일리노이 주에 있는 몰린이라는 도시에 유학을 가게 된다. 낯선 도시, 학교에서 느끼는 불안 속에 베니라는 친구를 만난다. 베니는 한국에서 태어나 5살 때 시카고로 입양된 남자 아이, 한국 이름은 김현수다. 준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가온 베니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고 알게 된 고등학생 누나를 찾아가기로 한다. 검은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 때문에,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좌절감 때문에 외부로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엠마 아줌마의 트럭을 몰래 타고 3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모험 길에 나선다. 
히치하이킹은 다른 사람의 차를 타는 행동이다. 이런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팔을 뻗고 엄지손가락을 든다. 준하와 베리와 엠마 아줌마의 여행에 ‘엄지척’을 하고 싶은 이유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모습에 대한 공감과 격려의 마음이기도 하다. 자신을 둘러싼 가족이나 이웃, 친구에 대한 불만과 불안에 휩싸이기 보다는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동화이다. 모험은 실패를 무릅쓰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가면 용기가 생긴다. 우리 아이들이 모험을 즐기고 실패에 맞서는 당당함을 배우면 좋겠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은 수박씨를 심어서 키우고 수박을 따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농사법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동네사람 모두 둘러앉아 함께 수박 먹는 즐거움에 관한 책만도 아니다. 그것들도 물론 들어 있지만,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웅숭깊은 말을 글과 그림에 담고 있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정성 지극한 보살핌과 기다림, 거기서 울려 나오는 자연의 이치와 사람살이의 섭리라고 할 수 있을까. 싹을 보살피되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 척해 주어야 한다’거나, 어쩔 수 없이 솎아낸 싹이 ‘슬프지 않게/ 남은 싹이 그 몫까지 자랄 수 있도록/ 북 돋워주고 물 뿌려주’는 양육법은 이 시대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방식이다. 진딧물과 잡초를 ‘농약 대신 일일이 손으로 뽑고 훑으며’‘고단한 노동을 마다지 않아야’ 하지만, 너무 지치지 않게 원두막에서 ‘시원한 미숫가루 한 사발 들이마시고/ 낮잠 한숨 잘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부모들을 위한 조언 같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물 뚝뚝 듣는 붉은 속살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수박을 둘러싸고 모인 사람들은 장애인, 이민족, 동물 이런 구별 하나도 없는 공동체를 보여준다. 그냥 그대로 시로 읽히는 글은 나직나직, 자기 자신에게 눌러 다짐하는 어조다.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자는 의도는 없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는 이 어조가 오히려 메시지를 깊고 넓게 퍼뜨린다. 그림의 메시지는, 농부 할아버지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는 강아지를 눈여겨봐도 된다. 씨 앞에서 젖먹이였던 녀석이 수확철 늠름한 성견이 되어 있는 모습이 세상 어린 것들의 성장과 성숙을 말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메시지 이전에 ‘날 잡아 잡수! 하고/ 푸른 몸뚱이를 반짝거’리는 수박 한 덩이가 눈부시게 빛나는 자태, 그 수박을 감싸고 있는 주름진 농부의 손만으로도 이 책은 할 말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명의 프랑스 이방인이 추적한 현대 일본의 불행관찰기. 그 결론은 인간증발이다. 매년 수천 명이 가출 후 되돌아오지 않는 기현상에 주목한다. 연 10만의 실종사례 중 상당수를 증발인간으로 본다. 죽었거나, 사라진 경우다. 잊히는 건 시간문제다. 의문스러운 건 자발적인 증발 의지로, 스스로를 지우고 사라진다. 제나라이건만 불법체류자처럼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 속에 고립된다. 인파를 피해 숨어들 곳은 많다. 도시든 시골이든 증발인간의 비밀공간은 많다. 컴백은 없다. 이름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얼굴도 바뀐다. 도망이라 도전은 없다. 왕왕 규칙도 표준도 없이 갑자기 존재감을 확인시키기도 한다. 그러곤 다시 떠난다. 망각의 두려움과 기억에 대한 간절함 탓이다. 가족과의 재회는 생존확인에서 끝난다. 해피엔딩은 없다. 책은 그 원인을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 탓으로 돌린다. 압력솥처럼 변한 사회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사람을 수증기처럼 증발시킨다는 분석이다. 재도전을 불허하는 사회에서 몸부림쳐도 현실무게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이들은 잊혀진 존재의 삶을 택한다. 자살이든 증발이든 이는 사회적인 절망표현일 따름이다. 경쟁과 빈곤이 인간성의 상실로 귀결됐다. 수치심과 좌절감, 자괴감이 이들을 사회규범이 통하지 않는 신분세탁의 증발지대로 내몰았다. 도쿄 북부의 빈민굴 산야(山谷)처럼 지도에서 이름은 지워졌지만, 증발인간들은 실종자, 부랑자, 범죄자라는 동류의식 속에 서서히 자살해간다. 책은 사회문제를 다뤘지만, 소설처럼 쉽게 읽힌다. 직접적 문답질의와 간접적 상황묘사는 인간증발의 구조와 실태를 적절하게 표현한다. 관련사진을 그때그때 섞어내 문제의 심각성을 시각적으로 잘 묶어냈다. 현대사회가 던지는 압박과 치욕의 무게감이 구구절절 확인된다. 일본사례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한국사회의 제반현실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얼음장 같은 현실 속에서 증발카드를 선택한 일본의 슬픈 민낯은 곧 우리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내 몸은 정말 내 몸이 맞을까? 내 몸무게는 정말로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무게일까?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안에 있는 개체는 약 30조 개의 인간 세포와 40조 마리의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개체 안에는 약 2만 5천 가지의 인간 유전자와 그것보다 500배나 많은 미생물 유전자가 들어 있다. 옷을 입고 있는 그 개체는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미생물이라고 하는 게 솔직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면 사람이 너무 초라해진다. 차라리 수십 조 마리의 미생물에 점령된 사람이라고 보는 게 더 위안이 된다. 

미생물이 점령군이라고 해서 무임승차하는 놈들이라고 보면 안 된다. 미생물은 우리 몸을 빚어내고, 우리를 독과 질병에서 보호하고, 음식물을 분해하고, 면역계를 조절하고, 행동을 안내하며 심지어 우리의 유전체에 자신의 유전체를 삽입시켜서 한 덩어리로 만들기도 한다. 하여, 우리와 한 몸을 이루고 결국에는 우리 뇌의 지휘를 받는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발생과 생장, 번식과 진화는 미생물과 함께 이뤄내는 환상적인 팀플레이의 결과다. 
멋지지 않은가. 영국에서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오른 생화학자 출신의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인 에드 용(Ed Yong)의 첫 책이다.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는 영어권에서 2014년에 출간된 직후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최고의 서평을 받았으며, 영국 과학 저술가 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저술가상’을 받았다. 
재밌는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번역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많은 책일수록 책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알리기 위해 핵심적인 내용과 단어를 활용해 직접적인 제목을 구성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원제나 번역한 제목이나 공히 소설 내지는 수필의 제목과 유사하다. 이를 저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이라는 개인의 영향력과 결부시켜 제목을 대충 써도 팔릴 것이라는 자신감 혹은 책의 제목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일종의 음모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 책을 접하면 책의 제목이 무척 적절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제목은 상대가 약속 시간에 늦게 올 때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 사이의 시간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하는 저자의 습관에서 유래한다. 그러한 낙관적인 가치와 시각이, 책이 제시하는 거대한 변화 곧 가속의 시대가 주는 불확실성, 그로 인한 예측불가성 내지는 부적응성의 부담과 두려움을 지고 살아가는 지금 시대의 인류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물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비현실적인 긍정론만을 신봉하는 과잉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가속의 시대에 들려주는 낙관적 메시지라는 점과 함께,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가속의 시대를 정확히 정의하고, 읽어내고, 예측하는 지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면서 전문적이다. 따라서 내내 건강을 의심하고 걱정하다가 의사를 만나 진단을 받고, 설명을 듣고,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이 책을 대하면, 우리가 생각하고 접하는 가속의 시대, 그 실체에 대한 놀라운 지식과 정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너무 늦지 않게 나와서 고마운 책이다.

우리는 모두 갑자기 닥쳐와서 삶을 송두리째 억울한 고통과 절망에 빠뜨리는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의 가능성 속에 살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각자 나름의 심각한 질병을 지니고 살고 있다. 직접 심장마비와 암을 겪었던 의료사회학자가 쓴 이 책은 따라서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만큼 온 국민이 건강에 대한 강박감에 짓눌려 있으면서‘나쁜’병에 대한 공포와 혐오와 기피증이 강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암, 심장병, 신종 난치병을 앓는다면 그를 ‘온전한’사람이 아닌 동정과 기피의 대상으로 삼으며 의학적 용어로만 설명되는‘비인간적’존재로 만든다. 당사자에게 질병은 의학적 증상이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 그는 모든 사람과 일상으로부터 낯선 존재가 되고 죄의식과 두려움과 미안함으로 고통을 침묵 속에 묻고 외로운 투쟁을 한다. 그러나 질병과 그로 인한 긴 고통은 우리의 삶의 일부이자 정상적 과정이며 다만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하나이다. 잘만하면 인간의 조건, 인간다움의 의미, 다시 설정해야 할 세상과의 관계를 발견하는 중요한 기회이다. 우리가 환자와 함께하는 것은 의학의 식민지가 된 몸에서 그를 다시 사람으로 발견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병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질병은 사회와 연결된 것이며 다중적인 의미와 관계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일상의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오히려 덤으로 얻는 삶을 갖는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목소리를 허용하고 함께 목소리를 나누어야 한다. 질병과 고통은 의학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서 지극히 일상적이고 정상적이며 온전한 사람의 일생의 한 부분이다. 이 책은 환자와 그의 친구, 의사, 간호사, 돌봄이, 그리고 잠재적 환자인 우리 모두가 읽어 볼 일이다. 나와 그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사회를 위해서.

인문학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려면 고전 다시 읽기 못지않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인문학은 진부함에서 벗어나 참신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의 진화는 하찮게 보이는 식물들과 주고받은 공진화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우리가 식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인간이 식물을 길들이며 살았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식물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사랑하고 가꾸고 번식시키도록 우리들을 길들이며 살았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식물이 없었다면 먹이사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물과 인간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연의 이치는 그렇게 각각의 존재를 인연의 그물로 엮어준다. 식물들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아름다운 꽃잎은 바람에게 빼앗기고 싱싱한 이파리는 곤충들의 먹잇감이 되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처럼 또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는 식물들의 단순한 삶 속에서 역설적으로 한없이 당당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식물이 지닌 모든 속성과 식물이 겪는 모든 과정은 곧 생명의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 인간의 삶도 식물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지금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신음하고 있는 잡초들을 한 번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은 억울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삶이라고 소리 없이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식물의 현명함과 고고함과 당당함을 배우자고 제안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 식물들은 우리들에게 자기들처럼 고고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용감하고 아름답게 살라고 손짓한다는, 것이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조용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전통적으로 역사학자들은 문명의 발전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경제적 생산력에 주목해왔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두 시대로 나눌 때 바로 산업혁명을 시대구분의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역사학자들이 사회경제를 논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균등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 관심은 그동안 거의 전적으로 생산체제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주관적 주체로서의 사람을 중시하는 21세기 역사학에서는 개개인이 일상에서 부단하게 구매하여 써버리는 ‘소비’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소비의 역사󰡕는 수 천 년 동안 인간의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왔음에도 정작 역사가들에게 외면당한 소비라는 새로운 프리즘으로 근현대 사회경제를 조망하는 책이다. 소비라는 인간의 본능적 동기를 통해 인간사회의 역사를 다양하고도 심도 있게 살핌으로써, 소비를 매개로 삼아 말 그대로 생활의 모습을 반추하고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기본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상품도 함께 살피는데, 약장수와 방문판매에서 백화점과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매방식과 판매 공간, 곧 구매방식과 소비 공간을 역사적 시각에서 흥미롭게 소개한다. 이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상품의 유행, 특정 제품이나 점주에 대한 불매운동 같은 소비 관련 행위의 이면에 깔린 저항과 연대의 오랜 역사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렇듯, 이 책은 소비라는 프리즘을 통해 근현대 세계 사회경제사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침으로써, 개인의 소비라는 일상사적 미시사를 통해 거시적 설명 틀을 제공한다. 현대 ‘글로벌’사회를 살면서도 주로 ‘국사’에만 관심을 갖는 한국인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바람을 만드는 존재가 있을까? 소설은 거기서 시작한다. 웨나, 남미 파타고니아 평원으로부터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만든다는, 그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인물. 그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떠난 네레오 코르소는 60년 동안 웨나를 찾아 헤맨다. 여덟 살에 아버지가 팔아버린 아이에게 웨나는 삶의 희망이자 신앙이다. 산으로 평원으로 심지어 도시까지, 웨나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숱한 위험과 배신을 당하지만 사랑도 찾아온다. 

아픈 이별 끝에 만난 또 다른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까지 얻었지만 네레오는 웨나를 만나고픈 열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다시 웨나를 찾아 헤맬 때 그가 평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람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이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탄식하며 웨나를 그리워 한 네레오가 생의 마지막에 만난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부자에게 남은 사실은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끝끝내 웨나의 존재를 믿었던 네레오와 아버지가 일군 함석집에서 다시 바람을 맞는 아들, 부자를 통해 삶과 갈망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한국소설의 시공간은 협소한 편이다. 공간을 확장하여 넓게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소망은 남미의 고원과 도시를 횡으로 종으로 누비며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네레오는 잠깐씩 머물긴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독자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든다. 남미에 대한 정보와 세세한 풍습까지 담아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소설의 강점은 웨나를 향한 네레오의 경건한 갈망을 섬세한 문장에 담아 구도求道에 참여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기다 아득한 생각에 잠기고 싶은 이들에게 적당한 소설이다. 작가가 깊은 마음에서 퍼 올린 사색과 문장에 마음이 오래 붙잡힐 수도 있다. 작가는 가벼운 세태에 진중함을 우직하게 들이민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내 삶에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정원은 집이라는 구역 안에 조성된 자연이다. 실제로 삶을 영위하는 현실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그림이나 시 속의 자연과 같이 사람의 마음과 손길을 통해 재창조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대체로 정원은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향을 담은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예술적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이 책에서는 시인 묵객들의 단골 소재였으며, 지금까지도 전하는 대표적인 고전 정원의 모습을 통해 한국, 중국, 일본 정원의 특색을 짚어 보았다. 한국의 정원은 소박하고 은근하다. 거기에 무심히 안기면 그대로 편안하다. 돌확, 분재, 작은 폭포 등 아기자기한 경물들이 정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원인 담양 소쇄원은 시와 그림이 넘쳐나는 곳이다. 오동나무에서 홀연히 날아오르는 산새의 날갯짓, 잔물결 일구는 연못 속의 물고기, 댓잎 부비는 소리, 물레방아에서 튕기는 물방울 소리, 계곡을 따라 흐르는 꽃잎은 무릉도원을 손짓한다. 중국의 정원은 몽환적이다. 인간의 의지대로 자연을 끌어들인다. 요소요소를 환상적으로 꾸며 놓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 든다. 쑤저우의 주오정위안은 중국 4대 명원의 하나로 500년 역사를 자랑한다. 광활한 자연도 압도적이거니와 이곳에 인연을 둔 시인, 화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예술의 보물창고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정원은 절제미를 추구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교토의 료안지, 그곳에선 시간도 숨을 쉬지 않는다. 물결치는 흰 모래밭과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돌무더기만으로 완성된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이 책은 서해문집에서 아모레퍼시픽재단의 후원을 받아 펴내는‘아시아의 미’가운데 한 책이다. 이 시리즈는 아시아 문화예술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문적인 내용을 쉬운 문체로 서술하고 많은 도판을 넣어 일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내용출처 : 한국출판문화진흥원 (www.kpip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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