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9월의 읽을 만한 책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이기성)은 2017년도 ‘9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세계화의 풍경들』(송병건/아트북스) 등 10종과 ‘9월 청소년 권장도서’로 『굿바이 내비』(문부일/다른) 등 10종을 선정 발표했다. 출판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문학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유아아동 분야의 책을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로 나누어 선정하고 있다. 9월의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진흥원 홈페이지((www.kpipa.or.kr)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의 어느 영문학자는 ‘이야기는 생존의 기술이기에 인류에게는 귀한 은인이고 이야기는 인간을 바꾸기에 세상까지도 바꾼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은 그토록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인가?
가온국 난모리 마을에 사는 ‘마라’는 원래 ‘불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 ~하지 마라의 ‘마라’로 불린다. 오월제에서 오월의 궁수가 되고 싶은 야무진 소망을 가진 당돌한 여자아이다. 어느 날 천관 ‘허수’에 의해 부모님의 숨져진 정체가 드러나고 부모님과 오빠들은 어디론가 잡혀간다. 그리고 검은 회오리에 의해 동물들은 령을 빼앗긴다. 검벌레에 휩싸여 전쟁을 일삼는 자현왕과 삿된 도술을 사용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천관 ‘허수’ 등의 무리에 맞서 ‘마라’와 감은산의 구미호 ‘강’, 자현왕의 아들인 왕자 ‘이도’, 쌍둥이 오빠 ‘동돌’은 용마 ‘우레’와 함께 흥미진진한 모험을 펼친다.
황천강과 원천강, 서천꽃밭 등 기이한 공간과 환생꽃, ‘용마의 아이들이 일곱 번째 화살로 어둠의 심장을 쏘리라’는 민중의 소망이 담긴 전설, 구미호, 저승, 도술, 용마 등 우리 설화에서 익히 보아 온, 익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소재들과, 선한 사람들이 승리하리라는 참된 소망을 간직한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정의의 화살을 쏜다. 세상 어디에나 선과 악, 빛과 어둠, 참과 거짓이 있다. ‘어둠은 힘으로 몰아낼 수 없어. 오직 빛으로 밝혀야지.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면 돼.’라고 말하며, ‘두려워도 힘들어도 함께 가면 된다.’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견뎌내고 선한 세상을 회복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인류에게는 귀한 은인이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가 인간을 바꾸고, 그래서 세상은 바뀌는 것이리라. 서양 판타지에 익숙한 아이들이 전통 설화에 맞닿아 있는 우리만의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자라는 아이는 어느 때가 되면 ‘왜요?’라는 질문을 쏟아낸다. 그 질문의 폭풍우는, 안 맞아본 어른은 모른다.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나중에는 입술 한 번 달싹일 수도 없어진다. 린제이 캠프와 토니 로스라는 영국의 작가들은 ‘왜요?’라는 그림책에서 그런 아이와 어른을 그린다. 아이의 ‘왜요?’는 어른은 물론이거니와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까지 넉 아웃시킨다. 쏟아지는 질문에 넌덜머리가 난 외계인이 지구 접수는 다시 신중히 생각해야겠다면서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외계인도 물리치는 이 질문 폭탄을 너끈히 받아내는 엄마가 한국에 등장했다! 받아내다 뿐인가. 이 엄마는 자신만의 발전소를 가지고 있어서 그 폭탄을 가지고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환상과 유머와 놀이정신에서 나오는 경쾌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아이라기보다는 엄마로 보인다. 아이의 천진한 질문에 대한 엄마의 즐거운 대답이 이 책을 살려낸다. ‘엄마 비가 왜 와요?’하는 아이의 물음에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하는 대답은 나옴 직하기도 하지만, 이어 나오는 ‘왜요?’에 ‘물고기들이 더럽다고 놀려서 그래.’가 나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엄마의 대답은 더욱 더 맥락 없이 엉뚱하고, 짓궂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정보나 친구 놀리기 등의 올바르지 않은 태도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 책이 결국 도달한 지점은 ‘모든 것 감싸 안기’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어른, 비와 무지개, 놀리기와 울기,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현실과 상상, 실수와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녹아들어 모난 데 하나 없이 둥글둥글한 세상을 보여준다. 표지 그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엄마와 아이는 자신의 눈높이를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시선을 맞춘다. 그 둘을 감싸고 있는 건 부드러운 물풀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이다. 부드럽고 자유롭게 세계를 넓히면서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따뜻한 에너지를 선물하는 이 엄마가 참 사랑스럽다.
피곤이 일상인 시대다. 신체·정신적인 피로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일상은 마라톤처럼 헐떡이는 괴로운 일이다. 탈출구가 없는 피로사회로의 진입결과다. 피로는 높아지고 흥미는 낮아지는, 번아웃(burnout)증후군의 탄생배경이다. 심신의 에너지 고갈과 함께 무관심을 넘어 냉소현상까지 연결된다. 지속되면 십중팔구 우울증이다. 뛰었다면 쉬는 게 맞다. 그런데 삶이란 그리 간단치 않다. 엉거주춤 빈둥거리면 금방 또 출발이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에너지는 고갈될 뿐이다. 책은 오늘도 소진되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번아웃 탈출방법을 다룬다. 피로사회·개인피폐를 다룬 다른 책과는 다소 구분된다. 가볍지만 구체적이고, 얇지만 실천적인 해소전략으로 번아웃(?) 독자를 배려한다. 저자는 몸과 맘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한의원 원장이다. 임상경험과 학계연구를 적절하게 글의 재료로 쓴다. 번아웃은 감기다. 누구든 찾아온다. 인정해야 가래 대신 호미로 막아진다. 버티고 참는 건 별로다. 피곤함을 간과하지 말라는 얘기다.
핵심은 후반부다. 전반부는 번아웃증후군의 원인진단에, 후반부는 해결방안으로 마음습관과 해소전략을 소개한다. 책 읽을 에너지조차 소진됐다면 후반부만으로 괜찮다. 번아웃 책이니 그래도 힘들면 덮고 자라(?)고 안내한다. 독서부담을 꽤 낮췄다. 구체적 행동강령으로 휴식과 독서를 권한다. 에너지 충전에 좋다. 맘도 좀 바뀌는 게 바람직하다. 착한 사람 혹은 능력자란 외부평가는 번아웃을 가중시킨다. 본인무게에 타인시선까지 더해지니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게 우선이다. 과감한 No가 필요하다. 일과 돈은 후순위다. 피로함정에서 홀로 벗어나긴 어렵다. 시스템적인 환경조성이 필수다. 사랑하는 사람의 지지와 격려만큼 결정적인 게 없다. 해법은 간단하다. 당장은 잠 잘 자기. 충분한 수면의 힘이다. 운동과 스트레칭은 체력회복에 좋다. 일러스트를 통해 실천자세도 알려준다. 마음의 면역력을 높이자면 감사일기 같은 것도 추천한다. 베개와 수건을 활용한 감정통제는 독특하고 재미나다. 한의사답게 경락을 두드려 에너지 순환을 돕는 방법도 알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학일 것 같다. 셈을 하지 못하고서는 우주의 원리를 고민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천문학자가 말했다. “지적 생명체란 미분과 적분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딱히 미분과 적분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지적인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수업 시간에 물어보았는가? “왜 0으로는 나눌 수 없어요?” “왜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죠?” “2는 소수인데 1은 왜 소수가 아니죠?”라고 말이다. 나도 물어본 적이 없다. 선생님이 그렇다고 했으니 그런 줄 알았을 뿐이다. 선생님도 우리에게 그게 왜 궁금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아 궁금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수학마저 그저 배워서 풀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은 우리가 외우고 지나친 공식이 나오기까지 수천 년 동안 씨름을 했던 사람들의 틀린 대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수험생들의 오답노트 같은 것은 아니다. 오답노트는 실수 하지 않기 위해 정리해 놓은 노트이지만 이 책은 너무나도 논리적인 오답을 가르쳐준다. 치밀하게!
각 챕터는 <문제 설명> <오답 사례> <틀렸네!> <오답 속 아이디어> <오답의 약진> <오답에서 정답으로>라는 여섯 단계로 구성되었다. 오답에서부터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정답에 이르게 되는지 아이디어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학은 실패를 바탕으로 발전한다. 수학사란 틀린 답을 징검다리 삼아 정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자신에게서 위대한 수학자의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지적 생명체임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한다.
“어디까지 가봤니?” 모 항공사의 광고에 등장해 익숙해진 질문이다. 모든 인간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땅’은 인간이 나온 곳이며, 또한 인간이 돌아갈 곳이다. 따라서 광고 속 질문을 인간이 자신을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탐구의 여정에 대한 물음으로 해석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책은 인간이 살아가는 땅, 곧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일곱 가지 상품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익숙하고 중요한 일곱 가지 상품인 청바지, 스마트폰, 맥도날드 햄버거, 콜라, 축구공과 야구공, 커피, 다이아몬드의 생애(원료부터 유통, 소비까지)를 따라가면서 책은 다양한 세계지역을 알려주며, 보여주며, 그 관계를 넘나든다. 책이 이야기하는 일곱 가지 상품이 오늘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누리는 인간 생활 그 자체에 다름 아닌 바, 책을 읽다 보면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이해라는 책의 지향점은 꽤나 확장되어 현대 인간 문화에 대해 미처 몰랐던 지식과 정보를 광범위하게 알려준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세계지리’라는 표현이 학창시절을 지낸 세월에 비추어 익숙하면서도 성인으로서의 일반인에게는 새삼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저자가 글로벌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고자 의도한 대상이 청소년이고, 이 책은 저자가 갖는 그러한 포부를 펼치는 첫 저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표현의 의도와 상관없이 청소년 뿐 아니라 일반인이 읽기에 충분히 적합하고 매력적이다. 어찌 보면, 일반인과 청소년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저작물이 매우 부족한 현실에서 이런 출판물을 통해 공감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행이 보편화된 세상이다. 이 책에 나오는 상품 혹은 다른 어떤 것을 선정해 그것에 연결된 세계 여러 지역의 이야기를 여행의 테마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달속도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머지않아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다양한 형태의 기계(예컨대, 각종 로봇 등)가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쩐지 불길하고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언제까지나 경계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일상생활 속의 혜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과학기술은 모든 영역에서 인간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 자체는 글자 그대로 가치중립적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 재앙일 수도 있고 축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기술을 대하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인문학적으로 다시 ‘점검하고, 성찰하고, 수정할’필요가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회적 인성(人性)의 확립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과학기술의 시대에 평균적인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인문학적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마치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보충학습교재와 같은 느낌도 들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제1부 생각 제2부 의사소통 제3부 보편적 인류애 제4부 공동체 제5부 리더십 등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각각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연관된 인문학적 고전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있다. 거기에는 문학도 있고, 종교도 있고, 미술도 있고, 음악도 있고, 철학도 있다. 가령, 제3부 보편적 인류애 편에서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를 이해시키기 위해 동화 <도서관에 간 사자>를 인용하는 식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는 누구나 조용히 해야 하지만 소리를 질러 넘어진 도서관장을 구한 사자에게 적용된 새로운 규칙은 ‘으르렁거리면 안 됨. 단,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는 예외임’이 된다. 지루하지 않게 쑥쑥 읽히는 책이다!
소설은 또 다른 역사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기록하면서, 궁극의 목표점을 놓치면 안 된다. 조갑상 작가는‘지금 여기’를 그리면서 역사의 한 점을 꾸준히 환기시켜왔다. 이 책에 담긴 8편의 단편소설은 가볍고 발랄하여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에 버티고 서서 결코 지나치면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중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조명하기보다 각자의 잣대로 재단하는 동안 일그러지고 묻히기 일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실체가 드러나는 사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민보도연맹’이다. 1949년에 촉발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 이 일은 2009년이 되어서야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조갑상 작가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소재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가 여전히 현역작가이기에 또다시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쓸 수 있었다. 1980년대 전후에 출생한 작가들이 포진한 문단에서 새롭게 밝혀지는 아픈 역사를 그릴 노련한 전사戰士가 칼을 벼리고 있었다는 건 여러모로 행운이다.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작성되고 있는 기록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 변형시킨다 해도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는 준엄한 사실을.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조갑상 작가가 조명하는 또 다른 중요한 소재는 좀처럼 조명받기 힘든 장년 이상의 사람들이다. 노인은 ‘문제’라는 단어와 묶여 뉴스에 등장하기 일쑤인데 조 작가가 <패가 뭔지는 몰라도>를 통해 보여주는 노년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삶’이다. 자녀에게 목숨 거는 부모를 탓했던 천편일률적인 시각을 확대해 기생과 안주를 택한 젊은 세대까지 조명하는 <목구멍 너머>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조갑상 작가의 작품은 후배들에게 ‘오래, 그리고 소신있게’ 작업하라는 당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어릴 때 유난히 병치레가 잦은 데다 먹는 것을 싫어해 비리비리 말랐던 나는 걸핏하면 학교에 가지 못했다. 밭은기침을 큼큼 해대며 꽃밭에 쪼그리고 앉아 채송화 봉숭아를 동무 삼아 지냈다. 인생의 8할이 음지이던 그때, 국민학교 4학년 2학기 담임이던 호중식 선생님이 나를 양지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1학기 내내 거의 매일 신경질적인 여선생님에게 대나무 자로 손바닥과 종아리를 맞았다. 모두가 선생님이 떠나길 기도했을까, 기적적으로 2학기에 선생님이 바뀐 것이다. 선생님은 7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의 장점을 하나하나 발굴해 가며 보듬고 칭찬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내 글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은 날부터 밥맛이 돌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읍의 작은 학교인 수곡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함께 이루어 낸 기적의 이야기이다. 입학생 두 명에 전교생이 달랑 스물세 명인 학교에 부임한 교사들은 비새는 교실에서 두 학년을 번갈아 가르쳐야 했다. 전교생이 60명 이하이면 폐교 대상이라 시설 보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질 것이라는 절박함이 학부모를 움직이고, 학교가 마을을 살릴 수 있다는 신념을 품은 교사들이 두 발 벗고 나섰다. 아이들에게 친환경 급식을 먹이고, 80여 종의 자격증을 취득한 교사들(일선 교사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는 줄 정말 몰랐다!)이 직접 특별활동 지도를 하면서 학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들을 보며 외지에서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오는 사람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수곡초등학교는 이제 전교생 100명이 넘는 혁신학교로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기적의 학교가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글을 쓰신 돌문 선생님의 모습에 월남에서 막 돌아와 정말 시커맸던 호중식 선생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분명 교육 현장에는 아이를 일으키고, 별처럼 빛나게 해 주는 선생님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여상, 이석문, 채형순, 변원섭, 이상호 선생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