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3월의 읽을만한 책
3월 , 이달의 읽을만한 책 소개
(◆좋은책 선정위원회 위원 가나다 순)
- 김광억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김서정(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김영찬(서울 광성중 국어교사), 이근미(소설가),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허남결(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봄이 저렇듯 다정하게, 저렇게 고운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세상의 소란이 날마다 우리를 팽이질 쳐서 어지러운 나날, 물기 비치며 사알짝 한쪽 얼굴 내비치는 여린 순과 강아지의 순한 눈동자와 흐드러진 벚꽃과 다람쥐의 졸음과 화사한 밥상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책이다, 『시인의 밥상』은. 지리산과 거제도 등지에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뒹굴며 살지만 무뚝뚝한 나무껍질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의 굳은 등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올곧은 표정을 담아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는 책이다, 『시인의 밥상』은.
이 책은 분명 음식과 우정을 비벼 내는 에세이집인데, 나는 가족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의 화자인 공지영 작가는 틈만 나면 고향인 지리산으로 내달리는 어리광쟁이 딸이고, 버들치 시인 박남준은 자애로운 엄마다. 마당과 뒤꼍을 오가며 구시렁대면서도 착실하게 주변 사람을 챙기는 최 도사는 아버지이고, 거제도의 큰손 J는 언니다. 전주의 은자 씨는 이모이고, 소설가 한창훈은 이웃이다. 사진작가, 영화감독은 친구이고, 그밖에 주변을 스치는 이 몇몇도 등장한다. 한데,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무서운’사람들이란 거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쓰는 1년 동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 무서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연이 주는 선물로 따듯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려 딸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달래 준다. 이 밥상에 우리 모두를 위한 수저가 놓인 것이 보이시는지.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 그를 조명하는 글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소설로 왔다. 정약용을 사랑한 두 여인, 그들의 자녀, 제자들의 얘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조강지처 혜완, 풍파를 겪는 남편을 대신하여 자녀들을 건사하고 집안을 일구는 강인한 여인이다. 유배지에서 만난 헌신적인 진솔, 다산의 아이를 품게 된 걸 천운으로 여긴다. 혜완이 낳은 아들 학연과 학유가 학문과 데면데면한데 반해 진솔의 여식 홍임은 다산을 닮아 총명하다. 하지만 진솔을 품지 못하는 혜완으로 인해 진솔 모녀에게 벽이 되고만 다산은 아픈 마음을 속으로 삭이며 세월을 견딘다.
정조 사후에 지난하게 이어진 다산의 삶과 두 여인의 사랑방식, 요즘과 다를 바 없는 권력과 사랑의 속성을 새기며 읽으면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유배지든 어디든 끊임없이 집필을 하여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정약용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교훈적이다. 유배지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명석한 딸 홍임이 글을 퍼트려 나갈 계획이고, 아전의 아들과 홍임의 사랑이 영글어 갈 모양이어서 출구는 희망 쪽이다. 국민일보문학상과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문희의 글솜씨와 삶의 저력이 ‘빈한하지만 격(格)이 있었던 최고의 학자’를 그 무게에 걸맞게, 다감하게 조명한다. 식재료, 요리, 약재 등을 풀어내는 솜씨가 상당하면서 곰살맞다. ‘자발나게, 시틋하니, 비긋이’같은 단어로 글의 분위기와 맛을 살려냈다. 「목민심서」를 인용하며 개혁을 논하는 내용으로 세상사를 놓치지 않는다. 분량이 많아 오히려 넉넉히 빠져들 수 있다.
- 추천자: 이근미(소설가)
청일전쟁이 끝나던 1895년 남산에서 서울 장안을 찍은 흑백사진을 보면, 도시 전체가 남대문과 광화문(경복궁)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단층 초가지붕의 물결이다. 당시 고관대작의 집이 초가집이었을 리는 없지만, 그런 호화 기와집은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증거자료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처마를 맞댄 특정 거주 공간이 조선시대 내내 서울 장안에 과연 얼마나 존재하였는지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최근 서울의 전통한옥마을로 각광 받는 북촌이니 서촌이니 하는 공간은 과연 조선시대 때 어떤 형태로 존재했을까? 북촌과 서촌의 한옥은 과연 조선시대의 모습일까? 혹시라도 근대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한 도시계획의 산물은 아닐까? 50세를 넘긴 한 인간이 기억하는 메모리의 80% 이상이 최근 5년 안에 겪은 경험이라는 연구도 있듯이, 한 2,000년 문명사회가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기억의 80% 이상도 솔직히 최근 100년 사이의 경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마치 오랜 역사의 전통인 양 무조건 믿는다. 서울 장안에 고색창연한 한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조선시대의 전통으로 단정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진짜 전통은 식민지 근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멸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가 흔히 전통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거의 다 ‘근대’의 붓질을 거친 혼종(hybrid)일 뿐이다. 이 책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이 자랑하는 전통 풍경의 원형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1920년대 이후의 산물임을 전해주는 도시계획 전문가의 책이기에 신뢰도도 높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점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대담 모음집‘죽음은 두렵지 않다’라는 책제목은 다소 허풍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방광암과 심장수술을 겪으면서 실제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본 다치바나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임사체험자들의 공통적인 증언, 그리고 의식의 세계에 대한 최신 뇌-과학 이론 등을 통해 죽음을 굳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죽음은“지극히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결론은 책상머리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정리한 살아 있는 기록 그 자체이다. 그래서인지 진정성의 무게가 남다르다. 누가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든 여전히 우리는 죽음을 모른다. 아무도 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서로의 다른 반쪽인 한 우리는 죽음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모든 인문학의 궁극적인 물음이‘죽음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나의 죽음은 내가 죽어야 한다’는 영원불변의 명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순간 우리는 어떻게 죽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만이라도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 자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 추천자: 허남결(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생산과 풍요의 통계적 수치가 높아감에도 오히려 불평등, 취업난, 특히 청년실업, 잉여노동, 빈부격차, 실업수당, 최저임금, 기본소득 등의 새로운 단어들이 성장론과 복지(분배)론 사이의 논쟁에서 점차 정치적 이념과 체제 논쟁의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다.
노동에 따른 소득의 개념은 경제성장과 복지 분배를 위한 기본적인 철학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철학이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적용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제이션의 멋진 기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구조가 확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지배적인 윤리와 가치관은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었다. 저자는 지구 남반부의 많은 지역에서 물고기가 사는 어장이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물고기부터 주라는 주장을 대변한다. 즉 소득을 스스로 보장할 노동시장과 생산자원이 주어지지 않은 조건에서는 빈자와 실직자를 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사회의 기생충으로 보는 시각은 시정되어야 하며, 따라서 분배란 생산자가 빈자와 실업자에게 뜯기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생산자가 소외된 사람들이 가져야 할 원래의 몫을 차지한 대가로서 치러야 하는 정당한 나눔임을 강조한다.
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의 발상은 우리나라 일부 진보주의 정치가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빈곤과 실업의 구조와 성격은 나라마다 다르므로 물고기를 주라는 주장은 간단히 정당화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점차 이 주장이 정치적 이념과 체제 논쟁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오늘날 그 반대의 논리를 위해서도 이 책이 전하는 또 하나의 현실을 진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부자와 빈자 사이에 놓인 편견과 왜곡을 깨트려야 하며, 분배의 정의 뿐만 아니라 나눔의 철학 혹은 윤리를 되새기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 추천자: 김광억(서울대 명예교수)
국내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하지만 인문학이 대중에게 다가서는 만큼, 비례해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폭과 깊이가 함께 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가볍게 접근하는 얕은 인문학적 접근이 대중에게 선택받는다면, 깊은 내공의 인문학적 접근 혹은 정작 인문학의 원전은 대중에게 외면 받곤 한다.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처럼 “인문학 고전은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인문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원제목은 ‘The Greats on Leadership’이고, 스물 네 개의 장에 걸쳐 읽었든 읽지 않았든 익숙하고 유명한 인문학 고전을 통해 리더십을 다루고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일수록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지극히 개별적이고, 일률적이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이 인문학 고전 속에서 리더십의 주제어를 찾아내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독자에게 완벽한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 고전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와 접근은 사뭇 진지하며, 나름의 통찰이 있고, 적어도 저자 자신에게는 무한한 의미를 갖는다. 인문학 고전을 대하며, 자신이 관심 있는 이슈를, 그것을 통해 해석해보려는 저자의 노력이야말로 인문학 고전을 박물관 속 전시 기념물이 아닌, 이 시대에도 살아 숨 쉬게 하고, 그 가치를 일깨워주려는 진정한 애호가의 태도가 아닐까? 이 책을 그렇게 읽으려 하면, 꽤 큰 공감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이다. 흔히들 그 방향성에서 타인에 대한 영향력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먼저 자신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비로소 주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너무 무겁지 않은 성찰로 리더십의 색다른 본질을 경험해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 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는 유럽 중심의 역사다. 여기에 대한 반발로 기껏해야 1만 년을 다루는 역사에서 벗어나 46억 년이라는 긴 시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 연구가 활발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의 무대를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하는 우주의 시공간 전체를 다루는 빅히스토리(Big History, 거대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빅히스토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13년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밥 베인이 쓰고 고 조지형 교수가 번역한 『빅히스토리』(해나무)가 출간되면서부터다. 이화여대 거대사연구소를 중심으로 펼치던 빅히스토리 연구는 조지형 교수가 작고한 다음에는 조지형빅히스토리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과학자들과 중고등학교 교사들까지로 확대되었다.
중고등학교에서 빅히스토리 수업을 하든지 또는 하기 원하는 교사들은 138억 년 역사에 놓인 10개의 대전환점과 20개의 빅퀘스천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20부작 인문과학교양서를 펴내고 있다. 이번에 나온 『최초의 인간은 누구인가?』(김유미, 박소영, 와이스쿨)은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책이지만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다양한 최신 학설을 잘 정리하여 소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일 수도 있다거나 인류 진화의 계보에서 벗어난 데니소바인 같은 제3의 인류도 있다는 이야기다. 청소년을 위해 쓴 책이지만 성인 독자에게도 매우 유익하다.
- 추천자: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 관장)
빠른 길과 바른 길은 다르다. 아무리 빨라도 본인이 생각하지 않은 다른 길이면 무용지물이다. 도착시점은 늦어지고 비용·수고는 늘어난다. 속도시대 현대인의 숙명이다. 제대로 된 인생고민 없이 떠밀리듯 기계적인 사회진출로 첫발을 떼는 까닭이다. 이후엔 고민·후회의 연속이다. 직장과 가정, 사람 모두가 피로를 동반한다. 흥미와 만족은 낮다. 변화를 갈구하지만 속내 뿐이다. 책은 이들을 위한 충분한 동의와 대안을 제시한다. 2명의 저자가 스스로 겪었던 변화갈망을 소개하고, 그 실현방법을 ‘평범→비범’으로 체화시킨 유명인물의 사례로 뒷받침한다. 요약하면 멈추라는 주문이다. 목표조차 세우지 말고 그저 원하는 게 뭔지 곰곰이 탐색하는 시추(試錐)시간의 제안이다. 백세시대, 위대한 멈춤에서 삶을 바꾸고 싶다면 주목해 봄직하다.
책에 따르면 전환점(Turning Point)은 없다. 긴 시간의 전환기(Turning Period)가 인생 전체에서 시점으로 보일 뿐이다. 기간이기에 실험과 성찰이 전제되며, 그 결과가 비범한 인생으로 연결된다. 하던 걸 멈추고 삶을 재점검하면서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추기간은 걸출한 역사인물에게서 그 정합성을 인정받는다. 착각하기 쉽지만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둔하는 건 전환의 본질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 전환기의 퇴비를 축적할 수 있다. 책은 9가지 방법론을 제안한다. 암스트롱은 독서를, 헤세는 취미를, 소로는 공간에서, 융은 상징에서, 알리는 종교에서, 프랭클린은 공동체에서 전환계기를 찾아냈다. 이밖에도 글쓰기, 여행, 스승 등이 거론된다. 이때 명심할 건 나를 향한 질문이다. 내가 누구이며, 나다운 삶은 뭔지 그 질문에서 전환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 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석유는 ‘문명화’된 인간의 삶에 가장 큰 혜택과 함께 가장 큰 문제를 가져다주는 물질이다. 정치나 경제 측면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들여다볼 엄두도 실감도 나지 않지만, 환경 분야는 다르다. 십년 전 태안반도의 기름 유출 사고처럼 바로 우리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석유 덕분에 누리는 편의와 그로 인한 폐해 사이의 관계에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뭔가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외뿔고래의 슬픈 노래』는 석유로 인한 비극 중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에 빛을 비춘다. 석유탐사선이 북극바다에 공기총을 쏘아 석유가 묻힌 곳을 조사한다. 로켓 발사 소리보다 더 큰 그 소리가 10초에 한 번 꼴로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터진단다. 그 소리에 주변 생명체들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좀처럼 접하기 힘든 ‘외뿔고래’는 그 일로 고통 받는 북극 생물의 대표로 제시된다. 전설 속 일각수처럼 머리 앞에 긴 뿔이 달린 신비스러운 동물, 외뿔고래. 그들은 아름다운 빙하로 둘러싸인 눈부신 바다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힘겨루기를 하고,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며 우두머리를 뽑고, 종족을 번성시키려 노력한다. 그때 나타난 석유탐사선 때문에 고래들은 흰 배를 드러내며 물 위로 떠오르고, 청각과 방향감각을 잃은 채 제자리에서 맴을 돌고, 아름답게 노래 부르던 목소리를 잃고, 패잔병처럼 후퇴하여 새 보금자리를 찾아 헤맨다.
어린 독자들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온건한 표현 방식을 사용한 글과 그림이지만, 담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책의 임무 중 하나가 독자를 일깨우는 일이라면, 아이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외뿔고래를 돕기 위해 ‘가까운 거리 걸어 다니기, 전등불 잘 끄기, 헌 옷 물려 입기’를 실천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활동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품는 바람이다.
- 추천자: 김서정(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학교에서 다른 친구를 괴롭힌 아이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장난으로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은 왠지 비굴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오히려 당당하다.
그런데 여기,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트렌트는 7개월 전 겨울, 호수에서 벌어진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자신이 날린 퍽이 심장 질환을 앓던 재러드의 가슴에 맞아 친구가 죽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죄책감 때문에 트렌트는 수업 참여를 꺼리고, 선생님께 반항하고, 친구들과도 멀리하며, 가족에게도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 상처를 키워 간다. 더더구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야구부 활동도 망설인다.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의 공책’에 그림을 그리는 것 뿐. 이런 트렌트에게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가진 여자 아이 팰런이 다가옴으로써 트렌트는 차츰 자신을 향한 자책과 타인을 향한 원망이라는 마음 속 송곳을 내려놓고 조금씩 자신의 본 모습과 자신감을 찾아간다. 상처받고 흔들리던 트렌트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한 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선생님과 가족,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깊은 책임을 느끼는 트렌트와 어린 시절의 사고에 대한 악몽 속에서도 친구를 향해 손을 내미는 팰런, 이들의 우정이 감동적이다. 상처를 이겨내는 힘은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기다림이라는 걸 보여주는 주제 의식과 청소년의 아픈 감정을 잡아내는 작가의 섬세한 서술이 만나 몰입과 공감의 기쁜 경험을 선사하는 멋진 성장소설이다. 사족 하나. 원제는 ‘Lost in the Sun’, 야구에서 외야수가 햇빛 때문에 뜬 공을 볼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자극적인 제목이 오히려 아쉽다. 제목으로 눈길을 끌려는 의도는 좋은 독자에겐 굴욕이다.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국어교사)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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